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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76화 (76/200)

77화. 지상 강하전(降下戰) 개시(1)

“신분증…….”

“그렇지. 이번에는 이것을 직접 전달해 주러 온 걸세. 앞뒤 사정이야 어떻든, 일단 공식적으로 라피스 소위는 군인으로의 자동적인 임관과 동시에 기갑 파일럿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 정도의 통보라면 다른 인물에게 심부름을 시켰어도 되었을 텐데요. 바쁘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걱정해 주어서 고맙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들을 만나는 일이야. 최소한 이것만큼은 누군가를 시키는 게 아니라 직접 와야겠지. 물론-.”

낮게 웃으며, 아스트라 부함장이 곧이어 덧붙였다.

“자네들을 직접 보고 오라는 함장님의 지시가 있기도 했고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런 셈이지. 물론, 나로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이기도 했고 말이야. 직접 마주하니 꽤나 괜찮아 보여 다행이야. 보통 그 나잇대의 생도들이라면 그런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서 결코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거든.”

“그럴 테죠.”

유성 또한 동의한다는 듯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전투라는 것은 결국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하물며 드라칸과의 전투는 단순히 목숨을 거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설령, 제 목숨을 걸고 싸우길 스스로 다짐했다 하더라도 수 초 단위마다, 수 분 단위마다 몇 번이고 연속적인 목숨의 위협을 받으니 결코 맨정신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전장은 극한의 스트레스가 초 단위로 계속되는 죽음의 세계다.

‘물론, 원거리형 기가스에 탄 라피스가 그런 위협을 느낄 일은 드물기도 하고. 이래저래 우리들은 그런 정신적 문제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니까.’

그래도 신경 쓰이기는 분명 매한가지일 터였다.

일전까지 함선 메티스를 호위하던 기가스의 두 파일럿.

그것은 다름 아닌 어느 퇴역 군인과 라피스인 것으로 공식적인 발표를 마친 뒤였다.

이미 함 내의 모든 일반인들과 콜로니에서도 유성의 전투 장면은 낱낱이 공개되고 목격된 뒤였다.

때문에 신원 미상의 파일럿이 함선 메티스의 안에 존재함은 결코 숨길 수 없게 된 이후였으니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기가스의 신원 미상 파일럿의 정체를 치프의 옛 지인 중 하나인 퇴역군인 파일럿으로 조작하기로 한 것이었다.

힘을 숨긴 노장의 파일럿이 현재 함선에 탑승을 하고 있다는, 어딘가 억측이 있는 듯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사망 이유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이제 ‘공식적’으로는 현재 함 내에 존재하는 파일럿이란 오로지 라피스 그녀 하나뿐이었다.

어차피 라피스는 대가문 엘 바이어스의 후계자였다.

그녀는 이후에도 군부의 일원으로 활동할 터였다.

언젠가 그녀는, 분명 뛰어난 기갑 파일럿으로서 성장할 재능을 가진 이였으니까 말이다.

다른 엘 바이어스 가문의 역대 후계자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흠. 그보다 사실 이런저런 걱정스러운 내용들이 있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문제라. 문제라면 많고도 많지. 놈들의 수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넘쳐난다는 거야. 그것도 우리가 지나쳐야 할 대기권의 한복판에, 떡하니 말이지.”

놈들은 행성 테라의 대기권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우주 공간과도 가까우면서, 행성의 대기층에도 속한 그 경계.

그곳에 떠 있는 놈들은 언제고 자력으로 열권을 벗어나 달의 우주 정거장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근방에 드라칸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우주 정거장의 건재함.

그렇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유성은 그러한 타입의 놈들을 익히 봐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알아본 바로, 놈들은 대기권이라는 환경 안에서만 서식이 가능한 것들로 보이더군. 조금만 더 벗어나면 월면 기지까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증거지.”

“대기권까지가 한계라는 거란 거군요.”

“그래. 저 대기권에서 서식하는 비행형 타입의 한계인 거겠지. 놈들이 공격했다면 정거장이 이제까지 멀쩡할 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쉽게 말해 물 밖을 벗어날 수 없는 물고기와 같은 놈들인 셈이다.

놈들에게는 대기권의 환경이 유일한 세상이다.

그 너머를 벗어날 순 없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했다면 녀석들의 사나운 성격상 진작 달의 조선소를 침범했을 터다.

“그리고 그 점이 문제라는 겁니까.”

“안타깝게도, 그러하네.”

아스트라 부함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곤란한 표정과 함께 더욱 짙게 드러난 그의 피로함이 엿보인다.

그들의 착륙 목적지는 행성 테라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연합의 중앙 기지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기권을 통과하는 것도 이미 그들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문제로 자리 잡았던 탓이다.

어느 순간 대기권에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한 드라칸들로 인하여, 이미 놈들을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지상으로의 착륙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간단히 말하자면.

‘현 시점에서 놈들과의 마찰을 피할 순 없다. 행성 테라로의 강하 과정에서 전투는 싫든 좋든 반드시 일어날 거야.’

놈들의 수가 적은 방향을 택하든.

아니면 위험스러운 상황 속에서 강하를 서두르는 방향을 택하든.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함선 메티스는 다시금 놈들과 싸워야 했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말했다.

“우리가 대기권을 돌파하기까지 충돌할 거라 예상되는 드라칸의 수는 적으면 오백에서 어쩌면 천 마리 까지네.”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군요.”

