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운석 지대에서의 전투(2)
“……미안.”
짤막한 사과.
차마 뒤를 돌아 그녀의 얼굴을 볼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나 사용자로서 각성한 그였다.
가까운 근방의 마나를 가진 것이라면 굳이 능력을 끌어올리지 않더라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뒤를 돌아선 유성에게는, 그녀의 신체에 서린 마나를 통해 그 움직임이 보였다.
지금 라피스는 양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것도, 분한 감정이 격하게 치솟은 것도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훤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무거운 기류를 느낀 유성이 곧 말했다.
“미안하다. 라피스. 이번만큼은 이해를 해-.”
“됐어!”
라피스는 단번에 유성의 말을 자르곤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싸늘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치프는 성큼성큼 격납고를 빠져나가는 라피스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고는 그녀를 불렀다.
“이봐, 라피스! 어딜 가는 거냐!”
하지만 그녀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격납고를 나가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
유성은, 그녀가 나간 방향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저 눈동자만이 아주 조금 흐릿해졌을 뿐이었다.
치프가 물었다.
“저대로 둬도 괜찮겠냐, 유성? 저 애 아무리 봐도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 말이지.”
“괜찮습니다. 이대로 라피스가 전투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는 뒷말을 삼켰다.
‘설령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지라도. 라피스가 그놈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
유성 그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상황은, 그만큼 좋지 않았으므로.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상위체에 도달한 그 괴물 놈들과 싸웠다간-.
라피스는 틀림없이 죽는다.
* * *
위잉-! 위잉-!
그 길로 유성은 곧장 EF-05에 탑승했다.
그의 기가스가 사출로에 섰다.
“후-.”
유성은 긴 숨을 내쉬며 잠시 긴장된 내면을 골랐다.
전투에 투입되기 전, 그 긴장감을 적절히 풀고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정신을 날카롭게 유지하지 못한다면 피할 공격조차 피하지 못하지만, 반대로 너무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유성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팽팽한 긴장감과 집중감을 끌어 올리는 동시에, 서늘한 냉정함을 유지했다.
마음 한편에 라피스에 대한 미련과 잡생각들이 치솟는 것을 느꼈지만.
그는 정신을 굳건하게 다잡았다.
지금은 한낱 사념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삑.
그때,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화면에 비치는 것은 아스트라 부함장이었다.
[유성 생도.]
[네, 부함장님.]
[라피스 생도는 왜 안 나오는 거지? 스크래퍼의 세팅은 이미 완전히 끝난 것으로 아는데.]
“…….”
아스트라 부함장의 중얼거림을 들은 유성은 잠시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는 두어 번 숨을 내쉰 그가 곧 통신 저편에 있을 아스트라 부함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분명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라피스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뭐? 어째서인가? 그녀가 전투에 합류한다면 자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죄송합니다만 부함장님. 놈들은 전투체나 양산체가 아니라, 위험도가 비교도 안 되는 등급의 상위체 개체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라피스와 싸웠다간 그녀는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당하겠죠.”
유성의 드물게도 긴 대답에, 아스트라 부함장은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황은 급박했고 빠른 대화를 요구했다.
때문에 서로가 시급한 의사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라피스 생도가 있다면 분명한 도움이 될 걸세, 유성 생도.]
“그 대신 드라칸 놈들에게 확실하게 죽겠죠. 화를 돋운 대가로 말입니다.”
[…….]
유성은 침묵하는 부함장에게 재차 물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저 혼자 나갔으면 합니다, 부함장님.”
[정말 괜찮겠나?]
“라피스가 나가면 그녀는 죽을 겁니다.”
아스트라 부함장은 납득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알겠네. 라피스 생도는 내보내지 않도록 하지. 약속하겠네.]
그 말에 잠시간 눈을 감은 유성의 입가가 미약한 호선을 그렸다.
“……감사합니다. 부함장님.”
[아닐세.]
전장이라는 건, 죽음의 세계다.
그것은 표현하자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총구를 머리에 겨누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을 피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적으로 파일럿의 날카로운 감과 신경에 달려있었다.
유성의 감이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운 것 또한 그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라피스는.
아직 그 총구의 방향이 자신에게 겨누어졌는가를 판단할 경험조차도 제대로 쌓지 못한 어리숙한 마나 사용자 수준에 불과했다.
그는 문득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리고. 부함장님.”
[음? 또 뭐지? 무슨 부탁이라도 있나?]
“네. 확산탄을 최대한 많이 흩뿌려 주셨으면 합니다.”
[뭐?]
통신의 너머.
아스트라 부함장은 제 귀를 의심한 듯 되물었다.
유성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확산탄-.
그것은, 우주 공간의 상하좌우 전 방위의 범위로 무작위에 가까운 산탄을 퍼뜨려 근방에 접근을 막는 용도였다.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처럼.
당연하지만 적의 접근을 막는 의도에서의 전술탄이라 닿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폭발하는 폭발물 덩어리들이었다.
근방에 아군이 있다면 언제고 닿아 터질 위험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아스트라 부함장 또한 그러한 사실을 인지한 듯 유성에게 되물었다.
[뭐? 그 경우엔 EF-05도 움직임에 제한이 걸릴 텐데?]
“압니다. 저 또한 바로 그걸 노리는 거니까요.”
놈들. 화이트 레이븐과 다크 레이븐.
녀석들은 분명 EF-05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설령 드라칸의 핵을 교체하여 전반적인 스펙이 상승하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기가스와의 성능 차는 분명했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드라칸의 핵만을 기가스에다 장착해 쓰는 인간과, 육체 자체가 마력 그 자체나 다름없는 드라칸. 둘 중 어느 쪽의 스펙이 우월할지는, 뻔한 결과지.’
