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여왕체, 리브(2)
사령관. 솔라스 란.
그는 지금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을 상대로 강압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콜로니의 사령관이라도 이토록 막무가내일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이유는 정말이지 명백했다.
그만큼. 저들 또한 급하다는 의미였다.
함선 메티스가 한시라도 빨리 행성 테라로 움직여야 하듯이.
완전체를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기에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웃음 따위는 어느새 가라앉은 서늘한 눈과 표정으로,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에게 선고하듯 말했다.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 그리고 함선 메티스는 이 순간부로-. 사령관 솔라스 란의 결정에 의하여 이곳에 강제적으로 정박한다.”
그것은 선고였다.
“이견은 허용치 않겠다.”
그 말을 끝으로, 솔라스 란은 휙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결국.
유성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그들에 의해 연행되어야 했다.
* * *
“……쯧.”
유성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침대에 누웠다.
푹신하다. 몸이 깊게 파고들어 묻혔다.
침대는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곳에는 좋은 가구. 좋은 음식이 있었다.
웬만한 수준의 콜로니에서는 보기 드문 사치형 품목 중의 하나인 과일 들도 잔뜩 놓여 있었다. 값비싼 음식들마저. 원한다면 얼마든 먹으라는 것처럼 말이다.
겉으로만 본다면 그렇게 괜찮은 듯 보이는 곳이었으나.
정작 이곳의 목적이 문제였다.
그를 가두기 위한 것, 바로 그러한 것이 이 장소의 이유였으니.
물론 일반적인 시설 따위가 아닌, 깔끔함이 서려 어지간한 호텔에 준할 정도였으나 그럼에도 이곳은 누군가가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즉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곳은 감옥이라는 소리다.
“음.”
유성은 누워서 제 손에 채워진 수갑을 바라보다 마력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조금도 반응이 없군. 마치 육체가 한 줌의 능력도 없던 이전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아.’
마나 능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명백해 보였다.
바로 마나 능력이 수갑에 의해 막혀 버린 탓이다.
마력을 흘려 봐도 마찬가지였다.
유성은 힘을 주어보았다. 하지만 조금도 꿈쩍 않았다.
능력을 완벽하게 봉인당했다.
한 줌의 마력조차도 끌어올릴 수가 없다.
‘어지간히도 튼튼하군. 부서질 것 같지가 않아.’
예전 지구 시절의 것들보다도 한 차원 발전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도 과거의 것들은 어느 정도 허점이 있어서 부수려면 그것이 가능했는데, 지금의 것들은 그런 것들을 모두 보완한 모양이었다.
최근의 수갑은 전부 마나 사용자들을 위주로 해서 제작된 것들이었다.
유성이 수감된 곳과 수갑 또한 모두 그러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마나 능력을 사용하는 범죄자들을 붙잡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된 것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육체 능력만으로 풀지는 못하겠군.’
미간을 찌푸린 유성은 금세 포기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가만히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응시했다.
금빛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감옥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는 짙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 감옥을 무작정 빠져나가 걷고 싶은 충동감으로 가득했다.
그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행성 테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부모님들도 한참 걱정하고 계시겠지.’
아직까지 제대로 연락조차 못한 그의 부모님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그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깊은 답답함은 금세 꼬리를 물 듯 이제껏 그가 행해온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 정체를 알기 위해 가면을 벗겨내려 하지는 않는다는 점 정도인가.’
만약 그들이 가면을 벗겨내려 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터다.
마나 능력을 봉한 이상, 유성은 한낱 일반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러하지 않는다는 점은.
유성의 반발을 필요 이상으로 사지 않기 위해서일 터였다.
그는 이곳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군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재다.
사실상, 완전체를 상대하기 위한 유일한 마나 사용자.
그러므로 비록 가두고는 있으나 그를 전력으로 써먹으려 한다면 반발을 사지 않으려 할 것은 당연한 조치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마치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 연속해서 출현하는 드라칸들과, 행성 테라에서 그를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들까지.
사고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졌다.
불과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사건들을 겪어왔기 때문인가.
유성은 자신의 시간 감각이 어그러졌음을 알았다.
침대에 누운 유성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빈틈없이 그의 몸을 가린 코트와 가면으로 인해서다.
그의 육체는 수갑에 의해 능력이 막혀 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때문에 유성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타이밍이야 조금 엇나간 듯 보이겠지만,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므로.
등을 벽에 기대고, 차분히 숨을 가라앉혔다.
금세 정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초조하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한 점으로 모으듯 집중하고 내면을 가라앉혔다.
이럴 시간이 없다.
유성은 빠르게 성장해야만 했다.
자기 관조라 하는 것.
혹은 명상이라 하는 것.
그는 마나를 다루는 능력만이 아직 성장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것에 대한 경지는 여전히 과거 그대로였다.
단순히 육체의 그릇만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눈을 감고, 의식을 침잠시켰다.
