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산발전(4)
정말로, 오로지 그것만이 전부였다.
“조금 많긴 하군.”
“조금이라니, 그건 좀…… 아니다.”
뭐라 말하려던 라피스는 도로 입을 닫았다.
최근 유성의 식단은 급격하게 변했다. 거의 조악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본래의 유성은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절히 조합된 식단을 유지했는데 전투를 이어나가기 시작한 이래로는 계속해서 식사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고기만을 넣기 시작한, 괴랄한 비율의 식사로써 말이다.
하지만 유성은 그저 어깨를 으쓱이는 것만으로 태연히 흘려 넘길 뿐이었다.
“하아. 이젠 옆에 있는 사람도 냄새를 맡는 게 곤욕일 정도야.”
라피스는 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그녀는 고기 냄새, 에너지 바 냄새라면 속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 기갑 파일럿들에게 주어진 식량은 많기는 하나, 죄다 이런 식의 것들뿐이었으니까.
재고가 몇몇 품목만 넘쳐나는 탓에, 유성과 라피스에게 주어지는 것들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였다.
위잉-! 위잉-!
호출음이다.
복도와 시설, 전함 메타트론의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요란한 신호가 울렸다.
즉각 식당 내에 있던 다수의 군인들이 식사를 중단하고서 황급히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하아.”
그리고 그것은 라피스와 유성에게도 또한, 마찬가지로 포함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에너지 바를 내려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어쩌려고?”
“흠?”
그 말에 유성은 잠시간 자신이 먹고 있던 식판을 내려다보고는 곧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금방 끝내고, 다녀와서 먹으면 될 일이지.”
그것은 놀랍도록 태연자약한 대답이었다.
그 말에 이번만큼은 라피스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최근 들어서는 그녀마저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이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물론, 그만한 자신감 또한 함께.
* * *
행성 테라의 드라칸들.
놈들은 기묘한 존재들이었다.
지금 연합에서 어떠한 대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무능력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것들이 너무도 상식을 벗어난 등장을 했기 때문에 대처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녀석들이 어디에서 출몰하였는가.
그에 대해서는,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드라칸들은 외부에서 나타난 것들이 아니었다.
행성의 내부에서, 갑작스럽게 ‘튀어’ 나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행성의 지표면 아래에 숨어있었다던가, 원래부터 있었다거나 하는 의미 또한 아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놈들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행성의 지하와 지상, 그리고 대기권에 이르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게이트.
그것이 바로 놈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본질적인 이유였다.
마치 웜홀처럼 보이는 그것은, 놀랍게도 전혀 다른 차원, 혹은 우주 공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나조차도 난생 처음 보는 현상이다.’
유성이 아닌 이시혁이 살던 시절의 드라칸들은.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나타난 놈들에 불과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아닌, 그 너머의 다른 우주에서부터 건너온 것들이 하나하나 출몰하기 시작하였으며, 녀석들은 지구권 태양계에 속한 외부 행성들을 차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공통점이란 게 없다.
그때의 그놈들은 바깥에서 침입한 것들이었고, 이번의 놈들은 행성의 공간을 찢어발기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들이었다.
‘……잠깐.’
그러다 문득, 유성은 생각했다.
‘공간을 가르고 튀어나온다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슷하다.
그것은 흡사 유성 그가 가진 시공간 기술과도 비슷해 보였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 아닐 터였다.
각성자들 중에는, 공간을 도약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도 일부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 드라칸에게서부터 유래한 이상.
결국 드라칸들은 그보다도 더욱 제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을 터였다.
‘어쩌면 아주 먼 곳에서부터 공간을 찢어발기고 워프(Warp)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내가 아는 그놈들이라면 실제로 그런 일을 벌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놈들이니까.’
그들 인류로서도 비교적 최근에 개발되어진 기술이.
놈들에게는 이미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깊게 생각해 본다면 영 이상한 일만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애당초 워프라는 우주 도약기의 기술에 필요한 마나의 존재라는 것부터가 드라칸에게서부터 유래한 것이었으니까.
그 전까지의 인류는 마나라는 것의 존재조차도 몰랐으며 사용하는 인간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태양계에서부터 이곳 행성에까지 워프를 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놈들이어야 가능한 거지? 모르긴 몰라도 보통 녀석은 아니어야 할 텐데.’
물론 유성은 이미 몇몇 완전체를 직접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완전체 드라칸들 중에는 시공을 다루는 개체 또한 존재한다.
저번에 유성 그가 만났던 그놈은, 그저 단순한 노멀 타입이었을 뿐이다.
힘과 속도, 그리고 기술을 중시한 출력 위주의 노멀 타입.
하지만 개중에서도, 일부 완전체 드라칸은 분명 유성과 같은 각성기를 사용하는 놈들도 있었고, 다시금 그러한 놈들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는 무려 시공을 다루는 개체마저 존재했다.
즉, 깊숙이 생각해 본다면 이놈들이 튀어나올 가능성의 여지는 충분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상한 점은 남아 있었다.
‘지금 행성 테라에 나타난 드라칸의 무리는 모두가 다 다른 군체들이다. 이것들 모두가, 죄다 시공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지는 못했을 텐데.’
