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각성기(覺醒技)(4)
“에너지 실드(Energy Shield)?”
유성은 제 눈을 의심했다.
불가능한 일이 그의 눈앞에서 일어났다.
기가스 EF-05에 이런 기능 따윈 있지 않다.
그럴 가능성의 여지조차 없었다.
에너지 실드라는 건 적어도 함선 단위의 고출력 매개물에서나 가능한 기술력이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고오오-!
마력으로 인한 새파란 안광을 빛내며, 소녀가 웃었다.
“어때, 아빠?”
“이거, 설마. 네가 한……?”
“앗. 쟤 또 온다.”
“이 자식이!”
철컥, 철컥.
당황할 새도 없이, 유성이 대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EF-05의 손에 쥔 대검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더니 삽시간에 기가스의 키만큼이나 커다랗게 변신했다.
유성은 전력으로 놈을 향해 휘둘렀다.
[■■■■!]
완전체 드라칸. 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회피하고, 역으로 유성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드라칸과 유성.
두 개의 푸른 선이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초진동검은 버렸다.
상위체 드라칸의 전용 무장이었던 이 대검이 훨씬 대단한 위력과 능력을 겸비한 탓이다.
대검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검술(大劍術)이라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검술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유성이었다.
그는 근접전투의 달인이기도 했다.
어떠한 무기도 그의 손에 들린다면, 평등하게 뛰어난 위력을 낸다.
드라칸의 무장조차도 다를 바 없다.
아니, 그러한 경우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욱 뛰어난 위력을 냈다.
순수한 마력의 출력을 극대화한 인외의 드라칸 전용 무장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어떠한 무기보다도 뛰어나다.
에너지 출력의 가성비는 비할 데 없이 압도적이고 그렇기에 훨씬 강력했다.
일반적인 파일럿들에게 있어서는 컨트롤하는 행위 자체가 어렵기 그지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지만, 유성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드라칸 전용 무장들은 유성에게는 전투력의 한계를 넘게 해 줄 무기였다.
그는 어떠한 무장이건 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전력을 낼 수 ‘있다’.
유성의 것이 된 드라칸의 무장, 로켓 대검이 푸른 불꽃을 뿜어냈다.
그를 노리고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완전체의 공격을 맞상대했다.
검면을 세워 막고, 튕겨 내고, 벤다.
기가스를 타고 흐르는 마력이 대검에까지 도달하며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그것은 마치 대검이 푸른 불꽃을 뿜어내는 듯한 광경이었다.
검이 푸른 불꽃을 뿜어낼 때마다, 기가스가 쏘아지듯 움직였다.
그는 로켓 대검을 거대한 출력 무장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무기이자 방패로써 활용했다.
터무니없을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행위였으나 그럼에도 그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백전노장 이시혁의 환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가스의 한계를 벗어난 것까지 해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무장은 무장일 뿐.
기체 자체의 성능을 넘어서는 충격을 받아 내는 것만큼은 그로서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큭, 기가스가 삐걱거린다.’
완전체의 터무니없는 출력을 가진 공격을 받아 낼 때마다 기체가 떨린다.
공격을 한 번 한 번 받아치는 것이 버겁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잘 봐, 아빠!]
아이의 형상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기가스의 내부로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마치 물에 잠기듯이.
“이게 무슨?!”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작 유성은 고개를 돌릴 틈조차 없었다.
지금 눈길을 돌렸다간 그 찰나의 순간 확실하게 당하고 말 터였다.
그 탓에 온전하게 눈앞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소녀가 사라진 후의 변화는 즉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성 그는- 기가스를 타고 흐르기 시작하는 막대한 마력을 온전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마치 내부에서부터 강렬한 기운을 머금은 태양이 타오르는 듯한 이 감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감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기가스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졌다.
아니, ‘점차’ 빨라지고 있다. 가속에 가속을 더하듯 빨라지고 있었다.
EF-05가 거의 이전 상위체에 비견될 만큼이나 무지막지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원래 성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빠직. 빠지직.
동시에, 기가스의 외관 전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나무의 벽면을 타고서 수많은 넝쿨 식물들이 자라나듯.
그의 기가스 EF-05의 가슴팍에 자리한 드라칸의 핵에서부터, 내부 뼈대를 이루는 프레임 그리고 외부 장갑에 이르기까지 푸른 줄기들이 무수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치 빛나는 푸른 혈관들이 비춰 보이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건?”
유성은 제 눈을 의심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변화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마치 드라칸과도 비슷한 형상이었다.
그가 탑승한 기가스 EF-05가, 그 형상이 마치 드라칸과 기가스이 합쳐진 듯한 기이한 외관으로 점차 변질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변화는 기가스의 손에 쥐어져 있는 로켓 대검에까지 이어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진한 마력을 뿜고 있는 로켓 대검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물밀 듯이 흘러나와 놈을 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
쩡-!
처음으로 유성은 놈, 완전체 드라칸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냈다.
공격을 흘려내지 않고, 정면에서 분명하게.
공격과 공격이 맞닿았다.
