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지상에 떨어지는 유성(3)
삐이이익!
[지상까지 강하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드라칸들이 물러나고 있습니다!]
전투는 끝났다.
드라칸들은 물러서고 있었다. 제한적인 활동 영역을 가진 녀석들이었으니 그 한계점은 명확했다.
태생적으로 대기권에서만 활동이 가능한 비행형의 드라칸들인 탓에, 녀석들은 대기권을 벗어나려는 그들의 강하를 뒤쫓지 못했다.
결국, 무리함을 동반한 강하작전은 성공했고 전함 메타트론은 멀쩡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낸 유성에게는.
단 한 마디를 내뱉을 기력조차도 없었다.
[유성! 유성! 응답 바랍니다!]
그때, 오퍼레이터의 통신이 들려왔다.
하지만 유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목울대를 꿀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말문이…… 열리지 않아. 꿈쩍하기도 어려워.’
숨이 가늘다. 호흡이 어려웠다.
목구멍이 이미 타버린 것인지, 아니면 녹은 것인지도 제대로 추측하기가 어렵다.
결국, 그는 끝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신을 타고 그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로 브레이커, 완전 침묵 상태입니다. 통신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파일럿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살아는 있는 건가? 그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죄송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고열에 의해 파일럿 복장이 망가진 듯싶습니다.]
곧이어 그들의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성의 생사와, 크게 틀어진 강하 지점에 관한 이야기.
거기에 함선 메티스를 놔두고 유성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목적지를 바꿔야 한다는 아스트라 부함장의 주장까지도.
찬성과 반대의 극렬한 의사 반발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난…… 아직 살아 있다. 대답을, 해야만 해.’
말을 하고 싶으나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 입안을 맴돌았다. 입안 천장이 눌어붙었다. 코의 살점은 진작에 녹아서 무너진 지 오래였다.
[유성! 유성, 괜찮아?!]
‘……라피스.’
[유성! 대답 좀 해! 제발!]
유성은 통신을 타고 들려오는 라피스의 외침에 옅은 울먹거림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녀석, 설마 나 때문에 울고 있는 건가.
그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미안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곳에서 끝날 듯했다.
이제 통신을 타고서 들려오는 전함 메타트론의 대화 내용은 명백히 유성을 버려야 한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유성 그 본인조차도 그 내용에 수긍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상황에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예정된 진로로 향하는 게 낫겠지. 나라도 분명 그럴 거다.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고 여기는 게 맞으니까.’
곧, 유성이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으려던 시점이었다.
그가 억지로나마 끌어올리고 있던 마력을 슬슬 풀어내려 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들어라.]
‘……이건. 라프티리아 함장의 목소리인가.’
[지금부터 우리는 함선 메티스에서부터 떨어진다. 목표는 유성이 탄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와 합류하는 것.]
통신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신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그는 올라가지 않는 입가로 실실대며 웃으면서, 통신을 들었다.
[전원, 제자리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도록! 좌현! 추진 부스터의 방향을 틀어라! 목표는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강하하는 지점이다!]
라프티리아 함장은 모험을 하기로 결정한 듯했다.
예정된 강하 지점을 저버리는 대신, 유성의 목숨을 구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유성의 육체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당장 숨이 끊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중압감과 피로. 그리고 압도적인 고열은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게 만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아직 기절할 수는 없었다.
‘……아직 강하는 끝나지 않았다.’
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숨만 붙어 있으면 돼.’
분명 그렇게만 된다면, 저들이 유성 그를 다시금 살려 놓을 터였다.
그러니 더 버텨야 했다. 악착같이 이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지상까지는 아직도 한참은 더 남은 시점이었다.
족히 십여 분 이상은 더 걸리겠지.
‘당장에라도 정신이 끊어질 것만 같아.’
유성은 피로한 정신의 끝자락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로 생각했다.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아. 이 시점에 정신을 잃으면, 확실하게 죽고 말겠지.’
유성은 제 자신의 고통이 점차 꿈을 꾸듯이 아릿해져 가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 지독하던 열기에서부터 비롯된 통증조차 옅어져 가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몸이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상당히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감각조차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온 신경이 죽어간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아마도, 몸 상태는 최악을 넘어선 최악에 도달해 있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성은 필사적으로 의식의 끝을 붙잡았다.
아마도 의식을 놓게 되면 그 순간이 그의 죽음의 순간이 될 터였다.
‘마력으로 강화한 신체 강화 상태가 풀리면, 맨몸으로는 이 고열을 받아 낼 순 없을 테니. 확실하게 살이 익어 죽어 버리고 말겠지.’
지금의 유성은 신체에 마력을 끌어올린 상태로 강제로나마 버티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한시적으로나마 죽음을 미루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신체 강화가 풀리는 순간 확실하게 숨통이 멎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른하고 졸리다 할지라도 버텨내야 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죽음이 코앞에까지 당도했다는 반증이었으니까 말이다.
우우웅-.
유성은 기가스의 잔잔한 기동음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졸리군. 당장에라도 잠들고 싶다.’
피로했다.
주륵.
그런 유성의 안면에서부터, 고열에 의해 녹아내린 무언가의 이물감이 느껴졌다.
묘하게 질척거리는, 끈적한 감각.
그리고 아마도 그건 열기를 채 버텨내지 못한 피부의 일부가 녹아내린 감각일 터였다.
