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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82화 (82/200)

83화. 지상에 떨어지는 유성(2)

[하하.]

어둠에 휘감긴 빌객스는.

돌연 새하얀 치아를 보이며 히죽 웃었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전쟁을 겪지 않는 세상의 인류란 이토록 나약한 건가. 하하!]

하지만 그러다가도, 돌연 안색을 굳히고는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그것은 상실감이었다.

인류의 쇠락. 퇴화한 인간들에 대한 미련.

그러한 상실감 등은 언제나 빌객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바로 오늘만큼은, 예외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빌객스의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이곳에서 나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아주 좋은데?]

빌객스는 히죽 웃었다.

출소 날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수백 수천의 인간을 도살하여 끝내는 수백 년의 형을 선고받은 무기한 수감자였다.

출소의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있을 리도 없는 수준에 도달한 지가 오래다.

하지만, 빌객스는 이곳에서 ‘나간다.’

빌객스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서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간수를 불렀다.

[이봐, 간수.]

“……뭐지?”

[오늘이 며칠이야? 혹시 목요일인가?]

“그렇다.”

대답하는 간수장의 음성이 미약하게 떨려왔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그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 모양이지만, 그런다고 빌객스가 알아차리지 못할 턱이 없었다.

긴장하는 것쯤이야 이해한다. 그 자신을 마주한 이들은, 모두가 그와 마찬가지의 한결같은 반응을 하니까.

[아, 그리고.]

문득 깜빡했다는 듯.

검지를 세운 빌객스가 간수장에게 물었다.

[혹시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을까?]

“……시간? 지금 시간은 정확히 오후 4시 42분이다.”

[오, 그래? 얼마 안 남았네. 알았어, 고마워.]

“그, 그래.”

하지만 문득, 간수는 빌객스의 말에서 어떠한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음? 잠깐만.’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빌객스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얼마 안 남았다고?’

내용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듣기에 따라서는, 뭔가 묘한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이것도 보고해야 하는 건가?’

이 대감옥의 간수들은, 빌객스가 어디서 무얼 하든, 어떠한 말을 하든 철저하게 감시하고 기록해야 했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 일과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기록된다.

그렇기에 간수 또한 빌객스의 말을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일단 상부의 지침대로 그 잠깐의 대화 내용을 전달하려 했다.

그리고 그가 통신 단말을 조작하는 사이.

나머지 시간들이 금세 지나갔다.

4시 44분.

마침내, 빌객스가 지난 십여 년간 기다렸던 순간이 찾아왔다.

4월 4일. 그리고 4시 44분.

이날은, 바로 빌객스가 탈옥할 거라는 예지를 받은 날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그가 원하던 것을 다시금 마주할 날의 기점에 들어선 날이라고 해야겠지.

‘이제 곧.’

빌객스는 히죽 웃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예지가 일어날 순간이다.’

오래전에 차게 식었던 그의 심장이 거칠게 박동을 시작했다.

* * *

강하전.

계획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했다.

격렬한 전투의 여파 속에서도 꿋꿋이 움직이던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가.

대기권을 점차 벗어나기 시작하며 드라칸이 물러나려는 시점에 돌연 침묵해 버린 것이었다.

단지 그뿐만이라면 어느 정도 감안하겠으나 문제는 전투 도중에 급격하게 틀어진 강하 각도였다.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예정된 강하 지점에서 엇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이 틀어졌다.

이대로라면 분명 그들은 강하 지점이 크게 어긋난다.

그리고 유성은 함선 메티스와는 아주 먼 거리로 강하하게 될 터였다.

강하하는 와중에 생기는 아주 작은 각도의 틀어짐이 지상에 떨어질 때에는 수백 수천 킬로미터의 낙하 지점 오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유성은, 이미 한참은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명백하게 사전에 얘기된 사항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유성! 유성! 응답 바랍니다!”

오퍼레이터는 몇 번이고 소리치며 유성의 응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오퍼레이터는 곧 고개를 저었다.

“제로 브레이커, 완전 침묵 상태입니다. 통신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탓에 파일럿의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살아는 있는 건가? 그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죄송하지만, 그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고열에 의해 파일럿 복장이 망가진 듯싶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점차 통제실의 인원들 사이에는 더욱 큰 목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유성이 필요하다. 그는 각성자야. 전함 메타트론의 강하 지점을 변경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합류해야 해.”

“하지만 부함장님! 그럴 수는……!”

“유성 군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지금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간 저희들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해당 지점은 드라칸의 활동이 목격된 지점이에요!”

“무엇보다도, 그의 생사조차 불분명합니다! 지금 상황에선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아요!”

아스트라 부함장의 말에 반대 의사가 강렬하게 부딪혔다.

반대 의사의 대다수는 통제실 내의 군인들이었다.

그들의 의사는 평소와 달리 유독 강력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군인이었고, 위의 명령을 최우선시해야 했다.

이미 강하 지점이 서로 다르게 틀어졌다.

이 마당에,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를 확보하기 위해서 전함 메타트론의 강하 지점을 틀기라도 했다간 그들마저 드라칸의 영역 한복판으로 뚝 떨어지고 만다.

당연히 그들의 본래 목적인 함선 메티스의 호위와도 전혀 동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성이 그 막대한 열기를 버텼다고 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그는 한낱 사람이다.

각성자라는 이름의 초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근본은 결국 사람이었다.

이미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는 강하 지점이 완전히 틀어졌다.

그가 떨어지는 방향은 원래의 목표 지점인 연합의 기지에서부터 수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방향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함 메타트론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면, 함선 메티스와는 영영 떨어지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미 죽었을 것이 확실한 이가 있는 방향으로 건널 필요는 없었다.

