108화. 금강의 창기사(8)
쾅-!!
“큭, 이 자식!”
[■■■■!]
놈과 정면에서 서로 충돌하듯 맞부딪힌 순간, 기체 내의 압력이 급속도로 치달았다.
모니터 화면이 적색의 신호를 발하며 위태로운 경고음을 발했다.
[■■■■!]
그러한 상황 속에 놈을 코앞에서 직면한 유성이 이를 악물었다.
푸른 눈을 빛내는 놈이 입을 쩌억 벌려대며 그를 향해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빌객스를 쓰러트린 녀석의 기세는 사뭇 살기등등했다.
유성은 내부의 공기가 놈의 기세에 밀려 쩍쩍 갈라지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출력을 높였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이것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개조를 더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기가스의 성능이 높아졌어도 내부의 골격이 되는 뼈대 프레임은 예전의 것 그대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충격이 내부에 쌓였다간 제아무리 제로 브레이커라도 버티지 못한다.
실제로 삐거덕거리는 듯한 심상찮은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기체가 제대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 순간,
[아빠!]
번-쩍!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마치 번개가 강타하듯, 하늘에서부터 내려친 번쩍이는 천둥이 유성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익숙한 기세와 감각. 그 정체를 모를 유성이 아니었다.
“리브?”
[응!]
그의 부름에 응답하듯, 곧장 기체 내부의 핵에 융합한 리브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힘찬 대답과 함께 그의 기가스에서부터 한층 강렬한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힘을, 강제적으로 끌어 올리는 것이다.
그 순간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놈과의 접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쩌저정!
녀석이 붉은 빛줄기가 되어 쏘아지며 제로 브레이커의 주변을 인정사정없이 긁어냈다.
위태로운 상황과 그의 사각을 노려가면서 계속해서 시선을 어지럽히는 놈. 그 터무니없는 속도를 바탕으로 한 접전은 과연 완전체라고 할만했다.
‘정말 정신이 없다.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아!’
유성의 동공이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움직였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놈의 속도는 순식간에 그의 등 뒤를 잡을 정도로 재빨랐다.
그만한 녀석의 빠름에 반응하기 위해, 그의 눈동자는 마치 경련이라도 하듯 상하좌우를 바쁘게 움직여가며 뒤와 등 입체적인 이 상황을 모조리 인지하에 읽어냈다.
한가롭게 멍이나 때릴 순간 따윈 없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금세 놈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 정도였으니까.
쩡! 쩌저정!
하늘의 한 가운데에서부터 이어지는 격렬한 접전.
그를 스치듯 빠르게 지나치는 적색의 빛줄기를 향해, 유성은 철저하게 대검을 휘둘러가며 놈을 튕겨냈다.
워낙에 속도가 빠른 탓에 간신히 놈을 빗겨내듯 후려치는 것이 고작일 정도다.
하지만, 상황은 틀림없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이 격렬한 접전의 와중에서도 리브가 융합한 드라칸의 핵이 빠른 속도로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는 갈수록 나아지는 힘과 속도로서 놈에게 맞섰고 이제는 쏘아지듯 움직이며 놈에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성!]
퍼버벙!
멀리서부터 쏘아진 오색찬란한 다색빛의 포화가 대기를 일순 폭발로 물들였다.
그야말로 막대한 화력. 터무니없는 기세의 포격이었다.
이 전장에서 그만한 규모의 입자 포격을 쏠 수 있을 만한 이라면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힐끗 고개를 돌린 유성의 시야에 전함 메타트론의 갑판 위에 자신의 몸체를 단단히 고정시킨 포격 전용의 기가스, 스크래퍼가 보였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라피스였다.
‘고맙다, 라피스.’
속으로 시간을 잠시나마 벌어준 라피스에게 감사하며, 드디어 잠깐이나마 기회를 포착한 유성이 소리쳤다.
“바로 지금!”
[알았어!]
대답과 함께, 그 즉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핵에서부터 시작된 강렬한 태양과도 같은 기운이 빠른 속도로 전신을 타고서 흐르기 시작했다.
[■■■?!]
