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베자리우스 콜로니(5)
유성은 고개를 돌렸다.
방에 있는 또 다른 도청 장비를 찾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그것들은 한두 개의 수준조차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유성이 찾아낸 것은 무려 여섯 개였다.
동서남북 사면과 천장의 두 방향에까지.
그것도 정사각형의 형태를 한 그의 방 내부를 사각 없이 모든 각도에서 훑어보기 위해 각각의 방향에 있던 것이었다.
죄다 잘게 부순 유성은 생각했다.
‘역시 날 감시하고 있었군.’
허락받지 않은 행위인 감시였다.
물론 군의 행태가 이런 일은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선 꽤나 익숙한 경험이다.
전생에서부터도 왕왕 있었다.
워낙에 뛰어난 파일럿이었던 그였기에, 평상시에도 엄중한 수준의 관리가 가해진 것이다.
평범한 마나 사용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수의 관리자들이 감시의 역할을 겸하여 따라붙는데, 하물며 유성 그는 각성자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 정도쯤은 이미 예상했다. 구태여 말할 것도 없었다.
유성은 그 후로도 철저하게 재확인했다.
모든 도청 장치가 없어졌는지에 대한 확신이 들고서야.
겨우 그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금 꺼내든 그의 손에는, 드라칸의 알이 들려 있었다.
유성은 그저 조용하게 제 손에 들린 그것을 응시했다.
‘이건 평범한 드라칸의 알이 아니다.’
사실 유성이 드라칸의 알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드라칸과 인류는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드라칸은 강한 세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언제나 놈들에게 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그 괴물 놈들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강한 것만도 아니어서, 개중에는 약한 세력의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강한 놈과 약한 놈. 강한 무리와 약한 무리.
개체 간의 능력차와 무리의 세력차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전에 유성이 소행성에 들러붙어 있던 드라칸의 군체 무리를 혼자서도 별 무리 없이 죄다 쓸어버렸듯 말이다.
걍약약강이 통하는 또 하나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들.
그러한 결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와 놈들 간에는 밀고 밀리는 접전이 계속되었다.
인류는 약한 드라칸의 세력을 남김없이 쓸어버리며, 전장에서 강한 놈들을 만나는 것만큼은 최대한 회피하는 쪽의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그 대전쟁의 긴 시간 동안.
일반적인 드라칸 개체들의 알이라면 심심찮게 발견되고는 했다.
유성은 연구원들의 말을 떠올렸다.
[드라칸의 알은 발견하는 즉시 온전한 상태로 보전하여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놈들의 비밀을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전장에서 연구원들이 항시 하고는 했던 반복적인 말들이다.
당시의 그 또한, 그 나름대로의 흥미가 있었던 탓에, 드라칸의 알에 대해서 진행되는 연구를 관찰한 바가 어느 정도 있었다.
물론. 마지막까지도 별다른 쓸모는 없었던 행위였지만 말이다.
유성. 그는 손바닥 위에 올린 알을 가만히 응시하며 생각했다.
그는 과거 연구원들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아마 드라칸의 알은 어떠한 에너지 물질이든 죄다 섭취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마력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던가.’
드라칸.
이 세계에 마나라는 신에너지와 함께 등장한 우주 생명체.
놈들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는 마나를 사용하지 못했다.
즉, 인류가 마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놈들과 연관이 있다는 의미였다.
인류에게 있어 놈들은 공포의 대상임과 동시에, 언제나 의문의 대상이었다.
상상이 가능한 모든 방향으로의 진화가 가능한, 불가해(不可解)의 괴물들.
놈들이 가진 강함의 근본적인 이유인 마나 능력.
‘평범한 드라칸의 알이 아닌, 이 여왕 개체의 알이라면. 어쩌면 그 열쇠가 될지도.’
드라칸은 환경에 적응하는 생명체다.
심해와 뜨거운 맨틀 아래의 지표면, 심지어는 우주와 대기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환경에서조차 적응하고, 어떠한 환경에서조차 무리 없이 수를 불리는 괴물들이었다.
그러한 바탕의 원인에는 놈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적응 능력에 있었다.
놈들은 세대에 걸쳐 끝없이 발전한다.
환경에 걸맞은 육체로 성장하고, 변화하며, 진화한다.
이전 세대에서는 틀림없이 원시적이었을 개체들이, 그 다음의 세대에서는 한층 발전해 원시의 영역을 차츰 벗어난다.
적응하고, 받아들이고, 오히려 더 나아가 그 기운마저 흡수한다.
그러한 과정이 거기서 몇 번만 더 반복해서 일어나면, 원시가 아닌 발전의 영역으로까지 거듭나는 것들.
그것이 지상형과 비행형, 수중형 등등의 드라칸으로 나뉘는 이유였다.
본래 인류가 알던 진화라는 것은 고작 몇 세대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아득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어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놈들은…… 말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빠른 속도로 진화를 이룩하지. 그것도 전혀 다른 종이 연상될 만큼의 비정상적인 형태로의 진화를.’
여왕체는 군체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계속해서 발달된 드라칸들을 낳는다.
이전의 새끼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도태한다면, 그다음에는 도태한 개체의 단점을 보완하고 진화시켜 보다 나은 개체를 낳는다.
전투력이 모자라다면 보다 나은 전투 개체를 낳고, 자원이 모자라다면 보다 나은 채취형의 개체를 낳는다.
그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드라칸의 군체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같은 양산체 단계라도 이전에 낳았던 놈과 나중에 낳았던 놈은 확연히 다르다.
