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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69화 (69/200)

69화. 전용기. 제로 브레이커(Zero Breaker)(4)

유성은, 피식 웃었다.

“치프.”

“말해라.”

“이번을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전초전 정도로 생각하세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외형.

그리고 새로운 성능과 내장된 드라칸의 핵까지-.

그것들을 시험해보기에, 이번 전투는 그야말로 딱이었다.

꽈악.

유성은 헐거운 파일럿 복장의 장갑을 꽉 조이며 말했다.

“어차피 이번이 아니라면 기체의 테스트를 할 시간은 없습니다. 그 다음 전투는 바로 강하전일 테니까요.”

“그렇기야 하다만. 정말 괜찮겠나?”

다시 한번 이어지는 우려 섞인 치프의 물음에.

스윽 고개를 돌린 유성이 말한다.

“문제없습니다. 저는 이것보다도 더한 상황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렇겠지만.”

치프는 그 말의 속뜻을 제대로 모르겠지만, 유성은 이미 완전한 파일럿이다.

그는 완전에 가까운 회피와 흘리기를 할 수 있는 최상의 기가스 파일럿.

기가스에 무리를 주지 않고서 데미지를 흘려낼 수 있는 방법을 안다면, 일정 수준 이하의 드라칸은 그에게 조금의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

가령 지금 나타난 드라칸 무리가 그러했다.

놈들은 오로지 양산체만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무리였으므로.

기잉-.

유성은 자동 와이어를 타고는 기가스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 있는 치프를 향해 그저 낮게 웃을 뿐이었다.

최근 들어, 치프의 걱정이 많아진 듯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털썩, 조종석에 기대듯이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가스의 시스템을 켜기 시작했다.

우웅-.

금세 모니터 화면에 현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 표기된다.

유성은 전투에 돌입하기 전, 주변 상황부터 먼저 살폈다.

‘거대한 규모의 운석군이 뭉쳐있는 밀집 지형이라.’

적게는 수 킬로미터에서 크게는 수십 킬로가 넘어가는 운석군이 한데 모인 지형.

현재 운석군의 외부를 벗어나기 직전에 도달한 함선 메티스이니만큼, 주변은 온통 커다란 운석들로 가득했다.

자잘한 크기의 운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하나하나가 웬만한 섬보다도 더 커다란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유성은 쓰게 웃었다.

‘척 보기에도 장난이 아니겠군. 운석은 저마다 끌어들이는 중력이 존재하니까.’

질량이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는 중력이란 게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은 운석도 마찬가지다.

운석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 또한 그에 비례하여 커지기 마련이었다.

이번 전장은 함선 메티스보다도 거대한 운석들이 무수한 지형이었다.

운석 하나하나의 중력은 별 게 아니라지만 문제는 수천수만 개가 넘는 운석군이 한데 모인 지금과 같은 지형일 때였다.

이렇게나 운석들이 많은 곳에서는 온갖 수많은 중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거대한 자석들의 향연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것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면.

기가스를 조종하는 파일럿에게의 중압감은 장난이 아니다.

‘그 모든 중력들을 신경 써 가면서 싸워야 하니까 말이지. 기가스의 외부에 둘러질 장갑도 없이 싸우려면 더더욱 불안정하겠군.’

가만히 있으면 기가스가 사방으로 끌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조종이 힘든데, 중력이 전후좌우, 위아래 할 것 없이 미치기 때문에 파일럿에게 미치는 압박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반고리관이 연신 혼란을 일으켜 구토감을 야기한다.

하물며 기가스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피가 급격히 쏠리는 거친 전투 도중이라면야.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유성은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에서의 전투가 낫겠군. 이것보다 수 배는 쉬워질 테니까.’

이미 조종석에 탑승해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사출을 기다리는 유성을 보며.

모니터 화면 너머의 치프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성은 저도 모르게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저 인간도 걱정이라는 것 정도는 하나 본데.’

