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파일럿. 그리고 동화율(5)
어깨가 무겁다.
마나 사용자라고 해서 모두가 기가스에 탑승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람들 중에서도 재능의 격차에 따라 천재와 수재, 그리고 범재가 나뉘듯이.
마나 사용자의 수준차 또한 마찬가지로 존재했다.
기가스라는 건 그러한 마나 사용자 중에서도 오로지 뛰어난 적성, 재능을 타고난 이들만 조종하는 것이 가능한 기체였다.
단순히 마력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기가스의 조종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조종 실력만이 뛰어나다고 해서 조종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마력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고, 거기에 조종 실력마저 뛰어나야 한다.
낮은 수준의 마나 사용자들은 기껏해야 기가스의 팔다리를 움직이는 간단한 행동조차도 고역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기가스를 가지고서 보다 세밀한 동작이 가능한 파일럿이라고 한다면.
그 수는, 더더욱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 면에서 라피스는 분명 보장된 재능의 소유자였다.
고작 오늘 하루 간의 훈련만으로도.
그녀는 그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직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만 지속하는 정도가 다였지만 말이다.
라피스. 그녀는 유명한 마나 사용자 가문에서 태어난 후계자였다.
괜히 함선의 군인들이 아닌 생도 둘이 기가스에 탑승하는 게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의 시작점부터가 이미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의미다.
태생적인 재능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성질을 지녔다.
유성이 그렇게나 강력한 증명을 스스로 내보였듯이 말이다.
분명, 그녀는 일반적인 마나 사용자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압도적인 재능을 가졌다.
단지 유성이 비상식적일 뿐이다.
꽈악.
답답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라피스가 옷을 걸쳤다.
탈의실을 나선 그녀는 한창 작업하느라 정신없는 치프와 마주쳤다.
“갈 거냐, 라피스?”
“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러지 말고 쉬어라.”
“고마워요, 치프.”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정작 라피스는 쉴 생각이 없었다.
바깥에 나가 공원을 돌아다니며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다가, 지친 육체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다시금 훈련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마음이 너무도 답답한 탓이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아무래도 얼굴 위로 드러난 듯했다.
치프가 쳐다보고 있던 태블릿에서부터 고개를 들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라피스.”
“……뭘 말인가요?”
“동화율 말이다.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유성의 경우가 그저 비정상적일 뿐이지.”
“알았어요. 치프.”
쓰게 웃은 라피스는 그 말을 끝으로 멀어졌다.
그녀가 멀어지는 모습에 치프는 머리를 긁적였다.
“흠. 확실히 천재가 우뚝 서 있으면 그 옆에 선 인물이 고된 법이지. 같은 천재라도 말이야.”
언제나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이는 그러한 광경을, 치프는 자주 보아왔다.
이 경우에는 그나마 너무도 서로 간의 간극이 큰 탓에 질투심 따위의 감정은 없겠지만.
반대로 허탈감이 들 터다.
표정이 너무 선하게 드러난 탓에 치프는 라피스가 느끼는 감정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치프는 다시금 태블릿으로 시선을 내렸다.
할 일이 가득한 이때, 그 또한 남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시간이 한창 촉박하다.
치프는 매일같이 짜내어지는 듯한 일과를 꾸역꾸역 넘기고 있었다.
그는 이곳 함선 메티스에서 유성과 라피스와 더불어 가장 희소한 고급 인력에 속했다.
그런 치프이기에 그는 할 일이 넘칠 듯 많았다.
행성 테라에서의 ‘강하전’을 대비해야 했다.
앞으로 그들이 직면하게 될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으므로.
* * *
“훈련에 돌입할 건가, 유성 생도?”
“물론입니다. 당장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라피스가 한창 제 자신의 능력을 다루는 데에 집중할 무렵.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쁜 것은 유성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는 라피스 이상으로 바쁘다고 할 수 있었다.
먼저 동화율 측정을 끝마친 유성은 파일럿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꽉 조여 맨 팔목 부근이 단단하게 조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아스트라 부함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 갑갑함은 파일럿 복장에 있어서 필수다.
격렬한 전투의 상황에서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튀어나올 상황에서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게 해줄 갑갑함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파일럿 복장을 착용하면서 생각했다.
‘정신이 없다. 내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나와 라피스의 기가스 무장마저 적절히 고민해야 하니까.’
유성은 가진 바 재능의 폭이 넓다.
그는 노련한 기갑 파일럿인 동시에, 기가스 엔지니어 지망생이기도 했다.
재능은 무와 문에 고스란히 걸쳐져 있고 그렇기에 그는 자기 자신에게 상황에 따라 필요한 것들을 안다.
무기를, 무장을, 그리고 기가스를 안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은, 그만큼 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는 것과 동일했다.
그가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대체할 자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결과, 쉴 틈이 없을 만큼이나 바빠졌다.
그는 자기 자신의 단련과 라피스 거기에 기가스마저 신경 써야 했다.
‘내심 아스트라 부함장이 내주었던 3일간의 휴식이 감사해지는군.’
그게 아니었다면 전투의 여파로 인해 다시금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나 바빠질 줄은 몰랐다.
시간을 쪼개고 앞을 내다보고 상황을 읽어 내야 했다.
흡사 과거의 군인 시절로라도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그에게 아스트라 부함장이 음료를 건넸다.
“피곤할 텐데 이거라도 마시게.”
“그럼 감사히 받죠.”
