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우주전(3)
분명 단단했을 터인 전투체 드라칸의 몸체가 종잇장처럼 썰려 나갔다.
그때까지도, 놈은 제자리에서 조금도 꿈쩍하지 못했다.
마력을 끌어모으며 불안정함을 유지하던 놈은, 유성의 검날로 쪼개어짐과 동시에 폭발했다.
그리고 이미 유성은.
폭발에 휘말리기도 전에 놈에게서부터 벗어났다.
퍼벙! 퍼버벙!
유성은 놈들의 사이를 치열하게 넘나들며 생각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모두 의도적인 것이었다.
‘행성 테라에서의 본격적인 전투 전에 감을 먼저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지금은 그 전초전이다.’
유성의 눈이 이전 이상으로 강렬한 빛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강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했었다’.
과거의 그는 인간이라는 종이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적인 강함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경험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건재하지만, 결국 그것은 과거의 잔상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의 그는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니었다.
명백하게 시비를 따진다면, 그저 쌓인 경험만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실질적인 육체의 강함은 이제야 간신히 라피스에 견줄 정도에 불과하겠지.
물론 마력적인 부분의 성능을 제하고서 말이다.
어느 정도는 성장하였다고는 하나 어차피 겨우 그 정도가 고작이다.
함교에서 확인한 대로라면 지금 전투체 놈들의 포격은 터무니없을 만큼이나 빠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며 공격에 끊임이 없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빠른 공격들의 연속성은.
제아무리 유성이라 할지라도 보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감지하고 피해 낸다.’
유성은 아예 눈을 감았다.
그러자 통신 저편에서 그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던 이의 경악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뭐? 지금 뭐 하는……! 피하십시오, 유성!]
하지만 무시했다.
지금 저들의 음성은 방해에 불과했다. 일일이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유성은 통신 음성을 꺼버리곤 오로지 제 자신의 육체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감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다.
이번 전투에서 유성은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성능을 맛보아야 했다.
진짜 전투에 들어가기 전, 검사가 검을 날카롭게 벼리듯이.
마나 사용자인 그는 마나의 감을 현재의 상황에서 가능한 수준까지 최대한 벼려내야 했다.
눈을 감고, 주변의 마나를 느꼈다.
고오오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그에게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직접적으로 와닿듯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당장 숨을 내쉬고 있는 그 자신의 육체에서부터, 기가스 EF-06의 움직이는 관절과 핵이 박동하는 소음까지도 하나하나가 모두가 다.
더 나아가서는 주변의 드라칸의 존재와 놈들의 뒤얽힌 마력이 포격을 쏘기 위해 한데 모이는 광경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유성의 감각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했다.
마치 박쥐가 눈이 아닌 초음파를 통해 먼 곳의 시야를 확보하듯, 유성도 그와 비슷한 방식을 통해 주변을 보았다.
‘보인다.’
감각이 순식간에 끌어올려지는 게 느껴졌다.
시간의 감각이,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성은 그 상태 그대로 드라칸 놈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크고 작은 포격들이 그를 노렸다.
포격이 기가스를 스치듯 지나칠 때마다, 장갑조차 걸치지 않은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의 기체가 덜그럭거리며 떨려왔다.
기체가 버거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성은 결코 물러설 생각 따윈 없다.
그보단 오히려 공격에 가속에 가속을 더한다.
중첩된 그의 마력이 출력을 더한다.
검의 잔상과 함께, 주욱 가속도를 더하며 미끄러지듯 나아간 제로 브레이커가 새파란 선이 되어 놈들을 그어 버렸다.
일그러지는 듯한 푸른 선이 횡을 긋듯이 놈들의 사이를 파죽지세로 지나쳤다.
퍼버버벙-!
우주 공간에서 푸른빛의 폭발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 * *
우주 공간에서 푸른빛의 폭발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왔다.
“와, 아…….”
“놀랍군.”
그리고 함선 메티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들은.
일반인과 군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놀라운 광경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새파란 선처럼 늘어지는 유성의 기가스 EF-06이 드라칸 놈들을 지나칠 때마다.
여지없이 한 놈 한 놈씩이 무차별하게 썰려 나갔다.
조각난 드라칸의 시체가 우주 공간 저편으로 새파란 마력을 피처럼 흩뿌리며 튕겨 나갔다.
그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살육전이었다.
* * *
“음?”
그러던 와중, 유성은 마침내 발견했다.
무리의 가장 뒤편.
가장 덩치 큰 전투체의 뒤편에 숨겨지듯이 모습을 가린 녀석을.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보인다. 바로 저 녀석이 여왕이었나?”
