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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99화 (99/200)

100화. 산발전(5)

라피스와 빌객스.

둘은 다투는 와중에도 유성의 지시에는 순순히 응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당장 이전에 마주했던 콜로니의 여느 기갑 파일럿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지. 라피스는 확실히 대체 불가능한 파일럿이야.’

타고난 마력 용량이 정규 파일럿들을 웃돌 정도다.

당장 라피스가 없다면 유성은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할 터였다.

유성은 분명 강하고 뛰어난 파일럿이지만, 그의 강함은 제한적이었으니.

그의 강함, 그것은 다수의 드라칸이 아닌 소수의 상대들에게 한한다.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출격횟수에서부터 비롯된 경험치와 어떤 상황에서조차 응용이 가능한 단련된 고등 기술의 영역.

보통의 파일럿으로는 결코 상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개체들을 단독으로로 상대할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그의 진짜 강함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 단점 또한 명확하다.

유성은 라피스만큼의 밑바탕이 되는 강력한 마력 능력이 없기에 대범위 포격형의 대규모 전투 따위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며, 마찬가지로 빌객스와 같은 강대한 이능을 연속적으로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처럼 파일럿의 재능과 성향, 장점에 따라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 또한 지극히 나뉜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 덕분에 오히려 유성의 존재는 마나사용자들 중에서도 더더욱 특별한 것이겠지만.

“이제 놈들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라피스, 빌객스. 모두 준비됐어?”

[물론.]

[하하!]

대답이 자신만만하다.

통신 채널을 통해 들려오는 그 투지 가득한 음성에, 유성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콰앙!

유성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네 장의 날개에서부터 푸른빛의 불꽃이 타오를 듯 분사되었다.

그는 빠르게 쏘아질 듯 가속했다. 그에 빌객스의 EF-04 또한 그의 뒤를 따라 바짝 추격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마른 대지를 일직선으로 내달리자, 세찬 먼지 돌풍이 휘몰아쳤다.

번-쩍!

한참이나 먼 뒤쪽인 전함 메타트론이 있는 곳에서부터 푸른 불이 뿜어졌다. 라피스의 스크래퍼에서부터 비롯된 포격이었다.

그녀가 뒤편에서부터 지원하며 다수의 드라칸들로 막힌 길을 뚫자마자, 유성과 빌객스의 기가스가 뚫린 진입로를 통해서 드라칸의 무리 내부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 * *

현재 그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드라칸 무리의 중심부 영역이었다. 다수의 드라칸 무리들이 시커멓게 군집을 형성한 채로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즉, 이곳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이 영역 내의 모든 드라칸들로부터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이미 시커멓게 몰려든 녀석들의 눈에 살기가 충만했다.

그 수도 족히 두 자릿수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지금 그와 빌객스는 흡사 시커먼 벌떼에 진입한 모양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리브.”

[알았어, 아빠!]

유성의 부름과 함께 모니터 내의 동화율 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핵에 융합한 리브의 에너지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기체의 전반적인 능력치를 강제로 끌어올린 것이다.

리브의 강력한 마나 능력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인간과 드라칸 사이의 능력은 완전히 전혀 다른 격차를 가지고 있다.

태생부터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들이기에, 그러한 드라칸 여왕체로서의 이점이, 유성을 통해 발출되었다.

느껴진다. 감지된다.

기체 성능의 무시무시한 급상승이.

[■■■■!]

[유성!]

그 순간 그를 노리고서 달려든 것은 전투체였다.

쩍!

유성은 달려드는 전투체의 몸체를 향해 번개처럼 대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몸체가 단번에 양분된다.

심지어 그 기세가 어찌나 압도적이었던지 녀석의 갈라진 몸체가 지면에 떨어져 내리고서야 놈의 푸른빛 체액이 확 튀어 올랐다.

[와우! 대장, 상당한데?! 그 성미는 여전해!]

그 인정사정없는 기세에 감탄한 듯 요란하게 소리치는 빌객스의 음성이 통신 채널을 타고 울려댔다.

미세하게 미간을 모은 유성이 말했다.

“시끄러워.”

[하하, 대장! 너무 그러지 말고!]

“쯧.”

유성은 낮게 혀를 찼다.

소란스러운 녀석이다. 하지만 그는 딱히 큰 제재를 가하지도, 불만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어찌 되었든 녀석은 적어도 당분간은 그의 동료였다.

비록 그것이 한시적일지라도, 그동안 녀석은 일말의 배신 따위는 생각지도 않을 터다.

그가 아는 빌객스는, 태도는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어디까지나 맡은 역할만큼은 충실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그거면 된 거다.

유성은 일직선으로 쏘아지듯 나아갔다.

주변의 상대는 그가 일일이 마력을 소모하며 직접 맡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뒤를 바짝 추격하듯 뒤따라오던 빌객스가, 죄다 쳐내고 있었으니까.

사나운 기세와 함께 달려들던 드라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공간을 뛰어넘어 닿는 그녀의 검격에 그대로 적중하더니 지상으로 추락했다.

‘어디 있지?’

주변의 잔챙이들에는 일절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로, 그의 동공이 빠른 속도로 주변을 헤치며 그 무리의 어딘가에 숨어있을 여왕체를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성은 유독 커다란 마력 반응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력 색적 탐지기인 레이더에 다른 드라칸의 것들보다도 한층 커다란 반응이 발견되었다.

‘찾았다. 저 녀석인가.’

무리의 보호를 받으며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유독 커다란 반응.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여왕체임을, 그는 직감했다.

‘각성기(覺醒技).’

고오오!

