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금강의 창기사(7)
이글거리는 빛을 발하는 완전체의 드라칸.
처음에 작은 점보다도 작았던 놈은 순식간에 그들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고속의 속도전에 특화한 놈인 탓인지 말도 못 할 정도로 빨랐다.
마치 하나의 창날이 빛살처럼 쏘아지는 것만 같다.
잠시간 모니터 화면 속의 놈을 노려보듯 응시하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빌객스, 너로는 무리다. 내가 정면에서 놈을 틀어막을 테니 보조하는 데에만 주력해.”
[알겠다고, 대장! 웃차!]
파직! 파지직!
대답과 함께, 빌객스는 즉각 강렬한 기세를 머금은 어둠을 한데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흑색의 전격이 연상되는 듯한 광경.
그녀가 끌어모은 에너지는 금세 저마다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 하나하나가 족히 기가스만큼이나 거대한 흑색의 창이었다.
단숨에 십여 자루는 될 법한 어둠의 창을 불러낸 그녀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맞아라!]
번쩍!
그 흑색의 창들이 그대로 놈을 꿰뚫을 듯한 기세로 날아갔다. 무지막지한 기세였다.
[■■■!]
하지만 놈은 처음부터 이미 모든 상황을 자신의 인지하게 두고 있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그 모든 창날들을 회피했다.
마치 물 흐르듯 매끄러운,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봤지? 놈은 그냥 피해버리면 그만이야.”
[끙. 그렇기는 하네.]
놈은 민첩함을 극대화시켜 그것을 자신의 진화 특성으로 선택한 완전체였다.
그런 놈을, 속도전에서 이기려고 하면 가능할 턱이 없다.
살아 숨 쉬는 하나의 생명체임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의 미사일이나 탄환이 연상될 정도의 성질을 지닌 녀석이었으니까.
물론 그게 아니라도, 사실상의 효력이 있기를 기대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속도전을 주력으로 발전시킨 놈은 바로 이게 골치 아프지. 대부분의 공격을 압도적인 속도로 피해버린다.’
속도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니 그저 피해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설사 피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체적인 완전체로서의 내구성이 터무니없기에 기껏해야 갑각질에 작은 상흔이나 남는 정도에 불과하겠지.
그처럼 놈은 말 그대로의 의미를 담은 완전체였다.
타고난 육체 능력의 민첩함과 강함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하기 어려운 적인데, 거기에 압도적인 방어력마저도 갖췄다. 완전한 완성의 적이나 다름없다.
유성은 힐끗 모니터 화면 속에 비치는 빌객스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빌객스의 강함은 자신의 역량을 극한까지 발전시킨 검술과 육체적인 경험 따위가 아니라 능력 그 자체이다. 녀석을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빌객스는 타고난 능력을 위주로서 적을 격살하는 각성자였다.
그 말인즉슨 그녀는 강대한 힘의 격차로 적을 찍어 누르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약한 상대에게 특히나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강한 타입이다.
‘그런 그녀에게 놈은 사실 상성상 최악의 타입이나 마찬가지다.’
사실상 빌객스로서는 놈을 격추할만한 능력이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각성자이되 각성자만큼의 경험을 갖추지 않았다.
날 때부터 가졌던 강력한 그녀의 능력이야말로 모든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성질을 지녔기에, 그 밖에 다른 요소들을 발전시킬만한 이유가 없었다.
힘으로 찍어누르면 손쉽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데, 구태여 어려운 길을 돌아갈 필요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자연스레 제대로 된 전투에 대한 경험과 기술의 상승이 이뤄질 기회가 생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놈의 능력은 상성상으로만 따져봐도 최악의 타입이나 마찬가지다.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가지도 못할 속도로 움직이는 저 녀석을, 빌객스에게는 따라잡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타고난 능력만이 유독 강할 뿐, 그녀의 육체는 유성과 비교하더라도 별반 크게 나은 점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유성 또한 거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빌객스는 다르다. 타고난 적성과 특기 또한 다르듯이, 놈을 상대하기에는 유성의 쪽이 보다 적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다르지. 최소한, 빌객스와는 거의 정반대나 마찬가지의 성향이었으니까.’
