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운석 지대에서의 전투(1)
양산체나 전투체는 목적이 명확한 생명체다.
단순히 찍어 만들 듯, 그저 수만 불린 드라칸이다.
하지만 여왕체가 직접 낳는 상위체들은, 특별하다.
나이를 먹고 진화하며 성장하는 괴물들이었다.
시간을 주면 주는 만큼 성장하고 경험을 하면 경험을 한 만큼 배우고 써먹는다.
그리고 심지어는.
더욱 위의 단계로마저 성장하는 진화의 가능성을 머금은 것들이었다.
개체가 스스로 등급을 높인다는 의미다.
학습과 진화를 병행하는, 불가해의 괴물들이라는 것이었다.
유성.
그는 고심에 빠져 있었다.
‘통제실의 지휘부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유성은 자신의 수준과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일개 생도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내가 파일럿으로서의 능력을 증명한들, 신분의 한계가 명확해. 나는 어리지.’
지휘부는 유성이 군사학에 관한 지식 따위는 전무할 거라 생각할 터다.
실상은 전쟁을 수도 없이 겪었다지만 결국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겉보기로의 그는 십 대 소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의견 따위를, 통제실의 모두가 받아들이기나 하겠는가.
‘통제실의 이들이 제아무리 융통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은 무리이지. 가능할 턱이 없어. 게다가 이들에게는 최우선적인 과제가 있다.’
이 함선에는 십만에 가까운 일반 시민들이 함께 타 있었다.
함선 메티스의 최우선 과제는 그들을 안전하게 행성 테라까지 태워다 나르는 것이었다.
전투 따위가 아니라.
하지만 유성은 반드시 놈들과 싸워야 함을 알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그다음에 나타날 결과물은 분명하다. 확실하게 인류의 전력을 아득히 초월한 괴물이다.
그놈들은.
과거의 이시혁조차도 애를 먹었던 놈들이었으므로.
그때였다.
벌컥.
닫혀있던 엔지니어실의 문이 열렸다.
나타난 것은 수염을 길게 땋은, 판타지 소설 속 드워프처럼 생긴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여어, 유성. 어디에 있나 했더니 아직도 여기에 있었군.”
“아, 치프.”
대답하는 유성의 음성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시리도록 굳어 있던 그의 표정은 풀린 뒤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어? 슬슬 기가스의 조정이 끝날 시간이다.”
그런 유성을 향해 다가오던 치프 엔지니어는 무심코 그가 바라보던 화면에 눈길이 갔다.
그제야 그는 유성이 뭘 보고 있던 것인지 알아차렸다.
“응? 아아. 이걸 보고 있던 건가.”
“네. 놈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서 말이죠.”
“흠.”
유성의 말에 치프가 곧 턱을 쓰다듬으며 그를 말 없이 응시했다.
그에 두어 번 눈을 깜빡인 유성이 물었다.
“왜 그러는 겁니까?”
“그놈들을 보고 비정상적으로 강하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내가 보기엔 그런 괴물들을 무려 둘이나 동시에 상대하던 놈이 더 괴물 같다만.”
“…….”
그 말에 유성은 두어 번 눈을 깜빡이고는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그놈들, 척 보기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갑 파일럿들도 쉽게 씹어 먹을 것처럼 보이던데 말이지.”
“저야 애초에 규격 외니까요. 논외로 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겁니다. 놈들이 말도 안 되게 강하다는 거죠.”
“허허.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구먼. 물론 사실이기는 한데. 흠.”
상당히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유성은 지극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특정 인물에게 과한 평가를 내리지도, 그렇다고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물론 유성 그 자신 또한 거기에 해당되었다.
유성은 오랜 전쟁을 겪어왔던 기갑 파일럿이었다.
언제나 죽음이 코앞에 있고, 그것을 맞이하는 이들을 항상 보아왔다.
그런 삶을 산다면, 사람의 관념은 확고할 수밖에 없다.
