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상위체(3)
엔지니어들이 EF-05의 무장을 떼어 내고 있었다.
둘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프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망할. 결국 그 고생을 했던 걸 죄다 떼어 내게 생겼군.”
“대신 다른 걸 달도록 하죠.”
“응? 뭘 말인가?”
그의 물음에 유성은 곧 입을 열었다.
“EF-05의 일부 파츠만 부분적으로 드라칸의 것으로 바꾸도록 하는 겁니다.”
“어느 부위를 말인가?”
“핵 말입니다.”
“핵? 핵이라?”
치프가 의아하다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유성은 그의 물음에도 별 대답 없이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응? 아까부터 뭘 보는 거냐?”
그 눈길을 따라 치프도 자연스럽게 한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유성이 바라보는 방향.
거기에는 격납고에 너절하게 널린 드라칸의 사체가 있었다.
“어…….”
곧 유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아차린 치프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침을 꿀꺽 삼킨 그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설마 유성 너. 저, 저걸 사용할 생각이냐?”
“이미 알고 있으시다면, 얘기는 빠르겠군요.”
저 사체들은.
모두 기가스의 부분적인 무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가져다 둔 것들이었다.
사실 드라칸의 사체란 것은, 마나를 머금은 생체 조직이다.
세포 하나하나, 근섬유질 하나하나가 모두 마력을 전달하는 데에 용이하게 이루어져 있다.
마나 전도율이 지극히 뛰어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때문에, 과거의 전투용 기가스들은 모두가 이러한 드라칸의 핵(核), 그러니까 심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중대한 오류’가 발생했다.
[초기의 대전쟁 이후, 인류는 행성 테라로 이주했다. 그 시점에서부터, 인류는 드라칸을 400년 동안이나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 지금에 와서는 드라칸의 핵을 얻지도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전투용 기가스의 핵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답은 간단했다.
그 이후로 만들어진 새로운 기가스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달고 있었다.
‘바로 드라칸의 핵을 흉내 낸 인공 핵을 사용해 왔다는 의미지. 지난 400년 동안 줄곧.’
지금의 기가스들이 달고 있는 핵이란, 결국 과거의 것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모조품은 결국 모조품.
진품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진짜를 흉내 낸다는 의미에서의 모조품이었으니까.
하물며 세포 한 점, 한 점 마력을 전달하는 데에 용이한 것이 드라칸의 핵이었다.
제아무리 인류의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흉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 이제껏 유성이 탑승했었던 기가스 EF-05나 스크래퍼가 그러한 모조품 핵을 달고 있던 탓에 예전 전투용 기가스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유성은.
지금 그러한 전투용 기가스의 핵을, 드라칸의 것으로 갈아 끼자고 말하고 있었다.
“끙.”
치프는 드물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척 봐도 그가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나로서도 처음 있는 일인데. 괜찮나? 아니, 애당초 그 누구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을 거야. 진짜 드라칸의 핵을 가지고 장착한다는 일은 말이야.”
“못할 것이야 없죠. 오히려 원래라면 이게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치프라도 고민을 쉽게 멈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드라칸의 핵은 작은 발전소나 다름이 없다고 들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폭발하겠지. 내가 기가스를 만들어 본 경험이 많다지만, 그것까지 다뤄 본 적은 없어.”
힐끗 드라칸의 사체를 응시한 치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하다. 지금이야 이미 죽은 놈들이라 괜찮다지만, 기가스와 드라칸의 마력을 담은 핵이 융합하면 정말로 폭발할 수도 있어.”
그 말에 유성은 치프를 돌아보았다.
유성은 드물게 웃고 있었다.
“걱정은 마시길. 그거라면 제가 전문이니까.”
“뭐?”
치프는 모르겠지만, 유성은 드라칸의 몸에 있어선 전문가 수준이었다.
빠삭하다고 해도 좋았다.
그가 죽인 드라칸 시체를 산처럼 쌓아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 그였기에, 얼마든 자신이 있었다.
“처음은 양산체의 것을 시험 삼아 먼저 해 보죠.”
“그러니까, 단계적으로 해 보겠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양산체의 것을 먼저 스크래퍼에 박아 넣어 보죠. 그 다음으로 전투체의 것을 전투용 기가스인 EF-05에 사용해 볼 겁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이곳에는 드라칸의 사체가 잔뜩 널려 있다는 것,
시험해볼 재료라면 넘친다는 의미다.
모두가 유성과 라피스가 직접 상대했던 드라칸의 부산물이었다.
이것들 모두가 오래전에 출현했던 드라칸의 재출몰을 증명할 증거이자, 당장 써먹을 재료였다.
드라칸의 사체들은 대부분 깔끔하였다.
유성이 직접 처리하고 가져온 것들이었다.
그가 상대한 놈들의 사체는 예리하게 절단되어 있었으며, 총알이 관통한 흔적마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쉽게 말해 기가스의 부품 대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최상의 재료라는 의미였다.
“잠깐만, 내가 직접 절단용 커터를 가지고 오……!”
“괜찮습니다.”
대답과 함께, 유성은 그를 붙잡았다.
치프는 의아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보여주듯 손에 들린 전기톱을 들어 보였다.
기이잉-.
시퍼런 마력이 뿜어지며, 전기톱에 새파란 기운이 서렸다.
“아하!”
치프는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보니까 굳이 장비를 가지러 갈 필요가 없었군. 가장 뛰어난 절단 장비가 내 눈앞에 있는데 말이지. 아니, 이 경우에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저로서도 나름대로 단련을 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으니 나쁘지만은 않죠.”