유성은 어떠한 장점조차도 없는 사람 본연의 성향만이 유일한 장점인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의 강함과, 손에 쥔 검 한 자루만이 그의 유일한 무기다. 오로지 그것만으로 눈앞의 모든 상황들을 해결해나가야만 했다.
자연스레 그의 모든 경험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서 만들어내는 상황을 여럿 개척해나가기 마련이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으니까 말이다.
[맞아라! 이 자식아!]
빌객스는 아예 마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새까만 기운들로 가득 물들었다.
암흑 재질의 시커먼 마력들이 날카로운 창날의 형상을 취하더니, 그대로 놈을 향해 쏘아졌다.
마력을 제 자신의 무기로서 다루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전생의 아그네스였던 그녀, 빌객스만이 가능한 특기였다.
고오오오-.
유성은 조종석의 안에서 침묵하며 가만히 상황을 관망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유유히 화면 속으로 보이는 놈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데 온 신경을 다했다.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였을 정도로 많은 마력의 창이었다. 족히 수십 개가 넘는 그것들이 쏘아졌음에도 곡예라도 부리는 양 죄다 회피해내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미간이 조금 굳었다.
‘역시나 맞을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군. 죄다 녀석의 감각권 안쪽인지 저 모든 걸 완벽하게 인지하고 회피해버린다.’
심지어 놈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자신의 진로를 틀어버리더니 불가능에 가까운 회피 능력을 보이기까지 했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비행 능력이다.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쨌거나 비행 능력이 저 정도나 된다는 거지.’
생각 이상으로 골치 아픈 놈인 게 확실하다.
단지 타고난 육체 능력만이 아니다. 놈의 회피 능력이 비상식적인 수준으로까지 강력했다.
어쩌면 놈은 인지 감각이 귀신같이 예민할 정도인지도 모른다.
이미 대충 볼만한 것들은 모두 봤다.
더 이상의 소모전은 해봐야 손해라고 느낀 유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빌객스, 그 정도면 충분해. 간이라면 볼 만큼 봤다. 더 이상의 마력 낭비는 불필요해.”
[알았어.]
그 즉시, 빌객스는 마력 소모를 그만두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넘실거리던 흑색의 마력들이 다시금 기가스의 내부로 스멀거리며 흡수되었다.
아는 것과 모름은 그만큼 다르다.
막강한 상대를 상대하기 위해선 놈의 정보를 빼내 와야 한다.
지금까지의 빌객스가 해낸 것들은 모두 탐색전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쓸데없어 보일지 모르는 행위의 그곳에 유성이 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체득해내어야 할 정보량이 있었다.
유성은 뇌리 안에 놈이 상상 이상으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단단히 박아 넣었다.
쿠아아아!
유성은 반대편의 하늘에서부터 그를 노리고서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놈을 노려다 보며 입을 열었다.
“슬슬 놈이 도착한다. 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내게서 떨어져.”
유성의 명령과 함께 빌객스가 천천히 그에게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그와 한데 붙어있다간, 그리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
놈이 날카로운 소음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고속으로 쏘아졌다. 그리고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하늘의 중간에서부터 격돌한 순간.
쾅-!!
요란한 굉음과 충격파가 대기의 한가운데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기체 내의 압력이 급속도로 치솟았다.
놈과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녀석이 붉은 선이 되어 그의 주변을 어지러이 선회했다. 그 과정에서 놈의 날카로운 발톱들이 그를 찢어발길 듯한 기세로 몰아쳤다.
“이 자식!”
유성 또한 자칫하다간 그대로 휩쓸릴세라 네 장의 날개 쓰러스터를 통해 마력을 뿜어내며 놈의 뒤를 따랐다.
쿠아아아!
푸른 빛과 붉은 빛의 줄기가 서로 뒤엉키듯 맞부딪혔다.
‘큭, 쉽지 않군!’
