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행성 테라(1)
그런 라피스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요소에는.
분명 유성과의 경쟁심이 밑바탕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유성은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워낙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탓에 라피스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은연중에 많은 압박을 받는 건 분명하겠지.’
실력이 엇비슷하다면 라이벌 의식이라도 존재하겠지만.
현재 둘의 간극은 압도적으로 벌어져 있다.
그것은 차라리 허탈감이나, 황당함으로 표현해야 마땅할 것이었다.
결국 유성의 압도적인 뛰어남과 현 상황이 그녀를 알게 모르게 내몰고 있는 것이었다.
항상 유성이 마나 사용자였다면 좋겠다며 자주 말하던 그녀였다.
그런 라피스였으니 느껴질 감정은 얼마나 배신감이 절절하겠는가.
그나마 아직까지 라피스가 기죽지 않은 것만 해도 나름대로 용한 수준이었다.
유성은 화제도 바꿀 겸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슬슬 행성 테라가 보일 거라던데.”
“……그래.”
훈련장을 빠져나온 둘은 복도를 걸었다.
그런 둘의 사이로, 미약한 빛 덩어리로 화한 리브가 따랐다.
오로지 둘뿐이었던 시설을 지나, 한창 나아가자 곧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군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두꺼운 강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주 공간을 감상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이 우주 함선 내에서도 저마다의 기분전환을 하고 있었다.
둘은 고개를 돌렸다.
함선 메티스의 창문 너머.
칠흑뿐인 우주 공간 한가운데에 빛나는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보인다.
유성은 그 점을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슬슬 다 와 가네. 테라가 보이기 시작해.”
“그러게.”
푸른빛을 흩뿌리는 작은 점.
아주 작아서, 멀리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다.
하지만 바로 저것이야말로, 그들 인류가 드라칸을 피해 내 찾아낸 또 하나의 고향.
바로 행성 테라(Tera)라고 불리는.
지구를 벗어난 인류의 새로운 정착지였다.
[와아! 예쁘다! 아주 예뻐! 색이 여기랑은 완전히 달라.]
둘의 곁에 선 리브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로지 간단한 표현만이 든 솔직한 감상이었다.
“저걸 푸른색이라고 하지.”
[푸른색?]
“그래.”
대답하다가 문득 유성은 의아함을 느꼈다.
일전에는 형질이나, 생물학적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사용했던 리브였다.
그런데 어째서 푸른색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것인가.
상대적으로 쉬운 단어인 것이 분명할 텐데, 그걸 모른다는 것은 좀 이상했다.
한창 창문에 달라붙은 채 구경을 하던 리브는 문득 힘없이 유성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갑자기 왜 그래?”
[배고파…….]
“벌써? 아침을 먹은 지 불과 두어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빛 덩어리로 화한 리브에게서부터 꾸룩, 거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확실히 배가 고프긴 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배고픈 주기가 빠른데.’
리브는 갓 태어난 어린 드라칸 여왕체였다.
인간과는 다른 마나라는 순수한 에너지 물질로 이루어진 에너지 생명체다.
그런데 정작 리브는 마력 에너지인 드라칸의 핵을 섭취하기를 거부했다.
그러한 탓에 유성과 라피스는 이제까지 인간이 먹는 일반적인 식사만을 주었다.
리브는 보통의 인간과는 그 수준이 다른 식사량을 요구했다.
의심이 가는 구석이라면 몇 가지가 있기는 했다.
‘마력 에너지를 섭취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 오로지 인간의 식사만 먹고 있어서? 그게 아니라면 원래부터 어린 개체는 유독 배고픔을 느끼는 주기 자체가 빠를 수도 있지.’
리브는 한 번에 꽤나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보통 사람의 두세 배에 달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는 현 함선 메티스의 부족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함선 메티스에 올라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식사량도 적어서 하루에 두 끼가 최대일 정도라고 하지만. 이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어.’
유성은 가능한 리브가 부족함이 없도록 최대한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면 곧장 해결해 주었다.
리브는 특별하다.
이전 시대에조차 그 전례를 찾아보지 못한 인간형의 드라칸 여왕체였다.
그것도 단순히 인간의 형태가 아니라,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한 최초의 드라칸.
전례도 없고 그 특별함의 유래마저 예사 수준이 아니다.
지닌 능력마저 특별한 리브를 굶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유성 그에게는 지금 리브의 영양 공급이 더욱 중요했다.
가능한 그 성장에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말이다.
이 이례적인 생명체의 영양분 공급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했다.
다만 리브가 어째서 다른 드라칸들이라면 공통적으로 하는 포식 행위인 드라칸의 핵을 먹지 않는다는 점이 의문이기는 했다.
그것이 리브가 특별해서인지, 단순히 인간의 식사가 마음에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마나 생명체인 드라칸이 마력을 섭취하지 않는 게 결코 좋을 리가 없어.’
그러므로-.
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먹어두는 것도 좋겠지. 식당으로 가자.”
[와아!]
그의 대답에 리브가 허공을 유영하듯 돌아다녔다.
그 기분이 여실히 보이는 듯했다.
옆에 있던 라피스가 그 모습을 보곤 웃었다.
* * *
그들 셋은 숙소로 돌아가 식사를 한 뒤 바깥으로 나섰다.
완전체와의 전투. 그리고 리브가 나타난 지도 삼 일이 흘렀다.
