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상위체(1)
“죽어라, 괴물 새끼들.”
기가스, 스크래퍼의 양 포문이 불을 뿜었다.
초근거리에서 쏘아진 탄환이 놈들을 덮쳤다.
하지만 역시 괴물은 괴물이라는 것일까.
놈들은 단지 몸체를 비트는 것만으로 너무도 손쉽게 공격을 회피했다.
유성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거리의…… 공격을 피해내?”
[■■■?]
백색의 드라칸은 유성 그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한 발 뒤로 빠져 옆에 선 흑색의 드라칸을 보았다.
둘은 마치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 잠깐 시선을 마주하더니.
곧, 천천히 자신들의 등을 향해 손을 올렸다.
유성 그가 바짝 긴장한 순간.
드라칸의 손이, 등 뒤에 달린 거대한 ‘대검’을 붙잡아 뽑았다.
대검에서, 새파란 불꽃이 길게 타올랐다.
‘……설마.’
그 모습에 유성의 눈이 급속도로 커졌다.
그의 입이 다물 수도 없을 만큼이나 놀라서 살짝 벌어졌다.
그런 그의 놀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드라칸 놈들이 조금의 시간차조차 없이 동시에 대검을 뽑아 들었다.
새파란 마력이 불꽃처럼 검신을 타고 확 타올랐다.
유성이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대검? 설마 저게 단순히 추진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 무장 그 자체였다고?’
황당하기 그지없음에.
곧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하. 검을 꺼내는 드라칸이라.”
……보면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이것은 흡사 드라칸이라기보다 무장한 기가스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기갑 파일럿들을 말이다.
하지만 당황은 한순간이었다.
저 상위체 드라칸 두 놈이 노련하기 짝이 없듯, 유성 그 또한 이보다 더한 상황도 겪어본 기갑 파일럿이었다.
노련함이라면 오히려 유성 그가 우위였다.
놀람에는 이골이 났다.
금세 차게 식은 유성의 두 눈이 서늘한 안광을 뿜어냈다.
“좋아. 덤비라고. 대신 둘 다 멀쩡히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 최소한 한 새끼만큼은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죽여 없애 주지.”
[■■■■.]
인간의 언어 그리고 드라칸의 언어.
살기와 살기가 서로를 관통하듯 꿰뚫는다.
서로 말뜻은 통하지 않았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의미만은 서로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시퍼런 예기를 뿜어냈다.
지금 상황에서 함선 메티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어차피 포격조차 죄다 피할 정도의 빠르기를 지닌 드라칸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의 포격이란 오히려 유성이 얻어맞을 위험이 있었으며, 거치적거리기만 할 정도였다.
‘이놈들이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의 무리를 끌고 오기 전에 여기서 박살 내야 한다.’
드라칸은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야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나중의 일이 걷잡을 수 없도록 불어나게만 할 터였다.
하물며 이 정도의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을 드라칸 군체의 본진이라면-.
필시 보통 놈들이 아닐 터였다.
어쩌면 상위체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놈들이 전부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적어도 한 놈은 잡아야 다음에 놈들이 다시 나타날 때의 상황이 수월해진다.’
유성은 조종간을 세게 붙잡으며 벌써 이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두 인간형 드라칸.
그들 셋이 다시금 접전을 치르려 하는 그 순간.
백색의 드라칸이 대검을 뽑은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
놈은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뒤쪽을 돌아봤다.
그러더니 흑색의 드라칸을 향해 소리쳤다.
[■■■■!]
그것이 시발점이었다.
놈들은 유성에게 시선조차 흘리지 않고 그 즉시 이 자리를 이탈했다.
유성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마치 무슨 급한 상황이라도 벌어진 양.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왔던 방향을 향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고오오-!
순식간에 두 드라칸이 푸른 직선의 빛이 되어 그대로 멀어진다.
그 결과, 오로지 유성 그만이 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뭐야. 그냥 간다고?”
그 말이 맞다는 듯, 놈들은 시퍼런 마력을 선처럼 내뿜으며 실시간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놈들은 정말로 가 버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
* * *
드라칸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확인한 직후.
유성은 곧장 복귀했다.
이제껏 개폐되었던 거대한 격납고 문이 열렸다.
함선에 복귀한 유성의 기가스, 스크래퍼가 내부로 들어섰다.
쿠웅-.
한 차례의 진동과 함께, 격납고 바닥에 내려선 그는 채 전투의 종료에 안도할 새도 없이 곧장 몸을 풀었다.
아직 상황은 종료 되지 않았다.
사라진 두 드라칸, 놈들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급하게 가 버린 것인지는 알아야 했다.
‘그놈들은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유성!”
“아, 치프.”
