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전용기. 제로 브레이커(Zero Breaker)(1)
그 당시의 유성도 대단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오로지 결정적인 순간에만 최소한의 마력을 끌어올려 대응했었다.
그런데 반해 지금은.
아예 마력을 흩뿌리며 초장부터 전력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지는 선이 된 기가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이미 지금쯤 마력이 간당간당해갈 텐데 아직까지 멀쩡하다. 확실히 용량이 늘은 게 눈에 보여. 얼마나 성장을 한 거지?’
매 전투가 일어날 때마다 상상도 못 할 빠른 수준으로 강해진다니.
무슨 이런 소름 돋는 괴물이 다 있다는 말인가.
흡사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와도 같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치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다. 많고 많은 파일럿 중에서도 저런 녀석은 없었는데 말이지.”
그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새삼스럽게 놀라는 치프가 이해가 간다. 누구보다도 파일럿의 변화에 민감할 것이 바로 엔지니어 치프다.
그렇기에 부함장은 진작에 유성을 이해하길 포기했다.
괴물은 괴물이기에 괴물인 법이었으니.
태생이란 건 그런 거다.
“그런데 치프.”
“엉, 뭐냐. 말해.”
“주무시러 가지 않으실 겁니까? 슬슬 잠을 자지 않으신 지 이틀째가 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말에 치프가 씩 웃었다.
그는 다크서클이 아주 짙은 눈길로 아스트라 부함장을 마주하고는 대답했다.
“지금 쉬러 가는 게 문제인가? 유성 녀석이 훈련을 하고 있는데 말이야.”
“조만간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몸 함부로 굴리시다간.”
“흥! 내가 나이를 먹긴 했어도 고작 하루 안 잤다고 징징대는 젊은 녀석들보단 쌩쌩해!”
커피잔을 바닥까지 드러날 정도로 단숨에 들이마신 그는, 돌연 잔을 탁! 내려놓더니 외쳤다.
“이봐!”
“네, 네?”
“새 커피 가져와!”
* * *
쿠구궁-. 쿠궁-.
훈련에 돌입한 유성의 기가스, EF-05를 들여다보던 치프.
그는 통제실과 연결된 통신을 키고는 소리쳤다.
“통제실! 지금 유성에게 불의의 사격을 한번 해보게! 이왕이면 연습탄 말고 실탄 중에서 비교적 느린 종류의 것으로!”
[네, 네? 위험한데요? 제아무리 탄속이 느리다 하더라도 연습탄이 아닌 실탄이라면 속도가 너무 빨라서…….]
“A4탄이라면 충격량도 거의 없고 느리니까 괜찮으니 해 봐! 그리고 이건 유성이 직접 요청한 거다! 혹여나 맞기라도 하면 내가 책임지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치프의 패기 가득한 장담에.
곧, 잠시간 침묵하던 통신병에게서 답변이 도착했다.
[알겠습니다. 마침, 함장님께서 허가하셨습니다.]
“그럼 빨리 쏴봐!”
그 직후.
유성에게 거의 빔 입자와 비슷한 선과 같은 형태의 탄이 쏘아졌다.
일반 느린 탄속을 가진 연습탄이 아닌, 분명한 실탄이 말이다.
주욱 늘어지듯 빛줄기가 되어 날아가는 탄이 유성이 탄 기가스 EF-05를 노렸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실탄마저도.
푸른 선이 된 기가스 EF-05는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회피했다.
너무도 당연하게. 아주 매끄럽게 말이다.
보통의 파일럿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할, 말도 안 되는 반사 신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유성의 불만 가득한 음성이 격납고를 울렸다.
[……지금 사격. 실탄 아닙니까? 설마 치프가 부탁한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 정도 수준의 탄속을 통제실에서 쏠 리가 없을 텐데요.]
“푸하핫! 이 녀석, 정말 귀신같이 알아채는구먼그래!”
그 말에 치프는 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정말로 재밌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사실 당연하겠지만, 유성이 제안했다는 말은 그의 거짓말이었다.
“…….”
그의 웃음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그를 응시했다.
다 늙은 노인이 무턱대고 저지르고 보는 이 광경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유성이 맞기라도 했다면 어떡하려고 저런다는 말인가.
물론. 저러한 태도만큼이나 능력은 확실히 보장하는 인물이었지만 말이다.
* * *
“하아.”
……두 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훈련의 시간.
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온 유성이 털썩 격납고의 좌석에 걸터앉았다.
거친 숨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그의 고초를 말해 주는 듯했다.
실전보다 더욱 실전같이 행해진 훈련 끝에 그의 정신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강하전을 대비한 훈련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는 더더욱 벼려지고 있었다.
유성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듯 기대어 앉았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흠.”
유성의 지친 모습을 잠시간 응시하던 치프가 말을 건넸다.
“좀 돌아가서 쉬다 오지그래?”
“괜찮습니다.”
유성은 손을 치켜들었다.
가볍게 거절한 그는 삐걱거리듯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곤 치프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럼 이제 땀도 뺐으니. 슬슬 기가스를 본격적으로 손볼 차례로군요.”
“……정말 괜찮으냐, 유성?”
“문제없습니다. 전 마나 사용자이니까요. 오히려 저보다는 치프부터 걱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됩니다만.”
“흠. 목소리가 꽤나 쌩쌩하군. 네가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이내 치프는 탐탁지 않은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유성은 벌써 만 이틀 동안이나 깨어 있었다.
