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63화 (63/200)

63화. 파일럿. 그리고 동화율(3)

“하아, 하아.”

부 막리스 의원은 공포에 질린 표정 그대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를 서늘한 눈으로 응시하며, 유성이 말했다.

“그럼 잘 가라.”

“안……!!”

소리치는 그의 목덜미를 붙잡은 유성이.

서늘한 빛을 발하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넘겨줄 테니, 내 자비에 감사해라.”

쾅!

“끄악!”

유성은 부 막리스 의원의 팔목을 푹 짓밟았다.

단숨에 그대로 찌부러지듯 짓뭉개진 팔목이 사방으로 피를 터뜨렸다.

마치 압력을 못 이겨 푹, 터진 모양새처럼.

고통에 차 비명을 내지르는 그를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유성은.

곧 몸을 돌렸다.

* * *

다음 날.

유성은 격납고에 다시금 왔다.

최근 들어 온종일 살다시피 하는 장소다.

그의 모습은 상당히 기묘했다.

격납고 한 가운데에 마련된 의료용 침대 위에서.

환자복을 입은 유성은 온몸에 측정용의 바늘을 덕지덕지 꽂은 채로 누워 있었다.

현재 그는 기가스와의 동화율 측정을 하고 있었다.

“동화율 측정이라니, 치프. 그 말 진심이십니까?”

“그래.”

치프 엔지니어, 치프.

그는 한창 바빠 보였다.

분주하게 근방을 돌아다니며 복잡한 전선들을 잇고 모니터 화면을 체크하길 반복했다.

“후우. 드디어 준비 끝이로군.”

곧 작업을 마친 듯, 치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 쪽에서도 나름대로 증명할 자료가 필요하거든.”

“무슨 의미이십니까?

“아무리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서 행성 테라에 너에 대한 정보를 조작해서 보냈다고 한들, 일단 네 존재가 드러난 이상 우리는 그에 맞춘 네 기록 파일을 따로 남겨둬야 해.”

“단순 제출용이라는 말씀이로군요.”

유성은 단번에 이해했다.

연합은 일반인이 기가스에 탑승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이 시대에서 그러한 행동은 중대한 반역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함선 메티스의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신원 미상의 파일럿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군법 위반 행위였다.

이미 다수의 일반인들마저 목격한 상황에 파일럿의 존재 자체를 숨기기란 글렀다.

그러니 치프는 미리 조작된 기록을 만들어 두고 넘기자는 의미였다.

함선 메티스는 전 태양계를 아우르는 통합 연합 지부 소속이다.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래. 저 콜로니의 군인들이 정체불명의 파일럿에 대해 궁금해할 것은 뻔하니까. 오히려 아무런 자료조차 없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하겠지.”

“그럼 도와준 파일럿의 정체는 누구로 하려는 겁니까?”

“대충 정해 둔 사람은 있어. 내가 알던 퇴역 군인 중 하나인데, 꽤 파일럿에도 재능이 있던 인물이었지. 그 양반도 콜로니가 폭발하면서 함께 세상을 뜬 모양이지만. 의심이야 하겠지만, 당장 행성 테라 쪽도 드라칸 놈들로 정신이 없을 테니 크게 신경을 쓰지는 못하겠지.”

치프의 말이 가리키는 바는 간단했다.

이미 죽고 없는 퇴역 군인을 대타로 써먹겠다는 의미다.

그러한 그의 말로써 유성은 한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함선 메티스에서는 약속을 지킬 모양이로군. 내 정체를 숨기려는 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대놓고 탐욕을 드러내던 베자리우스의 사령관 솔라스 란의 경우를 미루어 볼 때, 함선 메티스가 얼마나 유성에게 신경을 쓰는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말이 끝났던지 치프는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자아! 그럼 한 번 마나를 끌어 올려 봐라.”

“바로 시작하면 됩니까?”

“그래.”

유성은 치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안광이 시퍼렇게 빛나기 시작한다.

측정을 시작한 유성을 향해, 치프가 검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또 하나.”

“음?”

“두 번째 측정에선 진지하게 임해라. 조금이라도 좋으니 말이야.”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만.”

“나는 바보가 아니다, 유성. 네가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

치프는 말이 없는 유성을 향해 덧붙였다.

“이건 단순히 내 스스로의 흥미일 뿐이다. 물론 함장과 부함장의 언질이 있었다는 것도 틀리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야. 나는 네 부탁을 들어주었지.”

“…….”

“그러니 너도 들어줄 수는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다 보고 나면 자료는 흔적도 없이 지울 테니, 굳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그 정도라면야.”

유성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다. 세상 모든 일을 이루는 법칙이다.

치프는 그를 위해 가능한 전폭적인 지원을 모두 해 주었다.

그게 함선 메티스를 위해서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심지어 치프는 리브의 알을 가져온 당시, 유성이 돌발적인 행위를 할 때조차 묵묵히 용납해 주었다.

따라서, 그는 치프의 흥미를 한 번쯤 채워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조건을 덧붙였다.

“하지만 진지하게 임할 뿐이지, ‘전력’을 다할 건 아닙니다.”

그 말에 오히려 치프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유성 네가 애초에 전력을 다할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거든.”

유성 또한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마음이 맞는 엔지니어였다.

* * *

치프는 개인실로 들어갔다.

측정 결과를 보다 분명하게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기가스란 건 그저 단순한 탑승용 기체 따위가 아니었다.

조종 능력이 뛰어나다고, 센스가 뛰어나다고 해서 아무나 조종할 탈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파일럿의 마력을 통해, 기가스 내부의 핵에 동화하는 작업을 상시적으로 계속 이어가야만 하는 세밀한 마력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기가스와의 일체화를 수치로써 표현한 단어를 ‘동화율’이라고 불렀다.

