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상위체(4)
그 직후부터 그들은 곧장 드라칸의 핵을 장착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스크래퍼에 탑승해 있던 유성이 말을 건넸다.
“치프.”
[오오냐. 말해라.]
치프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거셌으나, 한창 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기계음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다수의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스크래퍼의 장갑을 해체하는 도중이었다.
스크래퍼 내부의 프레임과 각종 전선들이 고스란히 외부로 드러나고 있었다.
유성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치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희는 양산체의 핵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저걸 먼저 시험해보는 것은…….”
[알고 있어. 사전 테스트 용도라는 게 아니냐. 최대한 조심할 테니 걱정은 마라.]
거듭 반복되는 유성의 주의에 대충 손을 휘저은 치프가 대답과 함께 곧장 움직였다.
기이잉-.
그는 격납고의 천장에 붙은 거대한 집게발을 움직였다.
원래 사용하던 기가스 스크래퍼의 인공 핵을 조심스럽게 잡아 뽑았다.
인공 핵이 뽑히자, 에너지원이 완전히 끊긴 스크래퍼가 방전이라도 된 듯이 퍽 꺼졌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푸른빛을 발광하는 양산체 드라칸의 핵을 교체하여 집어넣기 시작했다.
집게발이 조심스럽고 느린 속도로 움직이며 드라칸의 핵을 박아 넣었다.
그 과정에서만 이미 십여 분 가까이 소모되었다.
[후우-.]
치프가 긴장했는지 길게 숨을 토해내는 것이 통신을 통해 들려왔다.
근방의 엔지니어들은 하나같이 긴장한 채 소화기를 들고 있었다.
자칫 마찰이라도 잘못 일어나면 기가스째로 대형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다들 잔뜩 긴장했군. 표정에서 보여.’
유성은 피식 웃었다.
사실 별다른 일은 없을 것이다.
드라칸의 핵이란 게 그렇게 허약한 물건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드라칸들은 움직이는 폭탄 생명체라 불리어야 마땅했다.
놈들은 그 강력한 신체 능력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데, 만일 핵이 불안정했다면 흔들릴 때마다 진작 폭발했어야 했다.
그러니 내구성은 그 나름대로 뛰어나다는 소리다.
일부러 터뜨릴 생각을 가지고서 강한 자극을 주는 것 정도가 아니고서야, 터질 일은 없다.
단지 이들이 크게 긴장한 것은, 이때까지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생전 처음 보는 에너지 물질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경험이 많은 이들이라도 그것만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그와는 반대로 유성은 이러한 경험이라면 익숙했다.
과거에도 이런 드라칸의 핵을 장착하는 작업은 몇 번이나 해왔었다.
지겨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드라칸의 핵이 폭발하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파일럿이 미숙하기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지. 하지만 내가 직접 조율을 하는 이상 그럴 리가 없다.’
유성도 가끔 일부 기가스가 폭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였다.
애당초 일부러 터뜨릴 생각이 없고서는 터지기도 힘든 게 드라칸의 핵이라는 물질이다.
예전엔 드라칸의 사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긴장하지 않을 만큼 수시로 벌어지는 작업이란 의미였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위험한 부분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그 또한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라면 핵이 기가스에 접촉하는 순간이지. 기가스에는 강력한 전기 신호가 흐르니까 만에 하나라도 스파크가 튀면 폭발할 가능성 또한 급격히 올라가기 마련이다.’
철컥!
그때, 드디어 스크래퍼의 가슴팍에 핵이 박혔다.
조종석에까지 큰 진동이 울렸다.
마치 심장 박동이라도 하는 듯한 큰 울림이었다.
한 차례 몸이 흔들림을 느낀 유성은 아주 느릿하게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는 기가스의 내부를 빠르게 잠식하기 시작한 양산체 드라칸의 핵이 가진 마력을 강제적으로 잡아 돌리기 시작했다.
기가스의 전신을 타고 핵의 마력이 빙글빙글 돌았다.
파직, 파지직.
기가스의 가슴팍에서부터 잠깐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반발 작용이었다.
“우, 우아앗!”
엔지니어들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러한 반발 현상은 금세 가라앉았다.
성공이었다.
유성은 기가스에 핵이 완벽하게 안착하였음을 확인하곤 말했다.
“끝났습니다. 이제 EF-05의 장착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죠.”
* * *
“후우-.”
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유성은 곧장 다음 기가스의 작업에 들어갔다.
스크래퍼에 이은 두 번째로 이어진 EF-05의 작업.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또한 꽤나 간단하게 끝났다.
다만 EF-05에는 양산체의 핵이 아닌, 한 단계 강력한 등급인 전투체 드라칸의 핵이 들어갔다.
그 때문에 보다 큰 스파크가 일어났었다.
놀란 일부 엔지니어들은 놀라서 뒤로 자빠지기도 했을 정도다.
전투체의 핵이란 건 양산체보다 높은 급의 고에너지 물질이었다.
고작 단계 하나의 차이만으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났다.
유성이 타고 있는 EF-05의 상태를 확인하던 치프가 곧 중얼거렸다.
“확실히 수치가 크게 올랐어. 단지 핵을 갈아 끼는 것만으로 출력이 30퍼센트 가량이나 상승하다니. 놀랄 노자로군. 그렇다면 옛 파일로만 남아 있던 상위체의 핵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나 되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그 이상이겠죠, 치프.”
유성의 태연한 말에 치프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그런가? 이거 욕심나는군. 상위체 드라칸의 핵이라.”
상위체 등급의 드라칸.
그것은 양산체와 전투체 단계를 넘어 그 윗줄에 위치한 단계를 뜻했다.
