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각성기(覺醒技)(2)
완전체란 강대하기 그지없는 적이었다.
군함조차도 감히 받아 내지 못하는 그 압도적인 출력의 공격은, 장갑이 얇은 기가스로는 단 한 번만 스쳐도 박살이 날 것이 분명했다.
인간의 무장. 그리고 무기들.
그것들의 능력이 통용되는 한계란, 명백하게 상위체까지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놈들이 맞아준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하물며 상위체의 드라칸조차도 귀신같이 기미를 읽어내고 피해내는 함대의 끓는 듯한 에너지의 포격을.
그보다도 더욱 에너지 감지에 예민한 존재인 완전체가 읽어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녀석은.
일전과 같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의 기습이 아니라면, 빤히 보이는 함대의 포격에 순순히 맞아줄 리가 없는 존재였다.
[■■■■-!!]
녀석은 완벽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쏟아지는 함대의 포격이란 포격을, 죄다 미끄러지듯 회피하며 역으로 함선과 포탑들을 박살 냈다.
놈의 예리한 손톱이 주욱 함선의 장갑을 긁어내면, 어김없이 주홍빛의 폭발이 터져 나오며 우주의 한복판을 밝히는 빛이 일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사냥.
그뿐이었다.
* * *
현재 함선 메티스는 베자리우스 E.X 콜로니를 빠져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콜로니를 저버리는 도망의 선택.
확실히 문제가 있는 듯한 결정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적은 강대하고, 반대로 인류는 약해 빠졌다.
아무리 군사 시설이라 할지라도 이곳 콜로니가 이길 것이라 보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바람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곳 콜로니는 수십 분 내로 완전히 무너져 내릴 터였다.
이미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함선 메티스는 십만에 가까운 사람들을 태우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몰살의 가능성이 있는 전투를 택할 순 없어.’
이곳 콜로니는 원래부터도 완전체와 싸우고 있었다.
즉, 그러므로.
함선 메티스가 있었든. 아니었든 간에 이 사달은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드시 벌어졌을 거라는 의미다.
‘이제까지는 이 근방을 지키고 있던 두 상위체 녀석들 때문에라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에까지 완전체의 직접적인 위협이 닿지 않았을 터. 하지만 그놈들이 죽은 이상, 다음 차례가 이곳이 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제껏 완전체를 거슬리게 하던 상위체라는 두 마리의 방해꾼이 사라졌다.
그 결과. 완전체 드라칸은 완전히 이곳을 헤집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제 녀석에게는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방해할 존재도, 그러할 힘을 가진 존재도 없다.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 이곳에 완전체를 거스를 만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딱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개 생도에 불과한 유성.
오로지 그만이 이곳에서 유일할 터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성은 그 도주를 위한 시간을 끌기 위해 구태여 나서려 하고 있다.
고작 20여 분이라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 말이다.
유성은 오면서 보았던 바깥의 상황을 떠올렸다.
함선 메티스가, 철저할 정도로 콜로니에 ‘묶인 채’로 정박되어 있던 상황을.
‘함선이 통째로 얽매여 있었지. 아주 철저할 정도로.’
그 정도 수준으로 묶여 있다면.
정박된 함선을 풀어내는 과정만 해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닐 터였다.
그러므로-.
‘그 20여 분도, 사실은 최소한으로 이야기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러니 넉넉하게 삼십 분은 버텨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정말로 우스워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연속된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서일 뿐이다.
‘젠장 맞을. 이번만은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산 넘어 산이다.
어려운 상황만 하더라도 벌써 몇 번이나 넘겼는데, 여전히 죽을 고비가 코앞이다.
하지만 유성은 여기서 죽을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 콜로니가 또다시 터져 나가든 아니든, 그는 살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기에.
‘살아서, 부모님을 다시 만날 거다.’
그렇기에 그는 다시금 전투에 나서기로 했다.
함선 메티스가 없이는, 그도 죽는다.
좋든 싫든 간에 운명 공동체였다.
대형 함선은 태양계를 가로지를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꽈악.
유성은 주먹을 쥐었다.
긴장감에 숨이 턱, 막혀오는 게 느껴졌다.
이번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는다면 정말로 죽는다.
완전체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극한의 경험을 쌓고, 수많은 전투를 이어오며 마침내 진화의 방향성을 이룩한 놈들은 절망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이나 강력하다.
‘아마도. 한순간. 단 일격이라도 허용하면 난 죽는다. 기가스의 얇은 장갑으로는 스치기만 해도 박살 나겠지.’
오면서 목격한 완전체의 일격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가스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고 박혀 드는 그 강렬한 일격을.
놈의 공격을 제대로 받으면, 유성 그라도 한순간에 우주의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땀이 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 격이 다른 출력과 파워를 지닌 놈은 경험마저도 압도적이었으므로.
그때였다.
“유성!!”
“음?”
격납고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 다급한 음성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뒤편에서 달려오는 인물에게로 향했다.
“……라피스?”
유성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었다.
“라피스. 여긴 왜 온 거야? 설마 기가스에 탈 생각은 아니겠지?”
“멍청아! 그럴 생각 없으니까, 어차피 네가 말릴 걸 알고 있어! 이거나 가져가!”
라피스는 자신의 품에서 꺼내든 주먹만 한 주머니를 그에게 내밀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제 품에 가려진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뭘 가져가라는 거지? 이게 뭐길래?’
유성은 미간을 모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다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주머니 안에 든 무언가가 지닌 마력량이,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무슨 신형 마나 포션이라도 있는 건가?’
