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리브(4)
언제나 강력한 수준의 자기장이 흘러나오는 함선 메티스이기에.
기가스 파일럿들은 유사시의 경우 함선을 지상과 같은 지형 대용으로 삼아서 제 자신을 지탱해 가며 싸울 수 있었다.
때로는,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전용 전장의 역할인 셈이다.
실제로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반동이 만만찮은 고출력 포격형의 원거리형 기가스들은 전함에 기체를 단단히 부착시키고 전투에 임한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반동이 터무니없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함선을 지상처럼 써먹어라.
기갑 파일럿들의 교본에도 나오는 기본적인 우주 전술이었다.
[하아아!]
라피스가 힘찬 기합을 내질렀다.
마력을 끌어올린 그녀의 기가스, 스크래퍼가 새파란 안광을 뿜어냈다.
삑-!
[타겟팅, 록-온!]
[미사일 컨테이너 오픈, 파이어!]
그 강렬한 기세와 함께, 스크래퍼의 전신에 장착된 미사일 컨테이너가 철컥 열리더니 수십 개의 미사일과 빔 포격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
우주 한가운데에 다색(多色)빛의 포격이 수를 놓듯이 쏟아지며 함선 메티스를 향해 접근하는 적들에게 퍼부어졌다.
쿠구구궁-.
전장 한가운데에, 무시무시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난다.
일순간 전장의 일부에 공백을 만들 수준의 강렬한 포격이었다.
미사일과 포격들이 터져 나가며 원형의 폭발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그것들은 한참이나 계속된다.
그야말로 막대한 화력. 터무니없는 폭발이다.
그녀 주변의 우주 공간이 죄다 폭발에 휩쓸렸다.
포격의 중심부에 있었던 세 기의 적 기가스는 물론이고, 범위에 걸쳐져 있던 다른 두 기의 기가스들마저 그대로 공격에 휩쓸렸다.
한순간에 세 기를 격추하고 다른 두 기의 기가스마저 반파시켰다.
솔직히, 상당히 괜찮은 전과였다. 아니, 훌륭했다.
[하우우.]
하지만 정작, 라피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주변에는 그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수십 기가 넘는 기가스들이 서로를 노리고 싸우고 있었다.
저 기가스들 모두가 허상, 그러니까 이 가상현실 공간의 NPC 같은 개념이었다.
아군 기가스들과 적군 기가스들이 서로 싸우는 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드라칸은 없다. 상대는 오로지 같은 기가스 뿐이었다.
애당초 이 프로그램은, 기가스를 조종하는 범죄자 파일럿들을 적으로 상정하여 만들어진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의 적들은 오로지 같은 인간인 기갑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기가스였다.
‘확실히 대단하군.’
유성은 저 멀리 연달아 터지는 폭음과 폭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느껴지는 모든 감각들이 진짜 현실처럼 느껴졌다.
들려오는 전장의 모든 감각들이 그러하다.
촉각, 청각, 시각 등의 오감에서부터 심지어는 파일럿들이 지닌 마력의 감각까지도.
그 덕분에 진짜 현실의 전투를 경험해 본 기갑 파일럿조차도 이 가상의 공간에 들어서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콰앙!
라피스의 공격에 요격당한 적 기가스가 함선의 갑판에 떨어져 내렸다.
‘우주 해적’이라는 설정을 가진 검은색의 기가스였다.
추락한 놈은 여전히 살아 있던 모양인지 갑판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잉-.
놈의 안광이 시퍼렇게 빛났다.
적 기가스와 라피스의 스크래퍼가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웃!]
그 서슬 퍼런 눈빛에 라피스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크게 긴장한 게 눈에 보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이미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어.’
유성 또한 이 정도는 예상했다.
드라칸과는 몇 번이고 싸워본 적이 있는 그녀이지만, 기가스와는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상대 기가스는 지극히 위압적인 형태와 색감을 띠고 있었다.
