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파일럿. 그리고 동화율(4)
치프 엔지니어.
그는 분명히 확신했다.
유성의 가치는 압도적이다.
그는 한낱 전함이나 기가스와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마나 사용자였다.
말 그대로 강대한. 그런 존재였다.
당장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서조차 그 능력을 능히 증명하지 않았던가.
군함조차 시간 끌기용으로밖에 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는 완전체를 정면에서 상대하고, 또한 쓰러뜨렸다.
“그렇게까지 동화율이 높을 거라니. 비약이 심하군요, 치프는.”
이미 치프는 스스로의 눈으로 유성의 재목을 확인한 상황이다.
하지만 굳이 그러한 내용까지는 구태여 설명하진 않은 채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태연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저 감이야. 난 엔지니어잖나.”
“별로 근거는 없는 듯한 답변이로군요.”
“원래 세상일이란 게 대부분 그러한 법이지. 확실하지 않은 것같아 보여도, 사실은 저마다의 근거가 존재하기에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내가 이렇게 주장하고, 또 자네가 반박하듯이 말이야.”
정작 아스트라 부함장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치프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설마 유성이 80퍼센트대의 동화율마저 가능한 녀석이었을 줄이야. 심지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동화율 수치가 일정했다. 마치 조용한 수면처럼, 완전히 일정해. 설마, 기가스를 제 몸처럼 느끼는 말도 안 되는 놈이라는 건가?’
치프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목이 타는 듯했다.
사실 치프는 연합에서도 뛰어난 기가스 엔지니어로서, 재능 있는 많은 기가스 파일럿들을 만나 왔다.
그가 마주했던 연합의 가장 뛰어난 이들조차, 유성만큼이나 대단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심지어.
베일에 가려진 존재인 각성자라고 한들 마찬가지다.
치프는 연합에서도 우대받는 엔지니어로, 그들 중의 일부조차 직접 측정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유성 정도는 아니다. 그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분명히.
‘유성은 각성자들보다도 대단하다는 그들보다도 수치가 높게 나왔으면서 정작 전력을 다한 것조차 아닌 듯해 보였어.’
유성의 동화율은 미동도 없이 일정했다.
그렇다면 그 말은 여력은 더 있었다는 말이다.
오랜 세월을 엔지니어로 활동한 치프조차 이 정도로까지 일정한 수치를 유지하는 파일럿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등줄기에 짜릿한 솜털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수재. 천재. 이건 그 이상이다. 태양계 내의 전 인류를 샅샅이 뒤져도 어쩌면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가장 뛰어날 자가 그의 눈앞에 있다.
유성은 그런 가치를 지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까지 아스트라 부함장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해 보이니.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하긴 이해한다.
아스트라 부함장 그는 함장의 보좌관이지, 엔지니어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장교는 장교인 셈이다.
“다만.”
“음?”
운을 떼는 치프의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 주도록 하지, 아스트라 부함장.”
그렇게 말하며 돌아보는 치프의 모습은 이전보다 진지해져 있었다.
그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조금은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뭡니까, 치프.”
치프는 다시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유리창 너머, 눈을 감고 있는 유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라칸이 행성 테라의 대기권을 뒤덮은 이 상황에서, 군부의 높으신 양반들이 저 소년을 보기라도 했다간 서로 차지하려고 무슨 짓이든 불사할 거다. 일전에 완전체를 상대할 때 녀석이 사용한 그 말도 안 되는 각성기를 기억하겠지?”
“…….”
아스트라 부함장은 입을 다물었다.
둘은 여전히 뚜렷하게 당시의 일을 기억한다.
여전히 생생했다.
어느 누구라도 그런 광경을 마주한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나였던 유성의 기가스가 돌연 드라칸처럼 기괴한 변화를 시작하더니, 심지어는 셋으로 늘어나기까지 하던 그때의 광경을.
그것은 명백한 비상식의 영역이었다.
세상 모든 각성자들의 각성기가 다르고 그것들이 하나같이 초월적이라지만.
유성의 능력 또한 현실을 넘어선 영역에 속해 있었다.
각성기는 그렇기에 각성기(覺城技)였다.
고유의 영역에 속한 저마다의 능력들은, 그렇기에 강대하고 초월적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졌는데 써먹으려 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유성을 써먹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거다.”
눈앞의 아스트라 부함장을 포함해 일반인들의 대부분은 모르지만 치프는 알고 있었다.
각성자는 유성만이 유일하지 않고, 세계 곳곳에 널리 존재한다.
그중에는 오로지 맨몸으로도 함선을 꿰뚫는 초인도, 공간을 찢어발기는 자도 있었다.
이제까지는 그마저도 드러나지 않았으나 전쟁이 머지않은 지금.
그 존재가 드러날 때가 머지않았다.
그리고 유성은.
치프가 보기에 너무도 강력했다. 그 이상으로 말이다.
능력을 깨우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의 유성이 이 정도라면.
보다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건 단순한 초인 따위가 아니다.
기존의 체제와 상식을 무너트릴 괴물이다.
침묵하는 부함장을 향해, 치프가 덧붙였다.
“그러니 녀석의 정체는 무조건적으로 숨겨야 해. 만천하에 그 능력이 드러났다간……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 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아스트라 부함장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부함장 그 자신도 아는 사실이지만.
군부의 꼭대기는 썩어 문드러졌다.
그들은 강한 힘을 자신들의 사병화로 삼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군부가 만약 유성의 존재를 간파한다면.
