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지상 강하전(降下戰) 개시(5)
‘지금의 나라면 놈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한가?’
그 답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
그야 물론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유성이었다.
그는, 놈들이 몇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감당 가능하다. 아니,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가 놈들을 상대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화륵!
유성의 눈이 맹렬한 푸른 불꽃을 불사르듯 일거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능하고말고. 조금도 문제없다!’
놈들을 꿰뚫을 찰나의 틈을 노릴 능력?
말할 가치조차 없다. 유성은 거기에 결코 해당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게는 차라리 이놈들이 다른 환경에 서식하는 드라칸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쉬운 상대였다.
그저 일직선으로 무작정 쏘아지듯 달려드는 드라칸이라니.
‘놈들은 일직선으로만 달려드는 맹렬한 화살과도 다를 바가 없지. 그리고 그렇다면…….’
오로지 일직선의 공격만을 틀어막을 수단만 있으면 된다.
이 얼마나 쉬운 상대인 것인가?
쐐애애액-!
유성은 몸을 부딪칠 듯한 기세로 자신을 노리고 쏘아지듯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양산체 드라칸을 마주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중하기 직전의 순간.
그는 돌연 회전하듯 팽이처럼 내돌며 대검을 내밀었다.
일직선으로 달려들던 놈은, 서로가 맞붙으려는 그 직전의 순간 발휘하는 유성의 돌발 행동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놈의 몸체에 대검이 틀어박히고.
놈의 살점이 주욱 찢어진다.
카가각!!
대검에서부터 강렬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그 간단한 동작 하나만으로도, 달려들던 놈은 오히려 제 속도를 주체 못 하고 그대로 검에 갈라져 반토막이 나 스스로 찢겨 죽었다.
그것은 멀리서 보자면 흡사 제 스스로 대검을 향해 뛰어들어 자살하듯 토막 나 죽는 광경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드라칸들은 마치 제 스스로 죽음을 향해 뛰어들어 자살하듯 반으로 죽죽 갈라져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저절로 쩍쩍 갈라져 자살하는 듯한 그 광경은.
실상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한 일인 군단의 사냥이었다.
오로지 극한의 효율을 가진, 유성만의 위험하고도 천연덕스러운 사냥법이었다.
[탄막군 방사!]
함선 메티스가 접근하는 드라칸들을 막기 위해 사방으로 흩뿌리는 탄막군.
그 탄막군의 탄환조차도 대부분이 녹아내리는 그 고열의 대기권 속에서.
콰앙!
유성의 로켓 대검이 연속적인 푸른 불꽃을 내뿜었다.
그때마다 그가 탑승한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가 수십 미터의 거리를 도약하며 다른 드라칸들의 머리를 갈라 버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그의 도약은 드라칸과 드라칸의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 보일 정도였다.
콰직!
유성은 비행하는 드라칸의 몸체 위에 정확하게 안착하며, 놈의 머리통에 대검을 휘둘렀다.
사납기 그지없는 맹렬한 검기가 놈의 목을 흔적도 없이 갈라 버렸다.
그러고는 놈이 추락하기도 전, 로켓 대검의 추진 능력을 사용해 다른 놈에게로 건너뛰었다.
유성은 로켓 대검을 추진 장치처럼, 무기처럼 또는 이동 장비처럼 사용했다.
오로지 대검 한 자루만을 가지고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강하하는 상태의 대기권을 제 마음대로 쏘아지듯 움직이는 그 광경은, 오로지 그 혼자만이 이곳의 강자인 듯 보일 정도였다.
순간적인 가속과 도약, 비행과 후퇴를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는 유성의 움직임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수준의 것이었다.
주변의 모든 전장을 완벽하게 눈에 들이고 있는, 그러한 이만이 가능한 수준의 묘기나 다름없었다.
이제까지도 모두를 놀라게 했던 유성이지만 이번에도 그의 움직임은 여지없이 놀라운 종류의 것이었다.