녀석은 척 보기에도 기묘하게 생겼다.
새파랗고 길쭉한 몸체에, 낫을 연상시키는 양 앞다리까지.
마치 지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곤충인 사마귀처럼 생긴 놈이었다.
유성은 여왕체를 보며 짤막한 소감을 중얼거렸다.
“기괴하게 생기기로는 자식 놈들보다 그 어미가 더욱 심각한 정도군.”
신 기체인 제로 브레이커의 성능 테스트는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상황을 기꺼이 마련해 준 녀석에게는 나름대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여왕체, 아무래도 녀석은 자신의 최후를 예감이라도 한 것 같았다.
위기감이라도 느꼈던지 날카롭게 소리를 내지르며 자식들을 한데 불러 모으고 있었다.
[■■■-!]
하지만 여왕체 본인도 알고 있겠지.
어차피 녀석의 대응은 하등 부질없는 것에 불과하다.
녀석의 자식들이 채 모여들기도 전에, 상황은 끝날 테니까.
피잉-.
유성은 조종간에 마력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제로 브레이커의 뒤편으로 새어나오고 있던 네 장의 날개에서 한층 더 강력한 출력이 뿜어져 나왔다.
유성은 여왕체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선고하듯 말했다.
“이걸로 끝이다. 드라칸.”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의 기체가 푸른 빛줄기가 되어 쐐기처럼 놈을 관통하듯 지나쳤다.
* * *
“하, 아.”
유성의 호흡은 이전보다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크게 지친 탓이다.
마침내 전투가 끝이 났다.
유성의 앞에, 놈은 사지가 반으로 잘려나간 채 유영하고 있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새파란 체액과 잘게 부서진 파편들이 우주로 흩뿌려졌다.
유성은 갑갑함을 채 이기지 못하고 쓰고 있던 헬멧을 벗었다.
그는 속이 엉망진창이 되었음을 느꼈다.
메슥거림과 어지러움, 두통 등의 것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죽겠군.’
유성은 낮게 혀를 찼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연속된 부담으로 인해 무거웠다.
유성의 마력은 진작 부족해진 상태였다.
그로 인해 제로 브레이커와의 동화가 끊길 듯 희미해졌다.
그의 몸 상태는 사실상 형체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그 내부는 이미 걸레짝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버텨냈다.’
한계까지 몸을 내몰면서도, 그는 끝끝내 버텼다.
심지어 거기에는 리브의 도움도 없었다.
그는 이전보다도 더욱 성장했다.
이전보다 마나 사용자로서의 한계점이 한층 올라간 것이었다.
“음?”
주룩.
뜨거운 뭔가가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무심코 닦고 보니 선명한 핏자국이었다.
무중력의 조종석 안.
그 내부에는 동그란 액체 상태들이 방울져 떠다니고 있었다.
새하얗거나, 혹은 붉은 액체 방울들.
그것들의 정체는 쉽게 짐작이 된다.
아마도 땀방울이거나, 혹은 핏방울일 것이다.
진공 상태의 우주였기에 가능한 광경이었다.
[유성!]
“어, 라피스.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때였다.
저 뒤편, 함선 메티스의 근방에서부터 지원 포격을 날리고 있던 라피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의 음성은 다급했다.
[이, 이 녀석 좀 떼어 줘!]
“음?”
그 말에 힐끗 고개를 돌리니, 라피스의 근방에는 여전히 몇몇 소수의 드라칸들이 남아 있었다.
양산체 단계의 어린 개체들이었다.
라피스는 다급한 고함을 내지르는 동시에 놈들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여왕체의 죽음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놈들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했다.
피식 웃은 유성이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고는 말했다.
“그 정도는 알아서 부탁해. 나도 지금 지쳤거든.”
[유, 유서어엉-?!]
“미안.”
솔직히 말하면, 유성은 많이 지쳤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못할 만큼이나.
시험 테스트였던 이번의 전투에서, 유성은 생각 이상으로 신경 써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
* * *
전투가 끝난 이후로, 유성은 한동안 회복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조차 불과 반나절만으로 충분했다.
금세 침상을 박차고 일어난 유성은 멀쩡하게 돌아다녔다.
마나 사용자들의 회복력은 그 그릇의 크기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더욱 발전한다.
탄성이 있다는 의미에서는 마치 인간의 근육과도 같았다.
한 번 시작된 성장이 점차 가속을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것이 직접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했다.
쭈욱.
유성은 자신에게 지급된 에너지 음료를 빨대를 통해 빨아 마시고 있었다.
우주에서도 자유롭게 마실 수 있도록 제작된, 팩 형태의 음료였다.
