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베자리우스 콜로니(6)
세상에 믿을 것은 거의 없다.
말로는 무엇이든 내걸고 약속을 걸 수가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오로지 말뿐이다.
말은 때때로 지극히 무겁지만, 때때로는 종이 한 장보다 가볍기도 했다.
그에 대한 증명을 직접적으로 남기지 않는 한, 뒤돌아서면 언제고 없던 듯 뒤집어엎을 수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말을 하는 유성의 모습에.
라피스는 도청이 가능할 여지가 있는 모든 통신 장비를 끄고서야 물었다.
“그래서 유성. 저게 뭐야?”
“딱 봐도 뭔가 떠오르는 게 있지 않아?”
“……설마 드라칸의 알이라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생김새로만 본다면 저건 딱…… 알처럼 보이는데.”
유성은 피식 웃었다.
“역시 잘 아네, 라피스.”
그의 태연한 기색에, 라피스가 입을 벌렸다.
“지, 진짜야?”
“그래. 이걸 당분간 네가 맡아줬으면 해.”
“내가?”
“그래. 여기서 믿을 만한 건 너뿐이거든.”
유성의 말에, 라피스는 묘하게도 표정이 밝아졌다.
급속도로 밝아지는 라피스의 기색에,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별다른 소리조차 안 했는데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질 않는다.
잠시간 의아함을 느꼈던 그였지만 일단 말을 계속했다.
“라피스.”
“응?”
“어쩌면 내가 구금될 가능성이 있어. 물론, 아주 강한 조치는 아니라 단순히 가둬 두는 정도가 전부겠지만.”
“……뭐?”
라피스의 밝아졌던 안색에 금이 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물었다.
“어째서?”
“이미 내가 싸우던 모습이 베자리우스 E.X 콜로니 소속의 모든 지휘관들의 눈에 들어갔을 거야. 상위체와 완전체 놈들의 틈바구니에서 싸운다는 걸 걸린 시점에서 이미 나는 정상적인 파일럿의 수준은 진작 뛰어넘은 걸 걸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
라피스는 눈만 깜빡였다.
그 무언의 물음에, 유성은 추가로 덧붙였다.
“당연히 이미 그들은 날 확인하려 하겠지. 내 정체부터 능력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심하며 눈여겨보기 위해서.”
라피스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서…… 널 구금할 거라고?”
“그래. 그러고도 남을 게 당연하거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며, 유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라피스. 그녀는 태생부터 높은 가문에서 태어난 일원이었다.
그녀가 속한 가문은 연합에서도 이름이 드높으며 받는 대우 또한 남달랐다.
유성과는 사는 세계부터가 다른 탓에, 세상을 보는 관점과 입장부터가 다르다.
어렸을 때부터 가문에서 많은 사람들을 거느렸으며 그녀는 그것을 당연하다시피하고 지내왔다.
따라서 유성과는.
세상을 보는 시각도, 살아온 경험도 전혀 다르다.
그의 삶은 온통 지독한 투쟁으로 얼룩졌으므로.
유성의 가치관은 이번 생이 아니라 전생에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라피스 엘 바이어스.
그녀는 현시대에 자리한 귀족 중의 귀족이다.
“일단 지금 난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은 비등록 마나 사용자야. 저들이 그것조차 알아보지 않았을 리도 없는 데다, 심지어 나는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각성자니까. 쉽게 말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는 준 테러범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보겠지.”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편이라고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둘만 모여도 의견의 차이가 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세상에는 힘을 가지면 그것을 악용하는 자들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과거 종말이 코앞까지 다가온 지구 시절, 하루를 더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행하던 그때의 약탈자들처럼.
이 미래의 세계에서는 해적들도 간혹 존재하고는 했다.
아마 베자리우스 E.X 콜로니의 이들 또한 유성을 그러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정체를 숨긴 마나 사용자란 손에 보이지 않는 총기를 숨긴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만한 대우를 받기 마련이었다.
요즘의 인류는 워낙에 기술력이 발달했다.
그러한 탓에, 작은 소형함선도 태양계 곳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마나 능력을 사용하는 온갖 초인적인 범죄자들이 함선을 몰며 태양계를 누볐다.
비등록된 마나 사용자들 또한 그 취급이 테러범이나 우주 해적에 준했다.
마찬가지로 유성의 취급에도 또한,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힘을 숨겼다는 것은.
언제 쏘거나 터뜨릴지 모를 무기를 숨겼다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다.
그것만으로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 쪽에서 유성을 경계하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가 도와줄지, 어떠할지는 아직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유성은 유일한 자신의 편인 라피스에게 알을 넘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라피스. 나 대신 이 알을 잘 가지고 있어.”
라피스는 검지로 슬쩍 알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녀는 불안한 기색을 한껏 드러내며 물었다.
“마, 만약 이게 깨어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괴물이잖아.”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진짜로?”
“그래. 이미 메티스의 지휘부에서 드라칸에 대한 파일을 열람해서 알거든. 이건 적어도 당분간은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잠든 상태일 거야. 확실해.”
사실은 파일을 열람했기에 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의 상태를 확인한 탓이기에 아는 것이지만.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함선 메티스에서 알아냈다는 식의 편한 핑계를 댈 뿐이었지만 말이다.
유성은 침대 밑에서 용기를 꺼내 들었다.
“불안하면 이 안에 넣어둬. 전류가 흐르는 철망이 감싼 용기인 탓에 만약에 양산체라도 부화해서 튀어나오면 완벽하게 막아줄 거야.”
