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빌객스(4)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놈에게서부터 흘러나오는 마나의 성질과 그 느낌들. 그것들 모두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다.
지금 유성 그의 눈앞에 있는 상대는 분명 그와 ‘구면’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하하!]
빌객스의 기가스, EF-04가 수직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유성은 위에서 아래로 검을 치켜들었다.
콰앙-!
위에서부터 내리쳐진 검세와 아래에서부터 올려쳐 진 검세가 서로 맞붙으며 강렬한 파공성을 내뿜었다.
마력 파동이 대기를 타고 찌르르 터져 나왔다.
쩌저정!
둘의 검격은 채 눈에 보이지조차 않을 속도로 빠르게 이어졌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검과 검이 맞닿는다.
정확한 각도, 정확한 속도로 마치 거울이라도 된 듯이 정확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좌와 우, 우와 좌.
마치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 정확한 대치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노린다.
치지직!
그때, 유성과 빌객스.
그들의 통신 채널이 연결되었다.
[너!]
그때, 빌객스가 소리쳤다.
[역시 네가!]
“……뭐지?”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못 볼 것을 보는 듯 기쁨에 겨운 얼굴로 그가 소리쳤다.
[기술의 이시혁이로구나!]
“……개소리.”
놈은 소리쳤고 유성은 부정한다.
대기가 쩍쩍 찢어지듯 밀려났다.
모두가 경악하여 침묵하는 가운데, 오로지 둘의 기가스들만이 맞붙는다.
[하하하! 이것도 받아 봐라!]
빌객스가 공간을 찢고 검을 집어넣는 순간.
유성의 근방에서 수십 개나 되는 검들이 공간을 찢고 튀어나와 그를 덮쳐들었다.
“……처음 보는 기술인데.”
눈을 가늘게 뜬 유성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거, 이렇게 쓰는 건가?”
그가 검을 갈라진 공간 안에 밀어 넣으며 찢어진 허무공간을 시간선과 함께 강제로 비틀어 버리자, 사방에서 그의 검들이 빼곡하게 공간을 찢고 나타났다.
불과 단 한 번 능력의 사용을 목격하고서, 유성은 오랜 세월 그것만을 연마한 것 같은 익숙함으로 그 능력을 펼쳐 보였다.
완벽한 흉내 내기였다.
빌객스가 웃으며 기쁨의 감정을 드러냈다.
[오! 역시! 네가 맞구나!]
쩌저저정-!
수십 쌍의 검과 검이, 서로를 막고 튕겨낸다.
“세, 세상에.”
“이게 대체……?”
모두가 경악한다.
그것은 명백하게 어떠한 상식, 어떠한 관념으로도 판단하기가 어려운 비상식의 전투였다.
때때로 하나의 검은 수십 개로 늘어났으며, 때때로 하나의 인간이 여러 명으로 늘어났으며, 어떤 때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그들의 기가스가 마치 시간이라도 정지한 듯 몇 겹으로 겹치는 잔상이 보일 정도로 느리거나, 혹은 빠르게 보이기도 했다.
기술과 기술. 힘과 힘이 대치하는 전투.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각성자들의 능력과 능력이 격돌하는 불가해의 전투.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전투였다.
“……이것이 각성자들의 싸움이란 건가.”
모든 상식이 박살이 나고 같은 인간들조차 알지 못하는 이해 불가능한 비상식적인 현상들이 줄을 지어 일어나고 있었다.
공간이 쩍쩍 찢어지고 심지어는 시간대마저도 뒤죽박죽이었다.
빌객스가 검을 찌르면 유성의 몸에 어김없이 검이 박혔다.
하지만 마치 시간이 거꾸로 재생되듯 역으로 순식간에 돌아가고. 멀쩡한 모습의 유성이 놈을 노렸다.
다시금 그러한 광경이 반복되었다.
공간이 잘리고, 검과 검이 수십 수백 자루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그러한 비상식의 영역에 속한.