그것을 마시며.
유성은 발길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그러다 무심코 도착한 곳은 훈련장이었다.
“하압!”
목소리가 익숙했다. 그가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힘찬 기합과 함께, 한창 단련에 열중 중인 라피스가 보인다.
타당!
그녀의 수련용 목검이 호쾌한 소리와 함께 표적을 때리고 있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움직임이었다.
라피스의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떨어졌다.
푸른빛이 비치는 듯한 머리카락이 땀으로 젖어 뭉친 게 눈에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랜 시간을 저렇게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 쉽게 예상 갔다.
그런 그녀의 뒤편에 다가선 유성은 곧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라피스. 열심이네?”
“아, 유성.”
자신을 부르는 유성의 목소리에 라피스는 검을 내리곤 고개를 돌렸다.
“전투가 끝난 지 아직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을 시간인데 벌써부터 단련이라니. 부지런한데.”
“아. 응.”
대답과 함께, 라피스는 검을 허리에 걸쳤다.
자석류가 내재된 목검은 허리춤에 가져다 대자 착, 하고 부드럽게 부착되었다.
“어지간히도 열심히 했나 본데.”
“뭐. 보다시피.”
유성의 말에 라피스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인다.
심지어 평소에는 부드럽게 찰랑거리던 머리칼도 지금은 젖어 뭉쳤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지는 쉽게 예상이 갔다.
“응?”
라피스의 눈길이 무심코 유성의 허리춤에로 향했다.
그의 허리에는 목검이 걸쳐져 있었다.
“어…….”
그 모습을 보며 두어 번 눈을 깜빡거린 라피스가 곧 말문을 열었다.
“왠 목검이야, 유성?”
“훈련장에 검을 가져온 이유가 뭐겠어?”
유성은 태연한 대답과 함께 피식 웃었다. 그것은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만큼 간단한 답이었다.
그는 다 마신 에너지 음료를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바로 목검을 뽑았다.
“검잡아, 라피스. 좀 알려주지.”
“하!”
그에 라피스는 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유성의 음성은 자신감으로 한껏 서려 있었다. 완전히 라피스 그녀를 내려다보는 상급자의 말투였다.
라피스 그녀 또한 목검을 뽑아들었다.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다.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야, 지금?”
“물론. 그리고 말이 잘못됐어. 지금은 내가 윗줄인 거 같은데.”
“금방 그 생각 바꿔줄…… 게!”
그녀는 금세 저 자신만만한 태도를 뒤바꿔 주리라 생각하며. 곧장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74화 달. 그리고 궤도 함대(1)
그녀는 금세 그 자신만만한 태도를 뒤바꿔 주리라 생각하며. 곧장 유성에게로 달려들었다.
탕!
연무장에 힘찬 타격음이 새어 나왔다.
번쩍!
둘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을 뿜어냈다.
마나 사용자들의 전유물인 신체 강화 능력이었다.
둘의 접전은 순식간에 매서워졌다. 처음에는 눈에 보일 듯했던 검격의 검속이, 순식간에 보이지 않을 만큼이나 가파르게 상승했다.
접전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 열기는 가열되었다. 중반에 들어서는 아예 푸른 궤적만이 보일 정도였다.
흡사 연습 따위가 아닌 치열하기 그지없는 실전 같았지만, 마나 사용자들에게 이 정도 대련쯤은 아무렇지 않다.
그렇기에 둘은 오히려 더더욱 빠른 속도로 박차를 가하며 맞싸웠다.
파직!
라피스가 휘두른 마나가 서린 목검이, 유성의 목검과 맞부딪혔다.
허공에서 새파란 전격과 같은 불똥이 튀었다. 서로의 마력이 맞부딪힌 것이다.
새파랗게 눈을 빛내며, 라피스가 소리쳤다.
“하! 이걸 막아?”
“너무 뻔해, 라피스.”
유성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실제로, 그는 아주 가볍게 라피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흡사 허공에 낙서를 그리듯이 움직인다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유성의 빛나는 안광은 라피스의 움직임과 목검이 휘둘러지는 궤적 모두를 시야에 두고 있었다.
마나가 서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새파란 호선을 그리는 목검.
그 모든 궤적이, 그의 눈에는 너무도 선하게 보인다.
“아……!”
전력으로 정신없이 공격을 가하던 라피스는, 이내 깨달았다.
유성이 이제껏 그녀를 상대하면서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이란 걸 한 적이 없음을 말이다.
그저, 라피스의 공격을 철벽처럼 받아내고 있었을 뿐이다.
“왜 그래, 유성!”
