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드라칸의 영역(4)
[맞아, 엄마! 위험하면 내가 있잖아!]
영체 상태의 리브가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자신을 믿으라는 듯 자신감 넘치는 소릴 해댔지만 이 상황에 녀석에게 시선이 향할 리가 없다.
그 직후,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전함 메타트론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상에서부터 쏘아진 연속적인 포격이 메타트론을 두들기고 있었다.
유성의 표정이 굳어갔다.
‘드라칸들이 한두 놈이 아니로군. 오래는 못 버티겠어.’
당장은 전함의 에너지 실드를 통해 버텨내고 있지만, 결국 이것은 한계가 있는 방법이었다.
데미지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실드의 에너지는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른 포격이 계속해서 지상에서부터 쏘아지는 와중이었다.
유성은 그제야 상황이 제법 심상찮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부터 통신 단말이 계속해서 웅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통제실의 아스트라 부함장이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일 터였다.
“라피스, 조금 서둘러야 할 것 같아.”
“아, 알았어.”
유성의 말에 라피스 또한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H 구역에 화재가 발생했다! 여유 인력은 날 따라와!”
“무인 포탑 담당자 누구야?! 1번부터 47번까지 시스템 락(Lock) 빨리 해제해! 자동 공격으로 시스템 돌려!”
이미 복도에는 많은 군인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던 도중이었다.
전투함 메타트론의 각 구획들은 함선 메티스에 비해 훨씬 규모가 작다.
격납고와 같은 일부 필수적인 시설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구역들은 아담한 축에 속했다.
그 덕분에, 그들은 금세 통제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와 라피스가 통제실에 들어선 때에, 이미 군인들은 근방의 전황을 관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 중에는 아스트라 부함장 또한 있었다.
“아스트라 부함장님!”
한쪽에서 라프티리아 함장과 함께 한참 열띤 대화를 하고 있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나타난 유성과 라피스의 모습에 고개를 돌렸다.
“왔나, 유성 생도? 그리고 라피스 소위도?”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오히려 바로 와줘서 고마울 따름이지. 금방 온 걸 보니 상황이 벌어지자마자 곧장 뛰어온 모양이군.”
탁.
아스트라 부함장은 손을 튕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상의 상황을 모니터 화면에 비추었다.
쿵! 쿠궁! 쿠구궁!
굉음을 연신 터뜨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한 드라칸이었다.
“저건?”
놈들의 꽁무니에서부터 새파란 마력이 한데 뭉치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놈들은 원거리 포격 위주의 드라칸들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며 아스트라 부함장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현재 전함 메타트론의 동체를 뒤흔들고 있는 진동의 정체가 바로 저 드라칸 놈들이다. 녀석들의 포격이 쉴 새 없이 메타트론의 에너지 실드를 두들기고 있어.”
포격형의 전투체 드라칸들.
놈들은 한두 개체들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상당한 수였다.
수십이 넘는 양산체의 드라칸들이 자리를 피하고 있는 와중에도 놈들은 마력 에너지를 모아 방사 포격을 쏘아대며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잠시간 지상의 상황을 조용히 응시하던 유성이 입을 열었다.
“양산체를 호위하는 전투체 놈들로 보이는군요. 저희들이 지나가는 것을 얌전히 무시할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수나 규모가 심상치 않아. 어쩌면 저것들의 주변에는 예의 그 강력한 개체인 상위체가 존재할지도 모르지.”
기본적으로 드라칸 군체 무리의 일꾼이라 할 수 있는 양산체들은, 약한 편이다.
그들은 강한 전투력을 가진 전투체의 호위를 받는다.
마치 일개미와 병정개미와 같이, 개미의 군체가 연상되는 듯한 구조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삑-!
그때 난데없는 날카로운 소음이 통제실을 요란하게 울렸다.
그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무슨 일인가!”
“현재 지면 아래서부터 강력한 마력 반응이 고속 접근 중!”
“드라칸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큭, 저건?!”
모두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녀석의 덩치가 심상치 않았다.
척 보기에도, 일반적인 개체인 양산체나 전투체를 가볍게 웃도는 수준이었다.
놈은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이었다.
고오오-!
놈의 꽁무니에서부터 끓듯이 마력 에너지가 한데 모이고, 그것은 섬광처럼 쏘아지며 전함 메타트론을 후려쳤다.
쾅!
굉음과 함께 전함 메타트론의 동체가 인정사정없이 뒤흔들렸다.
“크윽?!”
“이, 무슨!”
“꺄악!”
어마어마한 충격에 일부 군인들이 그대로 넘어졌다.
몇몇 군인들은 난간을 붙잡고서도 휘청거렸다.
메타트론의 에너지 실드가 당장에라도 깨질 듯이 부르르 요동치고 있었다.
사방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려대고 있었다.
“위험합니다! 단 한 번의 일격만으로 에너지 실드의 수치가 급변했어요!”
라프티리아 함장이 소리쳤다.
“다들 몸을 단단히 고정해라, 상대의 수준이 심상치 않다!”
습격은 함선의 탐지 전파로도 감지하지 못한 방향에서부터 일어났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부터의 습격. 급습.
그것은 ‘지면 아래’서부터 이루어졌다.
상대방은 드라칸이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튀어나올 수 있는 놈들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개체 따위가 아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투체 등급도 아닌 무려-.”
“대량의 마력 반응 확인! 놈은 상위체입니다!!”
“뭐, 뭐?!”
유성의 말은,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이들의 고함에 묻혔다.
놈은 땅굴을 파고서 지면 아래에서부터 튀어나온 상위체 개체였다.
이미 진작 마주했기에 알 수 있었다.
