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여왕체, 리브(1)
함대가 당했다.
그것도, 단 하나의 존재에게.
그 소식만큼은,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던 종류의 것이었다.
모두가 당황으로 인해 바짝 굳은 가운데.
그와는 반대로, 유성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확실히 놈과 이전에도 싸운 게 맞긴 맞았군. 그게 아니라면 이전의 군함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움직이던 그런 움직임을 취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지금 유성은 칠흑색의 복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나지 않도록 가린 상태였다.
그의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사령관 솔라스 란의 시선이 잠시간 유성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곧, 그는 침묵을 꺼트리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 괴물 놈들과 싸운 단신으로 싸웠다는 파일럿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네만. 그게 저 인물인 건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시선은 유성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함장 라프티리아나 부함장 아스트라에게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오로지 유성 하나만을 응시하는 사령관 솔라스 란의 강렬한 시선에.
아무런 대답조차 없이 침묵하는 유성을 대신해서 아스트라 부함장이 한발 나섰다.
사령관과 군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스트라 부함장에게로 향했다.
“그는 저희 쪽에 소속된 파일럿입니다. 용무가 있다면 저희에게 먼저 말씀해 주시죠.”
“…….”
솔라스 란.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넓은 함선에 제대로 된 기갑 파일럿이라고는 단 하나뿐이라니. 그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기라도 했던 모양이지?”
“……콜로니가 폭발하던 당시, 저희 쪽은 ‘한 명의 기갑 파일럿’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시설에 정박하고 있던 여분의 기가스를 챙겨 올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요.”
사실 콜로니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여유분의 기가스가 함께 머물기 마련이었다.
콜로니의 방어를 위해서다.
기술력이 발전한 우주에는 온갖 잡놈들이 떠돌기 마련이었다.
작게는 단순히 강도단 정도가 존재하지만, 개중에는 함선을 끌고 다니는 우주 해적도 존재한다.
“나머지 파일럿들은 그 과정에서 모두 전멸했습니다. 심지어 수백 단위의 드라칸들이 콜로니를 완전히 장악한 탓에, 기가스를 챙겨 올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었죠.”
“도망치는 것조차 버거웠단 건가. 그렇다면 살아남은 한 명의 파일럿이 저자가 맞군. 완전체 드라칸을 상대로도 멀쩡히 살아남았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쓰게 웃어 보였다.
“멀쩡히는 아닙니다만. 사실 그는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봐야겠죠. 정말로 운이 좋게도 말입니다.”
“그렇게 깎아 내리지 않아도 되네. 그놈을 상대하느라 우리 쪽은 죄다 박살이 났잖나.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
깎아내리는 쪽과, 치켜세우는 쪽.
그 의도는 명백하다.
한쪽은 함내의 사실상 유일한 것이나 다름없는 파일럿의 신변을 지키려 하고, 다른 한쪽은 서슴없이 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문득 턱을 쓰다듬은 사령관 솔라스 란이 돌연 낮게 웃었다.
그러고는 곧 서늘한 시선을 아스트라 부함장과 맞추었다.
그는 마치 통보라도 하듯 말문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부함장.”
“…….”
“그 파일럿의 신병을 우리에게 넘기게.”
“죄송하지만,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겠습니다. 저희 함선에 그는 유일한 파일럿이라.”
솔라스 란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서리는 것은 옅은 불쾌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기색이다.
“물론 그냥 넘기라는 것은 아니지. 대신 우리 쪽에서는 기갑 파일럿 셋을 대신 내어 주겠네.”
“교환이라는, 말씀입니까?”
아스트라 부함장의 얼굴이 굳었다.
거절에도 불구하고 연이은 제의였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정리하더니 다시금 답했다.
“죄송하지만, 그러한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겠…….”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부함장.”
아스트라 부함장의 말을 자른 솔라스 란은 한쪽 눈을 치켜떴다.
그는 불쾌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며 하급자를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지금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하고 있는 걸세. 지금 당장 저 바깥에서 그 괴물 놈이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저 파일럿이 아니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어.”
“아무리 콜로니의 사령관이라도 그런 제멋대로의 조치는 할 수는 없…….”
“된다. 왜냐하면-.”
솔라스 란은 차갑게 눈을 빛냈다.
“내가 정했기 때문이지.”
말을 자른 그는 턱짓으로 뒤쪽의 군인에게 명령했다.
“저 파일럿을 이쪽으로 데리고 오도록.”
“이건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애초에 완전히 다른 소속인 저희에게 행동을 강제할 수는……!”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아스트라 부함장의 강력한 반발에도 사령관 솔라스 란의 명령을 받은 이들이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의 반발 따위 전혀 신경 쓰는 기색조차 아니었다.
일개 함선의 부함장. 그리고 수많은 군함과 콜로니 전체를 관리하는 사령관.
어느 쪽의 계급이 높은가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솔라스 란이 하고자 한다면, 부함장 아스트라는 결코 막을 길이 없었다.
그것은 함장 라프티리아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유성의 앞에 다가선 두 명의 군인들이 그의 어깨에 손을 대려 했다.
그들의 손이 어깨에 얹어지려던 그 순간.
[죽고 싶은 건가?]
콰득.
서늘한 음성과 함께, 가면 사이로 유성의 안광이 빛을 발했다.
그 즉시 두 군인의 몸체가 형편없이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 쓰러졌다.
