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파일럿. 그리고 동화율(2)
고오오-.
심연만큼이나 어두운 우주.
직경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운석의 지표면에, ‘그것’은 쓰러져 있었다.
한 팔과. 한 다리와. 그리고 옆구리가 뜯겨나간 처참한 모습의 검은 드라칸.
[…….]
놈은 죽은 듯 침묵했다.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으며, 입을 쩍 벌리고 쓰러저 있는 그러한 모습은 이미 녀석이 죽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적어도 백여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날짜로는 벌써 며칠에 걸친 침묵.
꿈틀.
굳어있던 놈의 남은 한판이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마침내 죽은 듯이 침묵하던 드라칸, 다크 레이븐은.
느릿하게 제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팔을 전력으로 떨구어 자신의 가슴팍을 쿵 내려찍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쿵! 쿵!
다크 레이븐은 그저 기계적으로 제 자신의 몸체를 두들겼다.
오로지 그것만이 유일한 동작이라는 것처럼.
팔을 높이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반복적으로 내려찍었다.
마치 망치질을 하듯이.
제 몸을 있는 힘껏 두들긴다.
그때마다 놈의 갑각질이 움푹, 파였다.
다크 레이븐이 그와 같은 이상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했다.
놈의 장기 대부분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완전체와의 격렬한 전투를 채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기능을 정지한 탓이었다.
녀석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미 기능이 멈춰 버린 자신의 장기를 억지로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인간이 멈춰 버린 심장을 다시금 뛰게 하기 위해서 심폐 소생술을 하듯, 그것과 비슷한 행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쿵! 쿵!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길 수십 회.
마침내 고장 나 멈춰 버렸던 놈의 내장이 삐걱거리며 불규칙한 움직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다크 레이븐. 놈은 그제야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리고, 상체를 꿈틀거렸다.
놈은 근방에 쓰러진 자신의 형제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의 형제가 함께 죽어 있었다.
화이트 레이븐. 한때 자신을 이끌며 함께했던 동료이자 형제이자 군체 무리의 일원인 존재.
[■,■■.]
다크 레이븐의 안광은 흉흉했다. 마치 푸른 불이 타오르는 듯했다.
파손된 안구에서는 푸른 마력이 피처럼 흘러내렸으나, 살기가 살아 있었다.
아직 녀석에게는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적어도 그전까지는 죽을 생각이 없었다.
그렇기에-.
콰직. 우드득.
형제, 화이트 레이븐의 신체를 ‘뜯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그것들을 엮듯이 자신의 뜯겨나간 오른팔과 오른 다리에 접합했다.
마력이 실처럼 엮이듯 자라나더니 핏줄을 형성하고 근육을 형성하며, 다시금 갑각질이 외부를 채워나간다.
형제에게서 뜯어낸 신체가 놈에게 엮이기 시작했다.
[■■■■-!]
놈은 차오르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날카롭게 저미는 듯한 통증이 지독하게도 거슬렸다.
운석의 지면을 움켜쥐자, 그 단단한 암석이 무른 모래흙처럼 움켜쥐어졌다.
드라칸은 예민하고 복잡한 생명체이며, 통각은 물론이고 생각과 감정마저 느끼는 존재다.
그러한 탓에 고통의 시간은 수십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마침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났다.
신체 부위는 완전히 접합했고, 놈은 붙인 팔과 다리를 자신의 것처럼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의 기괴한 행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간신히 육체를 누더기를 깁듯 꿰어 수복한 녀석은, 이제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적거리며 놈의 이빨이 형제의 살점을 뜯고 삼켰다.
바닥에 투둑 떨어져 내리는 시퍼런 마력조차 한 방울을 남기지 않고 죄다 주워 삼켰다.
마치 단 한 방울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남기면 안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형제의 남은 유산을 남김없이 소모하고서야.
놈은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를 채웠고 마력을 보충하였으며 에너지를 회복했다.
투둑.
제대로 수복되지 못한 상흔을 타고 시퍼런 체액이 핏물처럼 흘러내렸다.
[…….]
다크 레이븐.
놈은 이를 갈았다. 사나운 광기가 몰아친다.
아직 놈에게는 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생각한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이 죽음을 거부하리라고.
번-뜩!
놈의 광기 어린 새파란 광채가 섬뜩한 빛을 발했다.
[■■■■■■■-!!!!]
자신의 여왕, 새로운 여왕을 위하여.
끝까지 필사적으로 개처럼 기고 기어 살아남아 도달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투쟁이었다.
새로운 여왕체를 마주할 때까지.
그때까지 자신의 죽음은 허락할 수 없다. 그 무엇으로도.
쾅-!
반쯤 찢겨진 날개를 활짝 펼치며, 놈이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 * *
기가스라는 것.
그것의 정의는, 본래 드라칸의 생체 조직을 뼈대로 만들어낸 전투 병기였다.
드라칸은 온몸에 마나 에너지를 두른 생명체였다.
마치 에너지 실드와 같은 형식을 띠는 놈들에게 있어, 통상의 병기와 같은 것은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탄환은 쉽게 관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물리적 데미지 또한 크게 떨어진다.
놈들의 마나 물질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마나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인류는, 다른 방식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와 같은 마나 물질을 가진 병기를 만들어 놈들을 상대한다.
그러므로 처음의 기가스는.
온전한 드라칸의 살과 뼈를 모두 사용한 병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치프.”
“음? 갑자기 뭐냐.”
한창 전선을 연결하며 작업 중인 치프를 향해, 유성이 물었다.
“저 녀석의 사체를 어떻게 써먹을 수는 없겠습니까?”
