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지상 강하전(降下戰) 개시(2)
유성이 완전체를 상대하며 불러내었던 시간선에 간섭하는 그 강대한 능력.
하지만 실상은 그조차도, 과거의 그가 드라칸을 상대하며 얻어낸 능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마력을 다루는 수준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보다 복잡한 세계의 ‘개념’ 그 자체를 조작하는 힘에 다다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유성이 시간선에 간섭하였듯이 말이다.
그 이상의 것. 그 이상의 본질을 다룰 수 있는 것.
일종의 초상 능력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그리고 이 능력이 유래한 원초적인 존재들, 드라칸들의 경우에는.
인간보다도 한층 더 나아가, 한낱 생물체의 육체를 가지고서 아예 아주 먼 거리의 우주를 뛰어넘는 워프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짓까지도 벌일 수 있었다.
지금 드라칸들이 게이트를 통해서 출몰하였듯이 말이다.
쿠궁-!
그때였다.
돌연, 지면에 지진이라도 일어나기라도 한 듯이 큰 진동이 울렸다.
유성이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타고 있던 함선 메티스가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부두에서 나오는 건가? 고작 하루 만에?’
그러한 유성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아스트라 부함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계획을 말해 주지.”
“꽤나 중요한 내용인가 보군요.”
“그래. 우리는 이곳 월면의 기지에서부터 한 척의 전함을 받아 내기로 했다. 그리고 함선 메티스는 우리들 대신 이곳 월면 기지 소속의 인원들이 조종하기로 했지.”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군요. 그게 무슨 의미인 겁니까? 저희들이 새로운 함선으로 갈아타기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까?”
“당장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행성 테라는 물론이고, 태양계 곳곳에 흩어진 각 콜로니의 근방에서도 드라칸들의 활동이 시시각각 늘어나고 있는 마당이지. 이런 상황에, 이곳 월면 기지의 함대가 우리들만을 신경 쓸 수는 없다.”
그는 말했다.
고작 대화가 이루어진 만 하루 만에, 죽은 듯이 정박하고 있던 함선 메티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성은 적어도 며칠은 걸릴 거라 예상했다.
어떤 식으로든 계획을 짜고, 이곳 함대의 지원을 얻어내려면 그만한 시간이 더 걸렸어야 하니까.
그게 타당한 생각이고 실제로도 그래야 마땅했다.
하지만 유성의 예상을 깨고 고작 하루 사이에 함선이 움직인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의미다.
‘무리해서라도 움직여야 할 정도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건가.’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우주에서부터 우주 정거장의 수십 척이 넘는 함대가 대기권으로 강하하는 우리들을 직접 지원해 주기로 했다.”
“함께 강하하지는 않을 테고. 아마도 이곳 우주의 대기권 바깥에 남은 채로 지원 포격을 날려주겠다는 소리 같군요.”
“역시 눈치가 빨라, 유성 군은. 그래, 그 말대로일세. 태양계의 외곽지에 속한 R. S 콜로니가 수 시간 전에 붕괴했다고 한다. 듣기로, 대규모 드라칸 무리가 나타났다는군. 함대는 우리들을 지원한 직후에 곧장 그쪽 방향으로 움직일 계획이라고 들었어.”
쿠구궁-.
곧, 저 멀리서부터 함대를 구성하고 있던 전함 중 일부가 빠져나와 함선 메티스의 주위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월면의 궤도 함대에는 여유랄 게 없어. 당장 우리들의 강하 작전이 끝나자마자 콜로니 붕괴 지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으니.”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광경을 응시하며.
아스트라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 우리들 전원이 함선을 갈아탄다. 전함으로. 그리고 함께 나란히 강하하는 함선 메티스를 지원해야 해. 우리들이 직접 말이야.”
* * *
“어-이! 그쪽, 물품 조심조심해서 옮겨!”
“기가스 조심해서 옮겨!”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열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사이에, 함선 메티스에 있는 물품을 모두 갈아탈 다른 전함에 옮겨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적재 과정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다.
사방에서 짐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치프는 계속해서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소리를 쳤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 탓에,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같이 거칠었다.
치프와 그의 부하 엔지니어들은 목소리를 줄일 틈이 없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유성은 생각했다.
‘치열하군.’
유성은 정거장의 부두 한쪽에 서 있었다.
그는 함선 메티스의 격납고에서부터 쉴 새 없이 온갖 적재물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함선 메티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들이 타게 될 새로운 함선이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주포가 달린 ‘전함’이었다.
아마도 그 이름이 다목적 전함 메타트론(Metatron) 이라고 하던가.
그것은 이주형을 목적으로 한 함선 메티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전함이었다.
그 크기는 메티스에 비하면 한참이나 작아서, 직경 삼백여 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하긴 당연한 것이었다.
애당초 수십만의 인원도 무리 없이 태울 정도로 거대한 이주형의 함선과 전함은 그 규모부터가 다르다.
목적이 다르니 생김새는 물론이고 크기마저 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전함 메타트론. 크기는 작아도 함선 메티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공격력을 가진 전함. 듣기로는, 무장도 꽤나 훌륭한 것 같았는데. 눈으로 보니 확실히 보통은 아니군.’
삑-!
그때, 유성의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를 실은 거대한 운송 차량이 멈춰 서며 크락션을 울렸다.