라피스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그에 유성이 되물었다.
“뭐가?”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공격은 한 번도 안 하잖아?”
“공격하길 원하는 건가?”
탓, 그 직후 기류가 바뀐다. 공기가 역전된다.
단 한 번이었다.
라피스를 상대하며 접전을 할 때마다 조금씩 물러서던 유성은.
그저 ‘부드럽게’ 발동작을 바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허리를 틀어 너무도 쉽게 라피스의 공격을 피하고는.
스윽.
너무도 느리게, 마치 흐르는 물처럼 검을 내밀었다.
그러자 유성의 검 끝이 정확하게 라피스의 목을 노린 채 멈췄다.
“어…….”
라피스가 순간 입을 벌렸다.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이뤄진 패배였다.
말하자마자, 단 일 합 만에 결판이 나다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아득한 차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유성이 말했다.
“무작정 공격만 하는 건 좋지 않아. 적과의 대면에서 중요한 건 적의 일정한 흐름을 익히고, 그걸 깨트리는 단 한 번의 일격을 준비하는 거다.”
짝짝짝.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과 라피스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유성 생도야. 대단하군. 아, 물론 라피스 소위도 말이지. 확실히 둘 모두 보통이 아니로군.”
“오셨습니까? 부함장님.”
“그렇지.”
그들에게 다가선 것은 아스트라 부함장이었다.
부함장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사실 이곳을 지나치던 군인들이 하도 떠들썩하게 떠들더군. 오죽했으면 자네들 둘이 대련을 하고 있다는 게 통제실에까지 소문이 퍼졌을 정도야. 그 얘기를 들은 함장님께서 한 번쯤 직접 눈으로 보고 오라는 재촉을 하시기에 와 봤네.”
“그렇군요.”
아스트라 부함장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둘에게 건네었다.
“자. 둘 다 수건으로 얼굴 좀 닦게나. 땀으로 흠뻑 젖었군그래.”
“그럼 감사히.”
“감사합니다, 부함장님!”
수건을 건네받는 둘의 모습은 그야말로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별반 태도의 변화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건네어 받는 유성.
그리고 90도로 꾸벅 인사까지 해가며 받는 라피스의 모습은 확실히 서로 차이가 있었다.
그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슬쩍 웃었다.
차이가 대비되어 보이는 탓이다. 정말이지, 둘은 서로 극과 극이었다.
‘역시 저 나잇대의 소년, 소녀들이라면 라피스와 같이 저래야 정상이겠지. 유성이 아니라 말이야.’
아스트라 부함장으로서는 저런 대비되는 반응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 * *
라피스는 얼굴을 닦으며 불만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온몸이 끈적거려. 으으.”
“원래 훈련이란 게 다 그런 거지.”
그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목도 마를 텐데 이것도 들게나.”
“이런 것도 챙겨 오시는군요.”
“자네들 둘의 대련을 본 관람료라고 생각하게나.”
아스트라 부함장이 넘긴 것은 에너지 음료였다.
둘은 그대로 받아들고는 마셨다.
벌컥벌컥.
시원한 청량감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었다.
둘은 치열한 대련을 이어온 탓에 신체에서 열기가 뜨거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일반인과는 비교도 못 할 신체 활성화 능력을 지닌 탓이다.
곧 숨을 내쉬며, 유성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후. 감사합니다. 덕분에 한결 나아졌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네. 말도 좀 편하게 하고.”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부턴 편하게 하죠.”
‘음? 뭐지?’
아스트라 부함장은 순간 슬쩍 의문을 느꼈다.
그는 유성에게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동년배의 동료라도 대하는 듯한 감정이었다.
물론 그는 그러한 감정을 가볍게 흘려 넘겼다.
그것이 정말로 사실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탓이다.
“흠. 그러면 슬슬 가 봐야겠군.”
예상외로 한동안 둘을 지켜보려 했던 듯한 아스트라 부함장은 금방 몸을 돌렸다.
“가실 겁니까?”
“하하. 난 생각보다 바쁜 몸이라서 여유가 없어. 물론 자네들이 쉬는 시간도 없이 단련에 열중하는 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는 옅은 웃음기와 함께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럼 난 가보겠네. 둘 다 너무 진은 빼지 말게나. 이곳의 유일한 기가스 파일럿들이니 말이지.”
“그러죠.”
“안녕히 가세요!”
짧게 대꾸하는 유성과 다르게, 라피스는 이번에도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 *
아스트라 부함장이 자리를 비운 이후.
그 이후로 대련은 한동안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하으!”
빨대로 에너지 음료를 쭉 빨아 마시던 라피스가 벌떡 일어섰다.