동화율은 실시간으로 상승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전투가 이루어지면 기가스와 파일럿 간의 동화율은 급격하게 떨어지는 게 정상이었다.

주변의 급박한 상황과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에서의 불안감. 혹은 격정과 같은 감정들.

사람을 흔들리게 하는 요소들로 인해 동화율은 얼마든지 하락한다.

동화율이 떨어지면 기가스의 반응 속도 또한 그만큼 느려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유성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투 이전과 그렇지 않은 때를 비교해도, 그의 동화율 수치는 언제나 일정했다.

무심한 그의 표정만큼이나 동화율 수치의 조정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허허. 이것 참.”

유성의 기가스 동화율 수치를 지켜보고 있던 치프는.

모니터 화면 속으로 보이는 유성의 동화율을 보더니 허허롭게 웃었다.

치프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중얼거렸다.

“수치가 정말로 이거라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구먼.”

어느 새인가 치프의 옆에 나타난 부함장이 물었다.

“어떻습니까, 치프.”

“뭘 어때? 말할 필요도 없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치프는 슬그머니 모니터 화면을 조작했다.

[동화율 84퍼센트]라는 메시지가 꺼지고, 측정이 처음부터 다시금 진행되기 시작했다.

무려 함선의 서열 두 번째인 부함장이 바로 옆에 서 있음에도, 대수롭지 않은 척 조작을 가한 치프가 곧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너머.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눈을 감은 유성이 있었다.

유성은 현재 온몸에 측정용 바늘을 덕지덕지 꽂은 상태 그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치프는 굵직한 엄지손가락으로 유성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문을 열었다.

“저 녀석, 물건 중의 물건이다.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기계나 다름없어.”

“예?”

그 말에 부함장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영문 모를 소리였다.

사람보고 기계라니,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부함장 자네.”

치프는 귀를 후비며 말문을 열었다.

“보통 오랜 경력을 가진 기갑 파일럿들의 동화율 수치가 몇 퍼센트를 기록했는지 알고는 있나?”

“흠. 수치라.”

그 말에 잠시간 생각에 잠겨 있던 부함장이 대답했다.

“……일전에 듣기로는 아마도 40퍼센트 정도라고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40퍼센트. 자네 말대로지. 정확하게 얘기하면 기껏해야 38.7퍼센트였지만, 워낙에 높여 부르길 좋아하는 군부의 양반들이 거짓으로 높여 불렀던 탓에 40퍼센트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치프. 대체 그게 무슨 의미라도?”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정작 아스트라 부함장의 시선은 모니터 화면으로 향해 있었다.

현재 유성이 보이는 동화율 수치는 45.3퍼센트 정도로, 아주 일정했다.

치프는 모니터 화면을 툭툭 두들기고는 말했다.

“유성이라는 저 아이, 전력을 완전히 숨기고 있다. 녀석은 결코 40퍼센트 대의 정도가 아니야. 그렇다고 고작 50?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60이나 70퍼센트 이상, 어쩌면 그 이상도 무리 없을 수도 있겠지.”

“너무 비약적인 표현이 아닙니까? 근거조차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근거라면 충분해. 저 유성이라는 소년이 이제껏 보여 온 모든 전투가 그에 대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실제로도 저렇게나 기가스를 제 몸처럼 자유롭게 조종하는 파일럿은 난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녀석의 동화율이 저것밖에 안 된다고?”

“…….”

치프의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 또한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도 그의 말은 사실이었으므로.

치프 그 또한 유성만큼이나 자유자재로 기가스를 조종하는 기가스 파일럿은 결코 보지 못했다.

유성은 감각에 노력과 냉정마저 겸비한 타고난 천재다.

치프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분명 존재했다.

아마도 나름대로 머리가 돌아가는 군부의 관료들이 그러한 수치를 확인한다면, 알아차릴 수도 있을 터다.

물론 치프 정도 되는 경험자는 되어야 유성의 대단함을 알겠지만, 세상일이란 건 또 모를 일이다.

그가 알아차렸다는 말은 다른 이들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말과도 대동소이하였기에.

그리고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라고 한다면 대번에 눈이 돌아가고도 남을 거다.

아마 측정의 대상이었던 유성을 욕심내겠지. 사령관 솔라스 란의 경우처럼.

그렇기에 대문에 치프는 파일로 기록된 동화율의 수치를 의도적으로 조작했다.

한참을 더 낮춘, 40퍼센트 후반대로.

현대전이란 건 단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에너지 폭발 방식의 공격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구태여 귀찮고 어렵게 백병전 따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며 물자도 많이 필요한 백병전을 할 바에는.

그저 깔끔하게 원자폭탄 한 방을 떨어뜨려 해당 구역을 완전한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했다.

만약.

그 폭탄으로도 도저히 제거가 되지 않는 적이 나타났다면.

그리고 그것이 마나를 다루는 강력한 마나 생명체, 드라칸이라는 적들이라면.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결국, 인적 물적 자원들을 쏟아부어 가며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놈들과 비슷한 수준의 초인들을 데리고서.

그 결과.

오로지 단 하나의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갑 파일럿이 이 시대 전쟁의 향방을 주도할 수도 있었다.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전쟁의 향방을 뒤바꾸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실제로 치프와 아스트라 부함장, 그들의 앞에 있다고 한다면.

과연 대체 어떠한 일이 벌어질까.

생각나는 결과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했다.

‘아마도 온 인류의 시선이 단 하나의 기갑 파일럿에게로 집중되겠지. 그리고 연합에서도 손을 뻗으려 할 거다. 회유와 협박, 그 외의 어떤 일이라도 벌이고도 남아. 유성의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가족을 인질로 붙잡는 일도 서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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