그 기묘한 변화에, 일순 놈이 멈칫할 정도였다. 그만큼 막대한 마력이 느껴지고 있었으니, 당연할 터다.
실제로 그것은 눈에 띄는 변화로까지 이어졌다.
가공할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움직임이 갈수록 빨라졌다. 그의 기체가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제로 브레이커의 변화는 눈으로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일어났다.
마치 그의 기체가 또 하나의 드라칸이라도 되는 듯이 그 형상에마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내부 프레임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혈관과 근육들이 그의 기체 위로 빠르게 자라나면서 그를 뒤덮기 시작했다.
[■■■?!]
흡사 피와 살이 자라나기라도 하는 듯한 그 기묘한 변화에, 일순 놈의 당황이 느껴졌다.
잠시나마 녀석이 움찔거리며 멈칫할 정도였다.
단지 눈에 보이는 변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기체의 성능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급상승하고 있다.
단순히 조금 강해진 것 같은 정도가 아니라, 그의 움직임이 대기를 찢을 듯 빠르게 가속에 가속을 더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수십 미터를 도약하는 듯 느껴질 정도로 아득한 속도감.
보통의 인간으로는 인지조차도 불가능할 가속이 연거푸 이어나는 와중에서도, 그럼에도 그 속에서 유성은 놈과의 접전을 멀쩡히 이어나가고 있다.
그가 완벽하게 이 속도감에 적응하고 이용할 줄 안다는 의미였다.
[■■■■■■!]
붉은 선과 푸른 선이, 서로 뒤엉키듯 대기에서 맞부딪혔다.
“큭!”
유성은 너무도 아찔한 부유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의 기체가 급가속을 순간적으로 수도 없이 해나가는 탓에 몇 번이고 피가 치솟는 듯한 역류감을 느껴야만 했다.
속이 어지럽다. 당장에라도 토악질을 할 것만 같았다.
중력이 작용하는 행성의 한복판에서의 접전은 이토록 파일럿에게 버겁게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그의 눈두덩이가 마치 불에 데우기라도 한 듯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 속도에는 제아무리 그라도 버텨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초인이라 불리우는 마나 사용자라 할지라도 결국 그 근본은 하나의 피륙을 가진 인간이었다.
따라서 그 육체는 틀림없이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내몰아치는 환경과 상황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더더욱 그 한계는 빨리 찾아온다.
유성은 자신의 육체에 도달하기 시작한 끝을 감지했다.
* * *
드높은 대기권의 영역.
“음? 저건 뭐지?”
기가스의 어깨에 올라탄 채로, 추락할 듯한 속도감과 함께 강하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유리 엘 바이어스였다.
그녀의 머리칼은 날카롭게 몰아치는 칼바람을 맞고 있는 탓에 정신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유리는 지상에서부터 벌어지는 광경에 의문을 드러냈다.
쿠구구궁-.
멀리서,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의 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기를 선하게 물들일 정도로 강렬한 푸른빛의 입자가 반대편의 대기로 지나쳐가며 일순간이나마 빛났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 대한 나직한 소감을 중얼거렸다.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건가?”
[유리 대장님!]
그때 그녀를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를 어깨 위로 태우고 있던 기가스에서부터였다.
“말해라. 무슨 일인 거지
[지금 저 아래에 있는 것은 저희가 강하지점에서 합류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 전함 메타트론입니다!]
“그런가. 아무래도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유리는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래에 그들이 합류하기로 했던 전함 메타트론이 있다면, 대충 그 전후 상황에 대한 이해로는 충분했다.
대충 무슨 소리인지 감이라면 잡았다.
‘하물며, 현재 저곳은 드라칸의 존재가 확인된 게이트 출몰 지역이었으니. 저 상황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
그녀의 예상이 맞다면 지금 저들은 드라칸과 이미 전투에 돌입한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가능하다면 최소한으로 해야만 할 터.
유리가 기억하기로 저 구역은 아마도 꽤나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환경 지대였다.
이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불기둥이 곳곳에서부터 치솟는 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기억은 아마도 확실했다.
그런 위험 지대에서, 구태여 자제해야 마땅할 포격까지 격렬하게 쏴대면서까지 싸운다는 것은.
