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콜로니 사령관, 솔라스 란(2)
“하아-.”
상황이 좋게좋게 돌아가는 듯 하자.
뒤편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라피스가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려왔다.
그에 유성은 무심코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가 웃자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실제로도 이곳 통제실의 분위기는 그리 무거운 편이 아니었으니.
이미 함장 라프티리아와 부함장 아스트라는 유성을 같은 편으로 받아들이는 게 분명한 눈치였다.
그들은 이미 유성의 돌발 행동을 잊은 듯 행동했다.
다분히 의도적이겠지만, 이것은 유성으로서도 좋은 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의외로군요.”
“뭐가 말인가?”
“틀림없이 절 그대로 모른 척 저버릴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불과 조금 전의 돌발 행동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의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곧이어 대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각성자를 상대로 제멋대로 그럴 이는 없어. 그건 내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겠지. 그게 아니면 죽고 싶어서 간이 부은 자일 테고.”
“그렇습니까?”
“그런 셈이지.”
피식 웃은 유성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렇다면. 용건은 모두 끝나신 것 같으니, 그만 가도록 하죠.”
“그래. 생각보다…… 힘든 듯해 보이는군. 미안하네.”
유성은 어느새 라피스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좀 피곤하군요.”
기잉-.
둘은 자동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 * *
이후로 자신의 배정된 방으로 돌아간 유성은.
거의 쓰러지듯이 침대에 몸을 누였다.
지쳤다. 그의 육체는 생기가 없었다.
전투에 지친 몸이 의식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의 억지에 가깝게 일깨우고 있던 정신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한 번 유지하고 있던 마력을 풀자마자, 빠르게 잠기운에 잠식되었다.
그는 금세 기절하듯 잠들었다.
정말이지.
아주 긴 시간 만에 간신히 취하는 휴식이었다.
* * *
하루가 지났다.
함선 내에 조성된 인공 공원.
녹색의 수풀이 우거진 그곳에서, 일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일부 곤충들이 찌르르 울어댔다.
그러한 사람들의 가운데, 유성 또한 있었다.
벤치에 기댄 채, 솟구치는 분수를 응시하는 그는 느릿하게 수저를 들었다.
쨍그랑.
한참 밥을 먹던 유성은 순간 숟가락을 놓쳤다.
“…….”
그의 팔이 가늘게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마력 탈진의 후유증이었다.
그는 쓰게 웃었다.
‘이거야 원.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겠군.’
그 가벼운 수저조차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식사 자체가 고역이었다.
마나 사용자들에게 마나라는 것은 신체를 채운 또 하나의 생명력이었다.
첨벙!
공원에 자리한 거대한 호숫가에서 힘찬 물소리와 함께 잉어가 솟아올랐다.
함선이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도, 이곳에는 그 나름대로의 최대한의 자연 경관 흉내를 냈다.
오랜 시간을 함선 내에서 생활하며 갑갑해할 승객들을 위해서였다.
잉어는 자동 지급되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것이 잠시나마 잊혀질 정도로.
그 모습을 응시하던 유성은.
돌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치겠군. 저 잉어만도 못한 신세라니.”
그나마 유성 정도의 상태라면 차라리 양호한 편이었다.
그의 회복 능력은 워낙 뛰어난 축에 속했으니까.
그러한 탓에, 타 마나 사용자라면 한참 동안은 꼬박 쉬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회복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회복기. 탈력감에 젖어 무기력했던 육체가 서서히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
그것은 유성이 제 자신의 육체를 완전하게 관조하고 있다는 의미다.
능력이 떨어지는 자일수록, 회복을 위한 자기 관조가 미숙하다.
마나 사용자는 스스로의 의지와 조율로써 주변의 마력을 끌어들여 육체의 수복이 가능한 자들이다.
유성은 바닥에 떨어진 수저를 대충 닦고는, 끝끝내 식사를 마쳤다.
팔 힘이 달렸지만 이 정도쯤이야, 그리 문제 될 일도 아니다.
힘겨울 정도로 거슬린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
식사를 마친 유성은.
잠시간 고요한 수면을 응시했다.
수면 아래로 잉어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는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며,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나저나 그건 대체 어떡해야 좋으려나.”
화이트 레이븐.
그 녀석이 건네주었던 정체불명의 알.
놈들이 죽음의 순간에서조차 끝끝내 지키려 애를 썼던 그것.
‘분명 죽은 여왕이 남긴 새로운 여왕 개체이거나, 혹은 그에 준할 만큼 특별한 개체이거나.’
솔직히 여왕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할 수만은 없다.
그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으니.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최소한 평범한 드라칸 개체는 아니라는 것.
무려 완전체를 앞둔 상위체 둘이 기를 쓰고 지켜내려 애를 쓰며 지켜오던 것이었으니.
게다가 그것을 탈취하려던 녀석 또한 평범한 개체가 아닌, 무려 완전체 단계였지 않은가.
유성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라피스에게 대신 봐달라고는 했지만, 만에 하나 부화했을 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드라칸의 알이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이름에서부터 위험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설령 갓 태어난 양산체 등급의 드라칸이라도, 위험한 것은 분명하다.
