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산발전(1)
리브는 그저 걱정 섞인 얼굴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난 라피스 엄마 하나만으로 충분해.”
아무래도, 리브마저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스윽.
라피스는 옆에 놓여 있던 목검을 붙잡았다.
리브의 말이 그녀의 감정을 건드렸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아무래도, 훈련에 몰입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선 이 답답함을 풀 길이 없을 듯했다.
* * *
다음 날이었다.
“끄응.”
라피스는 하루 온종일을 누워 있어야만 했다.
온몸이 뜨거웠다.
‘몸살? 말도 안 돼!’
그녀는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창피해서 어딘가에 숨고만 싶을 지경이었다.
웃기지도 않을 농담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초인이라 칭해지는 마나 사용자가 몸살이라니. 확실히 누가 들어도 믿지 않을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실제로 사실은 사실이었다.
라피스의 안색은 잔뜩 붉어져서 열이 치솟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런 그녀가 온종일 침대에 눕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제 너무 검을 휘둘러댔나…….”
유성과 빌객스가 온종일 붙어 다니는 것을 목격한 뒤부터였다.
속이 답답해졌던 라피스는, 온종일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 댔다.
당사자였던 그녀조차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러 댔을 지경이었다.
침대에 누운 채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술만 비죽이자니, 곧 천장을 떠다니던 리브가 바닥에 안착했다.
그러곤 라피스의 팔을 흔들며 물어왔다.
“엄마. 엄마. 그래도 아빠를 보러 가야 하지 않을까? 위험해 보여.”
위험하다.
당연히 그건 유성과 빌객스 사이를 뜻하는 것일 터다.
하지만 라피스는 아무런 말도 않고서 그저 이불을 뒤집어쓸 뿐이었다.
‘나도 몰라. 제 맘대로 하라지.’
라피스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그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술만 비죽이자니, 침대 맡에서부터 리브가 계속해서 몸을 흔들었다.
“엄마. 엄마아.”
가뜩이나 기분도 좋지 않은 데다 몸살까지 겹쳤다.
최악도 이런 최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였다.
[라피스. 나야.]
문 너머에서부터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에 라피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성?”
무심코 덮고 있던 이불도 치우고 벌떡 일어나려던 라피스는, 이내 자리에 도로 누웠다.
그러고는 옅은 짜증의 기색이 배어 나오는 음성으로 답했다.
“……뭔데.”
그녀의 음성이 문을 타고서 바깥에 있을 유성에게 전달되었다.
시대가 발전한 덕에 외부에 있는 이와도 이 정도의 음성 대화는 따로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능해졌다.
[몸이 좋지 않다고 들어서. 이 문 좀 열어주지 않겠어? 아프다고 하길래 부함장님께 부탁해서, 특별히 죽을 좀 가져왔어.]
“…….”
유성의 말에 라피스는 힐끗 닫혀 있던 문의 잠금장치인 락(Lock)을 풀었다.
문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 손을 들어 가볍게 휘젓는 것만으로도, 잠금은 가볍게 풀렸다.
문이 열리고, 곧 유성이 들어섰다.
“어서 오…….”
처음에는 반갑게 맞이하려던 라피스였으나, 들어서는 유성의 곁에는-.
“오. 바로 저 애구나? 그때 그 파일럿 맞지? 안녕-!”
……안타깝게도, 불청객 빌객스가 함께 있었다.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드는 그녀의 등장에.
“…….”
한순간이나마 밝아졌던 라피스의 안색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가라앉았다?
아니, 아예 인상이 구겨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 * *
“라피스. 몸은 좀 괜찮아졌어?”
“……몰라.”
라피스는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유성은 예의 그 빌객스와 함께 방문한 상태였다.
그에 주변을 날아다니던 리브는 진작에 자신의 모습을 지웠다.
이불 속에 숨어있던 라피스는 코를 킁킁거렸다.
‘죽 냄새. 나쁘진 않네.’
향긋한 죽 냄새가 세밀한 그녀의 후각을 자극해 왔다.
리브는 천장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상태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영체 상태의 리브는 그저 눈만 깜빡이며 이불 안에 숨은 라피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 잔뜩 화났네.’
리브는 라피스가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은 난생 처음 보았다.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해도, 분명 그것이 유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라피스. 어제부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런 라피스의 기색조차 모른 듯, 유성이 물었다.
그런 그의 태연하기 짝이 없는 대꾸는 라피스의 짜증을 더더욱 유발시켰다.
미간을 찌푸린 라피스가 홱 이불을 걷어 젖혔다.
그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나가!”
결국 유성은 오래 그 자리에 있을 순 없었다.
그는 결국 탁자 위에 여전히 김이 새어 나오는 죽을 올려다 두곤 몸을 돌렸다.
문의 앞에 선 채로, 유성은 말했다.
“어쨌든. 화가 나게 한 이유가 있다면 미안해.”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유성은 바깥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뒤를 빌객스 또한 따라 나갔다.
‘……!’
마지막 순간, 그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리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흔들흔들.
그대로 나가는 줄 알았던 빌객스라는 여자가, 리브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빌객스는 리브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입만을 벙긋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안. 녕?’
이 순간 리브는 인간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보다.
절대로 다른 이에게는 들키지 말라던 유성과 라피스의 주의가 먼저 떠올랐다.
‘들켰다!’
* * *
“…….”
유성은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 나오는 빌객스를 뒤로 한 채, 그는 창문 너머의 바깥 경치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 지상의 모습이 담겼다.
그런 유성을 향해 빌객스가 돌연 물어왔다.
“대장, 그나저나 아까 전 그건 뭐야?”