양산체 등급이 자원 채취만을 목적으로 무수히 만들어 낸 가장 밑바닥의 하위 드라칸이며.
전투체 등급이 전투 상황만을 상정하여 적당한 자원으로 찍어내듯 양산한 전투 개체의 단계라면.
상위체 등급은 여왕체가 ‘직접’ 낳은 특수 개체였다.
‘드라칸 중에서도 특별한 개체로, 스스로 성장하고 진화하는 단계에 속한 놈들.’
상위체는 ‘특별’ 하다.
단순히 여왕체가 낳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놈들은 스스로가 경험을 쌓고 진화한다는 점에 있어서 더더욱 특별한 개체들이었다.
그 성장 방향성은 정말로 다양하다.
단순히 덩치만을 무식하게 불리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비행형, 지상형부터 우주전만을 상정하고 태어난 개체 그리고 심지어는 불과 하루 전 유성이 겪었던 두 드라칸 놈과 같이 오로지 ‘하나의 강자’만을 상정하고 두 마리가 함께 진화하는 개체 또한 존재하였다.
즉, 중요한 것은-.
놈들의 진화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알맞게 향해 간다는 거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대상을 지워 버리는 방향으로 말이지.’
그것이 바로 양산체, 전투체와 상위체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양산체와 전투체는 성장하더라도 탈피를 하며 크기만 커질 뿐이지만, 상위체는 경험을 쌓고 성장하며 보다 진화를 한다.
이전의 생에서도 가장 숱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 바로 상위체였다.
경험을 충실하게 쌓았던 개체인 탓에 양산체와 전투체들을 이끄는 역할도 했다.
쉽게 말해 ‘군체의 대장격’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녀석들이었다.
현재 함선 메티스의 인원들은 이전에 만났던 상위체 드라칸인, 백과 흑의 두 마리를 이렇게 지칭하여 부르기로 했다.
백색의 드라칸을 화이트 레이븐(White Raven)으로.
흑색의 드라칸을 다크 레이븐(Dark Raven)으로 말이다.
놈들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재빠르다는 특징에서부터 기인한 명칭이었다.
유성은 한창 기가스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바쁜 치프에게 말을 건넸다.
“치프. 전 잠시 할 일이 있어서 엔지니어실에 대기하겠습니다.”
“음? 아아,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지.”
유성은 그 말을 끝으로 엔지니어실로 향했다.
그러곤 구석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 들고는 통신을 켰다.
“아스트라 부함장님.”
[음? 말하게, 유성 생도.]
“일전에 제가 상대했던 두 드라칸 놈들의 영상 파일 좀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전투 영상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겠죠?”
[그렇지. 파일을 지우려 한다고는 해도 최소한 어떤 놈들인지는 미리 분석을 끝마쳐 두고 지워야 하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유성은 노트북을 켰다.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메일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그는 아스트라 부함장이 건네주었던 파일을 확인하였다.
거기에는 유성이 싸우는 전투 장면이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파일의 영상에는 전투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힌 것들이 여러 개 존재했다.
함선 내에 그에 대한 파일은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우리 쪽에선 이제 파일을 삭제할 테니 나중에 필요하면 오히려 자네 쪽으로 부탁해야겠군. 하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함장님.”
통화를 끊은 유성은 노트북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 그는 정지한 동영상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음?”
미간을 모은 그의 시선이 한동안 확대된 드라칸, 화이트 레이븐과 다크 레이븐의 이미지를 응시했다.
“이건…….”
유성은 화면에 비치는 놈들의 갑각질을 말없이 응시했다.
이미 한참이나 오래된 놈들인 게 분명한 듯 갑각질은 금이 가고 말라비틀어졌다.
심지어 유리가 깨지듯 드문드문 깨져 나간 것이 보이기도 했다.
‘전투의 상흔과 자상마저 군데군데 보인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보여.’
유성이 직접 싸울 순간의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당시의 그는 놈들의 공격을 인지하고 그것에 반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으니까.
가뜩이나 통짜 쇳덩어리나 다름없는 꼴이 되어 버린 스크래퍼를 컨트롤하는 데에 집중을 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정지한 영상을 들여다보는 유성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있었다.
‘이놈들. 어쩐지 상위체인 것을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강하다 싶더라니. 이유가 있었던 건가.’
역시나 예사로운 놈들이 아니었다.
유성 그의 예상대로였다.
그는 멈춘 동영상 화면을 보고서야 확신했다.
그러잖아도 유성은 이미 전투가 이어지는 순간부터 쭉 이상함을 느껴왔다.
제아무리 상위체라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완벽한 합격술과 전투 센스.
단계를 벗어난 수준의 강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위체 드라칸들을 확대해서 확인한 순간-.
그는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오래 산 개체들이 분명하다. 그것도 그 단단하던 갑각질이 완전히 말라비틀어질 만큼이나 아주 오래. 그저 단순한 상위체 놈들이 아냐.’
그는 이것이 전혀 좋지 않은 상황임을 대번에 간파하였다.
갑옷처럼 발달한 드라칸의 갑각질 사이사이로 갈라진 틈새를 바라보며.
유성은 생각했다.
‘아마도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전투를 겪어오며 그 나름대로 경험을 쌓아온 개체.’
마치 인간이 노화를 겪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탄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듯.
드라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들도 성장과 동시에 생명체로서는 거칠 수밖에 없는 노화라는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이놈들은.
노화의 단계가 시작할 만큼이나 오래된 개체들이었다.
바로 그것이 유성 그가 상대했던 놈들의 정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놈들은, 어쩌면 상위체 단계의 끄트머리에 도달해 다음 단계를 엿보고 있는 개체일지도. 만약 녀석들에게 이대로 시간을 더 내준다면.’
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진화해서 다음 단계로써 인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