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56화 (56/200)

56화. 리브(3)

드라칸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광경.

이것은 명백한 이레귤러였다.

있었던 적도, 있을 리도 없던 상황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아예 상정조차 해 본 적이 없던 말도 안 되는 경우다.

애당초 이제까지 그가 보아왔던 드라칸이란 건, 어디까지나 갑각질로 뒤덮인 곤충형의 생명체들이었다.

“넌.”

“응. 말해, 아빠.”

소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에 담긴 친밀함을 읽어내며 유성이 물었다.

“그런데 왜 날 아빠라고 부르는 거지? 부모라는 개념을 뜻하는 단어가 맞는 건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드러낸 것은 오히려 소녀 쪽에서였다.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이유가 필요한 거야, 아빠?”

“일단 그 근거가 되는 이유 정도는 들었으면 하는데.”

갓 태어난 어린 개체에게 그걸 묻는다고 해서 알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의아하기에 일단 물었다.

지금 유성의 눈앞에 있는 소녀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제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깨우친 존재였다.

이렇게나 자의식이 대단하다면, 어쩌면 뭔가 이유를 알 거라 생각해도 이상할 일은 없었다.

스윽.

소녀는 손가락을 들어 유성과 라피스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 직후에 튀어나온 소리는 도통 알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아빠는 아빠고, 엄마는 엄마야.”

“어, 어어. 나?”

“응.”

라피스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묻자,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나한테 마력을 주었고, 엄마는 내가 태어날 수 있게 해 줬어. 피를 주어서 내 형태를 만들어 줬거든. 형질이 완성되었지.”

유성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형태와 형질이라. 소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소리의 연속이다.

유성은 드라칸을 모른다.

이제껏 투쟁에 질려온 그였다.

그런 자잘한 것에 관해서라면 알고 싶지도 않았고, 의문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적을 죽이는 데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적을 죽이는 데 필요한 기술뿐이다.

녀석들의 생태 따위는 알 가치도, 필요도 없었다.

보이면 싸우고 죽인다. 그것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소녀가 하는 내용은 유성 그로서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마력과 피?”

“난 엄마의 혈액을 제공받았으니까. 종으로는 아니겠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한 엄마의 자식이야.”

“생물학적으로라. 꽤 어려운 말을 쓸 줄 아네.”

상당히 복잡한 개념의 말도 알고 있는 듯했다.

배우지 않으면 결코 알지 못할 단어를 아는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엄마의 어릴 적 모습을 한 건 그것 때문이야. 좀 더 정확하게는…… 분신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그렇군. 쉽게 말해 복사의 개념인가.”

“응. 아마 지금의 난 완벽한 인간일 거야, 아빠. 다만 가지고 태어난 부가적인 능력들이 드라칸 여왕체의 것일 뿐이지.”

인간의 몸을 한 드라칸이라.

유성조차 이런 경우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아는 드라칸은 어디까지나 괴물의 형상을 했다.

‘이 녀석이 알의 형태를 하고 있을 때. 그 말처럼 라피스의 피가 묻고 나의 마력이 주입되기는 했지. 하지만 이런 게 과연 가능한 건가?’

의문이 치켜들지만, 그에 따른 깊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그의 눈앞에 결과물이 있었다.

이 소녀는 명백한 드라칸이다.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유성조차도 이 상황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정할 수 있었다.

적어도 소녀가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유성 또한 굳이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게다가 그 존재가 유성과 라피스는 물론 많은 인간을 구하기까지 했다면, 그러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기에. 유성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눈앞의 소녀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넌 리브다.”

그 말에 소녀, 아니, 리브는 빙긋 웃었다.

“응!”

리브는 기쁜 마음으로 유성의 말을 받아들였다.

* * *

“그럼 우린 슬슬 나가 볼까?”

“어디 가려고?”

“잠시 볼 일이 있어, 리브.”

라피스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침대에 앉은 리브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우리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리브.”

리브의 표정은 울적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축 늘어진 음성으로 물었다.

“진짜 나오면 안 돼?”

“리브.”

무릎을 꿇은 라피스는 리브와 눈높이를 맞췄다.

“지금 이곳의 사람들은 네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라. 혹여나 그 존재를 들키기라도 하면 대번에 이상하다고 여길 거야.”

“내가 보이면 안 돼?”

“그래.”

라피스는 대답하면서도 옅은 웃음과 함께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랑 유성은 여기 함선 메티스에 등록된 인간이지만 리브 넌 아니거든. 모습을 숨길 수 없는 한에는 조용히 숨어 있어야 돼.”

그러자 리브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숨길 수 없는 한?”

“응? 뭐라고?”

제대로 듣지 못한 라피스가 되물었을 때.

그녀의 말뜻을 왜곡해서 이해한 리브가 활짝 웃었다.

“그럼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리브는 의아해하는 라피스에게 대답하는 대신 즉각 행동으로 보였다.

“어, 어어?”

라피스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리브가 가진 소녀의 형상이, 그녀가 보는 바로 앞에서 점차 변하고 있었다.

마치 푸른 액체, 혹은 기체라도 되는 듯 점차 육체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그 형체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리브, 리브!”

당황한 라피스가 손을 허우적거렸으나 리브가 있던 자리에 잡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리브의 변화를 바라보는 유성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는 여전히 무심한 눈길로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뭘 하는 거야, 리브?”

