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상위체(2)
유성은 그제야 파일럿 복장을 벗었다.
답답한 감이 그제야 사라졌다. 숨통이 한결 트였다.
파일럿의 복장이란 건, 그저 단순한 재질이 아니다.
착용자가 설령 골절로 뼈가 튀어나오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강한 압박을 통해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게 해주는 역할 또한 겸했다.
이제껏 유성이 괜히 복장을 착용한 게 아니었다.
그는 벽에 기댄 채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을 쭉 내뺐다.
동시에 짙은 피로함이 몰려들었다.
주륵.
‘음?’
코에서 무언가 죽 흘러내리는 이물감이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무심코 슥 닦아 보니 코피였다.
‘복장을 벗자마자 이 지경인 건가.’
유성은 피식 웃고는 흘러내린 피를 닦았다.
그는 벽을 짚고 일어나려다 한 차례 크게 휘청거렸다.
지면이 미끈거릴 정도로 질척이는 피로 범벅이었다.
숨을 내쉬기조차 가빴다.
“후.”
전투의 여파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몰려들고 있다.
느껴져 왔다. 실시간으로 몸의 반동이 후폭풍처럼 몰려들었다.
그제야 그는 상반신의 욱신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몸 이곳저곳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통증들 또한.
전투 내내 분비되었던 아드레날린이 점차 가라앉고 있는 것이었다.
‘마력이 워낙 부족했던 탓에 전투 내내 온 마력을 초진동검과 기가스의 운용에만 집중해야 했으니.’
그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
거기에 유성, 그 자신의 ‘육체’는 정작 포함하지조차 못하였다는 의미다.
그는 파일럿 복장 하나만을 믿고서 그 데미지를 죄다 받아 낸 것이다.
맨몸으로 말이다.
‘내 몸에 둘러쌀 마력조차 부족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는 비척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마력을 두르지 않은 맨몸으로 교통사고 수준의 충격을 수십 회 이상을 연달아 받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는 언제 죽었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단지 이제껏 무수히 경험해 왔던 요령으로 흘리듯 받아 냈을 뿐이다.
푸슉.
곧이어 머리, 몸통, 다리 할 것 없이 전신에서 피가 분수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마치 고압 분사기처럼.
온몸이 강렬하게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시야가 빠른 속도로 어두워졌다. 마치 전등의 불이 꺼지듯, 천천히 시야가 암전한다.
‘아무래도 지금 라피스를 보러 가는 것은 무리겠군.’
그러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유성은 곧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철퍽.
어느새 바닥에 핏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유성은 그곳에 푹 고꾸라졌다.
지면에 흥건한, 질퍽한 핏물의 질감.
유성은 정신을 잃었다.
* * *
기가스. 풀네임은 기갑 기동 병기 기가스.
그 의미란, 기동력을 가진 인간형의 병기를 뜻한다.
사실 전쟁의 초창기에, 기가스란 건 그저 장착형 무장에 불과했었다.
초기의 대전쟁에서, 인류가 드라칸을 죽일 방법은 지극히 적었다.
기술력도 달리는 편이었고 마나 사용자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마력을 머금은 드라칸의 사체를 갑옷과 같은 장착형 무장으로 가공하여 입었다.
그것이 전쟁이 이어지는 사이에 빠르게 발전하여 지금처럼 탑승형의 기가스가 된 것이었다.
즉. 전쟁의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기가스라는 것의 정의란.
기갑병기가 아닌 기갑무장, 드라칸의 사체를 해체하여 인간이 입을 수 있게끔 ‘재가공한 갑옷’을 뜻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낸 치프는-.
“어떠냐, 유성.”
유성에게 자신의 생각을 묻고 있었다.
“글쎄요.”
정작 유성의 대답은 모호했다.
그는 이전보다 단단해진 듯한 느낌의 EF-05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프는 드라칸의 사체를 재가공하여 EF-05에 마치 갑옷을 입히듯 덧대었다.