보다 환경에 적응한 개체를 낳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종들로선 틀림없이 아득한 시간이 걸릴 무구한 진화라는 영역을, 불과 수 세대 만에 이룰 정도로 놈들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나가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므로 양산체도 다 같은 양산체가 아니고 전투체도 다 같은 전투체가 아니다.
같은 단계에서도 놈들의 모습은 가면 갈수록 뒤틀리고 변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그보다 윗줄의, 여왕이 직접 낳은 특수 개체인 상위체는.
개체 스스로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진화까지 꾀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라고 불리는 완전체가 탄생하고야 만다.
인간은 놈들의 그러한 말도 되지 않는 능력이.
어쩌면 바로 마나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도 불과 400년 만에 인류의 신체 일부가 새파랗게 물드는 현상이 점차 가속되고 있다. 이게 마나에 의한 것임을 예상하지 못하는 이는 누구도 없어. 우리도 분명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거지.’
실제로 이제는 인간들 사이에도 그러한 변화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드라칸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의 진화를 꾀하듯.
인류의 육체적인 진화 또한 빨라지고 있었다.
강하고 빠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성비’가 좋아졌다.
그 현상은 점차 가속이 붙기 시작해서, 지금에 와서는 라피스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파랗게 물든 현상이 그리 드문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흔한 현상이 되었다.
이미 현 인류 대부분은 과거에 비하면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평범한 일반인들 또한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알게 모르게 마나가 서린 탓이다.
그들의 육체는 점차 마나의 영향을 짙게 받고 있었다.
불과 수 세기 만에 인류 전체에 자리 잡은 완전한 변화였다.
‘인류 전체에 일어나기 시작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화. 그 변화의 시작점일 게 틀림이 없을 드라칸.’
그러한 이유로, 많은 이들이 그것에 대해서 연구를 거듭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마나라는 것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스테리에 불과했다.
현재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조금 더 잘 사용하고, 잘 적응하는 능력을 깨우친 게 전부였을 뿐이다.
여전히 그 근본에 대한 해석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에 속했다.
유성은 드라칸 여왕체의 알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류와 드라칸의 진화 그리고 마나에 관한 의문을 풀 수 있을 유일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마나. 다른 말로는 마력이라는 단어를 한 그것의 능력.
인류와 드라칸의 진화가 급속도로 가속을 거듭하는 그것에 대한 의문점.
유성이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 * *
이제껏 인류가 드라칸의 알을 노획한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전쟁은 그만큼 길었고, 또한 치열했다.
인간과 드라칸은 매일같이 뒤얽혀 전투를 벌여왔다.
하지만 그 무수한 전적 중에서도.
드라칸 ‘여왕’ 개체의 알이 노획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일례가 없다. 드라칸은 붙잡히느니 죽음을 택하는 생명체다.
그렇기에, 확신이 불가능하다.
유성은 짙은 호기심과 함께 일말의 기대감을 품었다.
일례가 없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자면 실낱같은 가능성 또한 남기고 있다는 것과 동일하였으므로.
고오오-!
곧 그것을 가만히 응시하던 유성의 눈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끌어 올린 것이었다.
드라칸은 마나 생명체였다.
놈들의 피와 살은 모두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드라칸의 알 또한 마찬가지로 마력과 반응한다.
그 반응은 대부분 즉각 일어나는 탓에, 손쉽게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람의 신체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드라칸은 신체의 대부분이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마력을 끌어 올려 주입한다면,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가령 마력을 흡수한다던가 하는 등의 반응이 말이다.
하지만 유성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그가 기대했던 반응은 없었다. 조금도 말이다.
유성은 이상함에 미간을 모았다.
‘……별다른 반응이 없군. 이상한데. 지금쯤 무슨 반응이라도 느껴졌어야 할 텐데 어째서?’
어쩌면 이것은 이미 죽은 알이었던 것일까. 그럴지도 몰랐다.
실제로도 그렇게 느껴질 만큼 알에는 미동조차 없고, 어떠한 생명체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불확실하기 그지없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유성! 여기에 있는 거 맞지?”
목소리는 익숙했다.
그의 유일한 친구의 목소리였으므로.
“라피스?”
“그래, 나야.”
‘음. 어쩔까.’
잠시 이것저것을 생각하던 유신이 알을 보았다.
알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었다.
하지만 라피스는 다르다.
그녀는 이곳에서 유성에게 있어, 유일한 아군이었다. 확신할 수 있을 만큼의.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아주 잘 보일 수 있도록.
그러고는 대답했다.
“들어와.”
기잉-.
곧이어 문이 열리고, 라피스가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꼼지락거리며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있잖아, 유성. 그…….”
뭐라 말문을 열려고 하던 라피스의 시선이.
유성이 들고 있던 드라칸의 알 쪽으로 향했다.
“어…… 그건 뭐야?”
“그걸 알려주기 전에. 라피스, 일단 통신이 될 만한 것들은 꺼뒀으면 하는데.”
“뭐? 왜?”
“이유는 대충 짐작되지?”
“아…….”
유성의 말에, 그제야 그녀는 드라칸의 알을 보면서 이유를 짐작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스트라 부함장은 이미 확답을 내렸다.
그들을 돕는다고 하였으며, 어떠한 해조차 끼치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을 순순히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도청 장치만 해도 그렇다.
아주 주변에 철저하게 설치되어 있었을 정도다.
세상에 믿을 것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