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금강의 창기사(1)
[엘 바이어스 후작 각하. 그럼 이만 통신을 끝내겠습니다.]
“음, 알겠네. 아, 그보다 말일세.”
[예?]
통신의 저편에서 의문을 드러내는 함선 메타트론의 부함장 아스트라 부함장의 모습에.
엘 바이어스 후작가의 가주인 그녀, 유리는 다시 한번 확인하듯이 물었다.
“자네가 말한 빌객스라는 인물. 역시나 그건, 내가 알고 있는 ‘그자’ 를 말하는 게 분명 틀림없겠지?”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군.”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경례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함선 메타트론과의 통신이 끊겼다.
화면이 꺼져 새카매진 모니터를 통해, 가주인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한동안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그저 정지한 듯 가만히 꺼진 모니터 화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양 그렇게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하지만 돌연. 그녀 유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의 온후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로 말이다.
그리곤, 흉악하게 구겨진 얼굴을 하고서 어금니를 꽈득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빌객스라고?”
빌객스. 이 우주 어디에서도 두 번 다시는 들리면 안 될 녀석의 이름이 귓가에 들려왔다.
오죽했으면 그 난데없는 소리에, 잠시나마 유리는 제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정도다.
다른 녀석이라면 넘어가려 했다. 그녀 또한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었으니.
하지만, 지금 전함 메타트론에 새롭게 합류한 인물의 이름이 그 빌객스였다.
비록 아스트라 부함장의 제보에 의한다면, 지금은 ‘어떠한 자’의 통제 아래에서 한 치의 벗어남도 없이 얌전히 있다는 모양이지만 그 말이 쉽사리 이해가 될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님은 너무도 분명했다.
지금도 그녀는 빌객스가 맨손으로 기가스를 박살 내는 광경이 눈에 어른거리듯 선했다.
빌객스는 이곳 태양계의 외곽지를 무려 십수 년 동안이나 제멋대로 유랑하며 함대를 무너뜨린 해적이었다.
그 인간과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장본인인 유리였기에, 그녀는 빌객스가 얼마나 정신 나간 자인지를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부르르.
그녀의 주먹이 더 이상 감정을 정돈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주변의 대기를 타고서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마치 끓어오르는 활화산처럼.
주변의 외벽에 쩍쩍 금이 가고 대기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지 감정을 발현하는 것만으로, 그 흉악한 기세가 대번에 주위를 집어삼키려는 그 모습에 그녀는 이내 제 자신의 기운을 다시금 다스렸다.
흘러나오던 막대한 기운이 잠들 듯 금세 가라앉기 시작했다.
유리는 딱딱하게 굳은 인상으로 새까만 화면을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전쟁터의 중심지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드라칸의 괴성과 폭발음이 들려오는 게이트의 근방. 이 전장에서 각성자인 그녀의 존재란 기가스의 유무 이상으로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격렬했던 전투도 마침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드라칸 놈들은 이미 대부분이 정리된 뒤였으며, 게이트의 근방에 머물고 있는 여왕체 또한 차근차근 내몰리고 있는 도중이었다.
이제 이곳은 그녀가 없다 하더라도 상황이 정리될 것이다.
‘더 이상은 구태여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아도 될 터.’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오래도록 이어지던 생각을 마쳤다.
‘그렇게나 미치광이처럼 날뛰던 인물을 지금 내 손녀와 같이 있도록 놔둘 수는 없다.’
유리의 손녀딸은 차세대 각성자로 내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고위 인력이었다. 그만한 인물을, 아직까지는 비록 사람답게 제 역할을 한다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자와 함께 둔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한 피를 이은 가족임을 차치해두고서라도, 이 전장을 박차고서라도 움직이기에는 차고 넘치는 이유임이 틀림이 없다. 연합의 수뇌부에서 도착할 책임의 소재를 물을 답변에도 충분한 구실이 된다.
대답을 정한 그녀는 자리에서 즉시 일어섰다.