전반적인 우위.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드라칸이 위쪽에 속하였다.
때문에 넓은 공간에서 놈들을 쫓아가며 싸웠다간 필연적으로 유성 쪽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출력이 놈들에 비해 딸리는 것은 물론이고 힘과 반응속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최소한 하나의 강점만큼은 줄이고 시작해야 했다.
놈들의 터무니없는 출력을 틀어막고 싸운다면 적어도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거기에는 유성 자신 또한 운신이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어차피 상관없다. 놈들도 똑같을 테니.
“놈들과 저. 양쪽 모두가 제한을 받으면, 최소한 한 가지만큼은 동일선상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곧, 그의 말뜻을 이해한 듯, 통신의 저편에 있을 부함장이 긍정했다.
[그렇군. 확실히 자네 말이 맞아. 그럼-, 건투를 빌지.]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통신은 종료되었다.
파일럿 헬멧을 쓴 유성은 전방을 응시했다.
화려한 불빛들이 길게 이어진 출격로.
기가스의 출격로-.
그리고 그 너머에는, 시커먼 우주 공간이 보였다.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시끄럽게 격납고를 울려댔다.
[기가스 EF-05. 사출 준비. 이상 무.]
[사출로 레디. 셋.]
[진로 이상 무. 클리어.]
[기가스 EF-5 사출 세팅 올 클리어(All Clear).]
위잉! 위잉!
시끄러운 소음이 그를 괴롭혔다.
그 속에서 그는 조종간을 붙잡은 채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그가 조종간을 붙잡으며, 마력을 불어넣자.
번-쩍!
두 눈의 안광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쿠아아!
급가속하며 EF-05가 사출로를 타고 쏘아졌다.
몸을 뒤편으로 짓누를 듯 가공할 압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점차 강해지고 있는 유성이다.
그는 새파란 안광과 함께 그 압력을 별다른 무리 없이 견뎌내고서 우주 공간으로 진입했다.
[■■■■!]
‘드라칸!’
유성이 사출되는 정면에 백색의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 화이트 레이븐이 있었다.
보다 확대된 그의 동공이 녀석의 모습을 분명하게 담았다.
놈은 함선 메티스의 포탑을 박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직후, 유성은 놈에게 집중하기보다 고개를 돌렸다.
오로지 한 놈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상하좌우 모두를 훑었다.
‘화이트 레이븐 한 녀석만 보인다. 또 한 놈은 어디에 있지?’
삑-!
그때, 화면에서부터 짙은 경고음이 들려왔다.
유성은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기가스의 사각, 그의 발아래에서부터 다크 레이븐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예의 그 무장, ‘대검’을 휘두르려는 자세와 함께 말이다.
“좋아, 덤벼!”
유성 또한 초장부터 전력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는 시퍼런 안광과 함께 양손의 초진동검을 개방했다.
백과 흑, 놈들은 위아래에서부터 동시에 날아들었다.
등에 장착된 추진 장비, 대검을 뽑아 들며 전력으로 휘둘렀다.
쩡-!!
“큭?!”
유성은 짙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기체가 찌르르 울리는 게 느껴졌다. 단 일격. 일격이었다.
그런데 조종석에까지 결코 무시 못 할 막대한 충격이 전해졌다.
예상은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나 만만찮은 상대들이었다.
놈들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모든 면에서 유성이 탑승한 EF-05의 전체적인 성능을 웃도는 상대였다.
그런 강자들을 쓰러뜨리려면, 오래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 빠르게 끝장내야 했다.
막대한 충격파를 견뎌내지 못한 유성이 코피를 주룩, 흘렸다.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투법을 구사했다.
“저-리-꺼-져!!”
근거리에서의 체술과 검격을 통해 어떻게든 화이트 레이븐을 떨쳐버리며 그사이에 나머지 한 놈의 상대에 집중했다.
유성이 노리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화이트 레이븐이 아닌, 녀석을 보조하는 역할의 다크 레이븐이었다.
오로지 놈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이 녀석들의 장기이자 특기는 바로 둘이서 하나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한 녀석만 떨어뜨리면 되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공략법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금방 다시 합류해 하나처럼 움직일 터였지만, 그는 다름 아닌 유성이었다.
한때 인류 최후의 파일럿으로 불리었던. 이시혁, 바로 그다.
그는 얼마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실력의 파일럿이다.
그리고 유성 그의 생각과 전략은.
주요하게 작용했다.
촤악!
처음으로 다크 레이븐에게 공격이 제대로 적중했다.
치열한 수 싸움. 그 끝에, 녀석의 상체가 정확하게 좌에서 우로 그어졌다.
[…….]
다크 레이븐은 잠시간 침묵했다.
곧 놈의 갈라진 가슴팍의 상흔에서부터, 푸른 체액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놈의 상흔에서부터 터져 나와 우주 공간에 흩뿌려지는 저것.
바로 저것이 드라칸의 피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적중. 놈의 출혈이라는 반증이다.
[■■■■.]
곧 녀석은 유성을 향해 뭐라 뭐라 했다.
“뭐라는 거야?”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사이.
[■■.]
길게 갈라진 상흔에서부터 피를 흩뿌리며.
마치 녀석은.
제 자신이 고고한 기사라도 되는 양.
정중한 자세와 함께 양손으로 대검을 세워 잡으며-.
번-쩍!
푸른 안광을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