잠시간 라피스가 내밀던 것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유성이 물었다.
“뭘 가져가라는 거야?”
“잔말 말고!”
“웃?”
라피스가 홱 밀치듯 그것을 유성에게로 넘겼다.
그러고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라도 하듯 양쪽을 두리번거리더니 속삭였다.
“일단 가져가. 알았지?”
“……그래.”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믿음이 있었다.
라피스가 그에게 방해될 것을 넘길 리가 없을 것임을 말이다.
과연 이것이 완전체와의 전투를 앞둔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게 있을까 싶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라피스였다.
유성은 순순히 받아들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간다.”
“조심해, 유성.”
쓰게 웃은 라피스가 손을 흔들었다.
* * *
몸을 돌린 유성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얼음이 연상될 만큼이나 찬 그의 얼굴은, 방금 전까지 라피스를 대하던 그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조차 어려울 정도로 굳어있었다.
전투에 돌입해야 할 시간이 왔다.
* * *
[사출로 레디. 셋.]
[진로 이상 무. 클리어.]
[기가스 EF-05 사출 세팅 올 클리어(All Clear).]
[기가스, 사출합니다!]
쿠구구구-.
사출로에서부터 쏘아지듯 멀어지는 유성의 기가스 EF-05를 보며, 라피스는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믿어도 괜찮은 거겠지?”
다른 방도가 없기에 유성에게 건네주었지만.
그럼에도 의심과 의문, 걱정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라피스의 표정은 그리 편치 않았다.
그저 유성이 안전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사출로 레디. 셋.]
[진로 이상 무. 클리어.]
[기가스 EF-05 사출 세팅 올 클리어(All Clear).]
[기가스, 사출합니다!]
유성이 조종간을 통해 마력을 기가스에 불어넣는 순간, 기가스의 등 뒤에 달린 제트팩이 불을 뿜었다.
쿠아아!
급가속하며 그의 EF-05가 사출로를 타고 쏘아졌다.
‘큭.’
사출로에서 쏘아지는 순간, 유성은 강렬한 수준의 압력을 받았다.
마력을 통해 강화한 신체로 버텨내며, 그는 사출로의 가속을 기가스와 함께 받아 내었다.
가속과 함께 유성의 시야가 뒤편으로 주욱 밀려난다.
사출로를 따라 이어지는 빛으로 점철된 신호 라인이 뒤로 죽죽 밀려 나가며 하나의 선처럼 보이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그가 탑승한 기가스 EF-05가 쏘아지듯 나아갔다.
새카만 암흑과 별들로 가득한 우주 공간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쿠구궁-. 쿠궁.
전장의 한복판.
폭음이 들리고, 폭발이 난무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저 폭발의 중심지가, 바로 완전체가 자리한 곳일 테지.
전장으로 진입한 유성의 시선이 힐끗 아래로 향했다.
그의 발아래에는 아주 작은 크기의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기껏해야 주먹만큼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아, 마나 포션 한두 개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주머니가.
‘대체 라피스는 내게 뭘 넘긴 거지?’
의아함이 생겨난다.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마력량이었다.
유성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손을 가져다 대려던 찰나.
주머니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게 무슨?”
유성의 표정이 바짝 굳었다.
안에, 분명 움직이는 뭔가가 들어 있었다.
그가 당황으로 몸이 굳은 그 순간.
“아빠!!”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유성의 품에 안겼다.
한창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의 순간.
크게 긴장했던 유성은 그만큼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주머니가 꿈틀거린다 싶었더니 이내 웬 어린 여자아이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유성은 이 난데없는 상황에 놀라 그대로 굳었다.
그 작은 주머니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갑자기 유성의 품에다 대고 아이가 제 몸을 부비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를 아주 반갑게 여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히히히.”
‘이 작은 주머니에서 어떻게 사람이?’
몸이 굳은 것도 잠시였다.
“넌 뭐야?”
잠시간 유성을 올려다보던 여자아이는.
곧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아빠?”
“……뭐?”
유성의 표정이 모호해졌다.
뜬금없는 소리에 황당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바짝 굳은 얼굴의 그는 대체 이 소녀가 어떻게 여기 들어온 것인지가 의아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야. 빨리 돌아가야…….”
“아빠. 나야. 아빠가 직접 쟤한테서부터 구해서 데려왔잖아. 여기로.”
“무슨 소…….”
소녀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그곳에는, 완전체의 드라칸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군함과 방어 체계를 깨부수는 그 압도적인 파괴 행각을 벌이는 녀석을 가리키면서.
아이는 조금의 두려움조차 느끼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나야.”
대답과 함께, 소녀의 두 눈이 새파란 빛의 에너지를 표출한다.
소녀의 눈에 일렁이는 푸른 기운.
“너는?”
그것이 마력임을 유성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 소녀는 결코 평범치 않았다.
그에 따라 마찬가지로 천천히 시선을 돌린 유성 또한 시퍼런 안광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낱 여자아이를 향한 시선이라고는 밑을 수 없을 만큼 서늘한 시선이었다.
안광을 빛내는 유성의 눈동자가.
소녀의 심장 언저리에 자리 잡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커다란 에너지를 머금은 ‘핵’을 발견했다.
“설마?”
유성 그의 눈이 대번에 급속도로 커졌다.
소녀에게 자리한 그 강력한 에너지는, 그에게 있어선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드라칸의 핵이라는 이름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