라피스의 기가 죽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때, 라피스가 탑승한 기가스, 스크래퍼의 안광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스크래퍼간의 동화율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유성이 말했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 몸이 굳었다. 적당히 긴장감을 덜어내고, 차분히 적을 응시해.”
[웃, 나도 알고 있-다구우!]
힘찬 대답과 함께, 꺼져가던 스크래퍼의 안광이 다시금 형형해졌다.
떨어져 가던 동화율이 급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성은 낮게 웃었다.
확실히, 라피스는 빠르게 성장하는 타입이었다.
지적하면, 아닌 척 반발하면서도 순식간에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
쾅!
말을 끝마침과 함께, 갑판 위에서 굉음이 울렸다.
적으로 설정된 우주 해적, 검은 기가스와 스크래퍼가 서로 맞붙기 시작한 참이었던 탓이다.
둘은 서로를 향해 초진동검을 맞부딪힌 채로 힘 싸움을 시작했다.
끼기긱, 하고 스크래퍼의 기체가 비명을 내질렀다.
스크래퍼의 관절 부분에 불꽃 스파크가 파직 튀었다.
기체가 버거워하고 있다.
기가스라고는 봐주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낮은 운동 능력을 가진 탓에, 스크래퍼가 근접전투 자체를 버거워하는 것이었다.
[나도 한다면 해!]
결국 이 이상의 접전은 무리일 거라 판단한 라피스가 먼저 승부수를 던졌다.
애당초 근접전으로는 답이 없다.
그녀의 기가스 스크래퍼는 원거리 전용의 기가스였다.
움직임은 근접한 드라칸의 공격을 간신히 방어할 수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운동 성능만을 내장한 것이 전부였다.
사실상 장점과 단점 모두가 명확한 기가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스크래퍼가 가진 가장 강력한 장점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처음부터 스크래퍼는 단 하나뿐이다. 바로 포격이다.
우웅. 우웅. 우웅!
스크래퍼의 가슴팍에 달린 두 개의 포문이 점차 빛나기 시작한다.
코앞에서 힘 싸움을 하는 검은 기가스를 쏴 맞히기 위함이었다.
물론 당연한 사실이지만.
제아무리 프로그램에 불과한 적이라도 그걸 순순히 맞아 줄 리가 없었다.
고도의 AI를 지닌 검은 기가스는 민첩하게 몸을 숙여 포격을 회피하더니, 그대로 몸으로 스크래퍼를 들이받았다.
쾅!!
[꺄아악!]
인정사정없이 뒤흔들리는 조종석.
라피스의 몸이 충격에 들썩였다.
동시에 기가스 스크래퍼가 뒤흔들리며 불안정한 그녀의 마력이 한순간에 풀리고-.
카가각!
상대방 기가스의 초진동검이, 스크래퍼의 기체를 꿰뚫었다.
자비 없는 우주 해적의 공격은, 대번에 그녀가 있던 조종석까지 관통했다.
그 결과는 볼 것도 없었다.
라피스의 모니터 화면에 알림이 떠올랐다.
[패배하셨습니다. 미션 Fail!]
[현재 당신의 미션 도달 랭크는 C-급입니다.]
우웅-.
훈련 기계의 전원이 서서히 꺼졌다.
쉽게 말해, 게임오버였다.
동시에 칠흑처럼 어두웠던 훈련장의 주변이 밝아졌다.
유성과 라피스.
둘이 있던 곳은 훈련장의 접속 공간이었다.
라피스는 진짜 기가스와 모든 것이 동일한 형태의 기가스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어졌던 폭음과 땅을 뒤흔들던 진동들 모두가, 저 조종석 안에서 이루어졌던 시뮬레이션 훈련이었다.
덜컹.
라피스는 조종석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바깥으로 나서며, 낮게 투덜거렸다.
“하아. 뭐 하나 제대로 못 해 보고 죽었네.”
그 불만 가득한 음성에, 피식 웃은 유성이 말했다.
“너무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어. 필요 이상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탓에, 정도 이상의 충격을 받자마자 기가스가 멈춘 거야.”
예리한 지적이었다.