“이봐! 조심해!”
차량의 앞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의 라피스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쳇!”
사과하는 라피스의 음성에.
운송 차량은 더 이상 시간을 끌기조차 아깝다는 듯 그대로 전함 메타트론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라피스는 머쓱한 얼굴로 유성의 곁에 다가섰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꽤나 당황했나 보네.”
“설마 거기서 차가 올 줄 몰랐어.”
“지금 저 앞을 돌아다니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야.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둘은 부두의 한쪽에 가만히 선 채로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누구도 그들을 터치하진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군인이라기엔 너무도 어린 외모였다.
그러한 탓에 분명 의아해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실질적인 태도로 드러내진 않았다.
[아빠! 엄마!]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서부터 내려앉고 있는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리브였다.
유성과 라피스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리브가 있는 허공으로 향했다.
[헤헤, 나 왔어.]
“어딜 다녀온 거야, 리브?”
[잠시 이 주변을 구경하고 왔어! 뭔가 엄청 많아. 그리고 엄청 커!]
리브는 허공을 날 듯이 빙그르르 돌았다.
언제고 물질적인 육체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리브는 형체를 저버릴 수 있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벽과 천장 등을 통과하는 것마저도 가능했다.
이 상태의 리브는 오로지 마력으로만 이루어진 에너지 물질에 지나지 않았다.
“유성 군! 라피스 소위!”
“아. 부함장님.”
그때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라프티리아 함장님께서 부르시네. 아. 물론, 우리가 갈아타게 될 새 전함인 메타트론의 통제실로 모이면 돼.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 *
기잉-.
통제실로 다가서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이미 함장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라프티리아 함장이 가볍게 손을 들었다.
“잘 쉬었나, 유성 군? 그리고 라피스 생도?”
“함장님. 덕분에 쉴 수 있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유성은 짧은 목례를 취했다.
첫 만남이야 어찌 되었든, 그녀는 이 전함의 책임자였다.
그러한 유성을 따라 라피스 또한 어색하게나마 고개를 숙였다.
곧 고개를 든 유성이 라프티리아 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꽤 빨리 왔군. 부함장이 서두른 모양이야.”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주변은 혼란스러웠다.
지금도 바깥에서는 물자들이 옮겨지고 있는 도중이었고, 전함 메타트론에서는 끊임없는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앞으로 있을 전투를 위한 전함의 에너지와 무기를 채우는 탓이다.
본래라면 족히 며칠은 걸릴 만한 과정을 하루로 압축해야 하기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라고 해서, 그들이 시간을 늦출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함대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어! 유성! 라피스도 있군그래!”
한쪽에는 얼굴에 시커먼 기름칠이 묻은 치프 엔지니어, 치프 또한 보였다.
그는 유성의 등장에 손을 들어 올리며 반가움을 표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도 고래고래 목청을 내지르던 광경을 봤는데 벌써 올라오다니, 정말 쉴 틈이 없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에 유성이 의문을 표했다.
“음? 오늘은 치프도 올라왔군요?”
“그래, 유성. 나도 함장한테 불려왔거든. 쯧, 그러잖아도 물품을 싣느라 한창 정신없는데 여기까지 올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해도 말이야.”
치프가 이곳에 직접 올라온 적은 없었다.
언제나 보고를 받아도 통신 단말을 통해서 전달받거나, 그도 아니라면 부함장 아스트라의 방문을 통해서 받았던 탓에 이곳에 방문한 치프의 등장은 새삼스러웠다.
“모두 모였습니다, 함장님.”
아스트라 부함장이 새로운 전함, 메타트론 통제실의 문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필요한 인원이 모두 모였다.
“그래. 바로 해당 내용에 대해서 먼저 말해 주도록 하지.”
* * *
“…….”
한창 강하 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잠자코 듣고 있던 유성은.
돌연 입을 열었다.
“이거. 자살 행위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무작정 강하해 봐야 드라칸들에게 뜯어 먹힐 일만 남은 것 같은데요.”
“뭐, 뭐?”
“이봐! 유성!”
그 말에 통제실에 모인 주요 인물이 모두 유성을 돌아보았다.
심지어는 치프마저 놀라 소리치는 와중에도.
하지만 예상외로, 라프티리아 함장의 반응은 그리 비좁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실낱같은 옅은 미소를 드리우며 유성을 향해 대답할 뿐이었다.
“흠. 그래. 유성 군의 말이 맞기는 하지. 하지만 달. 월면의 함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가능하다고도 보네.”
하지만 그러한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말에도 불구하고 유성은 쓰게 웃었다.
대기권 진입이라. 그 정도쯤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들은 테라에 도착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설마 이럴 것이라고는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이곳을 오로지 단 두 척의 함선인 메티스와 메타트론만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제대로 된 함대의 지원조차 없이 단독으로?
유성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정신 나간 계획이로군.’
함선 메티스는 제대로 된 무장조차 갖추지 않은 이송형의 함선이었다.
비록 강하 과정에서 대기권 바깥인 그 너머의 우주에서부터 함대 규모의 포격 지원이 있을 거라고는 하나, 그것을 직접 호위하는 인원은 오로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유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라피스 말이다.
“가능은 한 겁니까? 이곳의 대기권은 보통 수준이 아닐 텐데요.”
“……이론상으로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