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달. 그리고 궤도 함대(2)
“네가 상위체의 공격을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 때까지.”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냐?”
“실제로 그러니까.”
유성의 도발과도 같은 말이 먹혀들었던지, 라피스의 미간이 옅게 꿈틀거렸다.
“지금도 충분해, 유성!”
힘찬 대답과 함께.
라피스가 새파란 안광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와아.]
그리고 그 모습을.
새파란 빛의 형상을 한 리브가 지켜보고 있었다.
드라칸의 여왕체.
리브는 둘의 대련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목검이 서로를 노리고 맞붙는 그 현장의 박진감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가 있었다.
리브는 유성과 라피스의 머리 위에서 힘껏 소리쳤다.
[엄마! 아빠! 누가 더 세요?!]
“어, 어? 뭐야. 언제 왔어, 리브?”
그러한 외침에 당황한 라피스가 저도 모르게 자세를 풀었다.
* * *
예정되었던 테라로의 도착까지의 남은 시간.
3일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처음에는 하나의 점처럼 멀 듯이 느껴졌던 행성 테라가, 이제는 벌써 코앞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고오오오-.
함선 메티스의 투명한 창문의 너머로 너무도 거대하기 짝이 없는 짙푸른 빛의 행성이 눈에 담겼다.
“와아-.”
놀란 표정의 리브가 창문에 가까이 달라붙었다.
“그런데 아빠.”
“음?”
고개를 돌리는 유성을 향해.
리브는 작은 손으로 창문을 툭툭 두들기며 물었다.
“우리들은 왜 여기서 멈춘 채로 있는 거야?”
“글쎄.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유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곧, 잠깐의 침묵 끝에 그는 말했다.
“아마도, 당장은 내리지 못할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드라칸에 관련해서겠지.”
현재 그들은 이미 행성 테라의 근방에 다다라가는 상태였다.
다만 한 가지.
대기권에 들어서는 대신 함선 메티스는 행성 테라의 위성인 달(Moon)의 월면 기지 근방을 표류하는 중이었다.
벌써 반나절이 넘도록 말이다.
* * *
우우웅-.
복도를 지나가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통신 단말에 진동이 울렸다.
“음? 진동? 호출인가?”
품에서 꺼내든 화면에는 아스트라 부함장에게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부함장 아스트라 : 유성 생도. 오늘 내로 통제실에 한 번 들르게나.]
유성은 몸을 돌렸다.
현재 그는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된 구역인 공원을 들른 참이었다.
갑갑한 함선의 공기를 온종일 맡느라 기분 전환이 필요한 탓에 그나마 선선한 공원에 있었다.
일반인들이 머무르는 넓은 공동 구역을 지나치자, 때 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이봐! 빨리 테라로 가라고!”
“우리가 며칠이나 이렇게 기다린 줄 알아?! 여기서 어물쩡거리면서 뭘 하는 거야!”
“……다들 난리들이군.”
유성은 복도를 지나치며, 군인들과 몸싸움 중인 시민들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난리였다.
얼굴 가득 서린 것은 분명한 불만과 적의였다.
‘어지간히도 답답한 모양인데.’
물론 이해는 하는 종류의 것이다.
벌써 수십 일이 다 되어 가도록 이 함선 메티스에 갇힌 채로 이렇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식사나 보급품의 지원도 적은 데다, 개인 숙소조차 없이 지내왔다.
쌓인 스트레스의 수치가 적으려야 적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당장 유성이나 라피스마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그리 적지 않은 우주 공간에서의 생활로 인해 그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가고 있었으니까.
대규모 승선이 가능한 함선 메티스이니만큼 가벼운 활동을 위한 공원과 여가 시설, 그밖에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시설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물며 저들은 제대로 된 숙소나 물자의 보급조차 받지 못했다.
심심찮게 무장한 군인들이 돌아다니고 수시로 드라칸과의 전투가 벌어지니 사람인 이상에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다.
‘안타깝지만, 감내할 수밖에.’
유성은 쓰게 웃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스치듯 지나치는 군인들의 얼굴 위에도 마찬가지로 분명 미세하지만 짜증이 배어 있다.
그들도 이 기나긴 생활에 슬슬 지쳐가는 것일 터였다.
‘한계에 달하고 있어. 하지만, 그리 머지않았다.’
아마도 이 함선은 머잖아 지상에 내려앉을 터였다.
지금 함선 메티스는.
행성 테라의 위성 기지인 달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까.
* * *
행성 테라의 위성.
속칭, 달(Moon)이라고 부르는 그것.
쿠구구구-.
그 테라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 위성 행성의 정거장을 향해서 함선 메티스는 점차 다가섰다.
저 멀리 편대를 편성하고 우주 정거장의 근방을 호위하듯 움직이는 함선들이 보였다.
다수의 함선들이 편성된 그것은, 다름 아닌 전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함대였다.
유성의 눈이 옅은 흥미의 기색을 드러냈다.
‘바로 저것들인가.’
유성은 저 함대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가장 강대한 연합의 무기.
바로 저 대규모 전함들이 한데 모인 광경이야말로, 행성 테라에서 가장 강력하기로 손에 꼽힌다는 대규모의 화력인 전 함대였으니까.
‘무려 전함들의 수만 100여 척에 달한다는, 상당한 수를 자랑하는 현 인류 최대의 전력.’
