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리브(2)
완전체와의 전투가 벌어진 지 하루 정도가 흘렀다.
그들은 행성 테라로의 여정을 다시금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콜로니의 의원인 부 막리스가 수감되었다.
기잉-.
문을 열고 나선 라피스는 조심스럽게 복도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나?’
라피스의 눈동자가 좌우를 은밀하게 훑었다.
복도에는 다수의 군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역시 다들 정신이 없나 보네.’
불과 전투가 끝난 직후의 상황이다.
지금 함선 메티스의 군인들은 대부분 숨 돌릴 틈이 없을 정도로 바쁜 상태였다.
방금 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서부터 보급받은 물품을 정리하느라 바쁜 데다가, 그나마 남는 나머지 인원들조차 불만과 불안이 고조되는 사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모두 동원된 상태였다.
즉. 한마디로.
라피스에게 신경을 쓸 만한 인물은 따로 없다는 의미와 다름이 없었다.
군인들이 모두 지나갔음을 확인한 그녀는 빠르게 움직였다.
다급한 걸음으로 그녀가 향한 방향은 보관 창고 쪽이었다.
‘빨리, 빨리…….’
주변은 온통 소란스러웠다.
그녀는 닫힌 보관 창고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주위를 살폈다.
역시나 다들 한창 작업 때문에 자리를 비운 탓인지 아무도 없다.
꽤나 다행인 일이었다.
기잉-.
라피스가 발을 내딛자, 보관 창고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종 필수품과 옷가지, 보관용 음식을 비롯해서 그밖에 다양한 품목들이 쌓여 있다.
승선한 인원들을 위한 보급품이 실린 장소였다.
한창 주변을 둘러다 보던 라피스는 필요한 물품들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이것도 필요하고. 이것도 있어야 하고. 또 뭐가 필요하지?”
물품들에는 공통점이랄 게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었다.
라피스가 주워 담기 시작한 양이 한 박스가 조금 넘었을 무렵.
충분하다 생각한 라피스가 중간에 멈칫, 하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옷도 챙겨야지.”
생각해보니 아직 모자란 것 같다.
2인분의 식사. 그리고 작은 아동용 의복.
그 밖에 자잘한 신발이나 도구마저도 더 이상 들 수 없을 만큼이나 가득 챙겨 들고서야 그녀는 보급 창고를 빠져나갔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살금살금 움직이던 그녀였으나.
그런 라피스의 행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각되었다.
“음? 라피스 생도?”
복도의 맞은편에서부터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아스트라 부함장이었다.
그는 웬일로 다량의 보급품을 들쳐 매고 있는 라피스의 모습을 보곤 의아한 듯 물었다.
“라피스 생도. 여기선 뭘 하고 있나? 그건 또 뭐고?”
“아. 그, 그게요.”
잠시 우물거리던 라피스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다.
“유, 유성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유성이?”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묻는 아스트라 부함장이었으나, 라피스는 조심스럽게 물러나더니 그대로 거리를 벌렸다.
“하. 하하하. 그, 그만 가볼게요. 부함장님.”
그녀는 은근슬쩍 거리를 벌렸다.
잠시 멀어지는 라피스를 응시하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손을 들었다.
“라피스 생도. 그래도 너무 많이 가져가지는 말게. 자네들이 최우선이라고는 해도 함 내에 물품이 부족한 것만은 사실이니까 말이야.”
“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붙잡히는 걸 걱정한 모양인지 순식간에 멀어진다.
멀어지던 라피스를 가만히 응시하던 아스트라 부함장.
“흐음-.”
그는 곧 턱을 쓸었다.
“이상하군.”
오늘따라 라피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꼭 뭔가를 숨기려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가져가려면 그냥 가져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텐데, 상당히 의아했다.
다량의 보급품. 거기에 심지어는 평소와는 다르게 몇 인분에 해당하는 분량의 식사를 챙겨 들기까지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폭식이라도 하려는 건가.’
마나 사용자들의 신체 능력은 보통 사람에 비해 한없이 활발하다.
그것도 단순히 조금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요구하는 칼로리의 ‘단위’가 다른 이들조차도 수두룩할 정도다.
워낙에 뛰어난 운동 능력으로 인한 에너지의 요구치가 높은 탓이다.
그러니 라피스가 일반인의 배나 되는 분량을 먹더라도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많이 먹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물론 그 밖에 옷가지를 챙겨 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감조차도 잡히지 않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흠.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지금 중요한 건 따로 있으니.’
곧 아무렇지 않게 의문을 떨쳐버린 부함장은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고작 일부 물품 몇이나 간이 식량을 들고 사라지는 생도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지금 그에게 주어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음?”
그러던 와중.
아스트라 부함장은 문득, 발아래에 떨어진 작은 사이즈의 옷을 보았다.
그것을 들어 확인한 그는 의아한 듯 눈을 치켜떴다.
‘흠. 뭔가 이상하긴 하군.’
아스트라 부함장은 생각했다.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라면서 말이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옷가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라피스 생도가 떨어뜨린 게 분명해 보이는데.’
확실히 뭔가가 이상하기는 했다.
이미 고등학생인 라피스가 어째서 고작 열 살짜리 애들이나 입을 법한 옷가지를 가지고 가려던 것인가.
“확실히 이상해.”
그는 의아함에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해서,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 * *
라피스는 숙소로 들어서기 전 조심스럽게 주위를 확인했다.
아무도 쳐다보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잰걸음으로 들어갔다.
“아빠. 나 배고파.”
“조금만 기다려.”