“이상할 정도로 놈들의 수가 너무 많아. 아마도 많은 마나를 머금은 행성 테라의 대기가, 놈들에게 있어선 풍부한 자원 요소 그 자체였겠지.”

행성 테라의 대기는 지구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나 농도가 풍부하다.

지구가 척박하다고 표현될 정도라면, 아예 이곳은 수준 자체가 달랐다.

그러므로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이 번식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이었다는 겁니까.”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함 내의 도서관에서 알아본 건가? 맞네, 정확하지.”

아스트라 부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드라칸은 마나 생명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마나만을 섭취한다는 것의 의미는 아니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많든 적든 간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나가 서려 있었다.

그 탓에 지구와 같은 마나 농도가 척박한 환경에서조차 놈들은 잘도 번식을 했었다.

그런데 행성 테라는.

그와는 수준이 다를 정도로 풍부한 마력 농도를 지녔다.

지구에서조차 그러했는데 하물며 농도가 풍부한 이곳에서라면, 드라칸들은 당연히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수를 불리겠지. 물 만난 고기가 된 셈이다.

어쩌면 놈들의 번식 속도는 예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득할 수준일지도 몰랐다.

유성은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놈들이 그만큼 수를 불릴 동안 연합에서는 대체 뭘 한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나도 무방비한 대처가 아닙니까?”

“안타까운 소리이지만. 사실 대처라면 했지. 아니, 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어.”

“그게 무슨……?”

의문을 표하는 유성의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태블릿 화면에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시커먼 균열과도 같은 것이 열리고, 그 너머에서부터 드라칸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유성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건-.”

“게이트(Gate)일세. 다른 우주의 ‘어떤’ 공간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게이트.

유성도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 또한 그와 거의 비슷한 힘을 다룬다.

그가 시간 선에 간섭하여 과거 시간대의 그 자신을 불러내었듯, 사실 드라칸들에게도 그러한 능력이 존재했다.

드라칸의 무리를 이끄는 그들 여왕 개체에게는 시간과 공간, 혹은 그밖에 다른 것들에 간섭하는 능력이 있었다.

드라칸의 여왕들에게는 우주 공간을 도약하는 게이트를 여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들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아주 먼 거리의 우주를 도약하듯 건너오는 게 가능했다.

“설마 그 게이트의 너머에서부터 건너오고 있다는 겁니까? 드라칸들이?”

“그런 것 같네. 실제로도 저 게이트 너머에서부터 드라칸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고 하더군. 심지어 게이트가 한두 개도 아니야. 처음에야 연합에서도 나름대로 정리를 하려 한 모양이지만, 그것도 초기에나 그랬을 뿐이지. 이미 현 시점에 와서는-.”

“쏟아져 나오는 물량을 더 이상 막아내기 어려워졌다, 라는 겁니까.”

“그 말대로야. 이젠 이미 감당할 수준을 넘었어.”

유성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그것도 행성 단위로 열린 수많은 게이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건가.

과연, 아스트라 부함장의 말대로였다.

그가 라프티리아 함장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울 만했다.

그 말대로라면 이것은 결코 보통 내용을 담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렇군.’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과연 행성 테라가 혼란에 빠진 이유가 있었다.

이건 아무리 연합이라 하더라도 막아설 만한 수준을 진작에 뛰어넘었다.

유성은 아스트라 부함장이 보여주는 표식을 보았다.

행성 테라의 지도에 표시된 빨간 점들이 수두룩하다.

게이트가 한두 개 수준도 아니고 수십 개도 아니었다. 못해도 이건 그 이상이다.

당장 확인된 것들의 수만, 수백 개인데, 확인되지 않은 것들까지 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인가.

말 그대로 재앙의 시작이 들불처럼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암담하다.

사실상, 행성 테라의 전역에서 빨간 점들이 암세포처럼 들끓고 있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그 수가 불어나고 있다.

화면을 보여주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지금 발견한 것들보다 드러나지 않은 게이트의 수가 훨씬 많다는 걸세. 개중에 확인된 것들 중에서는 놀랍게도, 무려 심해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들마저 있더군.”

“…….”

유성은 침묵했다.

이상할 것 없다.

게이트는 어디에나 열릴 수 있다.

지상과 지하. 심해까지도.

심지어는 지표면 아래의, 맨틀에서조차도 열릴 수 있으니 그러한 것들을 모두 탐색하고 지워 버리는 것은 현재의 인류라도 불가능했다.

“우리들은 이놈들이 공간에 간섭하는 능력이 있는 거라고 예상하고 있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식의 갑작스러운 출몰은 결코 설명이 되질 않아. 마치 자네가 사용했던, 그 기묘한 각성기와 같이 말이다.”

“그렇습니까.”

유성은 그저 담담히 대답할 뿐이었다.

사실 당연한 소리다.

인류가 지닌 모든 마나들의 유래는 바로 드라칸의 출현과 함께 나타나게 된 것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 각성자들의 각성기 또한 그와 마찬가지인 게 당연하다.

마나 능력자들이 사용하는 마력이 단순히 육체를 강화하는 수준에만 머물 뿐이라면.

그중에서도 극소수에 속하는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각성기란 보다 고차원적인 수준의 능력에 속했다.

‘시간과 공간. 혹은 그밖에 개념 그 자체를 다루는 힘 또한. 사실은 드라칸에게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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