이해한다.

지금 유성 그가 하는 행동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보일 테니까.

쿠구궁-.

지금 이 순간에도 함선 메티스에는 옅은 진동이 연달아 느껴지고 있었다.

메티스가 웅웅거리며 옅게 떨리고 있었다.

외부에서 드라칸들의 공격이 퍼부어지고 있는 탓이다.

한동안은 장갑과 에너지 실드로 버티겠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진 않을 터였다.

애당초 함선 메티스는 전투를 목적으로 한 군함이 아닌 그저 단순한 대규모 승선함에 불과하다.

유성은 여전히 복잡한 고민을 이어가는 치프에게 덧붙였다.

마치 생각을 끊기라도 하듯이.

“준비 서둘러 주십시오.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만.”

“그렇다고 네 말대로 했다간 정말로 죽…… 이런 젠장! 나중에 죽고서 내탓하지 마라!”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치프는 결국 포기했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그는 한창 무장을 덕지덕지 다느라 분주한 엔지니어들에게 소리쳤다.

“어이-!! 다들 지금 달고 있는 무장과 기본 강화 장갑 전부 취소하고 떼어 내!”

“아니, 치프. 갑자기 그게 무슨……?”

“파일럿 죽이려고 작정하신 겁니까? 아니면 드디어 노망이라도 난 겁니까, 치프?”

대놓고 따지려는 기색이 역력한 엔지니어들에게.

치프는 앞뒤 볼 것 없다는 듯 무작정 소리부터 쳤다.

“닥치고! 잔말 말고 지금 달려던 강화 장갑 전부 다 떼어 내! 명령이다!”

유성은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역시는 역시였다.

엔지니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몇 번을 말해도 알아먹을 기미도, 개선의 여지도 없는 군인과는 다르게.

엔지니어는 결국에는 마지못해 파일럿의 의지에 따르고 만다.

그것은 둘 사이의 명령 체계와 서로의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일 터였다.

모든 것을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는 군인과, 자의성을 가지고 때로는 명령을 무시해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하는 엔지니어.

기갑 파일럿들은 그러한 두 직종간의 장단점을 코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이들이었다.

쿠구궁!

전함이 연달은 공격에 미세하게 뒤흔들렸다.

기가스에 탑승한 유성에게조차 그 진동이 전해져왔다.

‘점차 진동이 심해지는군.’

처음에는 미약하기 그지없어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정도였지만, 가면 갈수록 진동이 심해지고 있었다.

함선을 보호하는 에너지 실드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에너지 실드가 다 떨어지면, 그때부터 함선은 맨몸이나 다름없다.

그 상태에 이르러선 더 이상 공격을 막아내기 어려울 터였다.

삑.

곧, 격납고를 내려다보고 있는 유성의 모니터 화면에.

저 반대편에서부터 파일럿 복장을 착용한 누군가가 다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유서엉-!]

그 익숙한 외관과 음성. 다름 아닌 라피스였다.

유성이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늦었어?”

[막 샤워를 끝내고 오는 길이었거든! 빨리 준비할게!]

“그래.”

그때 치프 또한 그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이봐, 유성.]

“끝났습니까, 치프?”

[그래!]

힘차게 답하는 치프의 음성에, 유성의 안광이 즉각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준비 끝났다! 출격해!]

허락이 떨어졌다.

유성은 익숙하게 기가스를 움직였다.

삑.

유성은 모니터를 켜 스크래퍼와의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곤 딱딱한 얼굴로 조작하고 있는 라피스를 응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라피스.”

[응? 왜 그래?]

되묻는 라피스의 대답은 이전과는 달랐다.

긴장한 기색은 표정에서부터도 드러나지만, 그것이 몸을 굳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

숱한 가상 공간에서의 전투가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어졌으니 당연할 터다.

라피스의 상태를 잠시간 가늠하던 유성이 말을 이었다.