방어력이 크게 상승했지만, 유성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랬다.
‘오히려 마나 소모만 더 크겠는데.’
애초에 그는 초창기 1세대의 기갑 파일럿이었다.
당연히 과거의 모든 오류들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실제로 경험하기까지 했던 인물이었다.
기가스에 딸린 무장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활성화하기 위한 파일럿의 부담만 더 커지게 될 뿐이다.
무겁고 기능이 많은 무장은 유성에게 좋지 못했다.
“…….”
그는 분명 멀쩡하게 격납고에 서 있었다.
두 발로써, 조금의 상처도 없이 말이다.
몸이라면 이미 진작 회복되었다.
온몸에서 피 분수를 뿜던 광경은 헛것이라도 된 양 사라졌다.
불과 반나절 만에, 그는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만큼 진보한 의료 기술 덕분이었다.
“무장이 너무 무겁군요.”
그가 보기에 지금 눈앞의 드라칸 사체를 덧댄 EF-05는 그저 무겁기만 할 뿐인 기가스에 불과했다.
불필요한 수준의 개조였다. 과하다는 말이 어울릴 터였다.
“엉? 하지만 이렇게까지 덕지덕지 달지 않으면 드라칸의 공격을 버틸 수도 없을 텐데?”
“어차피 놈들에게는 제대로 직격당하면 무엇으로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애당초 놈들의 공격은 함선 메티스의 장갑마저 꿰뚫죠. 이렇게 기가스의 무게만 늘려 봐야, 의미 없이 마력 소모만 늘어나니 차라리 맨 처음의 상태가 나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유성은 말을 이었다.
“전 마력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에요. 아무리 잘 쳐줘 봐야 초짜 파일럿 수준일 뿐이니 오히려 힘겹기만 할 겁니다.”
“아, 그랬었지. 네 조종 실력이 워낙에 대단한 탓에 잊고 있었단 말이야.”
치프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태연하게 수긍했다.
확실히 저 모습을 보자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게 분명해 보였다.
유성은 이제 겨우 잘 쳐줘 봐야 초짜 파일럿 수준의 마력량이 전부였다.
오히려 당장에는 라피스보다 적을 정도로.
그는 기껏 장착했던 무장을 죄다 떼어버리라는 소릴 하고서도 큰 미련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미련이라면 반대쪽에 있었다.
스윽.
그의 눈길이 옆으로 향했다.
유성은 정작 제 자신이 탈 EF-05가 있는 방향이 아닌, 스크래퍼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길에 대한 의미를 눈치챘던지, 치프 엔지니어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유성. 너무 미련은 갖지 말라고. 어차피 자네도 알고야 있잖아? 드라칸이 나타났는데 일일이 신경 썼다간 살아남지 못해.”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만.”
그는 솟구치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이마를 짚었다.
드라칸은 강하고 지금 그들은 다른 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최우선적인 선택과 행동이었다.
‘이제 내 스크래퍼는 영영 끝장이다.’
유성은 처참한 기분을 다시금 맛보아야 했다.
잠시간 잊고 있었는데, 격납고에 다시 오니 그 기분이 또다시 되살아났다.
그간의 노고가 생각났다.
스크래퍼를 제작하며 겪었던 과정들이.
밤낮으로 최선을 다해 제작했던 기가스였건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다.
유성의 입장에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물론, 여전히 내가 개발한 스크래퍼의 도면은 파일로써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짜 실물을 보는 것과 도면을 보는 것은 또 전혀 다른 얘기이니까.’
유성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끼던 애장품이 박살 난 장인의 허망함이 이러할까.
스크래퍼를 이대로 행성 테라까지만 가지고 갔더라면 하는 미련과 후회감이 일었다.
아마 그랬다면, 분명 유성의 진로는 탄탄대로였을 텐데 말이다.
손안에 있던 엔지니어로서의 미래가 가루가 되어 빠져나가며 흩어졌다.
한창 그가 한숨을 집어삼킬 즈음이었다.
