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102화 (102/200)

103화. 금강의 창기사(3)

유성이 보기에 치프의 머릿속에서 이제 드라칸이란 건, 하나의 고위험 등급의 생명체 따위가 아니라.

무슨 기가스의 부품으로 써먹을 파츠의 대용 즈음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하긴 요즘 들어서 치프가 유독 신나하던 게 눈에 보이긴 했지. 당장 저 흥분한 기색으로 가득 들어찬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니.’

유성은 고개를 돌려 격납고의 한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산처럼 쌓인 채로, 푸른 체액을 질질 흘리는 드라칸의 사체가 한가득이었다.

놈들의 사체를 마주한 치프의 얼굴 위로 만연하는 것은 마치 보물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만이 그러한 것은 아닌 게, 격납고를 돌아다니는 엔지니어들은 대다수가 그와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그들은 노획했던 드라칸의 갑각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가 하면, 때로는 그것들을 낱낱이 해체하여 내부 기관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으니까.

그 모습을 지켜본다면 여지없이 마찬가지의 눈빛을 하고 있음을 손쉽게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다들 비슷한 부류였다.

그처럼, 치프는 가능하면 새로운 여왕체를 마주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치프는 기가스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며칠 밤낮 동안을 줄곧 새가며 작업을 해도 얼마든지 감당할 부류의 인간이었다.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누구나가 필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성정.

유성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안타깝지만 치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여왕체를 기가스의 부품 대용으로 써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소리이니까요.’

여왕체는 말 그대로 무리의 여왕체다.

녀석들이 분명 같은 드라칸 중에서도 특별한 개체인 것만은 부정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리의 모체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드라칸들의 어머니 말이다.

그것들의 육체는 철저하게 자식을 낳기 위한 방향으로만 진화한다.

따라서 그 어디에도 전투를 위한 방향으로의 진화성을 머금은 요소는 없었다.

만약 그러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실제로 그것을 써먹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드라칸 무리의 여왕체를 두 번이나 사냥한 전적이 있는 그들이었으니까.

단지 두 여왕체 모두, 써먹을 구석이 전혀 없었기에 가만히 보류해두고 있는 것일 뿐.

‘기가스의 부품으로 사용할 만큼이나 특별한 성장을 하는 건 오로지 상위체 등급 이상의 자식들뿐이다.’

지켜줄 자식이 없는 드라칸 여왕체란 그리 대단할 게 없는 존재였다. 양산체나 전투체 등급만큼의 공격력도, 위협성도 지니질 못했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기묘한 산란기관만을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덩치 큰 괴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서 치프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을 건네왔다.

“이봐, 유성.”

“말씀하시죠.”

“한 번쯤 새로운 녀석을 붙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금 있는 녀석들로는 네가 타고 있는 제로 브레이커의 무장을 한층 끌어올리기에 부족하거든.”

“……?”

그 말을 들은 유성의 안색이 꿈틀거렸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치프는 그가 생각하던 예상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내용들을 그대로 언급해왔다.

“네 녀석의 기가스는 성능도 무지막지한 주제에 그 규격의 턱걸이가 턱없이 낮단 말이야. 기체에 두른 장갑이 빈약해서 방어력도 낮고, 무장도 부족하지.”

유성의 기가스는 이제 최소한 연합의 어떤 기가스보다도 강력할 것임이 분명한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연합에서부터 보급이 끝마쳐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예의 기체였던 EF-06을 기본 베이스로 만들어진 데다, 드라칸의 핵을 주 동력원으로 달았다.

거기에 완전체 등급의 날개 네 장을 덧붙였으니 순간적인 가속력만큼은 이전에 그들이 마주한 완전체만큼이나 재빠를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그뿐이란 거지.’

유성 또한 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이전의 전투에서도 매번 느끼고 있었으니까.

‘내가 탑승하고 있는 제로 브레이커는 빠르지만, 단지 그뿐이지. 제대로 된 치명적인 공격 수단이 없어.’

그가 소유하고 있는 로켓 대검만이 그의 유일한 전용 무장이라는 것에서부터가 그러했다.

물론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 화이트 레이븐이 사용하던 도구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유성은 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필요했다.

상위체 이상 등급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오로지 검만을 들고서 맞선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으니까 말이다.

보다 효과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요소가 제한적이었다. 암살형 기체나 다름없어진 현재의 제로 브레이커로서는, 과한 무장을 달았다간 오히려 역효과였다.

무거움은 기동성의 불가피한 하락을 낳게 될 테고, 그것은 자연스레 전투력의 하향으로까지 이어질 테니까.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제로 브레이커에 두터운 외부 장갑이 아닌 가능한 얇은 수준의 장갑만을 덧붙인 이유였다.

결국 지금의 최선은 빠른 속도로 적을 격멸하는 것.

무장의 필요성은 유성도 알고 있지만, 적어도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치프. 이만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 벌써 말이냐?”

“예. 아무래도 슬슬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니, 그 이전에 한 번쯤은 부함장님께 빌객스에 관해서 보고를 해야 하니까요.”