지금의 인류는 무려 태양계를 건너 이주를 할 정도로 발전한 시대를 맞이했다.
비록 그것이 드라칸에 패해 떠밀리듯 도망쳐나간 이주의 형식에 불과했을지라도 그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었다.
인류는.
우주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크나큰 기술력의 발전을 손에 넣었다는 의미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전력이란 기가스도, 대규모의 포격도 아니었다.
그것들 모두가 분명 과거보다도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인류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는 아니었다.
과거, 유성이 지구에서 싸우던 시절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 인간이 가진 강대한 무기는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어마어마한 대범위 포화를 쏟아 부을 수 있는 전력인 전함의 존재 그 자체였다.
“와…….”
[아빠, 엄마! 저거, 엄청 많아요!]
라피스는 물론이고 리브 또한 감탄성을 흘리며 놀라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저만한 규모의 전함이라니.
그것도 한두 척도 아니고 그 규모가 무려 일백여 척을 넘어가는 수준에 달했으니까.
오히려 보고 놀라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것은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매년마다 아카데미를 이유로 이송형 함선을 타고 콜로니까지 향하던 유성도 행성 테라와 이 근방의 태양계 전체를 수호한다는 저 함선 편대를 실제 육안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군함과 그것들의 모습은 행성 테라의 일반인들에게도 그 존재가 많이들 알려져 있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곳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군사 영역이었다.
때문에 보통의 일반인들이 저것들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유성은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조차 않는 저 막대한 수의 함대를 말없이 응시하며 생각했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규모이긴 하군. 과거만큼은 아니긴 하지만.’
저런 것은 과거 그 대전쟁의 시대에조차 그리 흔치 않은 규모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흔치만 않을 뿐, 분명 드물기는 하나 존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그 이상으로 압도적인 수의 전함이 존재했다.
예전에는 드라칸의 핵을 있는 대로 노획하여 그 자리에서 전함에 투자했기에, 사실상 곳곳에 널린 것이 전함이었다.
지금과는 감히 비할 바가 아니었다.
“…….”
유성의 눈은 조용히 창밖 너머의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커먼 우주 공간을 밝히기라도 하듯이, 여기저기에 불을 밝히는 각양각색의 전함들이 보였다.
무려 일백여 척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우주 전함 편대.
저만한 수의 단일 전력은, 분명 이 태양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최대의 전력일 터였다.
‘대전쟁의 시절에 비하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뒤떨어지는 정도도 아니지.’
그러한 면에서 미루어 보자면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기는 했다.
‘설마하니 저만한 규모의 함선들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인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400년이 넘는 기나긴 평화를 누렸다.
이른바 아주 긴 평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랬던 인류의 전력이 저만한 규모의 전쟁 병기를 착실하게 쌓아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지금까지의 인류에게는 대단한 수준의 전쟁 병기가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전쟁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찬란한 문명. 발전하는 기술력.
그리고 거기에-.
위협할 만한 강대한 적이 없다는 요소의 존재는, 반대로 많은 면에서 발전한 인류가 정작 무력적인 부분에서만은 오히려 별다른 발전이 없게 만들었다.
‘과거의 것을 여전히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는 사실부터가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발전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이겠지.’
한심할 따름이지만, 어느 면에서는 그 나름대로 이해도 가능하기는 했다.
이 시대에 인간의 적은 오로지 같은 인간들뿐이었다.
상식을 초월하는 적들인 드라칸이 없기에, 그들을 따라잡기 위한 발전이 없다.
같은 인간을 상대로는 폭탄과 포격조차 필요 없다.
그저 단순히 총알 한 발만으로도 해결이 될 문제에 불과하니까.
하물며 마나 사용자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이유로, 과거의 유물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익숙한 생김새의 전함들이 곳곳에 산재했다.
‘하나같이 내가 아는 형태의 전함들뿐이로군. 저건 AS-041의 발전형인가. 그 옆의 것들도 다들 내가 아는 것들이야.’
유성과 함께 전장을 헤쳐 나갔던 그 전함들이, 머나먼 미래에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는 그 광경은.
분명 기묘함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눈으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착각이 일 정도였다.
어쩌면, 유성 그는 사실 아주 먼 미래가 아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말이다.
* * *
고오오오-.
현재 그들이 있는 함선 메티스는 월면의 우주 정거장 함대의 인도 아래에 우주 정거장의 항구에 정박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 우주 정거장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유성과 라피스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연합의 중추 시설 중 하나다.
때문에 직접 우주 정거장을 나섰던 것은 일부 극소수의 인물들뿐이었다.
군인들의 안내를 받아 함선 메티스의 책임자인 라프티리아 함장과 아스트라 부함장이 직접 나섰다.
그들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유성과 라피스는 그들 나름대로의 여유를 만끽했다.
이곳은 백여 척이 넘는 함대들로 둘러싸인 안전한 장소였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오랜만에 긴장을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
유성은 온종일 창문틀에 걸터앉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수 미터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그의 숙소 창문 너머로 매일같이 다수의 전함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여유롭군.’
그는 그것들을 조용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수의 전함이 유독 이곳에 많은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편대를 이루고 우주 정거장의 근방을 호위하듯 하는 저 함선들이 바로 행성 테라에서가 아니라 우주 정거장인 이곳에서 직접 건조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 달이라 불리는 조선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