우웅-.
부함장 아스트라로부터 받았던 통신 장비가 미약한 진동을 일으켰다.
통신 요청이 온 것이었다.
유성은 그 즉시 그의 통신을 받아들었다.
부함장 아스트라가 시작부터 예의를 차렸다.
[유성 생도, 한창 몸도 안 좋을 때인데 미안하네.]
“아닙니다. 지금은 별다른 문제도 없을 정도이니까요.”
[어쩌다 자네의 진로 희망서를 보게 되어 연락한 것이네만. 자네, 혹시 산업용 기가스 대학에 가는 게 희망하는 진로인가?]
“네? 맞기는 합니다만.”
유성은 대답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을 했다.
‘이 시점에 이러한 내용을 말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지? 아직도 가려면 멀었을 텐데.’
그의 여러 생각이 겹겹이 겹치는 와중, 부함장 아스트라가 안도했다는 듯 말했다.
[다행이로군.]
“그게 무슨…….”
[내가 아는 산업용 기가스 대학에 자네를 추천해주지. ST라는 대학인데, 꽤 유명한 곳이야.]
“……!”
유성의 미간이 살짝 모아졌다.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그것은 의심이나 미심쩍음에 대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옅은 흥분의 표현이었다.
‘심지어 ST라고?’
그곳은 기가스 대학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이름이 유명한 기가스 엔지니어라면 대부분 그곳을 통해서 나왔다고 해도 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유성이 목표로 했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그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바닥까지 추락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것이 바로 추락 뒤의 비상인가.
“정말입니까?”
[정말일세. 뭣 하면 자네 옆에 함께 있을 치프에게 물어보게나. 한때에는 그가 그곳의 교수로 취임했던 적도 있었지. 물론 수업이고 뭐고 죄다 걷어차고 제 연구만 하느라 금방 잘렸지만 말이야.]
“오-.”
유성은 드물게도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는 저도 모르게 옆에 나란히 선 치프에게 눈길이 갔다.
머리를 감지 않았던 탓에 간지러움이라도 느꼈던지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치프 엔지니어의 모습이 보였다.
유성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겉보기로는 별 신용이 안 가기는 하는데, 정말인 건가?’
저런 행동을 하는 치프가 교수로 당시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그 이미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프를 옆에다 두고 그 사실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성은 무심한 편이지만 예의 또한 잊지 않는다.
그는 곧 알겠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죠.”
당연하지만, 유성은 주는 선물을 굳이 거절하진 않는 성격이었다.
하물며 기가스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산업용 기가스 대학에 입학하는 길뿐이었다.
부함장 아스트라가 직접 그 길을 열어 준다니, 유성으로서는 마다할 일이 없었다.
오히려 흔쾌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제껏 고대한 진로가 확정된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제까지의 고난들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하하. 그렇게 여겨 주니 고맙군. 자네가 이제껏 힘써 와 주었던 데에 대한 보상일세. 이해해 주게. 내가 해 줄 만한 게 이런 것뿐이라 말이지. 자네에 대한 기록도 일절 남겨두지 않아서, 솔직히 우리들 입장에선 공식적으로 자네를 후원해줄 수가 없어. 이 정도의 것들이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일세.]
“아닙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진로 문제였으니, 보상으로는 충분합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죠.”
[고맙네. 유성 생도. 하하!]
부함장 아스트라는 그제야 안도한 듯 후련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일전에 치프가 제멋대로 스크래퍼를 개조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유성도 유성 나름대로 미약한 미소가 설핏 입가에 걸렸다.
‘나쁜 일만 있나 싶었더니, 좋은 일도 생기는군.’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가 가장 원했던 진로였다.
유성이 마다할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통신을 끊겠네. 지금 한창 일이 바빠서 말일세.]
감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둘의 통신이 끊겼다.
십만에 가까운 인원이 승선한 함선 메티스의 부함장이 처리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닐 터였다.
그는 용무가 끝나자마자 정말로 바로 통신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