“뭐로 보였어?”
되묻는 유성의 눈은 빌객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저 아래 까마득히 보이는 지상의 황량한 대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대답은 리브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유성이 데리고 있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글쎄? 음…….”
빌객스는 그런 그의 물음에 잠시간 생각하다 대답했다.
“유령? 유령인 건가? 아니지, 유령이라기엔 마력까지 가지고 있던데. 세상에 드라칸보다도 더한 마력을 가진 인간 유령이 있단 소리는 못 들었어. 방금 전 그건 한눈에 보기에도 웬만한 마나 사용자보다도 더 세 보이던데.”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빌객스에게.
유성은 답했다.
“드라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드라칸의 여왕체이지.”
“……뭐?”
그 순간, 빌객스의 미소에 금이 갔다.
“드라칸?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저도 모르게 되묻는 빌객스를 향해.
유성이 시선을 정확하게 맞추며 답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빌객스. 아니, 아그네스. 네가 들은 게 맞아. 리브는 드라칸이다.”
“…….”
그 말에 빌객스는 어떠한 대꾸도 없이 뚝 말문을 닫았다.
그 순간, 빌객스의 안색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분명한 기세의 전환이었다.
빌객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사나운 음성을 드러내며 말했다.
“대장.”
“말해라.”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냐. 지금 드라칸? 드라칸이라고?”
고오오오-.
빌객스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리며 거꾸로 치솟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분명한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급변하는 그녀의 변화를 마주하며.
유성은 그저 담담히 대꾸했다.
“그 녀석은 리브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리브는 안전한 편이지. 지금 녀석은 오히려 날 돕고 있을 정도이니까.”
“뭐? 대장, 제정신이야?”
“물론. 난 언제나 제정신이다. 넌 알고 있을 텐데?”
“미쳤군!”
빌객스는 대차게 비웃음을 날렸다.
“하! 그 당시의 이시혁이 들으면 비웃고도 남겠어! 드라칸을 보고서 당장은 안전할 거라니!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을 거야!”
고오오-!
빌객스의 흰 눈자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감정이 크게 치솟음과 함께, 마력이 넘실대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온통 새까맣기 그지없는 눈을 한 채로, 그녀가 으르렁거리듯 소리쳤다.
“대장! 미쳤어?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드라칸을 데리고 있겠다고?”
“그러면 어쩔 거지? 녀석을 죽일 건가?”
“죽여야지! 당연히! 그건 재앙이라고!”
대놓고 빌객스가 원하는 말을 꺼내 들었다.
그에 그녀가 오히려 반발하듯 소리쳤다.
“왜! 설마 대장의 손으로는 못하겠다, 이건가? 그렇다면 내가 해 주지! 얼마든지!”
덥석.
당장에라도 라피스의 방으로 향하려는 듯한 빌객스의 거친 행동과 언사에.
유성은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만둬, 아그네스.”
“개소리 집어치워!”
빌객스는 유성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제기랄, 지금 장난해?!”
새까맣기 그지없는 빌객스의 눈자위가 당장에라도 유성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은 과격하다 못해 사나웠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드라칸에게 유독 적대적인 인물이었다.
빌객스, 아니, 전생의 아그네스는 가족들을 드라칸들에게 잃었다.
눈앞에서 가족들이 드라칸에 의해 잡아먹히는 것을 목격했다.
고아가 된 그녀는, 이후로 마나 사용자인 것이 밝혀짐과 함께 유성의 소대원으로 줄곧 활동했다.
소대에서도 툭하면 잦은 무단이탈을 하던 그녀였으나, 그런 그녀라도 전투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전장에서 아그네스를 움직이던 원동력은 동료애도, 인류애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로지 드라칸에 대한 타는 듯한 복수심이었다.
애당초 그녀가 툭하면 잦은 이탈을 반복하던 이유조차 그러한 환경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가족을 잃은 이후로 모든 것이 줄곧 부질없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수심과 허망함. 아그네스는 그러한 감정들에 의해 떠다니듯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유성은 그런 빌객스를 잠재울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녀의 타는 듯한 복수심은 가라앉히려 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탓이다.
“세 가지를 말해 주지.”
대신 유성은 말했다.
“리브는 분명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 드라칸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를 가진 최초의 드라칸이야. 마지막으로, 지금의 너보다도 훨씬 ‘쓸모’가 있지.”
“……지금 쓸모라고 한 건가?”
“그래.”
유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 말에 빌객스의 인상이 가라앉았다.
소름 끼칠 정도의 맹렬한 기세를 피워 올리던 시커먼 흑연과 머리카락 또한,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쓸모.
유성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그럴 거라 여겼다.
그 시절, 아그네스가 아는 이시혁은 분명 자신의 주관과 판단이 뚜렷하던 대장이었다.
그러한 유성이 리브를 한낱 ‘도구’를 말하는 듯이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그러한 것이다. 그가 그렇다고 말했으니까.
그녀가 아는 이시혁이란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의지하던 이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긴 하지만, 대장.”
“말해.”
“나도 잠깐 동안만 봐서 모르는 거긴 하지만 녀석이 위험하다면, 언제고 우리들 방식대로 하는 거겠지?”
그렇게 말하며.
빌객스는 조금도 눈을 피하지 않은 채로, 유성을 노려볼 듯 응시하고 있었다.
어떠한 감정조차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성은 알고 있었다.
‘재차 확인하려는 건가. 시험하려는 거군.’
유성은 직감했다.
지금 이 순간이 빌객스가 참는 마지막 인내의 한계임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성 그는-.
“그래.”
분명하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