그 움직임에 푸른 물빛과 같은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라피스와 똑 닮은 선한 색감이었다.
유리 엘 바이어스.
그녀는 한때 중앙에서도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각성자였으나, 현재는 연합의 전선에서도 은퇴한 퇴역 기사였다.
그런 유리를 구태여 기갑 파일럿이 아닌 ‘기사’ 라 칭함은 다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녀는 오로지 한 자루의 검만을 손에 쥐고서 적을 격퇴하는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때에는 무려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손에서 쥐고 놓지 않았었을 정도로.
* * *
뚜벅. 뚜벅.
유리 엘 바이어스 후작은 그 길로 즉각 바깥으로 나섰다.
이미 그녀는 무장을 모두 끝마친 뒤였다.
“충성!”
“…….”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눈매를 마주한 군인들은 즉각 하던 일조차 멈추고서 경례를 붙였다.
그녀는 일언반구도 없이 지나치듯 그들을 지나가더니 이내 어딘가의 격납고로 들어섰다.
기잉-.
두꺼운 장갑에 크고 작은 다수의 상흔을 입은 기가스들이 격한 전투를 끝마치기라도 한 듯 엔지니어들에 의해 수리를 받고 있는 게 보였다.
그 한쪽에는 몇몇 기갑 파일럿들이 찬물을 들이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난데없이 무장을 끝마치고 나타난 유리의 등장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라, 유리 대장님?”
“이 시간에 여기에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라피스랑 통화하실 거라면서요?”
“…….”
자신의 직속부대인 바이어스 소대원들의 물음에도, 여전히 유리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묵묵히 한쪽에 놓인 자신의 무장을 꺼내 들 뿐이었다.
철컹!
압도적인 사이즈의 거병(巨兵).
자신의 키보다도 배는 거대한 마상창을 무기고에서부터 꺼내 드는 그 모습에, 바이어스 소대원들이 하나둘 다가와 물었다.
“뭐야. 설마 지금 출격 명령이라도 떨어진 겁니까?”
“대장님. 왜 말이 없으십니까?”
그 말에, 유리는 나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얘들아, 준비해라.”
“준비라니요, 무슨 준비?”
“아니. 뭔 말은 해줘야 할 게 아닙니까, 대장님? 무슨 어린애가 삐진 것처럼 말도 없이 대뜸….”
이내 따지듯 변해가는 두 소대원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린 그녀는.
뿌득.
“어, 억?!”
“자, 잠시만요! 악! 대장님!”
그대로 손으로 둘의 머리통을 터뜨릴 기세로 힘을 주었다.
“악! 머, 머리가?!”
“소, 소리가 납니다, 대장님! 머리에서 소리가 난다고요!”
두 소대원은 자신의 머리에 가해지는 악력에 미친 듯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지르는 게 엄살이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도 그 힘이 보통이 아니었던지 둘의 머리에서부터 뭔가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강제로 우그러지는 듯한, 기이하다 못해 다소 섬짓하기까지 할 정도의 소음.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맨손으로 두 건장한 남성을 붙잡아 들어 올린다니.
그 모습이 심히 언밸런스하였으나 그럼에도 그 광경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의 앞에 있는 이 푸른 머리칼의 작은 여자는 금강(金剛)의 창기사라는 이름으로 이 태양계 전체에 그 이름이 널리 퍼졌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으니까.
맨손으로 함선도 때려 부수는 이 여자에게 근력으로 이길 남자는 온 태양계를 전부 뒤져도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었다.
“으, 으아아악!”
“얘들아.”
그녀는 소리를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대원들을 그 가녀린 손으로 들어올렸다.
이내 스산한 표정으로 둘을 한 번씩 훑어보더니 한 마디를 더했다.
“지금 내 손녀딸이 어느 미친놈이랑 같이 있댄다.”
“라, 라피스 님이요? 라피스 님이 왜… 으아아아악!!”