찰나의 순간, 빛이 번뜩였다.
둘은 죽지는 않은 듯했지만, 대신 각각 한쪽 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뜯겨 나간 팔은 저 멀리 복도를 나뒹굴고 있었다.
“파, 팔이?”
곧 그것을 인지한 듯 두 군인들이 어깨를 부여잡고는 소리를 내질렀다.
“크윽, 크아악!”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새하얀 복도에는 그들의 비명과 함께 새빨간 피가 덧칠해진다.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두 팔을 잃은 군인들의 고통에 찬 비명뿐이었다.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사령관 솔라스 란의 얼굴은 바싹 굳어 버리고, 군인들의 얼굴은 위협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에 불과했다.
금세, 사령관 휘하의 모든 군인들이 총기를 꺼내 들어 유성을 조준했다.
그것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즉각적인 행동.
잠시간 그들을 응시하던 유성은.
낮게 가라앉은. 쇠가 긁히는 듯한 음성과 함께 말했다.
[내 몸에 손을 대면, 그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라.]
그러고는 군인이 손을 댔던 흑색의 망토 끄트머리를 툭툭 털었다.
흡사 불쾌한 것이라도 묻은 듯 거만하게 말이다.
아주 의도적인 도발이었다.
그러고는 짧고 간결하게. 낮은 경멸감을 담아 중얼거린다.
이곳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죽기 싫다면 말이지.]
“뭐?”
“이……!”
유성의 도발에 순식간에 가열되기 시작하려는 분위기.
군인들이 눈에 살기를 드러내고, 금방이라도 총구를 당길 듯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일촉즉발이라고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사납기 그지없는 분위기 속에서.
금세 사령관 솔라스 란은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미안하네. 내 부관이 조금 기분 나쁘게 했나 보군, 파일럿.”
[그러면 부하 관리를 똑바로 하시길. 시건방을 떠는 것을 봐줄 정도로 참을성이 좋진 않으니.]
“하하. 알겠네.”
그렇게 너털웃음을 하며 상황을 흘려보내려 했다.
‘역시 의도된 상황이었군.’
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솔라스 란을 노려보았다.
확실히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의 그 거만했던 태도가, 너무도 쉽게 가라앉는다.
처음의 바짝 굳었던 얼굴은 금세 사라졌다.
유성은 그러한 그의 기색으로부터, 이 전후 상황이 모두 의도된 것이라는 확신이 일었다.
군인 둘을 희생양으로 내던져 간을 본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 부하가 당했는데도 저렇게 태연하게 웃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유성이 사정을 봐준 것은 분명했다.
그가 정말로 죽일 셈이었다면, 진작에 이곳 복도에서 솔라스 란의 부하들 중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두 군인들의 날아간 팔조차도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한 게 현 시대의 의료 기술이었다.
그러므로 적당히 봐준 셈이다.
물론, 위협을 느끼는 정도 하에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령관이 이러한 광경을 눈앞에서 목도하고도 그저 얌전하다는 것은.
결국, 저들은 유성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간을 봐서 통하면 좋은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다는 건가. 그것도 저런 태연자약한 연기까지 해가며 접근할 정도로.’
꾸득.
유성은 가면 사이로 가려진 얼굴을 형편없이 구겼다.
관심이라니. 그로서는 그리 좋지 않은 전개였다.
물론 그것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아니었기는 했지만.
사령관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다.
그 녀석 완전체 드라칸에 관해서 말이다.
완전체는 혼자서 무려 네 척에 달하는 군함과 수십 기의 기가스 죄다 박살 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놈과 일대일로 맞서고서도 살아남았다는 기갑 파일럿인 유성은.
그에 ‘준하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의미와도 동일한 것이었다.
일개 인간 하나가. 수 척의 군함과 수십의 기가스에 준할 정도라는 말이었다.
설령, 유성이 철저하게 놈에게 밀렸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던 만큼 그것은 분명했다.
사령관이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란 의미다.
이것이, 일개 기갑 파일럿 하나가 가질 수 있는 위상이었다.
결코 비약이 아닌 사실만을 담은 명백한 증명.
그렇기에 유성은 지극히 그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스윽.
과연 가면으로 가려진 그의 시선을 눈치챈 듯.
사령관이 슬쩍 그를 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가 웃고 있다.
동시에 그의 눈매에서 푸른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두 눈에 아른거리는 기색은 명백한 탐욕이다.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색을 느낀 아스트라 부함장이, 저 멀리서 신음을 흘리는 군인들에게서부터 눈길을 돌리더니 말문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사령관님. 그는 오로지 저희 함선 메티스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자입니다. 함선 메티스에서 개인적으로 관리하며, 그 정체조차 드러내길 꺼리는 상황입니다.”
“그런가? 하지만 정작 나는 행성 테라 쪽에서부터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었는데 말이지?”
사령관 솔라스 란은 이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유성과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신원미상. 정체불명의 파일럿인 저자를 지금 이 자리에서 붙잡아라. 반발 시 즉각 발포해도 좋다.”
그는 시작부터, 상당히 파격적인 시작을 나갔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드물게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솔라스 란을 노려보았다.
“……사령관. 이런 일을 벌이다니. 정식으로 연합에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상관없다. 우리 쪽에서도 당장 저 파일럿이 없다면, 급한 건 마찬가지니까. 그 완전체 드라칸 놈을 막을 방도 자체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