이제는 셋 사이의 이러한 시간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사이에서도 리브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유성과 라피스 또한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리브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일부 사람들에게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마도 스텔스, 혹은 광학 미채 기술과도 비슷한 것일 거라 예상되었다.
‘그래도 워프(Warp)가 있었다면 좀 더 편했을 텐데. 물론 그랬다면 이미 행성 테라에 도착했겠지만.’
워프는 한순간에 먼 거리를 도약, 점프하게 만드는 극한의 기술력이었다.
태양계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이 가능한, 함선 이동 기술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함선 메티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대규모 이주를 목적으로 한 이주형 함선인 탓이다.
유성과 라피스는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3일만 더 가면 된다고 했지?”
“그렇지. 거의 다 왔어.”
그 말에 유성의 앞을 맴돌던 리브가 물어왔다.
[아빠. 저기 창문에 저렇게 보이는데도 아직도 그만큼 더 가야 해? 금방 갈 것처럼 보이는데?]
“우주는 원래 시야가 깨끗하거든.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것도, 불순물이 없는 탓에 놀랍도록 잘 보이지. 직접 눈으로 보이는 거리라고는 해도 실제로는 그 거리가 생각했던 것의 몇 배에서 심하면 몇십 배는 될 정도로 멀 수 있어.”
[그럼 저것도 그렇다는 뜻이야?]
“그래.”
유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 말대로야. 한 마디로, 아주 멀다는 의미지.”
당장 눈에 보인다고 할지라도, 여기는 우주 공간이었다.
행성의 대기에는 부유물들이 자리한 탓에 먼 곳은 보이지 않고는 한다.
하지만 우주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사람의 시야가 닿는 일직 선상의 모든 것이 온전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아득히 먼 거리에 위치한 것들도 훤히 눈에 들어온다.
스윽.
라피스는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는 저 멀리로 보이는 행성 테라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아.”
“…….”
유성은 자신의 감정이 낯간지럽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나, 내면은 라피스와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녀와 같았다.
어쨌거나 한 가지만은 분명 틀림없었다.
행성 테라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분명 그들 모두에게 점차 와닿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그에 따른 변화가 일었다.
한동안 그들이 옅은 기대감에 젖어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우웅-.
“음?”
유성은 고개를 내렸다.
아스트라 부함장에게서부터 전해 받았던 그의 통신기가 울리고 있었다.
그에 라피스가 눈을 깜빡이더니 물었다.
“아스트라 부함장님께서 무슨 일이시지? 통신이 울린 건 거의 3일 만인데.”
“글쎄.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곧, 라피스가 알겠다는 듯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하하. 알 거 같다. 아무래도 우리보고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돌아가서는 편히 쉬라고 말씀하시려고 부르시는 게 아닐까.”
“…….”
그 말에 잠시간 창문 너머의 우주를 응시하던 유성은.
곧 대답했다.
“글쎄.”
의아하기는 유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시점에 그를 개인적으로 호출할 만한 이유는 크게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전투 상황조차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유성과 약속했다.
함선 메티스를 철저하게 호위해 주는 대가로.
다른 무엇도 아닌 유성 그를 안전하게 원래의 일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이다.
유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약속을 어기진 않겠지.’
물론 그러한 생각도 한편으로는 드는 게 사실이었다.
이 타이밍의 호출은, 분명 그러한 의심이 치켜들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을 어길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였다.
적어도 과거 그가 기억했던 이기적인 군과는 다르게, 함장과 부함장의 경우에는 융통성이 있어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유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라피스에게 말했다.
“궁금하기도 하니, 일단 빠르게 가보자.”
“좋아.”
호출된 것은 유성 하나였지만, 크게 상관은 없을 터였다.
이미 행성 테라에까지 도착해가는 마당이다.
큰일이 날 게 뭐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아스트라 부함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통제실에서, 유성은.
상상조차 못 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 * *
“아무래도 유성 생도. 그리고 라피스 생도. 자네들의 도움이 한 번 더 필요할 것 같네.”
통제실에 들어서자마자 듣게 된 것은, 아스트라 부함장의 무거운 음성이었다.
그 말에 유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마치 으르렁거리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의 물음에 피곤한 듯 눈두덩을 매만진 아스트라 부함장.
그는 곧 유성의 말에 한숨 쉬듯 말을 건네었다.
“……미안하네만. 정말로 필요할 것 같아 불렀네.”
“설마 또 전투입니까?”
아스트라 부함장은 입 바깥으로 터져 나오려는 짙은 한숨을 간신히 집어삼키며.
이내 말문을 열었다.
“설명보단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빠르겠지.”
그가 손을 들자,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화면이 나타났다.
거기서는 놀랍게도.
[도, 도망쳐!]
[으아아악!!]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광경.
그리고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괴물, 드라칸들의 등장.
그러한 영상들이 재생되는 배경에는, 분명 푸른 하늘이 있었다.
즉 그러므로 저건. 콜로니가 아니다.
행성 테라였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뭐, 뭐야. 저거?”
옆에서 보고 있던 라피스가 놀라 경악한다.
침통한 표정과 함께, 아스트라 부함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 저건. 녹화된 영상이 아니네.”
“그렇다면?”
“저건 행성 테라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일세. 군대의 영상이지.”
“……저게, 말입니까.”
유성의 목소리는 드물게도 끊겼다.
그 말인즉슨. 지금 행성 테라는…….
“지금 행성 테라가, 드라칸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는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