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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96화 (96/200)

97화. 산발전(2)

“그래.”

분명하게 답했다.

조금도 고민하지 않는다는 듯한 어투로, 망설임의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채.

유성은 그렇게 말했다.

그의 눈은 서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러니, 녀석이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대장. 난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참지 않아. 알고 있겠지?”

“알아.”

유성과 빌객스. 그들 둘의 대화는.

그들이 펼치고 있는 마력의 장막에 가로막혀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 * *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났다.

라프티리아 함장의 숙소.

“바이어스 소대가 아니라면 요청할 이들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녀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 연합의 인물 중 하나와 직접 대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빌객스가 타고 있습니다.”

[……빌객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그 여자 말인가?]

“예.”

[알겠네. 우리 쪽에서도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지.]

삑.

통신이 끊어진 뒤.

라프티리아 함장은 지친 몸을 의자에 깊숙이 묻었다.

“…….”

그녀는 눈을 감았다.

육체가 무겁다. 정신이 끊어질 듯한 감각이었다.

당장에라도 침대에 눕게 되면 그대로 잠에 빠질 듯 둔중한 감각이 그녀를 휘몰아쳤다.

‘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제대로 휴식을 취해 본 게 언제인 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어.’

줄곧 바쁜 탓에 느끼지조차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녀는 콜로니의 붕괴 이후로 함선의 총괄을 맡느라 단 한 번도 길게 쉬어 본 적이 없으니.

아마 라프티리아 함장, 그녀가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쓰러졌을 터다.

“…….”

라프티리아 함장은 감았던 눈을 떴다.

[17시 25분.]

모니터 화면에 시간이 표시되었다.

앞으로 삼십 분 후면 회의가 시작될 터였다.

그때까지 남은 삼십 분.

‘잠깐 정도는, 눈을 감아도 되겠지.’

만 하루 만에 취하는 휴식이다.

육체가 보내오는 강렬한 경종에, 결국 그녀는 잠시간 눈을 감기로 했다.

제아무리 초인이라 불리는 마나 사용자라 할지라도 결국 근본이 사람인 이상 휴식은 필요했다.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정신을 의자에 깊숙이 묻었다.

라프티리아 함장의 숨은 금세 고르게 변했다.

눈을 감기가 무섭게 금방 잠에 빠진 탓이었다.

하지만 너무 깊게 잠들었던 탓이었을까.

남은 삼십 분은 금세 흘러갔다.

[18시 05분.]

어느새 통제실의 모든 인원이 참여하는 회의 시간을 넘어섰다.

우우웅-.

통신 단말에서부터 진동이 울려왔다.

꺼져있던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함장을 찾는 부함장의 호출이 들려왔다.

[함장님. 함장님?]

스륵.

그리고 그에 맞추어 응답하듯.

의자에 깊숙이 묻고 있던 그녀의 고개가, 이내 힘없이 떨어졌다.

주륵.

물처럼 쏟아지는 핏물이.

라프티리아 함장의 입과 코에서부터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바닥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 * *

쿠오오오-!

유성과 라피스.

그들은 불어오는 강렬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전함 메타트론의 내부 공간이 아니었다.

둘은 바깥. 그러니까, 메타트론의 갑판 위에 있었다.

“하하! 바람이 꽤나 강렬한걸?”

라피스의 얼굴은 밝았다.

그녀는 금세 몸살을 극복하고 일어섰다.

고작 하루를 쉬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기세는 쌩쌩했다.

그들은 오로지 맨몸으로 메타트론의 갑판 위를 내디디고 있었다.

지금 전함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다른 부대와의 합류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도중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대번에 날아가 버릴 만큼이나 강렬한 돌풍이었지만, 애당초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유성은 각성자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마나 사용자였으며, 그것은 라피스 또한 거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들의 곁에는.

“아빠, 엄마. 그동안 안에만 있느라 갑갑했어요.”

“미안, 리브.”

유성은 리브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의 손길이 기분 좋다는 듯 리브는 밝게 웃었다.

사실 그들이 이곳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유성이 어떠한 조작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의 대부분은 유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유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마력 장막이, 주위의 돌풍을 가로막았다.

물론 그와 같은 주위 환경으로의 조작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금의 유성이 크게 성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몇 번씩이나 산발적으로 이어진 전투. 그리고 그에 따라 한계에 이르렀었던 육체. 자극을 받고, 지속적인 단련과 더불어 폭발적인 성장을 한 마나 능력까지.

마나 사용자의 육체라는 건, 탄성이 뛰어나기 그지없어서 자극을 받으면 받을수록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이제 유성의 육체는 타의에서든 자의에서든 상관없이 크게 성장한 상태였다.

“몸 상태는 어때, 라피스?”

“좀 나아졌어.”

빌객스가 등장한 뒤로, 줄곧 뚱했던 라피스의 음성이 밝아졌다.

사실 이 바깥에까지 유성이 라피스를 데리고 나온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요 며칠, 라피스가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니. 분명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짜증이 난 게 보여.’

이유는 몰라도 그것이 빌객스와 관련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보다 유성.”

“음?”

“나보다 너야말로 몸 상태는 어때? 그 지경까지 상태가 악화되었었잖아. 좀 나아졌어?”

그 말에 유성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도 이제 마나 사용자야. 물론, 몸이 회복되는 주기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지.”