오로지, 사실만을 담은 철저한 지적.
그에 라피스가 투덜거렸다.
“알고 있어. 매번 그럴 거야?”
“하하.”
유성이 쓰게 웃었다.
사람이란 게 원래 사실을 담아 지적하면 유독 상처받는 법이다.
그는 제 자신의 지적 정신이 너무 투철했음을 인정했다.
생각해보면 최근 그의 지적은 반복적이었다.
“알았아. 그만할게, 라피스.”
둘은 적당하게 이 정도쯤에서 멈춰 서고 일어났다.
훈련은 적당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도전 정신과 경험이 자극받는 수준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것이었으므로 말이다.
일전에 훈련 도중 마력을 죄다 소비한 직후, 상위체가 둘이나 등장했던 당시의 상황을 교훈으로 삼은 것이다.
훈련을 통해 빠르게 그릇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경험한 실책을 다시금 겪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었다.
드라칸은 이제 언제고 다시금 나타날 수 있었다.
분명하게 실재하는 위협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둘은 언제고 다시금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항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자. 받아.”
“고마워, 유성.”
라피스는 유성이 건네주는 물을 들이마시고는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래도 너무 센 거 같아. 역시 내 수준이 턱없이 낮은 걸까?”
“글쎄. 객관적으로 말하면 방금 전의 상대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어. 그 말은 지금의 너라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
그러다 다시금 째릿 노려보는 라피스의 강렬한 눈빛에, 유성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멈췄다.
“……할지도. 흠흠. 그만할게, 라피스.”
“그래. 제발 그만 좀 해.”
투덜대는 라피스와 유성의 중심으로, 작은 빛 덩어리가 내려섰다.
[엄마. 아빠. 싸움은 안 돼!]
“리브?”
빛 덩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리브였다.
푸른빛을 흩뿌리는 가루들이 한데 뭉쳐 만들어진 듯한 기묘한 외양의 그것은, 둘의 사이를 날듯이 맴돌았다.
“싸우는 거 아냐.”
“싸우는 게 맞긴 해. 사실은 라피스만 조금 화가 난 거긴 하지만.”
라피스와 유성. 둘의 대답은 각각 달랐다.
유성이 인정하며 길게 말꼬리를 늘어트리자 라피스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 심히 좋지 않은 기색에 유성은 뭔가 위기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이상 거스르면 위험하겠다는 적색 신호가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렸다.
때문에 그는 돌연 말을 바꾸었다.
“생각해보니 아니네.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였어.”
“……흥.”
라피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차 지적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유성 그의 대처가 적절하다는 의미였다.
푸른빛을 흩뿌리는 빛 덩어리, 리브는 라피스와 유성의 사이를 맴돌더니 물었다.
리브는 둘 사이에 흐른 미묘한 기류를 금세 읽었다.
[으음-. 싸움인 것 같은데?]
“아니야.”
대답한 것은 라피스였다.
그녀는 강경하게 주장하며 손을 저었다.
“그 말이 맞아, 리브.”
유성 또한 이번만큼은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라피스로부터 조금 거리를 벌린 그는.
곧 낮은 목소리로 작게 말문을 열었다.
“이럴 땐 아닌 것 같아도 맞다고 해주는 거야. 안 그러면 라피스의 기분은 계속 저럴 거니까. 지금 화난 상태거든.”
[그런 거야?]
“그래. 그러니 가능한 조심해.”
유성은 이럴 때의 해결책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쌓여왔던 그의 경험은, 시간이 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라피스가 최근 들어 유독 날카로운 데에 대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껏 라피스는 어디에서나 항상 높은 평가를 받으며 지내왔다.
마나 사용자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그녀는 집안의 장점만을 물려받았다.
뛰어난 머리, 그리고 강건한 육체까지.
심신 모두가 일체화해 언제나 두각을 보이는 그녀였기에, 아카데미에서도 줄곧 1위를 차지했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노력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요소에는.
분명 유성과의 경쟁심이 밑바탕에 자리매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