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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53화 (53/200)

53화. 각성기(覺醒技)(5)

라프티리아 함장. 그리고 아스트라 부함장.

터무니없다.

단지, 그 생각 하나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각성자가 가진 또 하나의 능력인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그들이라도 알 수는 없었다.

각성자에 대해서는 지극히 일부의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강력한 수준의 초인들이며, 그들은 범인에 비할 데 없이 아주 위험스러운 능력을 가진 이들.

저마다가 다른 능력과 각성기를 가지기도 한, 말 그대로 마법과도 같은 능력조차도 겸비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밖에 알지 못하였기에.

생겨난 의문에 대해서는 결코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현상 자체의 원인에 대해서 찾는 것부터가 유성이라는 각성자의 존재 자체에 접근을 할 위험 요소가 있었으므로.

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현상에 대한 의문조차도 그저 조용히 삭힐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조차 벌떡 일어설 정도로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진 것은.

유성의 기가스 EF-05가 있는 뒤편의 공간이 갈라진 직후였다.

* * *

유성의 뒤편의 공간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두 기의 기가스가 갈라진 공간의 틈새를 찢어발기며 모습을 드러낸다.

기가스들은 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태연하게 통신을 보내왔다.

[여어.]

낯익은 모습. 낯익은 음성.

익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한 이들이 유성을 향해 말을 건넨다.

[쯧. 상황을 보아하니 네가 본체로군?]

“그래.”

통신을 걸어오는 두 파일럿의 생김새.

그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유성과 닮아있었다.

닮았다? 아니, 완벽하게 똑같았다.

음성도. 외견도.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이 타고 있는 기가스에 난 작은 흠집 하나하나마저도.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두 명의 존재들은, 유성 그의 과거에 속한 분신체였으니까 말이다.

유성은 시간을 다룰 수 있다.

그것은 비유나 한낱 은유 따위가 아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시간을 다룬다’.

과거 그가 기억하고 있던 강대하고 강대하던 타 각성자처럼 지극히 긴 시간을 다루는 일 따위를 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근 시간 내 정도는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공간을 가르고, 시간을 비튼다.

시공을 뒤틀면 그는 타인으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의 현현이 가능하다.

그리하여 행하는 것은 현 시대의 상식으로조차 불가능한 행위.

불과 수 분 이내에 위치한 과거의 ‘자신들’을 불러낼 수 있다.

모두가 유성 그와 동일하다.

생김새와 기억, 가진 능력과 경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일치한다.

실체를 가진 완벽한 분신들인 셈이었다.

그에 놀랐던지 드라칸 여왕체가 말을 건넸다.

[아빠. 이건 대체 뭐야? 아빠가 셋으로 늘어나다니!]

“……내 능력 중 하나. 단순한 잡기(雜技)라고 생각해.”

물론 단순한 잡능력, 잡기라고 하기에는 그리 가벼운 기술이 아니었다.

이것은 각성기의 발전형이다.

만만찮은 수준의 반동을 대가로 과거의 자신을 불러오는 상위 각성기.

그의 각성기인 사고 조작조차 단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주륵.

대답하는 유성의 황금빛 눈동자에서부터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제 자신의 부담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유성은 분신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이 세 명을 소대로 정한다. 명칭은 본체인 내가 알파(alpha), 왼쪽이 베타(beta), 오른쪽이 감마(gamma)다.”

[명심해라. 본체. 제한 시간은 3분이다. 그 시간 내에 끝을 봐야 해.]

[다물고 준비나 해라, 베타. 놈이 차분히 기다려 줄 것 같지가 않거든.]

둘은 반발 따윈 하지 않았다.

대신, 놀랍도록 빠른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사를 통일하고 자신의 본체에게 미약한 경고를 할 뿐이다.

말 그대로 합리적인 사고였다.

당연한 것이다.

모두가 과거의 유성이자, 그 자신이었으므로.

수 분 이전 시간대에 속한 자신이기에 어느 정도 기억의 차이는 있어도 분명 하나하나가 실체를 가진 그였다.

사고와 생각하는 방향성까지. 그러한 모든 것이 동일한 그 자신이었다.

순간, 오른쪽에 선 감마의 EF-05가 흐릿하게 변하다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치 통신이 지직거리며 흐트러지는 듯한 광경.

