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드라칸의 영역(1)
“서둘러! 빨리 응급실로 데려가!”
“맥박이 희박합니다! 이래선 응급실에 도착하기도 전인 수십 초 이내에 숨이 멎을 거예요!”
“뭐?! 이런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응급 처치라도 먼저 한다! 제기랄, 서둘러!”
위잉-. 퍽!
전기 충격. 심장 제세동기의 충격이 가슴팍을 강하게 두들겼다.
세찬 전격이 한 차례 유성의 육체를 저릿하게 훑었다.
가슴팍에서부터 시작된 아린 전류가 그의 전신에 퍼져나갔다.
모니터를 보며 수치를 확인한 한 명이 소리쳤다.
“맥박,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희박해요!”
“이런 빌어먹을! 다시!!”
위잉-. 퍽!
다시금 전기 충격이 울려 퍼지며 유성의 몸을 때렸다.
그의 몸이 세차게 들썩였다.
“……유성.”
그리고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라피스는 참담함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한 그녀의 곁에 있던 리브 또한.
[으아아앙!]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 * *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간신히 숨은 붙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서둘러야 해요! 아슬아슬합니다!”
타다닥!
유성은 어딘가로 실려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감고 있던 눈을 흐릿하게 치켜떴다.
두 눈이 무겁다 못해 끈적거렸다.
지독한 화상에 의해 살점이 녹아서 눌어붙은 것이다.
‘……여긴.’
흐릿한 시야 사이로 온통 눈부신 빛이 위에서부터 내리쬐고 있었다.
그 익숙한 광경. 이전에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유성은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웃었다.
‘이거. 또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있나 보군.’
그런 그의 귓가에 의사들이 다급하게 소리치는 것들이 일부 들려왔다.
“제길, 또 맥박이 약해지고 있어!”
“닥터! 혈액 팩도 필요합니다! 가뜩이나 출혈량도 상당한데 피가 다 타 버려서 육체를 구성하는 피도 부족한 상태예요!”
“혈액 팩! 혈액 팩은 어디 있어?! 반드시 살려야 한다!!”
주변은 온통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
유성의 의식은 흐릿했다.
점액처럼 녹아서 눈앞을 가린 피부때문에 시야도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그들은 마나 사용자인 그를 잠재우기 위해 대량의 마취제를 주입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조차 유성은 극히 미약하게나마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나 사용자로서의 본능적인, 최소한의 방비였다.
그의 무의식에서부터 흘러나온 방어 행위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는, 유성은.
수술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 에 정신을 차렸다.
‘…….’
스르륵.
그는 삐걱거리는 목을 들어 제 몸을 훑었다.
눈동자 너머로 비치는 시야에는, 피투성이가 되어 내부가 완전히 개방된 그 자신의 몸 상태가 보인다.
동시에, 갈라진 배 속으로 들어선 여러 사람들의 손길과 차가운 쇳조각들의 이물감도.
유성은 지금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의식은 있었으나, 제대로 된 의식이 아니었다. 강한 마취제로 인해 정상적인 사고가 이어지질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본능에 걸쳐진 반사적인 행동을 가장 먼저 했다. 마치 조건반사와 같이.
밑바닥까지 떨어져 얼마 없는 마나를 끌어 올리고, 힘없는 양 주먹을 쥐었다.
본능적인 방어 행동이었다.
이 상황에서조차 저항하기 위한 행동을 육체 스스로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의식이 멀쩡했다면 이 상황에 결코 저항하는 일 따위는 없었겠으나.
지금의 그는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무의식만 남은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어, 어? 누, 눈을 떴……!”
그제야 달라붙어 수술을 진행하고 있던 의사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흐물한 유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경악해서 소리쳤다.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뭐, 뭐야! 코끼리도 눈감을 수준의 마취제를 투여했는데 그 상황에서 정신을 차린다고?!”
“당장 마취 투여량 늘려! 이 상황에서 몸을 움직이게 하면 안 돼!”
“하, 하지만 닥터! 마취량을 늘렸다간 오히려 쇼크사로 숨이 멎을 수 있……!”
“하라면 해!!”
주변은 이전 이상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고 다툼이 일어났다.
그 커다란 고함에, 순간이나마 유성의 이성이 미약하게나마 돌아왔다.
‘마, 취?’
유성의 귓가에 마취라는 두 글자가 들려왔다.
그는 주위에서 들리는 소란에서 어떠한 상황인지를 파악했다.
의사들과 마취. 그리고 개봉된 그 자신의 몸 상태까지.
그는 금세 지금의 소란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그렇군. 치료 중인 건가.’
유성은 몸에 들어가던 힘을 완전히 풀었다.
본능적인 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끌어올렸던 마력도 완전히 잠재웠다.
약 기운을 철통처럼 가로막고 있던 마력이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다시금 잠기운이 쏟아졌다.
의식이 흐릿해졌다.
이 상황에 유성이 할 일은 간단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가 저항한다면, 오히려 수술에 방해가 될 것임을 잘 안 것이다.
유성이 저항을 포기하자.
그는 순식간에 다시금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됐습니다! 완전히 정신을 놓았어요!”
“서둘러 수술에 재돌입해! 다시 깨어날지도 모른다!”
……함선 메티스의 전투는 끝이 났지만.
유성. 그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숨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 * *
“……맙소사.”
유리창을 통해 수술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함장 라프티리아와 부함장 아스트라.
그들마저 눈앞의 광경에는 경악하고야 말았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설마 저 상황에서 저항까지 한다고……?”