안으로 들어서자 소녀가 떼를 쓰듯 칭얼거리고 있었다.
예의 그 소녀였다.
자신을 드라칸의 여왕체라고 말하던 여자아이.
“배고파아.”
“금방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런 소녀의 떼를 받아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지칠 만도 할 텐데 유성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조차 없었다.
그는 필요하다면 인내하기도 했지만, 이외에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사실상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물론이고 모두가 죽었을지도 몰랐을 테니.’
“나 왔어.”
그때 기다리고 있던 인기척이 들려왔다.
라피스가 들어서자 소녀가 벌떡 일어섰다.
“엄마 왔다!”
라피스가 들어서자 유성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유성과 시선이 마주치자 쓰게 웃어 보였다.
“생각보다 챙길 게 조금 많아서 시간이 걸렸어.”
“……그래 보이네. 꽤 무거웠겠는데.”
라피스가 들고 온 짐의 크기는 농담으로도 결코 가볍다 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척 보기에도 온갖 것들이 들어 있는지 옷가지는 물론이고 식량마저 보일 정도였다.
“아하하. 엄마. 엄마아.”
“아, 웃! 자, 잠시만!”
라피스는 얼굴에 볼을 부비적거리는 소녀의 모습에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소녀는 귀엽고 또한 애교도 많은 편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그저 당황으로 얼룩진 탓에 그런 게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조심스럽게 소녀를 떼 낼 뿐이었다.
유성은 라피스가 주섬주섬 풀어헤치는 짐들을 보곤 물었다.
“도시락은 왜 가져 온 거야?”
“아. 얘는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잖아. 그래서 혹시 모르니까 가져온 거지.”
소녀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밥! 밥! 나 배고파.”
“이건 어때? 먹고 싶지 않아?”
“응? 뭔데?”
유성이 방금 전 라피스에게 건네어 받았던 드라칸의 핵을 내보였다.
창고에 저장되어 있던 핵이다.
고개를 돌린 소녀는 그것이 뭔지를 확인하더니 정말로,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다.
“맛없어. 싫어.”
“…….”
차갑다 못해 분명하다.
극명하기 짝이 없는 거부 의사였다.
무안해진 유성이 라피스와 눈을 마주쳤다.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드라칸은 마력 생명체였다.
그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마나가 서린 것을 잡아먹으며, 거기에는 같은 동족인 드라칸 또한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금 전, 유성이 내민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드라칸의 핵이었다.
순수한 마력 응집체로 드라칸 군체의 에너지원이었다.
사실상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체력을 가진 생명체인 드라칸은, 풀과 고기류 따위가 아닌 마력을 뜯어먹는다.
즉, 드라칸의 기본적인 주식은 에너지 물질인 마력이었다.
‘그런데…… 반응이 좋지 않군.’
유성은 잠시간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이, 답은 금세 나왔다.
바로 옆에 있던 라피스에게서부터였다.
“자. 이게 먹고 싶은 거지?”
“밥이다!”
라피스가 건네는 도시락을 받아든 소녀는, 잔뜩 밝아진 얼굴이 되었다.
마치 이것만을 기다렸다는 듯한 모양새였다.
‘뭐라고?’
그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오히려 유성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그로서는 드라칸이 마나를 거부한다는 것은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분명 소녀는 그들 모두를 구했다.
이 작은 여자아이가 없었더라면. 그들 모두가 위험에 처했을 터였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소녀는 숟가락으로 푹 뜬 스프를 입에 앙 떠먹었다.
그러자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는 듯 밝게 웃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식사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듯 보였다.
“응?”
그러다 문득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하며 유성을 보았다.
“아빠? 왜 그래?”
유성은 말이 없었다.
대신 가만히 앉아 소녀를 응시할 뿐이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넌 네 자신이 여왕체라는 걸 알고 있었었지.”
“응? 당연하지. 난 여왕체인걸.”
소녀는 숨김없이 수긍했다.
방긋 웃기까지 하는 그 모습은 감추려 하는 기색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녀의 존재는 기묘하다.
날 때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과, 힘을 아는 존재다.
심지어 인간과 드라칸의 다름을 알고 있다. 종이 다르고, 태생이 다름을.
겉으로 보이는 유약해 보이는 외견은, 그저 외견에 불과할 뿐이었다.
소녀가 지닌 힘은 이곳에서 유성을 제외한다면 막을 이가 없을 만큼이나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멀리 갈 것조차도 없이 당장 유성 또한 그러한 존재 중 하나다.
그는 타인이 보기엔 그저 소년에 불과하지만.
그 내면은 일평생을 전장에서 보내온 강대한 각성자가 들어 있었다.
환생자(還生者)인 유성은 그가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많은 드라칸을 마주했다.
그의 시간들은 전쟁과 투쟁으로 얼룩졌으며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모두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성. 그의 존재가 곧 인류와 드라칸이 마주하고 싸워온 시간만큼의 ‘역사’였다.
드라칸은 분명 아주 긴 시간 동안을 이 우주에 살아온 존재들일 터였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세상의 인간 중에서 그보다도 더 오래 드라칸을 마주한 이는 인간의 역사에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그것은 분명하고, 아주 확실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분명 단언할 수 있다.’
드라칸 여왕체의 갓 태어난 양산체는 제아무리 그라고 할지라도 난생 처음 보는 기묘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알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것이 완전한 인간형의 여왕체라면 더더욱 그러하겠지. 이건 이제껏 없던 최초의 경우다.’
드라칸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광경.
이것은 명백한 이레귤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