“음? 왜 그래, 라피스?”
라피스의 난데없는 행동에 유성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의아하게 그녀를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라피스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으아아아-!!”
“……진짜 왜 그러냐, 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라피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뭔가가 어처구니가 없기라도 한 듯,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그러니까 대체 뭐가.”
“다시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겨우 마나 능력 좀 각성했다고 이렇게 갑자기 세지는 게 말이 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련은 항상 내가 이겼잖아?”
그 말에 유성은 순간 피식 웃고야 말았다.
충격적이라는 듯한 라피스의 반응이 꽤나 재밌었다. 흡사 어린애가 떼를 칭얼거리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유성은 그녀가 전혀 생각하고 있지 못하던 점을 집었다.
“이기기는 했었지. 다만, 언제나 간발의 차로 이겼잖아?”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있기는 있지. 신체 능력이 극명하게 갈리는 일반인과 마나 사용자가 싸웠는데도 항상 간발의 차로 이겼으니, 내가 마나 능력을 각성한 이후에는 그 이상이 되는 게 당연하겠지.”
“……아. 그렇게 되는 건가. 그랬지. 음.”
라피스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와.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유성은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는 추가로 덧붙였다.
“싸움이란 건 일종의 체스와 같지. 무작정 힘만 세다고 이기는 게 아니야. 어느 쪽이 더 강한지를 겨루는 게 아닌, 수 싸움이야. 강한 쪽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니까 강한 거지.”
수 싸움.
실제로 유성 그가 흑과 백의 두 상위체 드라칸과 싸웠을 때에도 그러했다.
놈들은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EF-05보다 압도적인 출력으로 전투를 내내 이어나갔다. 놈들의 스펙은 명백하게 그와 기가스를 웃돌았다.
하지만 결국 그를 몰아붙였을지언정 끝끝내 이기지는 못했다.
전후의 미래를 내다보는 노련한 수 싸움을 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바로 유성이 가진 기가스 파일럿으로서의 진짜 강함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너한테 말려들었다고?”
라피스의 물음. 그에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한층 진해졌다.
“그래. 아주 정확해.”
그 말대로였다.
유성은 기가스 스크래퍼를 타고서도 양산체는 물론이고 전투체마저 쓰러뜨렸다.
이전만 하더라도 기가스 스크래퍼는 사실 기가스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의 미약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겼다.
비록 애를 먹기는 했더라도 말이다.
치열한 수 싸움의 도박에서, 끝끝내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대련도, 싸움도, 전장도.
모든 것은 언제나 치열한 수 싸움의 연장선이다.
매번 강한 패를 가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드라칸은 강하고, 반대로 인간은 약하다.
놈들을 무조건적인 힘의 크기만으로 상대하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할 압도적인 출력의 괴물들이다.
약자인 인간이 드라칸을 상대하려면 약한 패를 가지고서 강한 패를 상대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
초창기의 시절, 드라칸을 상대할 방법 자체가 전무했던 인류가.
끝끝내 놈들의 사체를 이용한 기가스의 초기 버전을 개발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하, 하지만 난 아카데미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뛰어난 천재 파일럿이 될 거라는 평가가 자자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극명하게 차이가 벌어지는 게 아니야?”
자기 자신을 아카데미에서 제일가는 천재로 소개하는 건가.
심지어 부끄러움의 기색조차 전혀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유성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가 웃는 모습에 라피스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야. 왜 웃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음. 뭐, 어쨌든.”
곧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멈춘 유성이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지는가가 궁금하다 이거지?”
“그래. 이번엔 빙 둘러서 말하지 말고, 직접적으로 말해 봐.”
“내가 말도 안 되는 천재이기라도 했나 보지. 자칭 아카데미에서 제일 뛰어난 파일럿이 될 거란 평가를 받던 생도보다.”
유성은 별것 아닌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감을 넘어선 절대적인 수준의 자화자찬이었다.
그의 말에 라피스가 살짝 입을 벌렸다.
하지만 반박하지는 못했다.
실제로도 그 말이 사실이었으므로.
유성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목검을 붙잡았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검이나 잡아.”
“더 하려고?”
“물론. 벌써 그만둘 거였다면 애초에 내가 오지도 않았을 테지.”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이미 라피스는 마찬가지로 목검을 붙잡고 있었다.
금세 몸 상태가 조금 회복되었는지 자신감이 가득해진 모습이다.
돌연, 그녀가 물었다.
“얼마나 더 할 셈이야?”
그런 라피스를 향해, 유성이 말했다.
“네가 상위체의 공격을 한 번 정도는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