유성은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그는 옆에 선 아스트라 부함장을 힐끗 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부함장님이 웬일로 격납고에 오래 계시는군요.”
“그야. 다 자네가 요청한 일 때문이 아니겠나? 기왕이면 라프티리아 함장님께서 경험 삼아 직접 보고 배우라고 하시더군.”
그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설마 파일럿이라도 하시려는 셈입니까?”
“못할 게 뭐 있나? 이래 보여도 나는 이 함내에서 자네와 라피스 생도를 제외하면 1순위 파일럿 후보자였네. 나름대로 영 시원찮은 수준의 마나 사용자는 아니라는 말이지.”
“그렇습니까?”
꽤나 흥미로운 소리였다.
정말로 아스트라 부함장이 기가스에 타기라도 한다면 꽤나 재밌을 듯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아군이 늘어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다.
드라칸은 강하고, 그렇기 때문에 파일럿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그만큼 충분한 전력이 되어줄 터였다.
게다가 이제는 함 내에 기가스가 모두 세 기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EF-05과 EF-06, 거기에 스크래퍼까지.
그로서는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유성은 그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저야 환영입니다. 파일럿이 늘어난다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 테니까요.”
“흠.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가 그렇게 얘기하는 건 솔직히 기분이 좋군.”
“너무 높게 봐주시는군요.”
“사실만을 말하는 걸세.”
푸슉-.
그때 격납고의 자동문이 열리더니 다수의 엔지니어들 몇몇이 들어왔다.
그중에는 치프 또한 함께 있었다.
치프가 유성과 함께 있는 아스트라 부함장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에게 물었다.
“엉? 거기서 뭐 하는 거냐, 유성. 뜬금없이 파일럿 복장을 다 입고 말이야. 게다가 부함장도 함께 있다니.”
그 말에,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훈련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요.”
“엉? 훈련이라고? 너 혼자서 말이냐?”
“네.”
다시 한번 파일럿 복장을 꽉 조인 유성이 치프에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치프, 사출 부탁드리겠습니다. 치프의 권한 정도라면 분명 가능하겠죠.”
“하필이면 날 부려먹으려는 거냐, 유성.”
“부탁드리겠습니다.”
“끄응. 하여튼 부려먹기는. 로봇 같은 녀석이.”
불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치프는 낮게 웃었다.
불만은 불만이고, 흥미로운 것은 흥미로운 거다.
“이봐, 사출로 오픈 준비해! 부함장, 따로 허가받지는 않아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치프는 순순히 수락하고는 부하들에게 명령함과 동시에 사출로를 직접 조작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치프는 이곳의 치프(Chief) 엔지니어다.
가장 많은 권한을 지닌 그는 심지어 사출로조차 직접 조작할 권한마저 가졌다.
툴툴대면서도 순순히 응답하는 그의 모습에 유성이 피식 웃었다.
“감사합니다, 치프.”
“됐다.”
그의 감사 인사에도 치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파일럿과 엔지니어는 역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 * *
쾅-!!
유성이 탑승한 EF-05가 경이적인 속도로 사출로에서부터 쏘아지며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드라칸의 핵이 흩뿌리는 푸른 마력을 푸른빛의 선처럼 줄기줄기 흩뿌리며 쏘아지는 그는.
곧 함선 메티스의 통제실을 향해 통신을 보냈다.
“준비 모두 끝났습니다.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할 테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유성 생도.]
유성은 가상현실 공간에서의 훈련을 할 수가 없다.
라피스에게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정작 그는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능력과 상관 관계가 있었다.
자각과 자의식이 뛰어난 그는 가상공간에 접속해도 정신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문제를 미리 통제실의 인원들에게 공지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훈련은 통제실의 인원들이 직접 도와주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 *
유성이 탑승한 기가스, EF-05가 경이적인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난무했다.
푸른빛의 선이 되어 움직이는 그는, 무수한 수의 탄막이 쏟아지는 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쏘아졌다.
심지어, 정면을 노리고 날아드는 탄환조차 그는 거침없이 돌진해 탄환째로 베어 버렸다.
거칠 것 없는 난폭한 기세가 우주에 짙푸른 선의 흔적을 남겼다.
유성의 동작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파일럿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절정이었다.
후룩-.
프림이 산을 쌓을 듯 흘러넘치는 슈가 커피를 마시던 치프가 유성의 상태가 비치는 모니터 화면을 확인하더니 곧 흥미롭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오호. 이 녀석 좀 보게.”
치프의 흥미 가득한 기색에 아스트라 부함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치프에게 물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치프?”
“이 녀석, 갈수록 강해지고 있군그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길 보게.”
치프는 모니터 화면을 툭툭 두들기며 가리켰다.
복잡한 그래프 수치들 중, 반사 신경이라 표시된 메뉴였다.
함선 메티스가 훈련에 돌입한 유성의 EF-05를 향해 연습탄을 쏘고 있었다.
그 빠른 공격을 회피하면 회피할수록, 탄환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성의 반사 신경 수치가 점차 상승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실에 치프의 눈이 흥미로 빛났다.
확실히 유성의 능력은 여느 파일럿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치프는 연합에서 인정받는 기가스 엔지니어.
그런 그가 보기에, 유성의 강함은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급상승하고 있었다.
그 흐름이 쉽사리 느껴졌다. 틀림없다.
분명 콜로니를 빠져나올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확연하게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