그의 부모나 친인척을 인질로 삼아서라도 편할 대로 써먹으려 할 거다.
유성이 분노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인 빌객스 이상 가는 괴물이 태어날지도 몰랐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쥔 치프의 손바닥에는.
긴장으로 인한 땀이 맺혔다.
“아, 치프!”
그때였다.
그 사이 라피스가 도착했다.
그녀의 등장에 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향했다.
“라피스 생도?”
“오, 라피스. 왔구나.”
“아스트라 부함장님께서도 있으시네요? 두 분이서 뭐 하세요?”
거친 숨을 들이쉬고 있는 라피스는 한창 운동이라도 하고 온 듯했다.
긴 머리칼을 묶은 채 나타난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장에, 치프가 반갑다는 듯 손을 들었다.
“하하. 때마침 잘 왔구나, 라피스.”
“네?”
마치 타이밍을 잘 맞추어 와주기라도 했다는 듯한 치프의 반응에.
라피스는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그녀로서는 조금 의아한 반응이었다.
그녀는 그저 유성을 만나러 왔을 뿐인데 이건 꼭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지 않은가.
치프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봐, 라피스. 기가스를 탔을 때의 동화율이 얼마인지 궁금하지 않나?”
“동화율이요?”
치프의 제안에, 라피스는 더더욱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성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사실 라피스도 동화율 측정 작업을 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실은 이미 ‘공식적’으로는 함선 메티스에 징집된 기갑 파일럿이었기 때문이다.
* * *
[라피스 생도. 집중하십시오. 동화율이 불규칙적입니다.]
“으읏.”
라피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기가스와의 동화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기가스와의 동조. 그리고 상자를 붙잡는 데에만 집중하세요.]
스크래퍼의 손 끄트머리가 작은 나무 상자를 붙잡았다.
부르르르, 하고 떨리는 스크래퍼의 손끝.
라피스는 기가스의 조종이 쉽지 않은 듯, 식은땀을 흘렸다.
기가스는 거대하다.
물체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강력한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여 움직이는 탓에, 그 컨트롤의 어려움에 대한 난이도는.
더더욱 극악한 수준이다.
순간 동화율이 떨어진 라피스의 마력이 살짝 뒤흔들림과 함께, 스크래퍼의 손가락 마디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 결과. 나무 상자가 형편없이 부서졌다.
“아.”
라피스의 미간 또한 마찬가지로 형편없이 구겨졌다.
그녀의 감정이 크게 일렁이자 푸른빛을 뿜어내던 스크래퍼의 안광이 꺼질 듯 어두워졌다.
동화율이 순식간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처참한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 * *
“하아.”
스크래퍼와의 길었던 동화 훈련이 끝났다.
라피스는 한숨을 내쉬며 옷을 벗었다.
덜컹.
오로지 혼자만이 사용하는 여성 파일럿 탈의실에서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은 기분 나쁜 불쾌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불쾌한 것은. 훈련으로 인한 피로감이었다.
당장이라도 이대로 쓰러져 자고 싶었다.
꽈악.
라피스는 제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오랜 시간 동안 훈련을 지속했음에도, 여전히 스크래퍼는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철갑옷을 몸에 뒤집어쓰고 움직이는 듯한 거북한 감각이 지속되고 있었다.
스크래퍼는 산업용인 탓에 운동성은 낮지만, 분명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
그게 아니라면 애당초 전투용으로 개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그녀 본연의 문제였다.
라피스는 방금 전 측정했던 동화율의 수치를 떠올렸다.
모니터 화면에 선명하게 표시된 수치는, 생각 이상으로 낮았다.
[측정 동화율 : 31.2퍼센트. 오차율 ±5퍼센트 이하.]
라피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초조한 그녀의 마음이 화면에 대비되는 듯했다.
그녀의 동화율은 농담으로도 높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지극히 ‘평범’했다.
심지어 오차율마저 지극히 편차가 크다.
무려 5퍼센트씩이나 된다는 것은, 실제 전투 상황에 돌입하면 30퍼센트 대인 지금보다 훨씬 더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닌가.
사실상 동화율의 측정을 하는 행위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유성의 경우에는 고작 편차가 2퍼센트에 불과했다. 비교해 보자니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나잇대의 생도라면 가질 수 없을 대단한 수치이지만, 그 비교가 유성이라고 한다면.
너무나도 뒤떨어진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동화율 측정을 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이런 기분은 아니었을 텐데. 완전히 나락에 처박히는 느낌이야. 유성은 이런 기가스를 어떻게 그렇게나 세밀하게 조종하던 거지?”
라피스와는 다르게 유성은 기가스를 다루는 데에 자유롭기 그지없었다.
완전히 자신의 몸을 다루듯 조금의 제한도 없는 듯했다.
그녀와는 확실히 결정적인 간극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간극은.
마치 어린아이와 어른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현재 함선에 탑승한 마나 사용자들의 수는 제법 존재했다.
무려 군인들 중에서만 백여 명에 달할 정도로, 현재 함선에 탑승한 일반인들 중에서도 포함한다면 그보다도 많을 것이었다.
확인된 이들의 수만 이백 명이 넘었으니, 실제로는 그 이상이겠지.
하지만 이 중에서.
기가스을 조종할 만한 마나 사용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 둘뿐이었다.
바로 유성과 라피스였다.
“그러니 내가 좀 더 분발해야 돼.”
라피스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음성에는 책임감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