그만한 위험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는 말의 의미와도 같았다.
“뭔가 심상찮은 개체라도 나타났나 보군. 상위체 이상 등급의 드라칸이기라도 한 건가.”
그때 그녀의 부하에게서부터 다시금 음성이 들려왔다.
[메타트론 쪽과 통신이 연결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채널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대답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의 화면이 떠올랐다.
화면은 다소 부실했다. 연신 지직거리며 끊어질 듯 말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칼바람이 나부끼는 대기권의 영역인 탓에 그러한 거였다.
그 다소 부실한 홀로그램의 화면 위로, 어느 익숙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의 그 남자, 아스트라 부함장이었다.
[…유리 엘 바이어스 님. 다시 뵙습니다.]
“아니, 인사라면 됐다.”
하지만 유리는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녀는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지금 나타난 드라칸의 규모는 어떻게 되지?”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단 한 마리입니다.]
“…한 마리라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의 말이 워낙에 이상했던 탓이다.
대개의 드라칸들은 무리 규모로서 활동한다.
자원 채취를 위해서도 그러지만, 전투 상황이 벌어진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놈들은 무리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들답게 싸움에서도 떼거지로 몰려들어 덮치곤 했다.
이제껏 전장의 일선에서 싸우고 있었던 유리 그녀 또한 언제나 그러한 상황을 직면해 왔다.
[네. 잘못 들은 게 아닙니다. 적은, 단 한 마리입니다. 그 이상의 수가 아니라는 소리이죠.]
“알았다. 전장의 상황이 어떠한지 실시간 영상을 보내줄 수는 있겠나?”
[쿵! 퍼버벙!]
그 즉시 그녀의 눈앞에 격전지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 영상의 안에서부터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였다.
푸른 빛과 붉은 빛줄기가, 서로 뒤엉키고 헝클어지기를 반복하며 영상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 말이다.
그녀는 그 의미가 그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에 그런 것임을 대번에 눈치챘다.
다만 그 속도가 비상식적인 수준에 속할 정도로 재빠르다는 것은 그녀가 보기에도 다소 이상함이 느껴졌다.
[덧붙이자면, 보통 수준의 드라칸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 하나뿐이라면, 분명 그럴 테지.”
진작부터 태연하기 그지없던 그녀였다.
하지만 뒤이어 덧붙여지는 소리에는, 제아무리 각성자인 유리라도 잠시나마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등급은 상위체보다도 한 단계 위의, 완전체입니다.]
“쯧. 귀찮게 됐군.”
유리는 이내 그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상위체가 아닌 그보다도 윗줄의 등급에 속하는 완전체 드라칸. 지금껏 2차례나 상위체 등급의 개체를 격살한 전적이 있는 그녀였기에,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잠시간 입술을 자근거리던 유리가 물었다.
“어지간히도 강한 놈인가 보지? 상위체와 비교한다면 어떠하지?”
[압도적입니다.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말입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등급이란 게 괜히 나뉘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아래와 위의 등급의 간극은 분명 터무니없이 벌어져 있을 터였다. 전투체와 상위체간의 간극이 말도 못 하게 벌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한.
그 상대 파일럿이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이 아닌 것도 확실했다.
저건 기체의 성능이 힘겨워하는 거지 파일럿의 인지 능력만큼은 완벽하게 드라칸의 뒤를 뒤쫓는다는 의미다.
누군지는 몰라도 보통 괴물이 아닌 것은 파일럿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뭐.”
유리는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며 낮게 읊조렸다.
“힘겨워 보이기는 하니 도와는 줘야겠군.”
스윽.
그녀가 등 뒤에서부터 뽑아 든 거창이 서늘한 빛을 발했다. 매끄러운 창날의 위로, 날카로운 예기가 번들거렸다.
“그쪽 파일럿 보고 전달해라, 부함장. 단 한 번. 한 번만 놈의 발목을 묶어내면 충분하다고. 그러면 그 즉시 놈의 숨통을 끊어주겠다고 말이야.”
고오오오-!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금빛의 빛깔을 띠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꿰뚫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