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리브(1)
……깊은 꿈속이다.
오랜 전쟁을 경험한 이라면, 하나쯤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것은 유성, 아니, 이시혁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혼에 얽매인 공포심과 질병 그리고 악몽들은.
전생에서의 죽음에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육체에까지 따라붙었다.
그가 환생했던 것과 같이.
“큭…….”
그는 신음을 흘렸다.
꿈속에서의 그는, 싸우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콰직! 콰직!
강철로 이루어진 딱딱하고 답답한 조종석의 안에서.
놈들의 이빨과 발톱이 기가스를 짓누르면서 조종석이 처참히 뭉개지기 시작했다.
“크윽, 크아악!”
이시혁은 고통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놈들의 사나운 이빨이 기가스를 짓밟고 으적였다.
조종석 전체가 처참하게 우그러지고 있었다.
산 채로 갇혀 짓뭉개지고 있는 것이었다.
“크으윽.”
그 상태에서, 이시혁의 하반신이 조종석에 낀 채로 으스러졌다.
“끄…… 으아아아!”
처참한 비명이 폐쇄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의 고통에 찬 고함을 하모니삼아, 놈들은 더욱 이빨을 들이밀었다.
마침내 놈들의 이빨이 기가스를 깨부수고 조종석까지 뜯어내기 직전이 되었다.
깨지고 부서지는 조종석의 위로 드러나는 햇빛과 함께 놈들의 이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쾅!
놈들의 머리통을, 옆에서 날아든 무언가가 날려 버렸다.
“허억. 허억.”
이시혁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나타난 것은 기가스였다.
[대장! 괜찮아?!]
[대답해, 대장!]
그들의 부름이 한참이나 반복되고서야.
간신히 진정한 그는 말문을 열었다.
“……큭. 살, 아는 있다. 가능한 빨리 꺼내 줘.”
그는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 만큼 짓뭉개진 틈새에서,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코를 통해 내쉬어지는 호흡이 뜨겁게 느껴졌다.
이 열기가 피로 인한 열기인지, 아니면 단순한 부상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체는 감각이 없었다. 그의 신체 아래쪽은 곤죽이 되어 완전히 으스러지고.
상체 또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꽉 끼었던 탓에, 관절의 마디마디가 짓뭉개졌다.
그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담은 꿈의 내용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후우.”
유성은 마침내 눈을 떴다.
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다리 쪽을 내려다보았다.
형체도 없이 으스러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멀쩡한 그의 하반신이 보였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는 굳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악몽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쯧. 쓸데없는 꿈이로군.”
과거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다니.
……환생을 한 뒤로는 줄곧 잊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 겪었던 전투가 생각 이상으로 그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날 이후로.
이시혁이라는 군인에게 있어 조종석에 앉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폐쇄된 조종석은 마치 그를 잡아먹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종석에서 짓뭉개져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을 이겨내며 그곳에 탑승하는 것은, 농담으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기억이 되살아날 줄이야. 정말로 오늘 꿈은 최악이로군.’
그는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찌푸린 미간에 깊은 골이 파였다.
……다만 한 가지.
조금 우스운 점이 있다면.
폐소 공포증은, 기갑 파일럿들이라면 가장 흔하게 가지는 증상 중 하나다.
그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조종석에 갇힌 채, 미친 듯이 물어뜯는 드라칸들에 의해 우그러지는 공간에서 맞이하는 죽음의 순간은 전장의 파일럿들이 대부분 겪는 최후의 순간이라는 의미였다.
유성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죽겠군.’
잠을 자고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피곤하기 그지없다.
정신은 불이 번쩍이듯 치솟은 채였지만 진득한 무거움이 그를 내리누르고 있다.
이것은 악몽에 가까운 꿈을 꾸었기 때문인가.
깨어난 유성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로 ‘날짜’의 확인이었다.
‘내가 잠든 지 고작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나.’
날짜의 확인.
그것은 그에게 있어 습관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그에 따라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나 사용자들의 능력이란 쓰면 쓸수록 점차 강해지는 것이지만, 그만큼 한 번 에너지가 바닥나게 되면 그 반발력도 만만찮게 되는 것이었다.
전장이라는 것은 마나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단 한 번에 모든 힘을 쏟아붓는 일종의 배터리 방출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유성이라도 한 번 방전되면 회복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이번 전투에서 유성은 의외로 크게 무리하지만은 않았다는 점이었다.
완전체를 상대로도 이렇게나 멀쩡할 수가 있다니.
그 이유로는 역시 그 소녀의 외형을 한 드라칸 여왕체 덕분이었다.
소녀에게서 흘러나오던 강렬함은 유성마저도 과거의 그가 가진 강함을 재현하게 만들었다.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후유증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덕분에 살았으니 만나게 된다면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해야겠군.’
그 정체가 드라칸의 여왕체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유성을 도왔고 그 덕분에 그를 포함한 모두가 살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를 전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그는 숙소를 나섰다.
* * *
“함선 메티스와의 통신이 연결되었습니다.”
“음. 알았다.”
사령관, 솔라스 란은 떠오르는 통신 화면을 마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함선 메티스와의 대면 자리였다.
통신 화면에는 예의 그 파일럿이 있었다.
칠흑의 코트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 드러나지 않는 모습을 한 파일럿.
함선 메티스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파일럿이 함께 서 있는 게 보였다.
사령관 솔라스 란은 그와 마주하자마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감사를 전하는 것으로 내용을 시작했다.
“고맙게 생각하네, 파일럿. 덕분에 살았군.”
[그렇습니까?]