당연히 반대 의사가 거셀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것은, 부함장이 아닌 함장이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었다.

“함장님!”

모두가 함장 라프티리아를 돌아보았다.

군인들은 부함장의 강한 반대 의사를 거스를 수 없었으므로, 결국 그녀를 바라보았다.

“…….”

라프티리아 함장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함장석에 앉아 몸을 기댄 채로 눈을 감고만 있을 뿐이었다.

쿵! 쿠궁-.

쉴 새 없는 진동이 울려 퍼지며 전함 메타트론이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아스트라 부함장과 주변인들의 언사가 높아졌을 때에도.

그녀는 조금도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연, 라프티리아 함장은 입을 열었다.

“다들 들어라.”

그 말에, 모두가 라프티리아 함장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통제실 전체를 울렸다.

폭음과 소음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마나 사용자로서의 그녀는 그 존재감이 뚜렷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함선 메티스에서부터 떨어진다. 대신, 새로운 목표는 유성이 탄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와 합류하는 것.”

그렇게 말하며, 라프티리아 함장은 고개를 들었다.

그들 통제실의 모니터 화면은 함께 행동하고 있는 함선 메티스 측의 통제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보고 계셨으니, 대충 돌아가는 내용은 이해하시겠죠. 브레튼 함장.”

브레튼 함장. 지금은 바로 그가 메티스의 함장이었다.

함선 메티스의 함장이었던 라프티리아 함장을 대신해 그 자리를 맡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말을 건네자,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파일럿의 실력은 직접 보았습니다. 눈이 의심이 될 정도의 실력자더군요. 그만한 자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고서 포기한다는 건 분명 막심한 손해겠죠. 하지만…… 그가 아직도 살아 있겠습니까? 강하 과정에서 기가스 한 기에만 의지해 그 고열을 몸으로 직접 받아냈는데?]

브레튼 함장의 말에는 분명 짙은 의심이 서려 있었다.

그 고열 속에서 인간이 살아남기란 불가능한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야 정말 놀라울 투지로 끝끝내 버텨가며 싸웠다곤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의 일이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 상태.

이 시점에, 유성이 타고 있는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에서는 어떠한 응답도 들려오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지금까지도 숨이 붙어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힘들었다.

“흠.”

하지만 그러한 브레튼 함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라프티리아 함장은 옅은 미소를 드러냈다.

그녀는 화면상에 비치는 브레튼 함장의 얼굴을 마주한 채로 대답했다.

“그건 지금부터 직접 확인해야 되겠죠. 이건 도박이나 다름없는 모험이니까요.”

유성은 이미 죽었을 확률이 크다. 아니, 그럴 것이다.

대답이 없는 시점에서 이미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니 더 이상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못할 터. 그러니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럼에도, 분명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불확실한 모험은 많은 위험을 부담케 한다.

미래. 진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목숨까지도.

하지만 걸린 판돈이 많을수록. 그리고 그 위험이 클수록.

이겼을 때 얻게 되는 보상 또한 늘어나는 법이었다.

그들이 도박에서 이겼을 때 손에 넣게 되는 것은 유성이라는 이름의 각성자다. 그 판돈은 태양계에 다시 없을 수준의 전력이다.

[알겠습니다.]

브레튼 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경례 자세를 취했다.

[무운을. 라프티리아 함장과 메타트론에 탑승한 모두에게.]

삑.

그것을 마지막으로, 두 함선 사이의 통신은 끊어졌다.

“…….”

라프티리아는 전방의 상황을 노려보는 듯이 주시하며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성을 잃을 수는 없다. 그는 각성자야.’

온 태양계가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고작 행성 테라와 일부 콜로니만 속한 작은 일이 아니다.

태양계의 외곽에서부터 활발한 드라칸의 활동이 목격되고 있는 시점이다.

상황은 실시간으로 급변하고 있다.

당장 수십 시간 전에는 또 다른 콜로니가 붕괴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 이 시점에.

코앞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현 상황 속에서, 태양계 전체를 모두 뒤져도 흔치 않을 각성자를 잃을 수는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이른 나이에 각성자의 경지에 오른 범상치 않은 재능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터였다.

‘걸려 있는 판돈은 단출하다. 각성자라는 이름의 인간 단 한 명. 그것이 전부야.’

원래부터도 뛰어난 마나 사용자가 다수의 인간보다도 가치를 평가받던 시대였다.

그런데 드라칸이 등장하고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어쩌면 과거 있었다고 하던, 수백 년도 전에 일어났다고 하는 대전쟁의 재현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 시점에, 이 상황에.

뛰어난 마나 사용자의 가치는 감히 이전에 비할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가치를 지니게 될지 모르는 시점이 임박했다.

인간 하나가, 수십 척의 함선보다도 더욱 비싼 판돈이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걸려 있는 판돈이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라프티리아 함장은 모험을 하기로 했다.

‘드라칸과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 그는 고작 전함 몇 척, 십만의 인간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승과 패의 결말은 명확하다.

도박에서 이겼을 때에는 유성이라는 이름의 각성자와 함께 그들 모두가 살 것이다.

하지만 도박에서 졌을 때.

그들은 모두 죽게 될 터였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강하하는 지점은.

게이트가 열린 드라칸의 활발한 활동이 목격된 지점이었으니까.

죽거나 살거나.

방향을 정한 이상, 전함 메타트론과 그들의 결말은 오로지 둘 중 하나로 정해질 것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원, 제자리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도록! 좌현! 추진 부스터의 방향을 틀어라! 목표는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강하하는 지점이다!”

쿠오오오-!

그녀의 명령과 함께, 전함 메타트론의 추진부가 푸른 불을 뿜어내며.

점차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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