그 순간 은은한 빛을 발하던 그의 눈동자가 더욱 강렬해지다 못해, 아예 변색되기 시작했다.

동공의 색감이 바뀐다. 마치 새빨갛게 가열된 용광로가 더더욱 극점에 이르러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듯 찬란하기 그지없는 황금빛의 동공으로.

그 번쩍이는 두 눈에서부터 빛을 흩뿌리며, 유성이 전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개방했다.

‘사고가속(思考加速). 발동.’

그 순간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의 시야 아래에 놓이기 시작한다.

세상 모든 것들이 눈에 띄게 느려져 간다.

포효하며 그를 노리던 상위체 드라칸도. 전함 메타트론과 스크래퍼의 포격들도. 그리고 지상의 원거리형 드라칸들도.

그리고 유성 그 자신 육체 또한 말이다.

각성기의 발동과 함께 세상의 모든 것이 마치 정지하기라도 한 듯이 느려졌다.

드라칸 놈들의 날갯짓과, 그것들이 입을 벌리며 포효하는 소리. 그리고 기체에서부터 흘러드는 낮은 진동음까지.

모든 것이 확연히 구별이 갈 정도로 느려진 세상에서, 사고를 한없이 가속한 지금의 유성 그만이 유일하게 멀쩡히 사고를 통제하며 움직이는 존재였다.

후-.

한없이 느리디느린 숨을 뿜어내며, 그는 생각했다.

‘단 3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전까지의 그였다면 단 1초의 시간조차 각성기인 사고가속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량이 상승하여 어느 정도에까지 도달하게 된 지금의 육체라면, 찰나가 아니라 3초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이라도 충분히 각성기의 강렬한 반동을 버틸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지만, 그 시간마저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유성 그에게는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 짧은 시간은 세상 그 누구의 시간보다도 지루할 만큼이나 더욱 느리게 흘러가는 유구한 세계선이다.

‘단숨에 처리한다.’

일직선으로 쏘아지듯 나아갔다.

그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날개에서부터 푸른빛을 뿜어내며 가속하기 시작한다.

콰과곽!

그의 앞을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많은 수의 드라칸 놈들이 그 앞을 막았으나, 하등 상관없었다.

오히려 막고 있던 모든 것들을 죄다 쳐부술 기세로 도륙 내며 일직선으로 나아갈 뿐이다.

유성 그는 그저 검을 들고 앞을 향해서 내질렀다.

단지 그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놈들의 육편이 갈라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분쇄기로 갈아버리듯이 검의 끝에 닿은 모든 드라칸들이 그에게서부터 흘러나오는 강대한 마력을 버티지 못하고서 무른 물질처럼 형편없이 갈라진다.

그렇게 앞의 모든 것들을 파죽지세로 갈아버리듯 나아가던 그의 시야에, 마침내 무리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체구의 여왕벌 하나가 보였다.

바로 이 무리의 어머니 개체인 여왕체였다.

‘죽어라.’

그 짧은 일념과 함께.

그의 기체가 푸른 빛줄기가 되어 쐐기처럼 놈을 관통하듯 지나쳤다.

* * *

여왕체가 죽음을 맞이하자 드라칸의 무리는 즉각 변화를 보였다.

녀석들은 거칠게 소리를 내지르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무리를 다스리는 여왕체의 죽음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녀석들이 눈에 띄는 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그 무리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유성도 함께 휩쓸릴 수 있었으나, 애당초 그런 일은 없었다.

뒤편에 있던 빌객스의 기가스, EF-04가 나타나 그의 기체를 낚아채듯 함께 뒤편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통신을 타고서 빌객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대장? 고맙지 않아?]

“천만에.”

[무슨 소리야, 그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소리이지.”

태연히 대꾸하며, 유성은 답답함에 헬멧을 벗어 던졌다. 그의 파일럿 복장은 온통 땀에 절어 축축해진 상태였다.

“하아.”

긴 숨을 내쉬며, 조종석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그는 생각했다.

‘돌아가면 샤워를 가장 먼저 해야겠어.’

눈을 감은 그의 귓가에 들리는 것은 여왕체를 잃고서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하는 드라칸 무리와, 놈들을 멀리서부터 포격하는 전함 메타트론의 폭음뿐이었다.

* * *

보글.

기포가 쉴 새 없이 끓어오르는 녹색의 배양액 속에서.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한동안 멍한 듯했던 여자의 눈동자에 이내 빛이 돌아오고, 흐릿했던 정신이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눈은 이 행성으로부터 가장 먼 어느 영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막,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전투를 끝마친 소년. 유성.

그를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한 채로,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

예정된 시각이 도달하고 있다.

이 머나먼 400년 후의 세상에서, 마침내 이시혁과 아그네스가 만났다. 거기에 그의 재능을 이어받은 드라칸의 어린 여왕체, 리브가 태어났다.

모든 상황이 그녀가 의도한 대로였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대장.’

그러한 생각을 끝으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 차디찬 배양액 속에 담긴 그녀의 육체에 감각이 점차 돌아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마침내 이시혁이 연합의 수도에 도달하게 될 그때야말로, 그들이 다시금 만날 재회의 순간이 될 터였다.

파삭-.

한때에는 강건하기 그지없었던 각성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녀의 육체는 더 이상 원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대전쟁의 이후로 벌써 400년이 흐른 게 지금의 시대였다. 인간으로서는 버틸 수 없을 이 시간을, 그녀는 끝끝내 버텨가고 있었다.

이제 이 배양액을 나가고선 한순간도 살 수 없게 된 지가 오래였으나 적어도 아직 그녀에게는 아직 이시혁을 마주할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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