[조금만 더 버텨, 유성! 전투는 끝났어! 이제 너만 살아 있으면 된다고!]
‘전투가 끝났다라…….’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소리 없는 공허한 웃음이, 그의 내면을 맴돌았다.
그는 기가스에서 내리는 시점에까지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이 의식을 유지해야만 해. 그러지 못한다면, 나는 죽겠지.’
저들의 전투는 끝이 났지만.
유성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유성이 몰려드는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그 시각.
그와 같은 시점에, 빌객스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바로 오늘이랬지. 어떤 일이 생겨날까나?’
마치 선물을 받기 직전의 기대감 어린 얼굴을 한 그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 년이 넘도록 함께 지내온 감옥의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변함이 없었다.
죄수들은 얌전히 빌객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로 숨죽이고 있었고 간수 둘은 힐끔거리며 그들을 지켜보거나 순찰을 돌고 있었다.
[대체 뭐가 일어날…….]
빌객스가 흥미 어린 음성과 함께 낮게 중얼거리는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
어디선가부터 거대한 포효가 울렸다.
그것은 너무도 익숙해서. 빌객스로서는 도저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소음이었다.
무려 다년간이나 그가 산을 쌓을 듯이 죽여 온, 그것들의 소리였으니까.
빌객스는 그제야 웃었다.
[하하. 날 풀어준다는 게 바로 저거였군.]
그는 역시나 예지는 정확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이 소리…… 뭐지?”
“죄수들! 움직이지 마라!”
순간 들려오기 시작한 진동과 굉음.
그것들에 수감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간수들 또한 당황하는 한편 수감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소리쳤다.
[하하하! 좋아, 좋다고!]
그러는 사이 오히려 빌객스는 양팔을 벌리고 반가움을 한껏 표했다.
그의 온몸에서부터 그러한 기색이 한껏 드러났다.
과거의 드라칸은 그저 죽여 없애야 할 적에 불과하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놈은 그를 풀어줄 아주 고마운 존재였으니까.
[시작해 볼까!]
빌객스는 씨익 반달을 그리며 눈웃음 지었다.
꿀꺽.
그 시선을 마주한 간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빌객스의 눈웃음. 그것은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늘한 시선이었다.
쩌억.
빌객스는 손을 내리그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분명 아무것도 없었을 공간이 갈라졌다.
그는 빌객스. 세계최악의 범죄자로 불렸지만.
과거, 다른 이름으로는 공간의 오메가라고 불렸다.
그의 형제들에게는 말이다.
최초의 넘버즈 중 하나였던 오메가의 능력은, 공간을 가르는 것이었다.
“빌객스!!”
“전원, 놈을 겨눠라!”
그런 빌객스의 돌발 행동을 알아챈 모두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손에 든 총기가 다분히 위협적이었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워워, 기세가 사나운걸? 하하하.]
당장에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그들의 모습에, 빌객스는 그저 소리 내어 웃을 뿐이었다.
“당장 수감실로 돌아가라! 경고를 무시하면 즉각 쏘겠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분명한 총기였다.
게다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인 것으로 보아, 쏘겠다는 말이 결코 거짓일 거라 여기는 것도 미련한 짓이었다.
그러니,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들 간수들의 총기는 분명 안전장치가 해제된 것임이 틀림없을 터였다.
[오. 이런. 미안하지만 그 정도론 날 잡을 수 없을 거야.]
빌객스는 씩 웃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그는, 돌연 모두에게 보여주듯 검지를 치켜세웠다.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서 말이지.]
빌객스의 손가락 끄트머리에, 시커먼 마력 구체가 한데 응집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옆의 공간이 금이 가듯 벌어졌다.
그가 벌어진 시공의 틈새를 향해 손가락을 푹 찌르자, 한참은 떨어진 곳의 간수장들의 앞에 손이 나타나 그들을 ‘관통’ 했다.
“커, 윽?”
“이게. 대체. 무, 무슨.”
더듬거리는 간수들의 몸 안에, 손길이 느껴졌다.
[웃차. 한 번 쥐어 볼까? 너희들의 심장을?]
두근. 두근!
그가 손으로 한 번씩 힘껏 움켜쥘 때마다 섬뜩한 고통이 잇따랐다.
[이야. 따스하네. 물컹거리기도 하고. 느낌이 기분 좋은걸?]
“크, 으아아!”
마침내 빌객스가 심장을 세게 움켜쥔 순간.
간수들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것은 정말이지 기이한 능력이었다.
일순간에 모든 간수가 죽었다.
하나의 검이 마치 분열이라도 하듯 수십으로 나뉘어 일순간에 그들을 찔러 들었다.
[하하!]
빌객스는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축축한 피비린내의 감각은 생각 이상으로 경쾌했다.
흠뻑 젖는 이 느낌.
마치 축포를 터뜨리는 듯했다. 결코 싫지 않았다.
빌객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완벽하다! 훌륭하다!
모든 게 놈의 예지대로였다.
그가 붙잡혔던 그 날의 그 순간에서부터,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는 오늘 이 순간 이때까지도.
이제 빌객스의 예상은 확신으로 돌변했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확실하게 풀려날 것이다.
[무엇 하나 예지와 다른 점이 없군! 정말로 그대로인데!]
그러니, 그는 자신했다.
오늘이 바로 그가 풀려나는 날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