제 자신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관조하게 만들기 마련이었다.
상대와 자신의 수준을 명확하게 파악해야만 전장에서의 생존이 가능하기에, 그것이 사고의 뿌리에 깊숙하게 박힌 그였다.
자만과 자조는.
전장에서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어리석은 적이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현 수준을 잘 알았다.
그의 신체 능력은 정확하게 일개 생도 수준에 불과하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작 그 정도 수준 말이다.
“그나저나 말이지. 유성.”
“네?”
머리를 긁적이던 치프가 곧 물었다.
“이전에야 스크래퍼에 탔던 데다가 라피스를 신경 써야 하는 탓에 상성이 안 좋았다고 치자. 그러면 EF-05에 타게 된다면 어찌 될 것 같은가?”
“EF-05라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말했다.
“아마 오래는 버틸 겁니다. 적어도 스크래퍼에 탔을 때와 비교한다면 말이죠.”
“버틴다라. 그 말은 이길 수는 없다는 뜻이로군.”
“네. 결국 시간만 좀 더 끌 수 있을 뿐,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물론 그 이유는 명확했다.
유성은 왜 그런지를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자신에게 있었으며, 그 해결 방법 또한 자신에게 있었다.
‘아직 내 육체적인 그릇의 크기가 너무 떨어진다. 마나 능력도 그렇고, 직접적인 육체 능력도 달려. 결국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야.’
다만 문제점이라면 그 해결 방법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당장 힘이 필요했다.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내면의 경험이 존재하여도, 당장 몸이 따라와 주질 않는다.
매 전투마다 가파르게 마나 능력이 상승하고 있더라도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알지만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운이 좋다면 한 녀석 정도는 잡을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한 놈에게 당한다. 그것도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확률로.’
지금의 유성은 놈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가 없다.
하나를 쓰러뜨려도, 다른 한 놈에게 당할 것이다.
화이트 레이븐과 다크 레이븐. 두 마리의 드라칸.
한 쌍으로 움직이며, 앞장서서 움직이는 화이트 레이븐의 뒤를 다크 레이븐이 받쳐준다.
심지어 그 움직임이란 게 마치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화이트 레이븐을 완벽할 정도로 따라하는 탓에, 거의 둘이서 한 마리가 움직이듯 겹쳐 보일 정도였다.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둘이서 하나의 강자를 상대하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는 놈들이다. 하나씩이라면 모를까,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나라도 무리야.’
유성과 드라칸 사이에 이뤄진 전투 영상을 함께 보던 치프가 소감을 말했다.
“오호. 확실히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 같군. 검은 녀석은 흰색 놈의 뒤에 가려서 아예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아.”
“둘이서 하나 된 것처럼 움직이며 서로의 허점을 알고 가려주는 놈들입니다. 분명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강자를 상대하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닌 놈들이겠죠.”
“그래?”
유성의 말에 머리를 긁적인 치프가 곧 큰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되물었다.
“그게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나?”
“직접 싸워 보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오호. 천재 파일럿의 감이라는 건가?”
그 말에 유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비슷하죠.”
치프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두 드라칸의 연계력이라는 게 강한 놈이랑 싸워서 얻어 낸 경험이라면, 그 강한 녀석이 근방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좀 비약이 심한 것 같은데?”
“비약은 아닙니다. 그저-.”
무심코 입을 열려던 그는, 도중에 입을 닫았다.
유성은 ‘상위체 이상 가는 단계의 드라칸과 싸운 적이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뒷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그저 강력한 상대로만 보이는 놈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어마어마한 강자와의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 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말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의심을 살 수가 있었다.
답변에서부터 이미 경험이 없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천재가 아니라 오로지 많은 전투를 한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위체 이상의 드라칸과 싸웠기 때문일 것이라니. 이건 나라도 말을 할 수가 없겠군.’
드라칸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태반인 먼 미래의 시대였다.
이런 곳에서 아는 체를 하면 되레 의심을 사는 게 당연했다.