서로가 서로를 노리고서 급가속을 하며 검과 발톱을 들이밀었다. 유성의 무장인 로켓 대검과 놈의 발톱이 맞부딪히며 푸른 불똥이 튀겼다.
녀석의 공격 하나하나가 충격적이기 그지없다.
게다가 그 공격에 적잖은 경험이 쌓인 게 느껴졌다. 유성이 공격할 때마다 풍부하게 뒤바뀌는 대응의 패턴이, 그것을 증명했다.
전투가 벌어지며 놈과의 접전이 벌어질 때마다, 조종석 내부의 공기가 쩍쩍 갈라졌다. 막대한 충격파가 내부로 치미는 게 느껴졌다.
마치 유성 그가 있는 이곳이 마치 북의 안쪽처럼 크게 진동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
놈이 사납게 일갈을 터뜨렸다.
녀석의 사념과 함께 충격파가 그대로 대기를 타고서 그에게로까지 전달되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여긴 대기였다. 무중력에 가까운 우주와는 다르게, 이곳은 엄밀한 대기의 진동이 울리며 전달이 가능한 장소다.
그 충격의 전달은 이전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주륵.
몇 번이나 계속된 압력과 압박을 견디지 못한 귓가에서부터 피가 흘러내렸다.
유성의 기체, 제로 브레이커가 일순 힘이 풀려 비틀거린 순간,
[대장!]
그때 뒤편의 공간이 쩍, 갈라지듯 열리며 기가스 한 기가 난입했다. 빌객스의 EF-04였다.
빌객스가 놈의 등판을 노리고서 전력을 머금은 검격을 내지르기가 무섭게, 녀석은 진작부터 예상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이 팽이처럼 몸을 선회하더니 그녀를 날개로 튕겨냈다.
터무니없는 인지 감각 능력이었다. 보이지 않는 각도의 기습에마저 반응할 정도로 말이다.
[하! 빌어먹을 괴물 자식이!]
하지만 빌객스도 한 명의 각성자다.
그 충격이 상당할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회복하더니 주변을 물들일 정도로 진한 흑연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공간 너머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콰득!
단숨에 수십 미터의 공간을 건너뛴 그녀의 일격이 완전체의 전신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공격은 끝이 없었다.
놈의 주변 어디에서든 나타났다. 그 어디에도, 일말의 규칙성 따윈 없었다.
하지만 놈은 자신이 완전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모양인지, 순식간에 그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냈다.
놀라울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하여 공간을 찢고 날아드는 검세를,
덥석!
그대로 반응하여 붙잡았다.
[큭?!]
그리고는 당황한 그녀가 있을 공간의 저편을 향해 자신의 발톱을 들이밀었다.
콰직.
그 순간, 빌객스가 탄 EF-04의 조종석에 놈의 공격이 적중했다.
그것이 치명적으로 작용했음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성과 빌객스 간의 통신이 끊겼다.
그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던 통신 채널이 꺼지자마자, 유성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그네스!”
틀림없이 방금 전의 공격은 직격타였다. 조종석에까지 그 공격이 유효하게 닿았을 터다.
[…….]
하지만 그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빌객스는 어떠한 응답조차 없었다.
그녀가 탄 기체 EF-04가 아득한 지상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유성은 이를 아득 물었다. 그녀의 상태가 신경이 쓰였지만 채 미련을 가질 새도 없이, 그는 즉각 움직였다.
진작부터 완전체의 시선이 그를 향해 돌아갔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검에 마력을 불어넣고는 그대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 드라칸 또한 마찬가지였다.
매끄럽기 그지없는 움직임과 함께 날개를 틀어내더니 유성의 지르기를 회피하고, 역으로 그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
서로가 무한히 펼쳐진 하늘을 전장으로 정신없이 맞붙었다.
회피와 공격, 그리고 급습이 수도 없이 날아들었다.
쩡!
날아드는 완전체의 공격에 유성은 즉각 검면을 들어 막고, 그대로 튕겨냈다.
점차 기체가 삐거덕거리는 게 느껴졌다. 도저히 혼자서는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놈의 공세가 버거워졌을 때,
번-쩍!
순간, 하늘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