유성이 마나 사용자가 된 지도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유성이 라피스보다도 더욱 약한 육체를 가졌던 것도 이제는 과거의 이야기다.

이미 둘 사이의 우열은 약간 바뀌어 있는 상태였다.

그 미묘한 기류를, 라피스가 모를 리가 없었다.

“유성. 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거였나.’

그 말에 유성은 쓰게 웃었다.

그는 그제야 라피스가 줄곧 고민해 오고 있던 요소들 중의 하나를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그녀는 순식간에 자신을 추월해 성장하는 유성의 뛰어난 재능을 옆에서 지켜보며 은연중에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애당초 네가 가진 마나 사용자로서의 장점은 타고난 용량이야. 같은 생도들을 비교할 것도 없이, 이미 웬만한 수준의 기갑 파일럿에도 준할 정도이니까.”

사람이라면, 그리고 마나 사용자라면.

저마다 하나쯤 자신의 특기가 될만한 뚜렷한 재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보통의 일반인이 내세우는 특기가 수학, 언어 능력, 그밖에 예체능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나 사용자들에게도 저마다의 장점은 존재한다.

라피스에게는 그것이 투박하지만 강대한 마력 용량이었을 뿐이다.

“타고난 재능을 다르게 태어났는데, 나와 같은 방향을 노릴 순 없지. 물론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커버는 되겠지만, 그 한계는 분명 존재하기 마련일 테니까.”

재능은 되물림된다.

그리고 유성은 그녀, 라피스의 가문이 어떠한 혈통을 타고났는지를 안다.

라피스의 역대 가주들은 하나같이 강건했다.

그들 가문의 일원들은 하나같이 그 육체가 뛰어났다.

타 마나 사용자들보다도 훨씬 뛰어날 정도로 말이다.

그러한 장점은 라피스 그녀에게도 또한 되물림되어, 그녀는 다른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만한 웬만한 잔병치레는 해 본 적조차 없음을 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일전에 라피스가 앓아누웠던 것조차도, 나로서는 거의 처음 보았었을 정도이니까.’

“음?”

그때였다.

커다란 그림자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빛을 가렸다.

쿠르르릉-!

고개를 들자 거대한 먹구름이 그들에게 닿을 것처럼 느껴질 만큼이나 가까운 거리에 보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의 옷에 방울방울 뭉치기 시작하는 물방울들.

구름 내에 함유된 습기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게…… 뭐지?”

라피스는 자신의 온몸을 빠르게 적시는 이 수분기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리브 또한 입을 벌린 채로 그저 시커먼 먹구름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에 유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라도 내릴 셈인가.”

콰르릉-!

먹구름의 안에서부터 강렬한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내려치고 있었다.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주변에는 온통 수분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그들이 탄 전함 메타트론은 이미 이 먹구름이 내려앉은 지대로 진입한 상태였다.

“라피스. 리브. 그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으응. 그래야 할 것 같네.”

아마도, 당분간 비가 크게 내려올 것 같았다.

유성이 알기로, 그들이 향하는 저 앞의 환경은 연일 비가 쏟아지는 지대였으므로.

* * *

쏴아아아-!

비가 쏟아져 내렸다.

기세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만 같은 기세로 연일 쏟아져 내렸다.

“이야아! 비인가! 아니, 이건 폭우라고 불러야겠군!”

“내가 살면서 설마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군인들은 하나같이 쏟아지는 비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오래간만에 이곳저곳에서 제법 풀어진 분위기의 군인들이 창문 너머를 응시했다.

물론 완전히 풀어지진 않았으나, 그럼에도 분명 흥분한 기색들이 느껴졌다.

행성 테라의 환경은 어디까지나 지구 시절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행성 내에서도 보기 드물다는 비를 직접 구경할 수 있는 날을 마주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군. 거의 십여 년 만에 이 광경을 다시 보다니, 운이 좋아!”

“그렇습니까?”

“그래. 이런 광경은 물이 부유한 일부 콜로니에서밖에 볼 수 없는 거니까 말이야.”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격납고실의 엔지니어들조차 다들 비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 모두가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된다는 양 차단된 격문을 열고서 바깥으로 쏟아지는 세찬 기세의 비를 구경했다.

유성과 치프는 나란히 선 채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반쯤 열린 격문에서부터 수시로 세찬 빗방울들이 내부로 튀어 들어왔다.

“웃, 차가운데? 간만의 비라니, 좋구만! 하하하!”

치프는 시커먼 기름기가 잔뜩 묻은 손으로 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의자에 걸터앉은 그의 온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튀어 오르는 빗방울이 몸을 적시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에 불쾌감을 느끼기보다도 오히려 기분만 좋은 것인지, 제 몸을 적시는 차가운 물기를 느꼈다.

“다들 분위기가 풀어졌군요.”

“그럴 수밖에. 유성.”

치프의 얼굴은 밝았다.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그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너는 아직 어린 편이니, 아마 비가 내리는 걸 본 적이 없겠지?”

“그렇죠.”

유성은 치프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이번 생을 시작한 이래로는 줄곧 그러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함 내의 모두가 크게 흥분한 것은 분명 명확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바깥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비 때문이었다.

“다들 비가 와서 좋은 것은 알지만 너무 풀어진 것 아닙니까? 심지어 치프는 아예 맥주까지 마시고 있다니.”

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치프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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