들려오는 것은, 여전히 낮은 쇳소리가 뒤섞여 변조된 음성이었다.
우두커니 쳐다만 보는 파일럿의 시선에, 사령관 솔라스 란은 낮게 웃었다.
“그래.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뭡니까?]
조금의 예의도 없는 그저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반문.
그의 음성에 사령관은 저도 모르게 낮게 웃고야 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사령관을 앞에 두고서도 저런 태도인가.
확실히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베자리우스 E.X 콜로니는-.
눈앞의 파일럿 하나를 감당할 힘조차 없었으니까.
저 파일럿이야말로 바로 단신으로 완전체를 쓰러뜨린 괴물이었다.
“혹시나 수감되었다고 해서 유감이라든가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덕분에 저도 도움을 받았으니, 딱히 원망이라거나 하는 건 없습니다.]
“흠. 그런가?”
솔라스 란은 대꾸하며 태연히 턱을 쓰다듬었다.
뒤늦게야 눈치챈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저 흑색 파일럿은 베자리우스 소속의 군함들을 미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전투 내내 군함의 사이사이를 전장으로 삼아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박살 난 군함도, 기가스도, 제트기도 복구 불능 상태다.
그 피해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아마, 파일럿은 군함을 완전체의 시선을 가리는 미끼 용도로 내건 것이었을 터다.
상당히 괘씸하지만, 그 덕분에 결과 또한 확실했다.
그들은 공동의 적이었던 완전체를 쓰러뜨렸다.
[대신.]
“음?”
[완전체의 사체는 저희 쪽에서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뭐.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져가게.”
의외로 사령관 솔라스 란은 태연했다.
그는 대충 손을 휘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느긋한 그의 태도에 파일럿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솔라스 란에게 되물었다.
[의외로 사체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는 않으시는군요? 드라칸의 핵에 대해서는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솔라스 란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렇게 눈치가 없진 않아. 정작 싸움은 자네가 했는데, 이쪽에서 저걸 욕심내는 미련 맞은 짓을 할 리가 없지.”
[하긴, 안 된다고 하셔도 가져가려고는 했습니다. 안타깝군요, 반대해 주기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그의 솔직한 대답에 솔라스 란은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저 말투를 보라.
확실히 자신만만함을 넘어선 수준이다.
반대라도 했으면 정말로 힘으로라도 뺏어가겠다는 의미였다.
그러한 파일럿의 태도에 그는 턱을 쓸면서 대답했다.
“처세가 좋다고 해 주게. 자네한테 거스를 생각은 없거든. 누가 뭐래도 자네는 이곳 콜로니의 전력을 죄다 쓸어버릴 만큼 강력한 드라칸과도 일대일로 겨룬 괴물이잖나.”
[괴물이라.]
“혹시나 해서 묻지만, 이곳에 남지는 않겠지? 지금 이곳에는 여력이 더 이상 없어서 말이지.”
솔라스 란의 제의에, 파일럿은 그를 말 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대답조차 없다니.
명백한 거절의 의사였다.
“알아들었다. 파일럿.”
피식 웃은 사령관 솔라스 란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을 둘러다 보고는, 가볍게 경례를 했다.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에게는 꽤나 민폐를 끼쳤군. 사정이 급박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사과하지.”
[아닙니다. 사령관님.]
“대신, 사과의 의미로 말일세.”
[예?]
의문을 드러내는 라프티리아 함장에게, 솔라스 란은 씩 웃어 보였다.
“내가 선물이 될 만한 사실 하나를 말해 주지.”
솔라스 란은 웃으면서 그들에게 파일을 하나 보내주었다.
“사실 파일럿에 대한 제보는 이미 받았었네. 누군지 대략적으로 감은 오고 있는 상태였지.”
[예? 그게 대체 무슨…….]
“함장. 됐으니 파일이나 확인해 보게.”
[이 남자는 분명, 콜로니의 의원이라는 자가 아닙니까?]
“그래. 아마 이름이 부 막리스라고 하던가. 자네들의 함선에 타고 있는 그 남자 말이야.”
솔라스 란이 웃으며 건네준 파일을 확인한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아무래도 해당 이미지의 남자를 알고 있는 듯했다.
솔라스 란은 마지막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직 이 내용만큼은 테라 행성에 보내지 않았으니, 나 이외에는 파일럿이 누군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 그 의원이라는 작자는 알아서 하게나. 그 작자, 꽤나 불만이 가득해 보이던데 말이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베자리우스 E.X 콜로니과 함선 메티스 간의 통신은 끊겼다.
통신이 끊기려던 직전인 마지막 순간. 솔라스 란은 분명 목격했다.
화면의 한쪽에 함께 있던 파일럿이 주먹을 움켜쥐는 것을.
그의 주먹에서 미약한 푸른빛이 발해지는 것 또한 말이다.
저건 분명 감정이 드러난 것일 터다.
분명하다.
확실히 저 파일럿, 아니, 저 소년은 성질이 뻗친 모양새가 틀림이 없었다.
“큭큭, 크하하하!”
“……사령관님?”
통신이 끊긴 직후, 솔라스 란은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웃었다.
사령부의 모두가 그를 의아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에도 상관없이 그는 저 혼자 웃을 뿐이었다.
아마, 저 생도는 솔라스 란의 제보를 꽤나 감사히 여길 거다.
어찌 되었든 정체를 숨기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으니.
그렇기에 솔라스 란은 꽤나 싼값에 파일럿과의 원한을 지우는 데에 성공했다.
대가 하나 치르지 않고서 완벽하게 빚을 없애는.
정말이지. 썩, 훌륭하기 짝이 없는 교환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