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베자리우스 콜로니(4)
그의 생각은 명확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무려 상위체 둘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지키려 한 드라칸의 알이다.
그게 보통의 개체가 아님은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유성의 확신대로라면.
이것은 일개 드라칸도 아닌 명색이 ‘차세대 여왕’이 담긴 알일 것이 분명했다.
그는 확신했다.
이것은 불확실이 아닌 확신이다.
드라칸의 여왕체가 드라칸 무리의 모든 것이자 총합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너무도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러하다면, 그 가치는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써먹을 방법은 분명히 존재할 터였다.
이것의 존재를 타인이 알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성이 드라칸의 알을 몸에 숨기고는 가까스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을 때.
그는 일 분이 다 되어감을 알아차렸다.
‘일 분. 슬슬 통제실의 인원들이 이곳에 도착할 시간이다.’
이 정도 시간이면, 통제실의 군인들이 들이닥치기에 적당한 때였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부터 몇 번이고 이곳 격납고와 통제실 간을 걸어 다니며 그 시간 거리를 정확히 체크해 두었다.
시간 측정은 정확할 것이다.
콰앙!
과연 그의 생각대로라는 듯 그것은 곧장 증명되었다.
굳게 개폐문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강제로 열렸다.
“손들어!”
“움직이지 말고, 지시에 따라라!”
다수의 군인들이 즉각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유성을 향해 총을 겨눴다.
유성은 순순히 양손을 들었다.
명백한 항복의 의사 표시였다.
군인들의 뒤를 이어 아스트라 부함장이 따라 들어섰다.
그는 눈에 띄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유성을 응시했다.
“유성 생도.”
“뭡니까?”
“…….”
아스트라 부함장은 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유성,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유성도, 아스트라 부함장도. 둘 모두 말이 없다.
서로 가만히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기류가 느껴졌다.
침묵 끝에 마침내 아스트라 부함장이 입을 열었다.
“뭘 한 거지? 엔지니어들을 다 내보내고 카메라를 부순 이유가 뭔지 말해 주었으면 하는군. 전투가 끝나자마자 이게 웬 소동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어렵네만.”
“궁금하시면 스스로 이유를 알아보시죠.”
유성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그저 눈을 가늘게 뜰 뿐이었다.
유성의 반응이 심상찮다는 것에 통제실은 즉각 행동했다.
지금도 통제실에서는 함장과 휘하의 군인들이 유성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이전의 영상들을 돌려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하게도, 소득은 없을 터였다.
‘찾을 수 없을 거다. 왜냐하면 영상 자체가 남아 있지 않을 테니.’
유성은 격납고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
또한 모든 증거 영상들을 철저하게 깨부숴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 전후 사정을 유추하기 위해 이전의 영상을 돌려 본들 어차피 마찬가지일 터였다.
왜냐하면 화이트 레이븐.
녀석이 드라칸 여왕의 알을 유성에게 내밀던 장면은 남아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가뜩이나 군함의 포격으로 인해 근방의 모든 전파 통신이 방해받았던 순간이다.
통신 신호가 강제적으로 왜곡되었으며 뒤틀렸다.
에너지 포격은 근방의 모든 것들에 간섭한다.
그러한 이유로 실시간으로 유성의 기가스에 내장된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유성이 드라칸의 알을 건네어 받는 장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보지 못했다.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이들의 반응이 그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조금의 전후사정도 알지 못할 터였다.
유성의 돌발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예측조차 가질 않을 거라는 의미다.
지금 시대의 함포는 과거 미사일과 같은 그저 폭발물을 쏘아 터뜨리는 원시적인 구조의 것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순수한 에너지를 응집하여 쏘는 것.
그것이 바로 현 시대의 무장이다.
함선 메티스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민간인의 대규모 이동이 목적이기에 간단한 수준의 무장이 전부라지만, 전함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그러한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드라칸과의 보다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발전한 무장의 방식이 현 시대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초월적인 존재인 완전체 등급의 드라칸에게는 별다른 소용이 없이 시간을 끄는 정도의 효과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만큼이나 강력한 에너지 포격인 탓에, 함선 메티스의 어느 누구도 실제로 유성이 포격 직후의 순간에 무엇을 했는지 보지 못했다.
당연히 지금 유성의 이러한 돌발 행동이 어째서인지는 제대로 추측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상이 딱딱하게 굳은 아스트라 부함장이 재차 그를 불렀다.
“유성 생도. 대체 무슨 이…….”
“제가 말해 드릴 거라 생각하십니까?”
유성은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
그는 왜 그러냐는 되물음 대신, 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먼저 피력했다.
나는 무언가를 했고, 또한 숨기고 있다. 하지만 말하지 않겠다.
아무것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강력한 주장인 셈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반발을 사는 한이 있어도 드라칸 여왕의 알을 숨길 셈이었다.
그것은 ‘그래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기잉-.
유성의 예민한 청각에 카메라의 셔터가 확대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하다. 통제실의 모두가 지금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함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마도 통제실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겠지.
그녀가 이렇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유성이 그만큼 요주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각성자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압도적인 초인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이다.
즉 그 말인즉슨.
사실상 이곳 함선 메티스의 어느 누구도 유성의 태도가 돌변한다면 막을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였다.
총알도 소용이 없다.