육체의 내부 그리고 외부 대기의 움직임을 따라 흩날리는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능력은 봉해졌으나, 그가 느끼는 이 감각마저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족쇄에 의해 철통같이 묶여 있지만 마나 사용자들의 수련이란 건 단지 몸의 내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온전히 다루는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고등한 수준의 마나 사용자라 칭해진다.
가령, 같은 마나 사용자였던 아스트라 부함장이 유성을 보며 각성자라고 착각을 할 정도라는 것은.
그것은 유성 그가 주변의 에너지 흐름을 정말이지 완벽에 가깝게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그는.
대기를 떠도는 마나의 흐름에 일순간 끊음을 주어 공간 사이의 ‘단절’을 이루어 내거나, 반대로 공간의 빈 사이사이의 틈을 메꾸어 보다 튼튼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육체에 쌓이는 마나의 양이 많을수록 강력한.
마나 사용자들의 육체가 일반인에 비할 바가 없을 만큼 강력한 이유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유성이 드라칸과의 매 전투시마다 상처투성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이제까지의 유성은 부족한 마나량을 포션을 마시는 것으로 때우거나, 그도 아니라면 기가스에 울리는 충격을 스스로의 육체로 직접 받아 내어 감당해 내는 쪽을 택했다.
당연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것은 실력 있는 기갑 파일럿들도 하지 않는 미친 짓이었다.
맨몸으로 교통사고 수준의 데미지를 감수하는 쪽을 스스로 택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보다 강한 힘을 손에 넣어야 해.’
유성은 시간을 다룰 수 있다.
거짓이나, 과장된 표현 따위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그는 정말로 시간을 다룰 수 있었다.
일전에 그가 사용했던 각성기가 바로 그러한 능력 중 하나였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오로지 그 자신만의 사고만이 급격히 가속하는 그것은 명백한 시간의 상대화 능력이었다.
‘가장 낮은 수준의 각성기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시간 계열 각성기의 기반이 되는 것. 하지만 완전체를 상대하려면 고작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유성에게 필요한 것은 비장의 한 수였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 번 정도는 목숨을 부지하는 게 가능한 능력.
압도적인 출력을 자랑하는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적어도 누구도 대처하지 못할 그러한 능력의 필요가 말이다.
예를 들자면. 보다 강한 능력의 각성기와 같은 것처럼.
‘최소한 무리를 해서라도 하나의 각성기를 더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은 되어야 해. 그게 아니면 정말로 끝장이다.’
제아무리 유성이라도, 한순간에 급격하게 강해질 수는 없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애당초 드라칸들과의 전투에서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힘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는 유성은 그렇기에 잘 알고 있었다.
완전체. 놈과 지금 마주치면 꼼짝없이 패한다.
길게 볼 것도 없었다.
당장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유성은 고작 잠깐의 격전 만에 완전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드라칸의 알을 넘겨주는 대신 제 몸을 불사르던 두 상위체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터다.
‘그 두 놈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죽어 버리고도 남았겠지.’
그렇기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유성에게는 놈에게 비수를 꽂을 비장의 한 수 정도는 있어야 했다.
그 무지막지한 녀석이 이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막연한 바람에 불과했다.
오히려 놈이 쉽사리 함선 메티스를 놔주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게 더 알맞았다.
확실하다. 그놈이라면, 분명히 그들의 뒤를 쫓아올 거다.
* * *
“……음. 이런.”
유성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는 지독한 배고픔을 느꼈다.
그로 인해서 그는 직감적으로 한참 시간이 지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식사를 가져다 뒀던 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했던 건가?”
그의 앞에는 차게 식은 식사가 놓여 있었다.
감옥에 가둔 것치고는 꽤나 신경 썼음이 분명한 호화로운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한창 정신을 집중 중일 때, 누군가 식사를 가져다준 모양이었다.
정작 한창 집중하느라 알아차리지도 못하였지만 말이다.
마나 수련을 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감각을 확장하면, 주위의 모든 것이 아주 느리며 분명하게 감각권에 잡혀 오지만 그와는 반대로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마치 술에 취한 듯, 마나 사용자가 제 자신의 감각에 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마치 허공을 부유하며 떠다니는 대기의 그것들이 간질이듯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한 묘한 감각이기에.
마나 사용자들이라면 그 감각에 취할 수밖에 없다.
유성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그는 남들보다 더욱 뛰어난 감각을 내재한 탓에 더욱 강렬하게 취한다고도 할 수 있었다.
유성은 한참 전에 그의 앞으로 다가서던 밀도 높은 생명체의 감각을 느꼈었다.
아마도 그것이 자신에게 음식을 가져 주던 이였을 것임을 자각했다.
“이런 빌어먹을.”
‘음?’
그때, 감옥 너머의 복도에서부터 누군가의 욕설이 들려왔다.
누군가 바깥에 있었다.
유성은 품에 숨기고 있던 작은 단검을 들었다.
그러곤 창살 너머로 조심스럽게 내밀어, 복도 너머의 군인들을 향해 그것을 들어 비추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거울에 비추듯 반사되어 보였다.
유성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