“유, 유성. 리브가!”

“진정해.”

유성은 당황으로 얼룩진 라피스를 제지했다.

대신, 덧붙였다.

“두 눈에 마력을 끌어올리고 리브가 있는 자릴 봐.”

라피스는 유성의 조언을 따랐다.

그녀의 두 눈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주위 모습을 담자, 거기에는 희미한 푸른 빛 덩어리가 두둥실 떠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힘들 만큼이나 작은 그것에서부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헤헤. 아빠. 엄마. 이거 어때?]

리브의 말에 유성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마나 사용자가 아니라면 들킬 일은 없겠는걸. 그리고 설령 마나 사용자라 해도 나 정도는 되어야겠지.”

솔직히 말하면, 유성은 나름대로 놀란 상태였다.

형체를 변형시킬 수도 있는 드라칸은 유성조차 처음이었다.

* * *

함선 메티스.

그곳의 훈련장에는, 저마다의 특성과 병종에 따라 여러 시설들이 나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며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시설들 중의 하나는.

바로 기가스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전투 훈련장이었다.

그것은 흔히 ‘가상현실’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이었다.

가상현실 기기.

기가스의 다양한 전투 상황을 상정하고 제작된 기기다.

중력과 매 상황에 따라 알맞은 흔들림, 그리고 충격도.

모든 것들이 현실과 흡사하게 만들어졌다.

오로지 훈련만을 목적으로 제작된 군사용 목적의 실험 기기였다.

물론 가상현실 기기라는 게 군용이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먼 미래 시대인 이곳에는, 그 기술력의 발전이 일반인에게도 퍼져 나갔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상현실이란 건 터무니없을 정도의 가격을 자랑하기에, 대다수의 기술력은 군사시설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곳 함선 메티스에는.

그 군사용 목적의 가상현실 기기가 놓여 있었다.

따라서 풀어 말하자면.

함선 메티스의 유일한 파일럿이나 다름없는 라피스와 유성의 훈련용으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으, 으아아.]

오로지 암흑뿐인 우주 공간.

그곳에서, 라피스는 한껏 당황해서 우주를 부유할 뿐이었다.

그녀는 기가스, 스크래퍼의 출력 레버를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잡아당겼다.

‘완전히 당황했군, 저 녀석.’

유성은 관람자 모드를 한 채로 우주 공간의 한편에 서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라피스가 양팔을 버둥거리며 허둥지둥하고 있는 게 빤히 눈에 보였다.

어떠한 것도 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자 크게 당황한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우주전의 경험이야 존재한다지만, 기껏해야 제대로 된 출격이라곤 단 한 번에 그쳤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전적이었다.

고작 그 짧은 시간을 움직인 게 다였으니, 적응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그녀라 할지라도 우주전만큼은 다르다.

우주전. 우주에서의 전투.

애초에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위와 아래, 좌우의 구별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이 바로 우주다.

지상과 하늘 따윈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심연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당황한 그녀가 소리쳤다.

[유, 유성! 도와줘!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라피스.”

그런 그녀의 뒤편에서, 차분하고 무심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켜보고 있던 유성에게서부터였다.

[으, 응?]

라피스는 한창 정신이 없는 탓에 대답만을 하는 채로 시선은 여전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레버를 마구 잡아당기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가 처한 이 상황은.

콰앙! 퍼버벙!

……그리 순순하지 않았으므로.

아니, 오히려 정신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라피스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적으로 설정된 ‘다수의 적 기가스’들이 라피스와 그녀의 편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전쟁.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기가스전(戰)이었다.

* * *

[으, 으아앗!]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당황한 라피스를 향해.

여전히 고저 없는 특유의 음성과 함께 유성이 말했다.

“넌 통상의 기가스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어.”

[뭐, 뭐?!]

“원거리형의 기가스는 굳이 우주에서 위와 아래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단단히 널 받쳐줄 지상이 되어 줄 함선 메티스가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를 알려주면 즉각 다른 하나를 묻는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그저 막막하기만 할 터다.

그 초보적인 수준의 질문에, 피식 웃은 유성이 보다 적극적으로 조언을 덧붙였다.

“일단 함선 메티스의 갑판에 착지해. 우주에서 머리 아프게 떠다니며 싸울 필요 없이, 널 단단히 지탱해 줄 메티스라는 이름의 지상 위에서 적들을 상대하는 거지.”

[아. 그러면 머리 아프게 발아래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는 건가? 난 지상에서 적들을 상대하는 셈이니까?]

“그래. 정확해.”

상황 전체를 신경 쓰기가 어렵다면 신경 쓸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는 것.

전투를 쉽게 이어가는 것 또한 재능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얼마 전 유성이 써먹었던 전법이었다.

두 상위체 놈들을 상대로 싸울 때 실제로 그가 사용했던 방법이다.

당시의 유성은 탄막군을 펼쳐 놈들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압도적인 속도를 제한하는 전법을 써먹었다.

[알았어.]

그러한 유성의 가르침대로, 라피스는 함선 메티스 쪽으로 천천히 달라붙었다.

쿵-!

함선으로 가까이 접근하자, 마치 자석이라도 되는 양 기가스 스크래퍼의 몸체가 저절로 쿵 달라붙었다.

함선 메티스로부터 흘러나오는 중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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