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지상 강하전(降下戰) 개시(4)
그 손길에 형체 따윈 없었다.
오로지 마력 에너지만으로 이루어진, 영체 상태임일 것이 분명한데도 유성은 자신을 안는 선명한 손길을 느꼈다.
[있잖아. 아빠.]
언제나 밝았던 리브의 얼굴이 오늘만큼은 조금 어두웠다.
리브는 유성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조심해. 당하면 안 돼.]
‘물론이지.’
[약속한 거야?]
‘그래.’
재차 확답을 받고서야 리브는 안심했던 것일까.
어두웠던 얼굴이 밝아지고, 그제야 리브의 모습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완전한 영체로 변한 리브의 마력 에너지가 라피스의 기가스인 스크래퍼에 안착하는 것이 느껴졌다.
라피스는 안전할 것이다.
리브가 지켜줄 테니.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스피커를 타고 들려왔다.
[현재 행성 테라의 중력장에 진입 중입니다. 앞으로 3분 후, 본격적으로 대기권에 진입 시작합니다.]
예견했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치프가 여지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너희들, 압력 수치 똑바로 맞춰 둬! 온도 시스템 마지막까지 문제없는지 제대로 확인해! 실수 한 번이면 파일럿이랑 우리들 전부 다 죽는다!”
[하아. 하아.]
옆에 함께 있는 라피스의 숨이 거칠어졌다.
헬멧을 착용한 채로,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의 헬멧에 희뿌연 김이 서렸다.
숨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텁.
유성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진정해, 라피스.”
그러면서, 그는 돌연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면 너희 집에 가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어, 어? 우리 집?]
라피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유성을 향했다.
그는 말했다.
“이번에 가게 되면-.”
[가게, 되면?]
“가서 기가스라도 한 기쯤 받아와야 할 것 같다. 너희 집, 엄청난 부자잖아?”
순간, 미약한 기대감을 품고 있던 라피스의 얼굴이 힘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금세 입이 튀어나왔다.
[……뭐야, 그게.]
툴툴대는 라피스의 모습에 유성이 웃음을 흘렸다.
“어때?”
[뭐가?]
“어느 정도 긴장은 풀렸나 해서.”
[……약간은.]
유성은 쓰게 웃는 라피스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기가스를 한 기쯤 받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 아냐. 이건 진심이니까.”
[아. 진짜 유성! 뭐야!]
라피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예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지금부터, 강하전 개시합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대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함 메타트론의 모든 구역을 울리는 오퍼레이터의 음성과 함께, 치프가 소리쳤다.
“이봐!! 유성, 라피스! 시간 됐다! 기가스에 탑승해!”
때가 되었다.
유성과 라피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앞에는, 제로 브레이커와 스크래퍼가 서 있었다.
* * *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 사출합니다!]
콰앙-!
오퍼레이터의 음성과 동시에.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가 굉음을 터뜨리며 사출로에서 발사되었다.
“큭……!”
유성은 이를 악물었다.
마치 탄환이 연상되듯 사출로에서부터 쏘아지는 압박을 견뎌내야 했기 때문이다.
마력을 끌어올리지 않고선 결코 버틸 수 없는 압력을, 그는 버텨냈다.
유성은 무사히 사출로에서 쏘아져 우주로 나갔다.
‘나왔다.’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온 유성은.
그의 뒤를 따라 함께 쏘아지는 라피스를 확인했다.
그녀 또한 큰 무리 없이 전장에 합류했다.
고오오오-!
거대한 행성, 테라(Tera)가 보인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것은 푸른빛 일색으로 가득한 행성의 전경이었다.
그것은 찬란한 빛으로 가득해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길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그들의 전장이 될 장소였으니.
쿠웅!
유성과 라피스.
그들이 탑승한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와 스크래퍼가 각각의 함선의 갑판 위로 안착했다.
착지와 함께 조종석 전체가 진동이 떨려왔다.
유성은 곧장 모니터 화면의 시스템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온도 시스템의 개방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살을 에는 듯한 강렬한 추위가 조종석의 내부로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금세 상승하기 시작할 열기를 버텨내기 위해, 유성의 기가스 내에는 극저온의 시스템이 장착되었다.
현재 표시된 온도는 정상 온도였다.
“좋아.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어. 제대로 작동한다.”
유성이 바라보는 모니터 화면에는 [상태 양호.]라는 표식이 떠 있었다.
조종석의 내부에는 살을 저미는 듯한 냉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 사용자인 그에게 있어 이 정도는 그저 약간의 쌀쌀함이 불어 닥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유성은 전신을 마력으로 강화한 상태였다.
쿠오오오!
추락하듯 대기권 아래로 강하를 하기 시작한 함선 메티스는, 새빨간 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고온의 열기를 머금은 대기에서부터 새빨갛게 달궈진 무시무시한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스윽.
유성은 시선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온통 새파란 빛으로 가득한 거대한 행성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빛의 행성. 테라.
그곳을 오로지 기가스 한 대에만 의지한 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지금, 그가 탄 기가스는 미세한 진동을 수도 없이 일으키며 덜거덕거리고 있었다.
[위잉! 위잉!]
대기와 기체 간 사이의 마찰로 인해서 새어 나오고 있는 소음은 상당한 수준인지라, 당장에라도 기체가 부서질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하지만 유성은 걱정하는 기색조차 없이 오히려 시선을 돌렸다.
기가스라는 것의 내구도는 튼튼하기 그지없다.
이 정도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의 눈길이 향한 발아래.
그곳에는 기가스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강하하고 있는 전함 메타트론 그리고 함선 메티스가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통신 담당의 오퍼레이터가 유성과 라피스와의 통신을 연결했다.