그대로 흐트러져 사라질 뻔한 감마가 잠깐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이런. 내 쪽은 오래 못 버티겠는데. 마력이 불안정해. 내 제한 시간은 2분이 고작일 듯해.]

[좋지 않은데.]

“서두르지.”

유성의 각성기 차원분신은 시공에 간섭해서 생겨난 결과물이었다.

드라칸에게서부터 유래한 기술이지만 그런 것 따윈 지금 상황에서 중요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전력을 다할 수 없다. 설령 드라칸의 여왕체라는 소녀의 도움 덕에 가능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불러낸 분신체 또한 불안정하기 그지없었다.

[■■■■?]

놈이 드물게 감정을 드러냈다.

하긴 당연한 반응이다. 놈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해괴할 수가 없을 터였다.

단 하나뿐이었던 기가스가 거짓말처럼 수가 늘어나더니 놀랍도록 동일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녀석은 의아한 듯 유성과 그의 분신체를 바라보며 말문을 건넸으나, 그런다고 친절하게 대답해 줄 리가 없었다.

유성의 입장에서 놈은 양립하지 못할 적이다.

둘 중 한쪽은 죽거나, 사라져야만 한다.

펑-!

순간, 군함에서부터 쏘아진 포격이 완전체의 머리에 적중했다.

강렬한 폭음과 함께, 놈의 시야가 가려졌다.

“지금이다!”

[간다!]

신호와 함께 유성의 양쪽에 서 있던 감마와 베타가 덤벼들었다.

세 기의 EF-05가 일제히 완전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가스들이 일제히 휘두르는 대검이 놈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측면을 노리고 고속으로 날아들었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합격술과 함께 세 방향에서 대검이 놈을 찍어 누를 듯 휘둘러졌다.

전혀 피할 수 없는 그 치명적인 일격들을.

폭발에 가려져 시야가 분명 막혀 있었을 놈은 무릎을 들고 팔목을 내밀고 한쪽 팔을 내미는 것만으로 가볍게 막아냈다.

[큭?]

“이 자식……!”

세 방향에서 달려든 공격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가볍게 막아낸 모양새였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도는 모양인지, 세 기의 기가스가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유성은 양측의 분신들을 향해 지시했다.

“지금부터 베타가 우리를 리드한다. 나와 감마는 놈의 양측에서 시선을 분산시켜 이 자리에서 놈을 사냥한다. 놓치면 다음에는 우리들의 기술마저 보고 배워 더 강해져서 나타날 거다.”

[알겠다.]

[좋아.]

대답은 즉각 튀어나왔다.

어차피 모두가 그 자신이나 마찬가지였다.

과거를 공유하며, 심지어는 사고마저도 같기에 한 줄기의 대화만으로 모든 정보 교환은 충분하다.

베타가 정면에서 놈과 힘 싸움에 들어간 사이, 유성과 감마가 양측에서 검을 찔러 넣었다.

콰득!

[■■■■!]

대검이 놈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놈의 갑각질이 깨져 나가며 파편이 뜯겼다. 푸른 체액이 한 움큼 튀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처음으로, 놈에게 공격이 ‘닿았다.’

놈이 당황해 몸이 굳은 직후.

펑! 퍼버벙!

요란한 굉음과 함께, 연속적인 포격이 놈의 몸체를 두들겼다.

순식간에 치솟는 포화가 놈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

놈이 세찬 고함을 내질렀다.

가뜩이나 눈앞의 세 기가스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콜로니와 군함에서부터 쏟아지는 포격은 소름이 돋을 만큼 정밀했다.

심지어 이렇게 가까이서 맞붙는 와중이라면 군함의 포격이라도 빗나갈 법한데 단 한 번도 엇나가는 게 없다.

완벽하게 녀석만을 향해 적중하는 것이다.

완전체는 처음으로 당황의 기색을 드러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 하나였을 기가스가 셋으로 늘어났다.

심지어 이것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한 명만 해도 충분히 완전체, 놈의 시선을 완벽하게 이끌기 충분한데 그 수가 무려 셋이었다.

당연하지만 제아무리 놈이라도 벅찰 수밖에 없다.

기가스들이 합을 이루어 그 거대한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완전체는 구석으로 내몰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손발이 꼬이고 방어에 틈이 생겼다.

불길하다. 지극히 불길한, 패배의 예감이 치솟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완전체는 결정해야 했다.

[■■!]