유성의 말에 치프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가. 뭐, 별수 없겠지. 마음 같아서야 저 드라칸 사체의 해체를 좀 부탁하고 싶었는데. 가능하면 한 번쯤 나중에 들러 달라고.”

피식 웃은 유성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조만간 다시 오도록 하죠.”

* * *

빌객스가 거주하는 주거 전용의 개인 특실.

그 앞에 다가서자, 문 앞을 네 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총기류로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이 엿보였다.

“들어가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시길.”

유성이 슬쩍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자 마찬가지로 짤막하게 끄덕여 응답한 그들은 문 앞을 비켜주었다.

기잉-.

유성이 문에 다가서자, 방문을 감지한 자동문이 알아서 열렸다.

“으하하하!”

그 안에는 빌객스가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뭔가를 보면서 실실 웃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통신 단말이었다. 기기에서부터 시끌거리는 소음이 들려오는 걸 보아하니 아마 어딘가의 드라마나 영화라도 보고 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시선이 마주친 빌객스가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어? 뭐야. 대장 아냐? 하이~.”

벌떡 침대에서부터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유성은 나직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혼자 웃고 떠드는 걸 보아하니 잘 있나 보네. 빌객스.”

“쯧, 이게 다 대장 때문인 거 아냐? 내 성격상 이렇게 얌전히 처박혀만 있는 건 그리 쉬운 행동이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

“모를 수야 없지. 나야 네 성질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따지듯이 지적질을 해대는 그녀의 모습에, 유성은 알겠다는 듯이 대충 손을 휘적거렸다.

“알긴 아나 보네.”

빌객스는 퉁명스럽게 입을 비죽였다. 조금 사나워진 눈매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선하게 맺힌 불만과 원망이 느껴졌다.

“그야 그렇겠지. 넌 그런 녀석이니까.”

빌객스, 아니, 아그네스는 기본적으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걸 즐겨하던 소대원이었다.

가뜩이나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인 그녀였기에 돌아다니는 데도 괘념치 않는 편이었는데, 줄곧 이 숙소 안에서만 얌전히 처박혀 있어야 했으니까.

확실히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긴 할 터였다. 아마 갑갑하다 못해 감옥에 있는 듯한 느낌이겠지.

실제로 얼마 전까지도 그 유명한 대감옥, 심연에 줄곧 있었던 것이 그녀였다.

그러니 더더욱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갑갑한 게 정상이긴 하겠군. 나 같아도 그럴 거야.’

지난 십수 년 동안을 줄곧 감옥에서만 있었던 탓에 몸이 한창 근질거리고 있을 빌객스가 아직까지도 얌전한 것은 전적으로 유성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 하나의 존재감이, 그녀에게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속으로 한숨이 옅게 흘러나왔다. 그도 어째서 빌객스가 이렇게까지 제 성질을 참아가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내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건, 단순한 명령 때문만은 아닐 테니까.’

명령 하나에 얽매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는다.

제아무리 같은 소대의 소대장과 소대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다고 한들, 그것은 이전 시대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성은 애써 그런 사실을 모른 척 입을 다문 채로 빌객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렇게 얌전히만 있으라고. 어쩌면 조만간 자유로워질지도 모르니까.”

“오? 진짜?”

“그래.”

유성은 확실한 수긍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단숨에 빌객스의 안색이 밝아졌다.

실제로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아, 빌객스는 지금보다는 처우가 다소 나아질지도 몰랐다.

적어도 지금만큼이나 숨이 막힐 정도로 관리를 받는 일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그들이 진입하는 환경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감시해가며 나아가는 게 가능할 정도로 순순한 장소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최소한 아스트라 부함장은 이 위험 지대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빌객스의 반발까지 사려 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기에는 이곳이 너무도 위험했으니까.

고오오오-.

기분이 한층 격해지기라도 했던지 빌객스의 생각은 그대로 겉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안에 가둬져 있던 마력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며, 주변에 흘러넘쳤다.

표정이 살짝 굳어진 유성이 곧장 지적했다.

“……마력 관리해. 잘못하면 경고음 울린다, 너.”

“아차차.”

그 말에 빌객스는 애써 주변의 관리를 서둘렀다.

손으로 주변에 새어 나온 흑색의 마력들을 긁어모으는 시늉을 하자, 그것들이 그대로 제 몸으로 다시금 흡수되기 시작한다.

잠시 감정이 조금 격해졌다고 해서 그대로 새어 나오는 마력이라니.

하지만 그것은 본능적인 발현이었다. 타고난 에너지의 근본이 너무도 강대한 탓이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빌객스 본인조차도 어쩔 수 없는 육체의 힘이기에 평소의 그녀는 그 모든 힘을 풀어헤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맞지 않는 옷을 껴입기라도 한 듯이 답답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곳의 모두가 유독 그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이상, 그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갈무리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빌객스라는 이름의 학살자는 그런 시선을 받을 만큼의 행동을 여지껏 해왔다.

유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슬슬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보고해야 하니까, 그만 나가볼게.”

“다음번에는 좀 더 오래 있다가 가라고, 대장!”

뒤편에서부터 소리치는 빌객스에게 손을 흔들며, 그는 숙소를 나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