[유성 생도. 라피스 소위.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상태 양호.]
[상태 양호.]
[알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양호했다.
함선의 거대한 덩치를 방패로 삼아, 그 위에 올라탄 유성의 제로 브레이커와 라피스의 스크래퍼가 함께 낙하하고 있었다.
열기를 완벽히 막아주는 덕택에 아직까지는 그들에게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지 않아 끝나게 될 터였다.
‘문제는 없겠지. 적어도 아직까지는 계획대로다.’
전투함 메타트론.
이것은 행성의 대기. 그리고 우주에서마저도 모두 활동이 가능하게 제작된 다기능 전투함이었다.
전함 메타트론으로 옮겨 탄 라프티리아 함장 휘하의 군인들.
그들의 역할은 함선 메티스의 호위였다.
격렬한 전투가 예상되는 이때에, 언제까지 대규모 승선과 이송이 주목적인 이송형 함선 메티스에 모두가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투 군함 메타트론은 분명 함선 메티스와 비교한다면 성능이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위에 속했다.
속도는 물론이고 강력한 주포와 포대, 거기에 그들의 기가스를 격납 가능한 전용의 격납고까지.
다만 유일한 단점이라면 그들이 이곳까지 타고 왔던 함선 메티스의 수십 분의 일 크기에 달할 정도로 작다는 점 정도일 터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당초 전함의 화력이란 건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제아무리 함선 메티스의 크기가 대단할지언정, 실질적인 화력과 내장된 탄의 용량 면에서는 메타트론이 우위를 차지했다.
진짜 문제라면 역시나 드라칸이었다.
이러한 고온이 함선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놈들이 공격을 퍼부으면 그것은 함선의 장갑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작은 흠집 하나가 그대로 강화 장갑을 깨부수기라도 하는 날에는, 순식간에 그곳을 시작으로 함선 전체가 타들어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스윽.
유성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시커먼 우주에 다수의 전투 함대가 자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더군다나 함선들의 포대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유성과 그들의 함선이 있는 방향을 겨누고 있었다.
‘월면의 궤도 함대 쪽에서는 강하하는 우리들을 위해 지원 포격을 쏴 준다고는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저들이 우리를 완벽하게 지켜 주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결국 저들의 거리는 멀었고 반대로 드라칸의 이빨과 발톱은 가까웠다.
저들의 포격으로 채 물리치지 못한 일부 드라칸들이 끝끝내 그들의 함선들에 접근하게 될 터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예견하고 있던 상황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나타났다.
[다수의 드라칸, 접근 중입니다! 수는 어림잡아 200마리 정도로 추정! 바로 뒤쪽으로 제2파 접근 중!]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함께, 유성과 라피스가 탄 기가스의 안광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드라칸!’
드라칸은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수를 불려 나갈 수 있었다.
그것은 이 대기층에서마저 그러했다.
놈들은 하나같이 조악한 생김새를 지녔다.
그 생김새란 기묘함을 넘어서서 차라리 생명체라기보다 사물에 가까운 종류의 것을 가진 것도 여럿이었다.
비행체, 혹은 전투기가 연상되는 그 생김새는 생명체라기에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쪽에 속했다.
대부분은 곤충형에 기반한 것이었으나, 그것들이 성장하며 저마다의 환경에 알맞은 진화 방향을 택했을 때의 모습은. 차라리 생명체라기보다 무생물에 기반한 듯 보일 정도였다.
과연 생명체인지조차 의심이 가는 기계적인 생김새였다.
하지만 놈들은 분명한 생명체였다.
[■■■■!]
꿈틀거리며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놈들의 눈동자나 수십 개나 달려 엿보이는 무수한 이빨들은, 분명 놈들이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유성?]
그때, 통신 채널을 타고서 잔뜩 긴장한 듯한 라피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 수가 장난이 아닌데?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많잖아?]
“긴장하지 마, 라피스. 이미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저놈들은 크게 어려울 것 없어. 무엇보다도-.”
[……무엇보다?]
“우리 쪽엔 전함이 있으니까. 그것도 무려 함대 규모의.”
콰아앙-!!
그 순간, 마치 유성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우주의 바깥에서부터 쏘아진 강렬한 수십여 개의 포격들이 접근하는 드라칸들을 날려 버렸다.
행성 테라의 대기권 바깥에서부터 쏘아진. 수십 척의 함대에서부터 쏘아진 포격이었다.
파직! 파지직!
그 기세가 어찌나 강렬한지, 포격이 쏘아진 자리에는 강렬한 전류가 일렁거리며 남아 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순식간에 그들을 향해 접근하던 이백여 마리의 대부분이 그대로 타죽어 버렸다.
물론, 그러한 포격의 와중에도 살아남은 놈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놈들이 끝끝내 포격을 뚫고 그들에게로 접근했다.
[■■■!]
대기층의 드라칸은 대체로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놈들의 단단한 갑각은 오로지 고속으로 이동하기에 전면부에만 치우쳐 있으며, 후면부는 일반 탄환조차 박힐 정도로 빈약 그 자체다.
그렇기에 놈들은 정면에서의 공격은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후면이나 측면은 그렇지 못했다.
후면이나 측면을 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쓰러뜨리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칠 수만 있다면 말이지.’
놈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행하며 대기를 가르는 그 찰나의 틈을 꿰뚫을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놈들의 공격은 차라리 다른 어떤 드라칸들보다도 압도적인 위협이 될 터였다.
유성의 미간이 모아졌다.
그는 놈들이 가진 강함과 그 자신의 수준을 측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