“응? 이 완전체 말이냐?”
치프는 옆에 죽어 있는 완전체의 사체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거대한 완전체의 사체.
놈은 사나운 표정과 함께 이를 가는 모습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유성과 전투를 치르던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한 채로 멈춰 있는 그 모습은.
이제까지도 다른 엔지니어들이 겁을 먹고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다.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녀석이 가진 네 장의 날개 부분이 상당히 쓸 만하더군요.”
“날개가?”
유성의 말에, 치프가 의아하다는 듯 한쪽 눈을 치켜떴다.
“기가스의 추진 장비인 쓰러스터보다도 훨씬 가성비가 좋던데 혹시 쓸 생각이 있냐?”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흐음. 글쎄다.”
치프는 턱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거에 기가스의 파츠로 주로 드라칸의 사체를 써먹었다고는 들어서 알고 있긴 한데 말이지.”
사실 과거의 기가스들은, 무엇 하나 통일된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가스의 소재와 장갑으로 대부분 드라칸의 사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뼈대를 이루는 내부 프레임들은 모두가 같았다.
하지만 그 외관은,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었다.
드라칸의 갑각질을 덧대어 붙인 탓이다.
드라칸과의 전장에서 넘쳐나는 소재라고는 오로지 드라칸의 사체뿐이다.
그러한 탓에,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선택이기도 했다.
드라칸은 천연의 소재(素材)다.
전장에서 가장 흔하지만 반대로 가장 뛰어난 최고의 소재였다.
제아무리 인간이 드라칸의 것을 흉내 내어 만들어낸다고 한들, 놈들의 갑각은 세포 조직 단위에서부터 마력을 전도하는 물질로 탄생했다.
그러므로 대전쟁 시절의 인류에게 있어 놈들은 가장 뛰어난 기능을 가진 생체 무장이었다.
게다가 원래부터 기가스란 드라칸의 존재를 흉내 내어 제작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놀랍도록 놈들과의 융화가 잘 되었다.
게다가 상위에 속한 드라칸일수록 그 소재 또한 더욱 뛰어났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치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못 할 거야 없지. 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처음 하는 일인데도 자신감이 넘친다.
그의 말에 유성은 낮게 웃었다.
정말로 자신만만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저런 반응은, 자신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분명한 대답을 들은 유성의 반응 또한, 그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죠. 저는-.”
적어도 라피스를 죽게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유성 그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그를 위해서 그는 앞에서 쏟아지는 모든 공격들을 틀어막을 수 있는 기가스가 필요했다.
“제 전용기가 필요합니다.”
유성에게는 기가스가 필요했다.
적어도, 과거의 강함을 어떻게든 재현 비슷하게나마 해낼 만한, 그러한 기가스가.
다행히 이제 이곳에는 그럴 만한 소재가 있었다.
* * *
시민들의 분위기는 농담으로도 좋지 못했다.
게다가 개중의 일부는 속된 말로,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그들을 지나.
그들은 감옥에 도착했다.
“하아.”
유성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의원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걸림돌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게 말이지.’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의 대처를 구실로 주장하는 이 부 막리스 의원의 존재가 함선 메티스에게 치명적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당장 유성에게 이 남자의 존재는 지극히 방해가 되었다.
“…….”
잠시간 서늘한 눈으로 남자를 노려다 보던 유성이 말문을 열었다.
“아스트라 부함장님.”
“음? 뭔가.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나?”
“이 남자. 그냥 없애 버리죠.”
“뭐, 뭣?!”
그 말에 부 막리스 의원이 크게 소리쳤다.
“부함장님께서 하지 않으시면 제가 직접 하도록 하죠.”
유성은 죽이겠다, 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언급했다.
그의 그러한 면모를 처음으로 마주한 아스트라 부함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자네. 살인을 꺼리지 않는군.”
“전 필요한 일을 할 뿐입니다.”
인권이란 단어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대를 살았던 유성이다.
그렇기에 그는 거치적거리는 인간은 그저 내버릴 뿐이다.
“나는 부 막리스 의원이다! 감히 네놈들 따위가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아?! 이따위 헛소리를 지껄인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
잠시간 남자를 응시하던 유성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아스트라 부함장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저런 말을 하는 남자인데, 여기서 풀어준다고 한들 별다른 변화는 없겠군요.”
태도의 변화가 있다고 할지라도 유성으로서는 남자를 처분해야 말지를 고민할 텐데 오히려 큰소리라니.
이쯤 되면 대단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끼익-.
유성은 직접 감옥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곤 그를 향해 말했다.
“나오지그래?”
“뭐, 뭐?”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본데.”
유성은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커, 컥.”
옷매무새 그대로 들어 올려진 모양새의 남자가 숨이 막힌 듯 기침을 내뱉었다.
쾅! 쾅!
유성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 올린 채 향한 방향은,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저 간단하다.
닫혀있던 격납문을 열어 쓰레기를 우주로 내다 버리는 구조의 처리장이었다.
“커, 커억. 제, 제발. 이러지 말게.”
“잘 들어라.”
죽음의 공포로 인해 눈물을 흩뿌리는 그를 향해.
유성은 서늘한 광채를 흩뿌렸다.
“한 번 저지른 녀석은 두 번도 저지를 수 있는 법이지. 게다가 넌 모르겠지만, 사실 난 이미 한 번 참았어.”
“그, 그게 무슨?”
그는 제대로 이해조차 못 한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유성이 한 번 인내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잔뜩 커진 동공을 한 채로 필사적으로 외치려던 부 막리스 의원을 무심히 응시하던 유성은.
이내 쓰레기 소각장의 문을 열었다.
“그럼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