“음? 뭐지?”
“아닙니다. 어쨌든, 조심해야 할 겁니다. 놈들은 저라도 이기지 못할 거라 확신할 정도이니.”
“흠. 그렇구만.”
치프는 얼버무리는 그의 기색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입을 비죽이며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확실히 유성이 생각하기에도 급하게 대충 얼버무리기는 하였다.
그때였다.
쿵!
함선 메티스가 크게 뒤흔들렸다.
충격은 생각 이상으로 거세었다.
“어이쿠!”
무중력 공간에 가까웠던 격납고였던 탓에 치프가 족히 수 미터를 위로 튕겨 나갔다.
치프는 단숨에 수 미터를 위로 치솟으며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엉? 뭐야, 이건 또.”
머리를 긁적인 치프가 문을 열고는 근방의 엔지니어들을 불렀다.
“어이! 다들 창문으로 바깥에 뭐 있나 좀 봐봐. 또 운석이라도 부딪힌 거냐?”
“잠시만요, 치프!”
곧 엔지니어 하나가 창문을 살펴보았다.
그는 곧 어깨를 으쓱이더니 치프에게 말했다.
“뭐, 운석이 부딪힌 것 같지는 않은데요?”
모두가 이 상황에 대해서 그리 무겁게 여기지만은 않는 바로 그 순간.
이변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위잉-! 위잉-!
갑자기 격납고의 천장에서 붉은 불이 들어오며 경고음이 새어 나왔다.
이건 ‘전투 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소리였다.
“……설마.”
유성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었다.
그가 예상을 한 것처럼.
곧, 아스트라 부함장으로부터 통신이 열렸다.
[유성 생도.]
그를 부르는 부함장의 음성 또한, 유성의 생각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예상대로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의 그 두 드라칸 놈이 나타났다. 자네가 필요해.]
‘역시는 역시로군. 결국 모습을 드러낸 건가.’
유성은 눈을 감고는 잠시 긴 숨을 내쉬었다.
이미 상정하고 있던 상황이다.
물론, 바라지 않던 순간이기도 했고 말이다.
[유성 생도?]
하지만 침묵하는 그를 이상하게 여겼던지 재차 그를 부르는 음성에.
유성은 곧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도록 하죠.”
유성 그가 막 통신을 끝마치고 준비를 하려는 무렵이었다.
그때, 격납고에 다급하게 들어서는 인물이 있었다.
“유성!!”
라피스였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스크래퍼에 탈 생각이었던지 파일럿 복장을 막 걸쳐 입고 있었다.
급하게 뛰어온 탓인지 숨이 한참 거칠어져 있었다.
그녀는 복장을 입으며 소리쳤다.
“드라칸이야!”
유성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라피스의 어깨에 턱, 손을 걸쳤다.
“라피스.”
“어, 어?”
그 진지한 표정에, 라피스는 순간 눈만 깜빡였다.
그녀는 상황조차 잊고는 의아함을 드러냈다. 유성이 이러는 경우는 그녀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곧 유성은 말문을 열려다 멈칫했다.
그는 잠시간 고민했다.
과연 이 말을 내뱉어도 괜찮은 걸까, 와 같은 일련의 생각들이 스치듯 지나쳤다.
하지만 그러한 상념은 잠시 잠깐에 불과했다.
‘그래. 이번엔 말해야 해. 다른 때와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자칫하면 이번에는 라피스가 죽을 수도 있으니. 아니, 죽고 말 거야.’
그는 곧 마음을 굳히고는 말했다.
“라피스. 넌 나오지 마.”
“뭐? 왜?”
“나와 봐야 방해만 돼. 이번만은 여기에 있어라.”
“뭐, 뭐라고? 왜 그러는데?”
유성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으며, 또한 무심했다.
라피스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당황한 듯했다.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들어. 라피스.”
그 말을 끝으로, 유성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매정하게 걸음을 옮기기만큼은 힘들어, 말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