“그러니 너희도 힘들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만 쉬고 출격해야겠다. 솔직히 오늘 낮에도 너희 힘들다고 나 혼자 출격했잖아. 응?”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이것 좀 놔보십쇼, 대장님!”
툭.
그 말에 유리는 즉각 손을 놓았다.
거의 매달려있던 꼴이었던 두 소대원들이 땅에 엉덩이를 찧으며 꼴사납게 널부러졌다.
그녀는 뒤편에서 주춤거리는 나머지 둘을 보면서도 물었다.
“얘들은 간다던데. 너희들도 같이 갈 거지?”
“그, 그럼요.”
“물론이죠, 대장님. 하, 하하.”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정신없이 끄덕이는 모습에.
그제야 유리는 이를 드러내고서 환히 웃어 보였다.
“고맙다, 애들아.”
“그래서.”
방금 전까지도 쥐어짜이고 있던 머리를 매만지던 소대원 중의 하나가 눈가의 눈물 자국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가 물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제야 유리는 다소 굳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오곤 대답했다.
“빌객스. 지금 그놈이 라피스와 같이 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빌객스요?”
순간 제대로 들었는지, 제 귀를 의심하여 다시금 묻는 소대원에게 유리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서 똑같이 답해주었다.
“너희들이 아는 그 빌객스가 맞다. 그놈이 지금 내 손녀딸과 같이 있다더군. 빌어먹게도, 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미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몇 번이고 다시금 물어봤지만 맞다고 하더군.”
“오, 맙소사.”
“그 미친놈이 대감옥에서 어떻게 탈출한 거지? 정말 돌았군.”
황당하다는 듯 더듬거리는 소대원들을 잠시간 돌아보던 그녀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조금 상황이 다급해졌다. 너희가 피곤할 것도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튀어 나가야겠어.”
그제야 다른 소대원들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었다. 라피스는 차기 후작으로 자리매김할 고위 가문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도, 그녀에게는 유리의 뒤를 이을 새로운 각성자가 될 재능이 충분히 존재했다.
그만한 재능은 태양계 전체를 뒤져도 결코 흔치 않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곧.
지금 그들이 이 격전지에서 여왕체를 몰아내어 결과를 내는 것보다도, 라피스라는 존재 하나가 더욱 값지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러한 사실은 둘째 치더라도 유리가, 자신의 피를 이은 손녀딸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가족이었으니까.
그때 소대원 중의 하나가 물어왔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이거, 아직 연합의 수뇌부한테 전달한 이야기는 아닌 거겠죠?”
“그래.”
유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움직인다는 건 미친 짓이니까. 하지만 난 가야겠다.”
“그리고 거기엔 저희들도 껴야 할 거고요. 끄응.”
“연합에서 나중에 뭐라고 한소리 하겠군요, 대장님.”
“그 정도는 감안해야지.”
그들은 바이어스 소대원들이었다.
당연하지만, 유리의 직속 부하들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연합의 명령보다도, 유리의 말이 먼저 와닿는 이들.
“어쩔 수 없군요.”
“출발은 언제입니까?”
그 말에, 라피스는 질문한 소대원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고는 답했다.
“지금 바로 간다. 그놈과 내 손녀딸을 더 이상은 같이 둘 수 없으니까.”
지금껏 장난처럼 부하들을 대하기는 했으나, 사실 앞뒤를 따져보면 상황은 이 이상으로 심각할 수 없었다.
이미 차기 각성자로 내정된 황금의 재능을 가진 라피스가, 만에 하나 빌객스에게 살해당하기라도 했다간 전 우주적으로도 그만한 손실이 있을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유성의 존재를 제대로 모르기에 가능한 소리기는 하였다. 유성은 빌객스를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이들에게는 그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 * *
그날 늦은 밤.
콰앙!!
드라칸과 인간들이 맞서는 격전지의 한복판에서 쏘아진 다섯 개의 푸른 빛줄기가, 어둑해진 밤하늘 위로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