[-■■■■?]
놈, 완전체가 처음으로 제 감정을 드러냈다.
놈의 감정은 분명 의문이었다.
녀석은 처음으로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낸 유성의 상태를 한 번에 꿰뚫어 보고는 의문을 드러내었다.
의아하기는 유성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는 공격을 흘려내도 그 충격이 조종석 내부에까지 울렸다.
매 순간마다 터무니없는 충격이 그의 육체에까지 도달할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정면에서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하지만 한창 전투의 와중이었다.
그 사실에 놀라거나 이를 제대로 체감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그저 간단히 결론을 지을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군. 그건 바로, 기가스의 성능이 말도 안 되게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
이건 단순히 핵만을 교체해 출력을 향상시킨 정도가 아니다.
기가스의 내부 프레임 전체가 전혀 다른 새것처럼 변하기라도 한 듯 강해지고 있었다.
보다 튼튼하며,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현상이 기가스의 구조 전체를 변질시키고 있었다.
눈에 보이고 느껴질 만큼이나 빠른 변화였다.
심지어 그의 마력마저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고작 한 줌의 마력이 전부였던 그의 전신에 지금은 힘이 넘칠 듯 차오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는 유성에게, 형체도 없이 사라졌던 소녀가 말을 건넸다.
[히히, 어때?]
심히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
그것은 마치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한 어린아이의 음성이었다.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직접적으로 울린다는 점에 의아해하면서도, 유성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며 물었다.
“지금…… 어디서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나, 지금 여기 드라칸의 핵에 있어. 이 아이의 성장력을 내가 가파르게 성장시키고 있거든.]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지만, 내게 힘을 주고 있는 것을 비롯한 모두가 드라칸으로서의 능력이라는 건가?”
유성은 솔직하게 물었다.
그는 인간이다.
제아무리 그가 인류 전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할지라도, 그 감각은 결국 인간이라는 종의 수준에 한정된 것이었다.
반면 드라칸은 전신의 피와 살이 마나라는 소재로써 이루어져 있었다.
제아무리 유성이라고 할지라도 진짜 마력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드라칸에 비할 바가 아니란 소리였다.
하물며 그중에서도 특별한 개체인 드라칸의 여왕체라면.
더더욱 그러한 게 당연했다.
[응! 맞아!]
“하. 진짜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군.”
유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미래의 일이란 어느 것 하나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 맞는 듯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드라칸 여왕체의 도움을 받아 드라칸을 상대한다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결국 처음부터 오로지 한 가지만이 확실할 뿐이다.’
대검을 수직으로 치켜들며, 유성은 생각한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아, 돌아간다.’
고민할 필요 따윈 없다.
단 하나의 간단한 답이 기다릴 뿐이다.
싸우고 살아남는 것.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순간.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힘이 넘치는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겠지. 지금이라면, 마력을 걱정할 필요 따윈 없다.”
힘이 넘친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그를 억압하던, 그 제약이 한 꺼풀 벗어졌다.
기가스의 내부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력이, 힘이, 기운이 강렬하게 유성을 과거의 그가 가진 강함의 경지로 돌아가게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의 손에 붙잡힌 기회였다.
기가스 EF-05의 대검이 이제까지 이상으로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각성기(覺醒技).”
변화를 감지한 완전체가 처음으로 물러서서 거리를 벌린 그 순간.
감고 있던 유성의 눈이 뜨였다.
그의 눈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차원분신(次元分身).”
유성의 뒤편의 공간이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두 기의 기가스가 갈라진 공간의 틈새를 찢어발기며 모습을 드러낸다.
기가스들은, 유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태연하게 통신을 보내왔다.
[여어.]
낯익은 모습. 낯익은 음성.
익숙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한 이들이, 유성을 향해 말을 건넨다.
[쯧. 상황을 보아하니 네가 본체로군?]
말을 건네는 이들은 유성의 과거에 속한 존재들이었다.
* * *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광경에 다급한 상황조차도 잊고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저게…… 대체 뭐지?”
아스트라 부함장. 그리고 라프티리아 함장.
둘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기가스의 내부 프레임에서부터 자라나 뒤덮인 비칠 정도로 투명한 혈관.
거기에 줄기처럼 자라난 정체 모를 것들이 기가스의 외부 장갑을 뒤덮기까지 한 그 모습은.
이질적이다 못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기가스라기보다는 차라리 인간형의 드라칸이 연상되는 듯한 형상이었다.
“기가스 EF-05로부터 고에너지 반응 확인! 거의 상위체 드라칸에 준할 정도의 마력 반응입니다!”
침묵하던 라프티리아 함장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터무니없군.”
둘은 고위 장교로서, 본성인 행성 테라의 상부로부터 각성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지금 유성이 탑승한 EF-05가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는 듣거나 본 적이 없었다.
터무니없다.
단지, 그 생각 하나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그들조차 벌떡 일어설 정도로 더 충격적인,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진 것은.
유성의 기가스 EF-05가 있는 뒤편의 공간이 갈라진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