각성자가 신체를 극한까지 강화시키면, 맨손으로 총알마저도 튕겨내는 일이 가능하다.
그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실제가 그러했다.
단순히 총알만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활처럼 튕겨지듯 쏘아져 사람을 학살하고 강철조차 우그러뜨리는 게 바로 마나 사용자다.
하물며 그보다도 압도적인 상위의 능력자인 각성자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뛰어난 마나 사용자로 손꼽히는 각성자.
막을 수 있는 자도 없으며, 내부 공간의 손상에 유독 취약한 우주 함선 안에서라면 더더욱 그 점이 부각되었다.
지금도 유성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만 함부로 쏠 수도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자칫 잘못 튕긴 총알 하나가 함선의 시설을 건들기라도 했다간 대형 참사가 일어날 터였다.
막을 자도 없고 막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유성이라는 이름의 각성자는 언제고 이곳에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학살자로 변모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제까지 함장 라프티리아는 그러한 이유로 항상 통제실에서만 유성 그와 마주했을 뿐이다.
물론 그가 위협을 가할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말이다.
유성은 생각한다.
‘저들은 날 절대로 해할 수 없다. 물론 라피스도 말이지.’
유성은 확실하게 저들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들은 결코 강압적으로 유성을 대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그 예의 상위체나 완전체 중 하나가 나타나더라도 유성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니까.
즉각 나가서 싸울 수 있는 함선 내의 유일한 기갑 파일럿.
라피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엄밀히 말해 간신히 기가스를 움직이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사실상 그의 존재만이 이곳에 유일한 전투원인 셈이다.
그는 명백하게 이곳의 주도권을 가진 존재다.
그러므로 그 결과 이어지는 전개는.
과연 유성의 예상대로인 듯했다.
“……후우.”
잠시간 그를 노려보던 아스트라 부함장은.
곧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적대감이 사그라드는 게 느껴진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알겠네. 그만 돌아가 보도록 하게. 피곤할 텐데, 휴식이라도 취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아. 참고로 그전에.”
“……뭔가?”
유성은 턱짓으로 EF-05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EF-05. 녀석의 손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유독 거대한 ‘대검’이 눈에 띄었다.
“다음번 출전부터는 저걸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2단 전개 형식의 무장이라니. 생각 이상으로 좋은 것 같더군요.”
유성의 농담과도 비슷한 말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눈을 감았다.
“……알겠네. 가보게나.”
“그럼 이만.”
가볍게 고개를 숙인 유성은 격납고를 빠져나갔다.
아스트라 부함장의 시선이 멀어지는 유성에게 꽂히듯 박혔다.
결국 그는 유성이 무슨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눈앞에서 뻔히 보았음에도 놔줄 수밖에 없었다.
* * *
그가 사라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것도 없었을 자리에 두 명의 군인이 돌연 나타났다.
투명화인 스텔스병들이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던 두 명의 군인들은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물었다.
“부함장님. 따라갈까요?”
“따라가서 뭘 할 수 있겠나. 어차피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그냥 놔두게.”
유성 그는 여타 십 대의 소년들과 다르다.
무언가 수작이 들어옴을 알아차린다면 다음에는 더 큰 반발을 하고도 남을 성격이었다.
이제껏 철저하게 자신의 능력을 쥐 죽은 듯이 잠재운 채로 살아왔던 소년이다.
단지 그가 이제껏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제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한낱 소년의 변덕에, 이곳 모두가 무너질 수 있다.
그가 지금 이 순간 이유 모를 돌발 행동을 한다고 한들 그들에게 유성을 제한할 방법 따윈 없다.
아마도 유성의 유일한 약점.
라피스를 위협한다고 하면 그의 성격상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반드시 뒤탈이 따라붙을 거였다. 그는 그러고도 남을 자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예전에 보았던 범죄자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유성은 그 빌객스와도 비슷한 눈을 하고 있었지. 심지어는 분위기마저도.’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는 눈이 아니다.
유성의 시선은 그보다는…… 오히려.
그저 말하는 ‘사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둘 모두 세계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희대의 천재이기에 일반인과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태생부터가 달라서인가.
아스트라 부함장은 유성의 눈에서 희대의 범죄자 빌객스를 다시금 보았다.
확실히. 둘은 비슷하다.
풍기는 기류에서부터, 그 서늘한 눈매마저도.
어쩌면.
둘은 사고방식마저 비슷할지 몰랐다.
* * *
유성은 그 길로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섰다.
기잉-.
숙소의 등록자가 가까이 다가서자 접근을 감지한 자동문이 알아서 열렸다.
스윽.
돌아온 유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품에 숨긴 드라칸의 알을 꺼내 드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주위를 철저하게 훑었다.
미약한 푸른빛이 서린 것으로 보아선, 마력을 끌어 올리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저건.”
곧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벽면의 한쪽 구석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서자, 작은 크기의 통신 기기가 부착된 것이 보였다.
신경 쓰지 않았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크기였다.
‘역시 있었군. 도청 장비가. 심지어 이건 이전의 영상 촬영기보다도 몇 배는 더 작다.’
콰직.
유성은 즉각 손을 움켜쥐어 그것을 깨부쉈다.
아예 철저하게 마력까지 끌어내어 가루로 만들었다.
그의 초인적인 악력은, 도청 장비를 완전한 가루가 되어 흩날릴 정도로 잘게 부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