이 초고온의 열기를 자랑하는 대기 속에서.
오로지 유성의 기갑 무장인 로켓 대검만이 유일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외의 다른 원거리형 무기들은 조금도 작동하질 않았다.
쾅! 콰앙!
함선 메티스의 위에서 열기를 피하며 포격을 날리는 라피스의 스크래퍼와는 달리, 유성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는 어떠한 보호조차도 없이 맨몸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확실히.’
유성은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훔치며 생각했다.
‘확실히 조종석 내부의 공기가 빠른 속도로 덥혀지고 있어.’
유성의 조종석을 가득 채웠던 시린 수준의 냉기는 순식간에 덥혀져 사라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나마 냉기가 감돌고 있었지만, 이러한 온도가 열기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임을 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은 그리 길게 남지 못했다.
‘아직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일 때 최대한 많이 없애 둬야만 한다. 이 상황을 오래 끌면 끌수록, 데미지는 내가 아닌 함선이 받아야 할 테니까.’
조종석 내부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게 되면, 그때는 너무 늦고 말 터다.
아마도 그 순간이 도래한다면.
놈들, 드라칸들보다도 유성이 먼저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에 달할 테니까 말이다.
유성이 드라칸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면 그 데미지는 온전히 함선 메티스가 받아 내야만 했다.
현재 함선 메티스에는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성이 타인을 방관자에 가까운 시선으로 본다고 한들, 구할 수 있는 이들은 구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지금 라피스와 더불어 저들을 구할 기갑 파일럿이었다.
‘숨이 막힌다.’
이미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혀 오기 시작했다.
이곳 행성 테라의 대기권의 높이는 지구 시절보다도 훨씬 높았다.
무려 두 배는 족히 더 높은 이 대기권이라는 공간에서, 조종석의 내부는 앞으로도 더욱 뜨거워질 터였다.
유성 그는 지상에 강하할 때까지 드라칸들과 싸우는 동시에 조종석 내부의 무지막지한 열기와도 싸워야 했다.
“하아-.”
긴 호흡을 내뱉었다.
벌써부터 호흡기가 뜨거웠다.
기가스의 내부가 빠르게 달궈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정신이 없는 것은 라피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아아-!!”
콰앙!
기가스 스크래퍼가 새파란 안광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전신에 내장된 미사일 컨테이너가 철컥 열리더니 수십 개의 미사일과 빔 포격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주변이 죄다 폭발에 휩쓸렸다.
함대의 포격에서조차 살아남았던 일부 드라칸 무리들이, 그대로 공격에 휩쓸려 사라졌다.
놈들의 사체가 그대로 터져 나갔다.
“하아, 하아.”
라피스의 숨결이 거칠어진 것은 이미 한참도 전의 일이었다.
강렬한 포화를 담은 수십의 공격들이 기가스 스크래퍼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압도적인 화력. 압도적인 포화였다.
‘분명 먹힌다. 내 공격은 녀석들에게 닿고 있어.’
그녀의 공격이 드라칸에게 효과적인 것은 공격 그 자체에 마력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분명 일반적인 포화보다도 훨씬 치명적이지만 그 반대급부의 단점 또한 명확했다.
그녀가 공격을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비록 리브가 가진 정체 모를 능력을 통해서 그녀의 마력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풀어 올랐다고는 하더라도.
이렇게 조금도 쉬지 않고 포화를 뿜어내며 적들과 싸워 대니 그런 그녀라도 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멈출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드라칸은 상대를 봐주지 않는다.
그 상대가 누구이건,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있건.
그저 공평하게 물어뜯고 집어삼키는 괴물들이었다.
쿵! 쿠구궁-!
지금 이 순간에도 전함 메타트론과 함선 메티스에서 쉴 새 없는 포화가 쏟아지고 있는 도중이었다.