확실히 이상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이것은 그라도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전혀 다른 무리에 속한 드라칸들이 어떻게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이 땅에 나타난 거지?’
다른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할, 오로지 대전쟁의 시절을 직접 겪은 유성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요소였다.
지금도 날이 가면 갈수록 인류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었다.
전쟁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좋지 않다. 이대로라면, 분명. 다시금 그때의 결과가 재현되겠지.’
이전에도 본 적이 있던 전개의 반복이었다.
이대로라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마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인류는 내몰리고, 반대로 드라칸의 영역은 크게 확대되겠지.
결국 이대로라면 이 땅에서마저 그때의 악몽이 재현되어 버릴 터였다.
드라칸의 수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표면의 곳곳에 몸을 숨긴 여왕체들은 끊임없이 새끼들을 낳고 있고, 그 수를 불리고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인류는 불리해질 것이다.
기가스를 움직일 만큼의 뛰어난 실력자들은 한정된 데다 전투의 여파로 하나둘 죽어가고 있는데, 그와는 반대로 드라칸의 세력은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놈들은 진화를 하며 질적으로도 강해질 테니, 그러한 두 세력 간의 간극은 계속해서 벌어질 터였다.
물론 그런 폭발적인 성장세는 여왕체 자신을 지킬 무리가 없는 초기 군체에서 주로 보이는 특성이었다.
그러니 이후에는 비교적 증식 현상이 다소 느려지기야 할 테지만.
그래도 그 성장이 꾸준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 인류는 더욱 내몰릴 터였다.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성과 라피스, 그리고 빌객스는 최근 들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출격을 해야 하였으며, 놈들의 숨통을 끊는 드잡이질이 일과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빌객스가 합류했다는 점이겠지. 녀석이 없었으면 나도, 라피스도 진작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아.’
[으으, 죽을 것 같아. 무울-.]
라피스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을 찾았다.
지금 그들은 한창 식사를 하던 중에 출격 명령을 받은 참이었다.
‘라피스도 이젠 완전한 기갑 파일럿이 다 되었군.’
본래부터 출중한 재능을 지녔던 라피스다.
그런 그녀는 수차례 전투를 나감과 함께 빠르게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웬만한 기갑 파일럿에 준할 만큼의 마력 용량을 지녔던 그녀는, 사실상 실력만 끌어 올린다면 언제고 실전에 투입될 만한 능력이 능히 있었다.
그리고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기 시작하는 지금.
라피스는 분명 유성에게조차 크나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라피스. 1시 방향에 드라칸 2기 접근 중.”
[알았어!]
콰아앙-!
유성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등 뒤에서부터 강렬한 파괴의 광선이 쏘아졌다.
어찌나 내재된 기운이 강력한지, 대기가 웅웅대며 진동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거대한 빔 포격은 다름 아닌 라피스의 스크래퍼로부터 쏘아진 것이었다.
완전히 원거리형 기갑 파일럿으로서의 출중한 실전 기량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그녀는 필요한 요소의 모든 것을 이미 갖추었다.
마력 능력과 경험, 그리고 침착함까지.
그것들이 갖추어진 지금에 와선 차라리 여타 다른 기갑 파일럿들보다도 오히려 유성과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러한 라피스의 강함이란 분명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파직, 파지직.
빔포격이 사그라든 자리에는 갑각질째로 죄다 타 버려 오로지 부서진 파편만이 남았다.
접근하던 드라칸들은 형체마저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자신만만한 라피스의 음성이 통신을 타고 들려왔다.
[유성, 빨리 끝내고 가서 쉬자!]
“알았어.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라고.”
라피스의 화력은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며 강력하다.
가끔 어쩌다 코앞까지 접근하는 드라칸을 상대할 때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확실히 급속도로 강해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역시 라피스가 원거리형의 기가스에 탑승하는 게 정답이었다. 전력의 상승에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생도 수준의 강함 따윈 진작에 넘어선 지가 오래였다.
확실히 강하다.
원거리 전용의 기가스인 스크래퍼는, 라피스가 가진 강함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완벽한 무장이 아닐 수 없었다.
쩌억-.
그때 허공의 공간이 갈라지고, 흑색의 기가스 1기가 나타났다.
쿠웅!
육중한 굉음과 함께 지상에 강하한 기가스에서부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였다.
[대장! 임무 완료! 말했던 놈들은 모두 정리했어.]
“빠른데?”
[하하! 나야 저 꼬마와는 다르니까.]
[꼬마라고 하지 마!]
[하하하!]
‘후. 그래도 여긴 어지간하군. 벌써부터 이 정도 수준이라니.’
유성은 주변에 산처럼 쌓여있는 드라칸들의 사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근방의 영역에서는 매일같이 상당한 수의 드라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한 수를 상대하려면 라피스의 기가스 스크래퍼는 분명 강력한 아군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지원은 확실한 화력을 보장했다.
“라피스, 9시 방향.”
[너 아까부터 자꾸 꼬마라 하지 말…… 알았어.]
콰앙-!
그 즉시, 기다렸다는 듯 강력한 포격이 저 먼 곳으로 뚝 떨어져 내린다.
라피스와 빌객스.
둘은 다투는 와중에도 유성의 지시에는 순순히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