유성은 피식 웃었다.
설마하니 살다 살다, 맨몸으로 드라칸을 해체하게 될 줄이야.
유성, 그로서도 이것만큼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마나 사용자들은 평범한 검에도 마나를 일으킬 수 있었다.
기가스의 무장인 초진동검이 마력을 기반으로 한 예리한 절단 무장이듯이, 단순한 검일지라도 마나 사용자가 마력을 일으켜 부여하면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무기가 된다.
즉, 그러므로 이론상으로는 맨몸의 마나 사용자라도 손에 날붙이만 들고 있다면 드라칸의 상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론상으로는 말이다.
키이잉.
보호복을 입은 유성은 곧장 작업에 착수하였다.
예리하게 회전하는 전기톱의 톱날이 드라칸의 신체를 갈랐다.
드라칸의 살점이 갈려 나가며, 파편이 요란하게 튀었다.
아직까지 채 마르지 않은 내부의 파란 체액이 그의 보호복에 잔뜩 묻었다.
파란빛을 뿜어내는 형광 물질에 온몸이 잠긴 광경은, 상당히 기괴하였다.
흡사 오염 물질에 몸을 담근 듯해 보였다.
곧, 유성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드라칸의 사체 내부에서부터 꺼내 들었다.
“이거다.”
그의 손에는 새파란 점액질을 뚝뚝 떨어트리는 구슬이 있었다.
바로 드라칸의 핵이었다.
* * *
치프 엔지니어.
그는 앞에 나열된 두 개의 드라칸 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단순히 조금 대단하고 만 수준의 물건이 아니다. 무려 거대한 기가스를 가뿐하게 움직이게 만들 정도의 동력 역할을 하는 발전소나 다름이 없지.”
치프는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고작 한 손에 모두 들어올 만큼 작은 물건.
하지만 그 에너지란, 거대한 기가스조차 움직일 정도로 대단했다.
다만 그마저도 이 물건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것은 ‘그 이상’의 물건이다.
‘지구 시절의 인류는 이것을 사용해서 함선조차 움직였을 정도이니까.’
당시의 지구 함선들은 대부분 드라칸의 핵을 박아 넣어서 움직였다.
드라칸은 넘치도록 많았으며, 그러한 만큼 드라칸의 핵을 사용하는 함선 또한 넘치도록 많았다.
기가스 또한 그 수가 대단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했다.
요컨대 그 말의 의미는 이러했다.
드라칸의 핵은, 그만큼 대단한 종류의 물질이라는 것이다.
무려 기가스와 함선을 움직이고.
까마득한 미래인 지금에 와서조차 흉내를 간신히 내는 것조차도 고작일 정도로.
반대로 그 말의 의미 또한 명확했다.
이 핵이 가진 능력이야말로 바로 드라칸이 인간의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이유였다.
출력이 강하며 에너지도 월등하다.
인간이 지닌 어떠한 물질보다도.
유일하게 비견될 만한 종류라면 핵발전이 유일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강하고 오래 산, 보다 높은 등급의 드라칸일 수록 크고 고등한 핵을 지녔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한 에너지를 체내에 품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 탓인지 극히 오래 산 일부의 개체들은.
개중 함선에 탑재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수준의 핵을 지녀 가히 재앙에 가까운 괴물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드라칸의 핵을 따라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성.”
치프의 눈길이 유성을 향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네가 이걸 제대로 제어가 가능하냐야.”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 하긴 설령 문제가 있어도 상관은 없을 거다.”
“어째서입니까?”
의문을 표하는 유성에게, 그가 말을 이었다.
“문제가 생길 때면 이미 함선 째로 날아가 버린 탓에 막으려 해도 이미 늦었을 테니까 말이야. 설령 막아내더라도 최소한 너와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그의 실현 가능한 농담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섬뜩한 소리를 잘도 농담이라며 해대고 있었다.
“그렇겠군요.”
이 치프라는 사람, 역시 유쾌하기 짝이 없다.
정작 그것이 유성 그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고개를 끄덕인 유성이 곧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서두르죠.”
“그래. 하긴 그 상위체라는 괴물들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는 모르긴 하지.”
함선 메티스는 이미 움직임을 멈추었다.
드라칸의 핵을 기가스에 합친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부터였다.
작은 발전소 수준이라는 드라칸의 핵을 시험한다는 소릴 들었으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십만의 인원을 태운 그 거대한 함선이 멈추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나, 치프의 물음 한마디만으로 충분했다.
[이대로 그 상위체라는 괴물 놈들한테 쪽도 못 써 보고 당할 거냐? 내 생각에 이대로 죽 진로를 고정해서 움직였다간 그놈들과 만날 건 뻔해 보이는데?]
그 상위체들. 그 괴물들.
유성이 상대했던 두 마리의 놈을 뜻하는 것이었다.
놈들이 향한 방향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것은 분명 베자리우스 E.X 콜로니가 있는 쪽이었다.
만날 가능성이라면 차고 넘쳤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 놈들과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한 상황을 통제실의 인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알면서도 가야 했기 때문에 이렇게 강행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어차피 만날 놈들이라면 최소한 싸울 정도의 전력은 쌓아두는 게 맞았다.
함장을 포함한 통제실의 군인들과 치프, 유성의 생각이 공통적으로 맞닿은 셈이었다.
치프의 거의 반 강압적인 말에 부함장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함장마저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함선 메티스 내에서는 치프의 입김이 생각 이상으로 센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