강렬한 공격들이 주변을 빛으로 물들일 정도로 퍼부어지고 있었으나, 드라칸들의 속도가 워낙에 빨랐다.
대부분의 공격들은 그저 주변에 흩뿌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놈들도 지성을 지닌 생명체인 이상, 얌전하게 공격을 맞아줄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간혹 일부 운 나쁘게 얻어맞는 몇몇 드라칸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엄마! 위쪽!]
“읏……!”
다급하게 소리치는 리브의 목소리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
하지만 결국, 한발 늦었다.
지친 탓에 기가스 스크래퍼의 조작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다.
방어 자세를 취하지도, 마력을 제때에 끌어올리지도 못했다.
결국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드라칸의 위험을 그대로 맞닥뜨리려던 순간.
드라칸의 앞으로 푸른 장막이 펼쳐졌다.
쾅!
놈의 몸체가 들이받듯이 그곳에 맞부딪혔다.
대번에 쩍, 하고 금이 갔음에도 분명 상당한 내구성을 지닌 것인지 그 일격을 끝내 버텨냈다.
[아흑!]
“이, 이건?”
[엄마! 빨리! 오래는 못 버텨!]
리브의 음성이 다급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라피스가 놈을 향해 공격을 쏟아부었다.
강렬한 마력 입자를 머금은 빔 포격이 번쩍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간신히 살아남은 라피스가 입을 열었다.
“고, 고마워. 리브.”
[이 정도로 뭘. 엄마! 그다음!]
아직,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 * *
[■■■■!]
‘죽어라.’
다가오는 드라칸을 향해 무심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콰득!
놈의 상반신이 쩍, 하고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 유성은 생각한다.
‘난 지금 제대로 숨을 들이쉬고 있는 건가?’
그러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분명 숨은 들이쉬고 있었다.
그런데, 숨을 쉬는 감각이 무감각했다.
육체의 감각이 갈수록 텁텁하게 변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상을 향해 강하하며, 발생하는 열기 속에서 움직이는 기가스의 내부는 순식간에 달궈지고 있었다.
삐익-! 삐익-!
유성의 모니터 화면이 새된 경고음을 발하고 있었다.
[경고! 조종석 내부의 온도 급상승 중! 위험 수치에까지 도달 중! 파일럿, 몸을 보호하세요!]
화면에 내비치는 내용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유성은 제 자신의 육체가 어떠한지조차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확신하는 것은.
막대한 열기가 내부를 태울 듯 메우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속화되었다.
‘숨이 막힐 것 같다. 분명 숨을 내쉬고 있는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도, 그럴 기미도 없는 하늘 위의 세상이었다.
유성은 조종석이라는 이름의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오직, 오직 나만이.’
이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유성 그 하나뿐이었다.
‘나만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 라피스도, 이곳의 어느 누구도 불가능해.’
자신이 감내하지 못하면, 그 데미지는 온전하게 함선 메티스와 전투함 메타트론이 받아내야 했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이 막대한 열기로 강하하는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우주함선이라도 드라칸의 공격을 받아 낸다는 건 무리였다.
‘해낸다. 다른 누가 아닌, 이, 내가.’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는 촉박한 시간과 환경에 의해 쫓기고 있었다.
놈들의 수는 지극히 많았다.
제때에 처리하지 못한다면, 뒤이어 나타난 놈들과 함께 점차 그 수가 쌓이기 시작할 터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는 움직여야만 했다.
쾅! 콰직!
기계적으로, 놈들을, 처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수도 정말 더럽게 많군.’
이 군체가 불과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아 번식한 규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득하기는 하나, 당황하지는 않는다.
이놈들은 언제나 인류를 당황케 했다.
결코 상식적인 수준을 기대해선 안 되는 것들이었다.
놈들은 항상 인류의 예상을 보란 듯이 뛰어넘었다.
알 듯싶다가도 순식간에 이전의 기억들을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바로 지금, 유성 그의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