그것이 바로 각성자들의 전투였다.
[하하하! 시혁 시혁 시혁 시혁!!]
모두가 황당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였으므로.
빌객스가 광소하며 검을 흩뿌렸다.
[아하하하하!! 이봐, 시혁!]
“……싸우는 도중에도 입을 열 정도로 여유가 있나?”
[뭐 어때! 어차피 대화만 잘 되면 그만이지! 그보다 놀랐는걸, 내가 쓰는 모든 기술을 죄다 카피하고 있다니! 역시 기술의 이시혁이라는 건가?!]
‘기술의 이시혁? 그게 무슨 소리이지?’
아스트라 부함장은 통신 채널을 통해서 들려오는 대화 내용에 미간을 좁혔다.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에, 어딘지 이해를 하지 못할 그들만의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하하! 대장! 못 본 사이에 많이 약해졌는걸! 이대로 날 이길 수나 있겠어?!]
“그럴 수밖에. 나야 백병전이 주특기라 육체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넌 애초에 각성기를 위주로 쓰잖아?”
유성은 광소하는 빌객스의 모습에 그저 묵묵히 답할 뿐이었다.
‘……저 녀석.’
인정한다. 받아들였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 빌객스는 분명 구면의 사이였다. 확실하다. 그는 놈을 알고 있었다.
유성과 빌객스의 능력은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그가 백병전과 난전의 대가라고 한다면, 빌객스는 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각성기의 이능력을 주축으로 한 인물이었으므로 당연히 파괴력도, 범위도 빌객스의 쪽이 현저한 우위였다.
그나마 무기술이 유성의 대부분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망정이지 그가 능력에만 치중하던 이였다면 초반의 힘 싸움에서 대번에 잡아먹혔을 터였다.
유성은 놈을 향해 영상 채널을 연결했다.
녀석은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대번에 수락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둠의 마력에 가려져, 얼굴조차 드러나지 않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하하! 대장, 갑자기 뭐야?]
“내 밑으로 들어와라, 빌객스.”
[싫다면?]
“네가 누구였는지 몰랐을 때에는 상관없었어. 애당초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으니.”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란 건가?]
상황이 달라졌다.
유성은 상대방, 빌객스의 진짜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네가 누구인지 정체를 안 이상,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가 싫든 좋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야. 네가 내 요청을 들어준다면 그 대신, 나도 하나의 요청을 들어주마.”
유성의 음성은 전에 없이 진중했다.
소년이었던 티를 버리고, 과거 그때 그 시절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하대다.
소대원을 대하는 대장의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왜냐하면, 유성 그의 눈앞에 있는 저 칠흑의 마력을 뿜어내는 상대는 그의 소대원이었으니까.
[오?]
그리고 그 즉시, 전투가 멈췄다.
마치 거짓말처럼.
놈은 흥미를 드러낸 듯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곤 우뚝 멈춰선 채로 물었다.
[정말 내 부탁을 들어줄 건가? 시혁 대장?]
“……그래.”
유성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말로는 결코 형용 못 할 묵직함이 있었다.
그 말에 빌객스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장난스러운 듯 유쾌한 웃음소리가 통신 채널을 타고서 흘러들었다.
그는 유성, 아니, 이시혁의 대답이 한없이 진지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결코 쉽게 대답할 인물이 아님은 더더욱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빌객스는 다시 한번 강조하듯 덧붙였다.
[좋아. 대신, ‘반드시’다. 거절의 경우는 없어.]
“……하지만 조건을 걸지. 주변에 피해는 가지 않는 게 내 조건이다.”
빌객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쯧. 요구 사항도 많네. 알았어, 대장. 그럴게. 나는 애당초 대장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즉각 빌객스는 증명이라도 하듯 검을 떨궜다.
그것을 잠시간 응시하던 유성은 마찬가지로 검을 집어넣었다.