“오늘의 주역은 내가 아니라 너야, 라피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을 흐리던 라피스의 인상이 돌연 굳었다.

[그게 설마 지금 네가 탄 기가스가 뼈대만 남아 있는 거랑 같은 이유야?]

“그래. 오늘 나는 그리 오래 싸울 수가 없거든. 보다시피 장갑이 없으니, 몇 번만 싸워도 금세 기가스에 무리가 쌓이겠지.”

[……아. 뭐야, 그게!]

라피스의 반응은 격렬했다.

당연한 거다.

아직까지 기가스의 개조는 한참이나 진행 중이다.

이 상황에 무작정 나서는 것은, 솔직히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정도로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무리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투가 아니라면 강하전 전에 제대로 실전을 테스트할 여유가 없어. 그러니 해야만 하는 과정이야.”

[그런…….]

“그렇기에 오늘의 주역은 사실상 너라는 거지. 내가 아니라.”

[나 혼자 어떻게 싸워? 난 초짜인데.]

라피스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진다.

하지만 피식 웃은 유성이 덧붙였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말라고. 상황은 이전과는 다를 테니까.”

[무슨 소리야, 대체?]

“힌트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전투에 들어가서 직접 깨달으라고.”

그리고는 픽, 매정하게 통신 화면의 연결을 꺼버렸다.

그러자 재차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이유야 분명하다.

열이 받은 라피스가 계속해서 통신을 걸고 있었다.

유성은 소리 내어 웃었다.

궁금한 모양이지만, 그 이상은 설명해주기가 안타깝다.

그러니 나머지는 전투에 돌입한 이후에 알아서 알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라피스의 당황한 얼굴이 기대되었다.

유성은 기가스를 움직였다.

그의 적색 기가스가 한 발 한 발을 내디디며 사출로로 이동했다.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시끄럽게 격납고를 울려댔다.

[신(新) 기가스 제로 브레이커(Zero Breaker). 사출 준비.]

위잉! 위잉!

시끄러운 소음이 울려대며 그를 괴롭혔다.

그 속에서, 그는 조종간을 붙잡은 채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후-.”

제로 브레이커(Zero Breaker).

이제 그것이 유성의 새로운 기가스의 이름이었다.

긴 한숨과 함께.

유성은 조종석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이번에 탑승하는 기가스는, 유성이 구상하고 치프가 직접 완성한 최적의 병기였다.

오로지 유성의 특성에만 온전히 모든 것을 집중한-.

그의 전용기 말이다.

숨을 고르며 마력을 다스리는 유성의 뇌리에.

일전에 치프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제로 브레이커? 제로 브레이커가 생각했던 이름인 거냐?]

[맞습니다.]

[흥미롭군.]

당시의 치프는 꽤나 흥미롭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엔지니어란 언젠가 자신들이 제작한 기가스의 이름이 온 태양계에 널리 퍼지기를 희망하는 자들이다.

그러한 면에서 볼 때, 유성이 고른 이름이란.

정말이지 기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고른 이름은, 한때 온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났을 거라 평가받던 어느 파일럿의 기가스가 가졌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드라칸과의 대전쟁에서, 수두룩한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뛰어났을 거라 평가받던.

접근전에 있어 어느 파일럿보다도 뛰어났으며 가장 혁혁한 전과를 이뤄냈던 파일럿.

그가 사용했던 기가스의 명칭이, 바로 제로 브레이커였으므로.

그렇기에 당시의 치프는 꽤나 흥미롭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유성이 제작한 기가스도, 당시의 것과 같이 오로지 근접전만을 상정해서 만들어 낸 것이었으므로.

비슷한 유형의 기가스에 비슷한 천재 파일럿.

아마도 치프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말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틀렸다.

유성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사실 그 명칭은, 기가스가 아닌 파일럿에게 붙여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철컥.

유성의 기가스가 출격을 위해 사출로에 올라섰다.

번-쩍!

유성의 두 눈의 안광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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