“……그래도 좀 불안한데. 저기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와서 내 손가락을 잘라갈 줄 알고.”
그녀는 영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그것이 당연한 생각일 터다.
드라칸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라면 모르겠으나, 당장 라피스는 몸소 놈들과 싸워 본 전적 또한 있었다.
그러한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그녀의 눈에 비칠 저 드라칸의 알이란 건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를 위험 덩어리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기분이란. 흡사 폭탄을 옆에 둔 듯한 기분이겠지.
그런 그녀에게 유성이 말했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갓 태어난 새끼 드라칸은 기껏해야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불과하니까. 탈피를 수 번 이상 거듭해야 비로소 양산체 단계에 진입하지. 갓 태어날 시점에는 사실상 양산체 단계조차도 아니야.”
마나 사용자인 라피스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의미였다.
“…….”
하지만 라피스는 말이 없었다.
그저 꺼림칙하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싫다는 생각을 품은 게 눈으로 익히 보인다.
유성도 그러한 표정으로 보아 그녀의 생각이 짐작되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꺼림칙할지라도 이것을 맡길 이는 그녀가 유일했으므로 말이다.
“부탁해. 대신 나중에라도 네 부탁 하나를 들어줄게.”
“……진짜로?”
하지만 그 말이 있자마자 의문스럽게도.
라피스의 표정은 그 즉시 밝아졌다.
“음?”
갑자기 그녀가 돌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잠시간 고개를 갸웃하던 유성은.
곧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는데 나 또한 들어줘야 하지 않겠어? 뭐든지 들어줄게. 약속하지.”
“약속한 거야, 유성.”
유성의 순순한 수긍에, 곧 라피스는 재차 말했다.
마치 강조라도 하는 듯 확답을 바라는 듯한 어투였다.
“그래.”
유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그저 그 모습을 의아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가 느끼기에 그것은 마치 승리자의 미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유성의 말은.
그녀의 미소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라피스.”
“응?”
“이 드라칸의 알을 가져가기 전에 먼저 네 방 좀 보자.”
“……뭐?”
즉각 라피스가 반응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신, 강렬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흡사 유성을 벌레라도 되는 듯 혐오스럽게 유성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대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유성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왜 그러는 거지?”
“……그걸 몰라서 물어?”
“뭐. 모르겠는데. 그보다 일단 네 방으로 가자. 중요해.”
라피스가 말이 없자, 유성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용건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라피스의 방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유성이 머무르는 곳과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짐 하나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단출했다.
“…….”
딱딱한 표정으로 유성을 바라보는 라피스의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그녀의 방 이곳저곳을 살피던 유성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여기엔 없군.”
“……뭐가?”
유성을 사납게 노려보던 라피스가 물었다.
“도청 장치. 혹은 영상 촬영기.”
“그런 게 여기에 왜 있…… 설마. 네 방에는 있었던 거야?”
“그래.”
유성은 숨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피스의 입이 놀람으로 인해 살짝 벌어졌다.
“대, 대체 그게 무슨…….”
“딱히 이해 못 할 조치는 아니야. 난 어떻게 보더라도, 분명 의미 불명의 각성자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좀…….”
“뭐가?”
하지만 오히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유성이었다.
“오히려 당연한 거야.”
“어, 어째서?”
의문을 드러내는 라피스를 앞에 두고, 유성은 이 상황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초인이니까. 함선 메티스의 지휘부에게 나란 존재는 언제라도 모든 군인들을 죽이고 함선을 탈취할 수 있는 위험요소일 거거든.”
초인(超人).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초법적인 인간.
유성이 속한 경계선이, 바로 그것이었다.
함선 메티스의 군인들이 지극히 그를 경계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또한 그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손에 쥔 폭탄이 터지지 않을 걸 알고 있다고 해서 경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사실 지금의 유성은 마력이 모자랐다.
때문에 정말로 각성자의 위상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수준도 능력도 부족했다.
만약 다른 각성자들이 유성을 보았다면.
분명 아직 각성자라 부르기에는 어폐가 있음을 한눈에 알아차렸을 터였다.
그는 여전히 모자르다.
물론 언제고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그 가능성의 여지에 대해서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다.
타인이 각고의 노력을 탑처럼 쌓아 올라갈 때. 그는 그런 무가치한 시간의 소모를 할 필요조차도 없었으므로.
하지만 이곳의 군인들이 보기에, 그는 이미 각성자라는 이름의 초인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이제껏 보여준 능력들은 타 마나 사용자들이라면 불가능할 것들이다.
각성자라 여기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를 지극히 경계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이유였다.
완전히 안전해졌음을 확인한 유성은.
이제야 품에서 드라칸의 알을 꺼내 들었다.
“그럼 나 대신 이것 좀 부탁할게, 라피스.”
“……뭐, 어쩔 수 없나.”
꺼림칙한 표정으로 드라칸의 알을 건네받던 라피스가 순간 움찔했다.
“앗.”
“……베였어?”
“어, 응.”
대답하는 라피스의 손가락에, 빨간 피가 새어 나왔다.
드라칸의 알 표면에 베인 탓이다.
알의 표면은 생각 이상으로 거칠고 날카로웠다.
드라칸의 알이란 그저 동그랗기만 한 부드러운 재질이 아니었다.
마치 유리 재질과 비슷한 갑각질이 세밀하게 박혀있던 형태인 탓에, 그것을 눈여겨보지 못한 라피스가 손에 상처를 입었다.
주륵.
동그랗게 맺힌 핏방울.
드라칸의 알 표면에 맺힌 핏물이, 옅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