전투는 끝났다.
빌객스가 탄 기가스 EF-04. 그리고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 그들 둘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뿜어내고 있던 마력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이봐, 대장!]
모니터 화면 속의 빌객스가 말을 건네 왔다.
“왜 그러지?”
[보고 싶었어!]
이 순간, 그는 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느꼈다.
지금, 빌객스는 웃고 있었다.
“…….”
유성은 그 말에 어떠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 * *
누구 하나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저 모두가 놀란 얼굴을 한 채로 유성을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설마, 강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빌객스’ 와 맞설 정도라니.”
그들이 바라보는 한 방향에는, 유성이 있었다.
그리고 유성의 곁에는-.
“……저게 그 유명한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빌객스인가?”
“그, 그런 모양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상상과는 동떨어진 모습인데. 목소리도 생각 이상으로 그, 가볍고. 무엇보다, 흑색의 마력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가는 형태는 분명…….”
“여자였었군.”
유성과 빌객스.
그들은, 식당에서 서로를 마주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의 사이로 총기를 든 다수의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장! 오랜만이라고! 하하하!”
그러한 군인들의 긴장감 어린 기류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빌객스는 유성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로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유성은 미간을 좁혔다.
놈의 커다란 가슴이 툭툭 팔목을 건드려대는 통에, 괜히 신경만 쓰였다.
“야. 좀 저리로 가지?”
“에이, 대장도 좋으면서 튕기기는. 하하.”
빌객스는 그제야 어둠에 가려져 있던 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더듬거리며 당황을 드러냈다.
“뭐, 뭐야.”
“저 얼굴이…… 빌객스?”
“하하. 다들 놀란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사실 내 본명은 빌객스도 아니야.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별명이나 다름없지.”
천연덕스럽게 설명하는 그 모습이란 게 장난스럽기 그지없다.
아마도 모두가 생각하던, 빌객스라는 이의 얼굴이 역사상 최악의 연쇄 살인마라는 이미지와 완벽하게 동떨어진 탓일 터였다.
그녀의 생김새란, 속된 말로 ‘유쾌해 보인다’ 에 가까운 활발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빌객스는…… 과거의 동료 이름이었지. 그것도 조종석 안에서 드라칸에게 짓뭉개져 죽은 녀석의. 아그네스 이 녀석, 확실히 그 별난 취미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군.’
빌객스란 건 끝이 좋지 않았던 다른 동료의 이름이었다.
그러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걸 보니. 이 녀석, 확실히 여전한 정신병자였다.
이 녀석의 본명은 아그네스였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름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그들은 이제 다른 이름을 가지고서 움직여야만 했다.
그것은 유성이든 빌객스이든 마찬가지다.
잠시간 말없이 놈을 응시하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거라고, 대장! 대장이야말로 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여기에…… 아. 혹시 그건가? 대장은 다른 모든 능력들을 흉내 낼 수 있으니까 그걸로 시간을 건너뛴 거라던가?”
그 말에 유성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내가 드라칸급의 괴물도 아니고, 아무리 나라도 그런 건 불가능해, 아그네스.”
“···뭐?”
갑자기 뚝, 끊기듯 조용해지는 놈의 모습에 유성이 미간을 모았다.
“뭐지?”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빌객스는, 곧 그에게 물었다.
“이상한데. 대장이 못하는 게 있었어?”
“난 사람이지. 괴물이 아니라고.”
“이제까지 살면서 대장이 뭘 못하는 걸 본 적이 딱히 없는데. 애당초 대장은 뭘 해도 잘했잖아.”
“쯧. 시끄러우니까 적당히 귀찮게 해라.”
참으로 여러모로 귀찮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빌객스, 아니, 전생의 이름으로는 아그네스는 유성의 소대에서 활동하던 소대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의 부하였다.
다만 정식 소대원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저 소대원들을 옆에서 보조하는 서포터에 역할에 가까운 포지션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