놈들은 그저 조금 거칠고 만 야생동물 따위가 아니었다.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덩치를 불린 양산체 정도만 되어도, 개체 하나가 사람 수십은 우습게 죽이고도 남을 만큼 강했으니까.
인간들이 손에 쥐는 사이즈의 강화 소총 따위로는 놈들의 갑각을 뚫기조차 힘겨울 정도다.
달리 괴물이라 부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당분간은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나으려나.”
유성에게도 개인적인 호기심은 있었다.
과연 저 특별한 개체가 담겨있을 것이라 잠정적인 확신이 드는 드라칸의 알.
‘저것이 부화한다면, 그것은 과연 인간을 적대시할까. 그도 아니라면-.’
생각을 이어나가려던 그때.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건네 왔다.
“여기 있었군요. 유성 생도.”
“음?”
유성은 뒤에서 말을 건네는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부드러운 음성의 정체.
그것은 다름 아닌 함선 메티스의 총지휘관, 라프티리아 함장이었다.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장님이 직접 나오시는 경우도 있으시군요.”
유성은 그녀의 등장을 알아차리자마자 즉각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라프티리아였다.
그녀는 이 함선 메티스의 함장이다.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지휘자이며, 이 함내 전체를 관리하는 총책임자.
가지 못할 곳이 없고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그러한 자리에 있다.
유성의 인사를 받은 라피티리아 함장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유성 생도. 당신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함선 메티스를 지켜주었던 것만으로도 모자라 매번의 전투에서 자진해서 출진해 주시니까요.”
“그건 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했을 일일 뿐입니다. 그보다는 마치 무언가 본론을 꺼내기 전의 의례 인사 같군요.”
유성은 그녀의 의중을 물었다.
라프티리아 함장이 혼자 나서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이제까지의 그녀는 언제나 통제실에서 그를 마주해왔었다.
그러므로 사실상, 유성 그로서는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아스트라 부함장이 모든 지시와 통지를 대신 전달해 주었으니까 말이다.
“…….”
그 말에, 라프티리아 함장은 잠시간 침묵했다.
조용히 유성의 옆자리에 앉은 그녀는 한숨인지 아니면 단순한 숨인지 모를 것을 내쉬며 이내 말문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베자리우스 쪽 군함이 당신을 포착한 이상, 본 행성인 테라에 당신의 존재가 넘어가는 것도 금방일 겁니다. 물론 유성 생도의 정체를 아는 것은 저희가 전부겠지만, 그 전투 영상은 공개될 수밖에 없겠죠.”
“괜찮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 보군요, 유성 생도.”
“그럴 수밖에요. 베자리우스 E.X 콜로니 쪽의 함선에서 이미 절 봤으니, 어떤 식으로든 그 정보가 테라 행성에까지 닿겠죠.”
“맞습니다. 그쪽 군함에서 통신을 보내오더군요. 저희 쪽에서 당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니, 직접 행성 테라의 연합에 직접 묻겠다고요.”
그 말에 유성은 잠시간 함장을 응시했다.
함장 라프티리아 또한 그런 그를 마주 보았다.
가까이서 마주한 그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유성의 눈빛은 어른인 그녀조차 알 수가 없을 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듯한 눈매라고 해야 맞을 터다.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의도적으로 표면 위로 드리우지 않는 기색.
그 대단한 실력에 어울리는 강함에 관한 어떠한 투지나 의욕도 보이지 않는 그저 무심한 눈동자.
지금 함장 그녀의 앞에는, 어쩌면 태양계 전체를 따져도 유례가 없을 만큼이나 대단한 재능을 소유한 천재가 있었다.
심(心)과 신(身) 모두가 갖춰진, 그 나잇대 소년이 가지고 있어야만 마땅할 치기조차 조금도 없는.
신중하기 그지없는 소년을.
함장 라프티리아는 유성을 마주한 채로 생각했다.
‘지금 내 눈앞의 소년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그것은 수많은 인간군상을 마주해온 그녀조차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년은, 단순히 소년이라 평가하기에는 그 생각이 깊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강함도 여느 인간에 비할 데 없을 정도로 대단하지만.
침묵하던 라프티리아 함장은 곧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서는 당신에 대한 정보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어차피 파일럿의 존재에 관한 것은 이미 수많은 승객들조차 직접 목격한 만큼 넘어갈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 정체마저 드러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유성은 곧 대답했다.
“하실 말씀이 끝났다면,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성 생도.”
“왜 그러십니까?”
일어나 자리를 벗어나려던 유성을 향해.
그를 멈춰 세운 라프티리아 함장은 잠시간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침묵은 잠시에 불과했다.
곧 라프티리아 함장은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하나하나 설명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
이야기를 들은 유성의 표정이, 무섭도록 굳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었다는 양.
한참이나 무겁게 닫혀있던 유성의 입이 열렸다.
“……지금 그 말씀이 진짜입니까?”
“조금의 거짓도 없는, 분명한 실제 상황입니다. 행성 테라와 통신을 한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군함들이 직접 전해 준 사실이니까요.”
무시무시하게 굳어 버린 유성을 향해, 그녀는 덧붙였다.
“행성 테라에서도 또한 드라칸이 나타났다는 내용의 통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
꽈악.
그 담담한 듯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그녀의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