물러선다.

완전체는 그렇게 결정했다.

상황이 좋지 않음을 예감하자마자 즉각 도주를 위해 활짝 펼친 날개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푸른 빛이 놈의 네 장의 겉날개에 핑, 모여들었다.

한 점을 모으듯 날개에 마력을 모으는 광경에 놈의 생각을 모두가 눈치챘다.

[저 자식, 도망치려고 한다! 감마!]

[내가 간다!]

감마가 즉각 쏘아지듯 접근했다.

제 자신의 몸은 생각조차 않는다는 일직선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콰득!

[컥-!]

감마의 기가스 EF-05의 몸체가 반격하는 놈에 의해 꿰뚫렸다.

자리가 좋지 않다. 하필이면 조종석이 공격당했다.

도주를 하려던 순간에조차 빈틈을 노리고 있던 놈이었던 탓에, 알고서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신체들은 정확하게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알고 있었다.

다른 둘이 죽더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본체는 하나뿐이었으니.

그러므로-.

유성의 분신체, 감마(gamma)는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환하게 웃었다.

[죽어라. 괴물 자식.]

[■■?!]

감마는 당황에 젖은 기색을 드러내는 완전체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더니.

남은 한쪽 팔을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찔러 넣었다.

EF-05의 가슴팍에 자리한 그것.

그것은 기가스의 동력원이 자리한 드라칸 핵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부순 감마의 선택은.

명백한 자폭이었다.

쾅!!

기가스의 동력이 터지며 거대한 폭발이 완전체를 집어삼켰다.

시커먼 우주의 한복판에, 주홍빛의 원형 폭발이 일었다.

폭발에 휩싸인 놈을 향해 베자리우스 E.X 콜로니 소속의 군함과 포탑들이 포격을 쏟아부었다.

무시무시한 초고화력의 열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 *

쿠구구궁-.

우주의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포격은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폭발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적어도 1분 이상은 지나서였다.

[내가 확인하지. 본체인 넌 여기서 대기해.]

“그래.”

베타가 본체인 유성 대신 스스로 앞으로 나섰다.

죽음의 공포가 존재하는 것은 분신체라 하더라도 분명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나갔다.

본체를 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유성의 분신체는 잘 알고 있다.

사실상 방패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콰직.

그 순간, 가라앉고 있던 폭발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송곳과도 같은 공격이 날아들었다.

섬뜩한 소음과 함께 단숨에 기가스의 장갑을 깨부수고 박혀 든 공격이.

분신체, 베타가 탑승한 기가스의 한쪽 어깨를 날려 버렸다.

반응할 새조차 없는 순간적인 기습이었다.

[커윽?!]

박살 나 버린 기가스의 몸체를 콰직 움켜쥐는 거대한 손이 나타난다.

놈은 이 상황에서조차 살아 있던 것이었다.

[■■■■-.]

드러난 완전체의 모습은 꽤나 처참했다.

주변의 우주가 비춰 보일 만큼이나 매끈했던 적색의 갑각 재질은 완전히 헤집어졌으며, 신체의 일부는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깊은 상흔에서는 푸른 체액이 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전체는 볼품없는 외견을 하고 있었다.

분명 다 죽어가는 게 확실하지만, 여전히 기세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놈의 푸른 동공이 베타의 조종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제기랄. 꽤 아픈걸. 하하.]

유성의 분신체, 베타가 쓰게 웃었다.

분신이라도 고통은 여지없이 느낀다.

죽음의 섬뜩함도, 생각도 모든 것이 본체와 동일하다.

하지만 본체가 아닌 분신체인 이상,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본체의 생존을 위한 최대한의 기여를 할 뿐이다.

베타가 놈을 단단하게 움켜쥐었다.

서로가 서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박한 상태에서.

베타가 말문을 열었다.

[본체. 나도 이만 퇴장한다. 그만 끝내.]

“수고했다. 베타.”

[그래.]

콰득.

뒤편에서부터 화살처럼 날아든 로켓 대검이 베타와 완전체, 둘을 일거에 관통했다.

둘의 복부에 거대한 관통상이 뻥 뚫렸다.

그 직후.

베타와 완전체에게서부터 흘러나오던 푸른 안광이.

깜빡이다 이내 힘없이 꺼진다.

둘 모두, 완전한 침묵을 한다.

짧은 전투의 종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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