심지어 그동안, 그는 연달아 팽팽한 스케줄을 이어나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쓰러지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유성은 정말로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성에게는 유성 나름대로의 이유가 존재했다.
그는 세게 주먹을 쥐었다. 그는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부모님들이 걱정이다. 지금의 행성 테라는 완전히 뒤집어졌어. 이럴 때가 아니야.’
이제 함선 메티스는 수시로 지구와의 통신이 가능한 상황에 접어들었다.
물론 여전히 일반인들의 통신기기로는 중간 중간, 혹은 수 시간 동안 통신이 먹통이 되는 등 한계가 분명하였으나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 쪽에서의 통신 시스템은 완전히 회복되어 끊길 일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그들은 실시간으로 행성 테라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라 행성에 모습을 드러낸 드라칸 놈들의 수가 장난이 아니야.’
현재 테라 행성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행성 전체에 드라칸이 퍼졌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의 수와 규모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으며, 증가세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그 수가 고작 폭탄 몇 개를 떨어트린다고 해서 지워 버릴 수준은 진작에 넘어섰다.
이미 도시 중의 일부는 놈들에게 먹혀 완전히 기능을 정지하거나 무너졌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규모는 범상치 않은 수준일 터였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모님들이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는 솔직히 모를 일이지.’
상황은 좋지 않음을 넘어서서 급박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유성의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당연했다.
‘라피스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마음은 그와 마찬가지겠지.’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뛰어난 마나 사용자였다.
그러한 탓에, 모두들 이미 드라칸과의 전투에 차출되었다고 했다.
이미 행성 테라는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의 불길이 드문드문 번져 나가고 있다.
점차 일반인들 사이로도 전투 영상이 퍼져 나가고 있는 마당이었다.
가령 어느 도시가 무너졌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믿기 어려울 종류의 소식들.
갈수록 전화의 불꽃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어린 개체들만 있는 모양인지 방어가 수월한 모양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놈들도 점차 성장하겠지.’
상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드라칸은 별 볼 일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칸은 드라칸이었다.
상위체가 아니라고 해서 놈들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된다.
드라칸이 나이를 먹고 성장을 하게 되면 그 격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쉽게 말하면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찍어내듯 만드는 전투체 놈들이라도 일단 성장을 하면 할수록 보다 커지고 강력해진다.
비록 진화를 하는 개체는 오로지 상위체 이상뿐이라고는 한다지만, 설령 전투체라고 하더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위협적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덩치가 커지고, 그에 비례해 갑각질마저도 두꺼워지니 말이다.
놈들의 존재 자체가 인류에게는 위협이다.
여왕체가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낳게 되는 드라칸의 알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드라칸 개체 하나하나 또한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의 강함을 손에 넣는다.
그렇기에 그 괴물 놈들과 인간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다 자라기 전에 그 싹을 지워 없애야 하는 재앙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이어가는 유성의 귓가에.
리브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빠?]
‘……왜?’
[그냥. 아빠가 갑자기 조금 사나운? 그런 느낌이 들어서.]
‘…….’
유성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침묵했다.
역시 마나 생명체라는 드라칸답게, 인간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 또한 예리했다.
확실히 드라칸의 여왕체였다.
‘리브를 어떡해야 하지?’
유성은 리브와 대화하며 그 처우를 고민했다.
어린 소녀의 모습을 했다고 한들 그 정체는 결국 드라칸의 여왕체였다.
미래란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었다.
이 소녀의 모습을 한 리브조차, 이대로 가만히 놔두었다간 어쩌면 인류의 재앙으로 성장할지도 몰랐다.
지금은 이렇게 유성 그와 라피스를 따르고 있다고는 할지라도.
언제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브가 나와 라피스는 물론이고 모두를 구해 준 것도 사실이지.’
쿠웅-!
고민하는 사이, 격납고의 거대한 레일을 타고 스크래퍼가 내려섰다.
유성의 고민은 순간 그와 함께 끊겼다.
고개를 치켜드는 그를 향해, 치프가 말했다.
“요구한 소재의 대부분은 이미 마련해 뒀다.”
“상위체의 핵은 EF-06에 장착할 겁니다. 그리고 전투체의 핵은 스크래퍼에 달 거고요.”
복잡한 그의 생각들과는 무색하게, 그는 빠르게 답변했다.
행성 테라에 출몰하기 시작한 드라칸의 존재와 여왕체 리브.
생각은 복잡했지만, 유성은 당장 직면한 상황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리브에 관한 고민은 그 이후에 하더라도 늦지 않았다.
* * *
“후우.”
라피스는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긴 호흡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럼에도 팔다리가 떨려온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긴장감을 억누르고는, 문에 달린 통신기기에다 대고 말을 했다.
“라피스 생도입니다. 부르셔서 왔습니다.”
“아, 네. 들어와도 좋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라피스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기잉, 열리는 자동문의 안으로 그녀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라피스가 향한 곳은 통제실이 아닌, 어느 개인실이었다.
바로 이 함선의 함장.
라프티리아 함장 그녀의 개인 숙소였다.
라피티리아 함장의 숙소는 단출했다.
안에는 필수적인 제복과 몇몇 개인 옷가지, 그 외의 몇몇 물품들 정도가 전부였다.
라피스가 아는 한 가장 삭막하기도 한 인물인 유성만큼이나 짐이 없었다.
함장은 이 거대한 배, 함선과 다년간을 함께하는 직책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짐이 쌓여 있을 만한데도 마치 언제 비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방 안의 모습들을 지나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 함선의 함장이 보였다.
라프티리아 함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