상위체 드라칸이라고 하면 그 말도 안 되는 전투력을 가진 괴물들이었다.
예의 그 두 마리의 상위체, 화이트 레이븐과 다크 레이븐을 상대해 보았기에 알 수 있다.
놈들은 진실로 보통의 인간이 상대하지 못할 괴물의 씨앗을 품은 상대였다.
그때였다.
상위체 드라칸.
녀석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두터운 등갑 아래에 숨겨진 여섯 장의 속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놈이 날아올랐다.
믿을 수 없지만, 놈의 그 터무니없는 거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까마득한 지상에서부터 전함 메타트론을 향해 고속으로 쏘아지듯 접근했다.
“이, 말도 안 되는! 날기까지 한다고?!”
모두가 놀라 소리쳤다.
지금까지 그들은 드라칸이 오로지 단 하나의 특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거리형의 포격 능력을 가진 놈이라면 오로지 그것만을, 근접 전투 능력을 가진 놈이라면 오로지 그것만을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이기에는, 차고 넘쳤다.
“위험합니다! 이대로라면 메타트론과 상위체 드라칸이 충돌할 겁니다!”
“현재 에너지 실드 잔량 40퍼센트 남짓! 위험합니다!”
펑! 퍼버벙!
상위체 드라칸.
놈은 전함 메타트론에서부터 쏘아지는 모든 포격을 죄다 몸으로 받아내며 무식하게 달려들었다.
마치 그대로 몸으로 들이 받아버리기라도 할 듯,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그 어마어마한 화력을 몸으로 받아 낸 탓에 녀석의 전신은 그슬린 흔적으로 가득했으나.
그럼에도 그 기세가 결코 줄지 않았다.
유성은 직감했다.
‘다음은 위험하다. 전함 메타트론에서 저놈을 처리하기란 어려워.’
그리고 그 즉시, 유성은 가져왔던 파일럿 복장을 그 자리에서 입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고 그는 옆에 있던 라피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 해? 얼른 입지 않고.”
“뭐, 뭐……?”
옆에 있던 라피스조차 흠칫했다.
설마 이 자리에서 주저앉고 옷을 벗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되레 놀란 것은 함장과 부함장이었다.
아스트라 부함장이 물었다.
“유, 유성 군. 어째서 자네가 지금 복장을 착용하는 거지? 설마 지금 몸 상태로 출전하려는 건가?”
“이 상황에서 그걸 따지는 겁니까? 저는 당신들의 보호만을 필요로 하는 한낱 소년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 대꾸한 것은 유성의 쪽에서였다.
금세 상의마저 걸친 유성이 대답했다.
“라피스 혼자서 놈을 상대하기란 무리입니다. 그렇다고, 저것들이 우리를 순순히 놔줄 것 같지도 않죠.”
이 함선은 전투함이긴 하지만, 입자 에너지 포격의 주축이 되는 에너지 장비가 거의 없다.
크기를 소형화시킨 덕택에, 전투함 치고서는 상당히 빈약한 축에 속했다.
물론 메타트론은 그 태생부터가 전함이라는 속성에 자리하고 있기에 이주형의 함선이 메티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출력을 지녔으나, 대형 전함만큼의 위력을 지니진 못했다.
타 전함에 비해서 가진 유일한 장점은, 오로지 뛰어난 기동성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현재 자리하고 있는 이 자리를 무작정 헤쳐 나가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 그들은 완벽하게 갇힌 모양새나 다름없다.
비록 전투함 메타트론은 언제고 부양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자리를 회피할 수 있다곤 할지라도 그 부양의 높이라는 게 한정되어 있어서야, 언제고 다시금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그것은 결국 한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지면 아래. 그리고 하늘 위에까지 온통 드라칸들로 둘러싸인 이상, 최소한 다른 놈들은 피하더라도 상위체는 잡고 도망치는 게 낫겠죠.”
다른 것들은 무시하면 된다. 어차피 잡것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위체는 그렇지 않다.
놈들은 언제고 완전체 등급의 초신성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머금은 진정한 괴물의 씨앗들이었다.
완전체로 성장하고 난 뒤에는 너무 늦다.
상위체일 때, 그나마 상대가 가능한 수준일 때에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어차피 전투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상위체 등급의 상대는 마주친다면 보이는 족족 잡아내며 지나가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니 제가 직접 나갈 수밖에요.”
“하, 하지만 유성.”
그 말에 라피스가 유성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녀의 음성이 옅게 떨려왔다.
“너, 아직 회복이 덜…….”
“라피스.”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유성이 라피스를 보았다.
유성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단호한 의지도, 전투에 대한 열렬한 의욕도 아니었다.
그곳에 서려 있는 것은 오로지 그저 차가운 듯 보이는 무심함뿐이었다.
유성은 차분한 듯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함선의 인원은 오로지 나 하나 때문에 원래의 항로에서부터 이탈한 거나 다름없어. 내가 아니었다면, 이 상황을 맞닥뜨릴 일도 처음부터 없었겠지.”
물론 그것은 단순한 결과론에 불과하다.
결국 그렇게 따지면, 애당초 이들은 결코 이곳에까지 살아서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불가능한 전투를 연이어 이어오면서도 끝끝내 살아서 이곳에까지 당도했다.
콜로니의 붕괴에서부터 이어져 온 수 차례의 전투들을 이끈 것은 전적으로 유성이라는 소년 생도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들에게는 유성과 라피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유성과 라피스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도 또한 이곳의 군인들이 필요했다.
지금,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 필요성이나, 서로 간의 공치사를 논할 가치 따윈 처음부터 존재치 않는다. 목적성은 생존이라는 이름에서부터 기원한 근원적인 것이기에, 누구의 공치사가 더 큰지를 따질 필요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