숨통이 끊어질 뻔한 연속적인 위기 상황을 수 분 사이에도 벌써 몇 번이나 경험한 자가.
재차 의식을 되찾고는 저항까지 하려 한다니.
이것은 상식을 명백히 넘어선 것이었다. 아니, 있을 수 없는 경우다.
함선 메티스의 지휘관인 그들 또한 마나 사용자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를 잘 알았다.
제아무리 마나 사용자가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저것은 이미 그 수준마저 뛰어넘은 상태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조차 본능적으로 방어를 위해 마나를 끌어올린다는 말인가?
그들마저도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 *
그로부터 유성이 깨어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가 깨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일에 불과했다.
마나 사용자들의 신체 내구성과 그 탄성은 보통 사람과는 그 궤를 비할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극심한 수준의 부상을 입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벌써 겉으로 보기에는 다 나은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멀쩡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관에 불과한 것이었다.
주륵-.
유성이 느릿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아물었던 상처가 쩍, 하고 벌어지며 핏물이 선명하게 새어 나왔다.
상처 부위를 단단하게 감싼 붕대가 질척거리며 새어 나오는 피로 인해서 축축하게 젖었다.
붕대를 건드린 그의 손이 핏물로 젖었다.
“하아. 어쩔 수 없군.”
결국 유성은 한숨과 함께 다시금 자리에 누웠다.
역시 이러한 상황에는 안정을 취하는 것이 제일이었다.
겉으로 보이기로는 금방 아물어도, 내면은 그렇지 않으니 죽을 맛이었다.
“…….”
움직이지 못해 지루해하더라도, 역시나 그의 육체에는 아직 휴식이 필요했다.
그의 몸은 여전히 지쳐 있었다.
스윽.
유성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지친 얼굴로 잠들어 있는 라피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위를 떠다니는 영체 상태의 리브 또한.
둘은 유성의 곁에 있었다.
후, 하고 피식 웃음을 흘린 그는.
금세 다시금 잠에 빠졌다.
* * *
“…….”
정신을 잃은 유성은 꿈을 꾸었다.
[나는 군인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그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
[그래. 그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
이유야 간단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은 속한 시대에 따라 영웅이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었다.
마나 사용자로 태어났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 특별함이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누구보다도?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그 하나만이 세상에 유일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시혁. 그가 태어났던 세상에는 그와 비슷한 성질의 인간들이 소수나마 존재했으므로.
그의 ‘형제들’은, 유일하게 그와 같은 관점에서 세상을 응시하는 각성자들이었다.
언젠가 그의 형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대장. 대장의 정신을 이후의 세계로 보내 줄게. 설령 죽더라도 죽지 않도록.]
이시혁. 그는 간만에 자신의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대부분은 흐릿했지만. 그럼에도 몇몇의 얼굴들은 여전히 생각이 났다.
공간의 오메가와 의식 공유의 베타.
그리고…….
멈췄던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그 혼자만이 움직일 줄 알았던 시간의 알파까지.
떠오른다. 희미하지만, 떠올랐다.
얼마 전 그가 사용했던 각성기.
마치 모든 것임 멈춘 듯이 느리게 흘러가던 세상에서 오로지 그 혼자만이 가속하듯 움직였던 그 기술.
그것은 바로 시간을 다루던 알파가 알려준 기술이었다.
점차 꺼지고 있는 꿈속에서, 유성은 마지막으로 그를 떠올렸다.
‘알파.’
* * *
그로부터, 약 삼 일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유성은 마침내 눈을 떴다.
“후우.”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유성은 이제야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육체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고 있다.
‘회복이 순조롭다. 이 정도라면, 사실상 후유증은 전혀 남지 않겠군.’
과거에는 이 정도로 과감한 전투를 했다면 후폭풍이 문제가 아니라 평생토록 이어지는 큰 장애를 얻었을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열기를 오로지 맨몸뚱이만으로 받아 낸다는 것은,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문제로 오갈 정도로 극심한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유성도 나름대로 큰 각오를 다졌던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다만. 그 또한 생각지 못했던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기술력이란 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훨씬 뛰어났다는 점이겠지.’
유성은 꽈악 주먹을 쥐었다.
얼마 전까지 피부조차 흐물흐물했었을 그의 육체가.
빠른 원상복구를 함과 함께 이제는 제법 원래의 형틀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여전히 조금 살이 물렁거리긴 하지만, 분명 제 형태는 완벽하게 회복한 상태야. 벌써 움직이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라니.’
톡 까놓고 말해서, 사실상의 완치나 다름없었다.
육체는 이제 완전한 회복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순조롭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비록 긴 회복 기간이 필요했을지언정 그는 완벽하게 안정권에 들어선 것이었다.
과거 지구의 의료 기술로는 불가능했을 완벽한 의미에서의 회복이, 현 시대에서는 가능해졌다.
시대상의 발전으로 인한 변화였다. 물론,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나 사용자였다. 유성 본인의 유독 뛰어난 회복 능력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육체의 회복이란 건 그리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유성은 아득한 저편에서부터 느껴지는 아릿한 감각을 감지했다.
그는 주먹을 쥐며, 제 자신의 감각을 셈 쳐 보았다.
‘회복을 대가로, 어쩌면 몇 년 정도의 수명은 줄어들었을지도.’
몇 년, 아니, 어쩌면 십여 년 이상의 수명을 당겨썼다고 할지라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유성이 기억하기로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몇 번씩은 숨이 멎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수준의 부상이었으니.
그런 밑바닥에까지 떨어진 신체를 회복하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바라본 거울에는.
이전과는 달리 마치 탈색이라도 한 듯이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한 유성 그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