그때, 저 멀리서 치프가 다가왔다.
그는 뭐라 할 새도 없이 물부터 건네주었다.
유성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마셨다.
뜨겁게 달구어졌던 내부 식도에 찬물이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그 사이 치프는 유성의 등과 어깨를 얼음팩으로 손수 다져 주었다.
유성의 전신에서는 지금도 전투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다.
체온은 올라갔으며, 숨은 거칠었다. 거친 전투로 인해 관절은 삐걱거리기까지 했다.
치프가 제 손으로 직접 올라간 체온을 낮춰 주고 있는 것이었다.
“유성, 너 왼쪽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데?”
“괜찮습니다. 그보다 라피스는 어떻습니까?”
“병실로 데려갔다. 단순 찰과상이야. 걱정 안 해도 돼.”
“다행이군요.”
곧 치프는 옆의 장비 칸에서 플래시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피가 흐르는 유성의 눈에 불빛을 비춰 기본적인 동공 반응을 체크했다.
유성, 그의 동공이 빛의 세기를 따라 확장되고 축소되고를 반복했다.
“시각은 정상이군. 제대로 반응해. 심각한 부상은 아닌 모양이야.”
“후우. 그렇군요.”
숨을 헐떡이는 그를 향해, 치프가 물었다.
“유성, 마력은 왜 풀지 않는 거냐?”
“어쩌면 아직 전투 상황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어서요.”
“뭐?”
유성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희미한 푸른빛이 어른거렸다.
아직까지도 그가 끌어 올린 마력을 채 풀고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당장 마력을 끌어 올린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체력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음에도, 이것은 필요한 행동이었다.
지금 끌어 올렸던 마력을 푼다면, 아마 그는 전투의 반동을 고스란히 얻어맞을 터였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현 몸 상태를 유지했다.
치프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의아해서 물었다.
“그놈들, 도망간 것 아니냐? 아니면 물러선 것이라던가. 여기서 보니까 너도 꽤 잘 싸우던데.”
치프는 마나 사용자가 아니었다.
때문에 자세한 전황을 볼 줄도, 접전의 수준을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당연히 접전 동안 이뤄지는 밀고 밀리는 공방의 기류를 읽을 수 없다.
전투는 어디까지나 엔지니어가 아닌 기갑 파일럿의 영역이었다.
그가 보고 판단한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일반인의 눈으로 보는 견해였다.
유성은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놈들이 도망갔을 리는 없습니다. 2대1이었던 데다, 그놈들 쪽이 유리했거든요. 스크래퍼를 탄 상태로는 저도 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
“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놈들.”
유성은 표정을 굳힌 채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자기 동료 놈들을 데려올지도 모릅니다.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바로 그것이 유성이 아직까지 마력을 채 풀지 못하는 이유였다.
물론 유성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게나 급한 움직임은, 결코 동료들을 부르기 위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아마도 어쩌면, 놈들의 본진에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는 거겠지.’
물론 그 또한 확신은 하지 못한다.
전투에 몰입하느라 돌아가는 객관적인 상황을 눈으로 보지 못한 탓에 유성 그라도 단언할 수만은 없었다.
그저 무언가 급한 상황이 놈들에게 생겼다는 것 정도만을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드라칸의 존재가 다시금 확인되었다.
이제 상황은 언제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몰랐다.
때문에 유성이 무턱대고 긴장을 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놈들은 함선 메티스가 향하려던 방향과 비슷한 쪽으로 사라졌다.
그 방향은, 분명 베자리우스 E, X 콜로니가 있는 방향.
그 말은 이대로 함선 메티스가 움직이다 보면 놈들과 다시 마주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방금 전의 그 드라칸 놈들이 향했던 방향은 함선 메티스의 진로 방향과도 거의 일치했다.’
그러므로 가다 보면 아무래도 만날 가능성이 컸다. 그것을 아는지 부함장 아스트라로부터 통신 요청이 왔다.
삑.
호출음이 울렸다. 동시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유성 생도.]
“네, 부함장님. 듣고 있습니다.”
긴 숨을 내쉰 유성이 대답했다.
아스트라가 말을 이었다.
[지금 한창 해당 건에 대하여 상의 중이네만, 일단은 전달해 주어야 할 듯하여 연락했네.]
“전달이라면, 아마도 함선의 진로 방향에 관한 것이겠죠.”
[자네 말대로일세. 현재 이 진로 방향을 계속해서 고집해야 할지, 아니면 방향을 틀어 안전하게 가거나 놈들을 추격해야 할지에 대한 여러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중이야.]
미간을 모은 유성이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단 방향은 틀 수가 없어. 아마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결국 베자리우스 E.X 콜로니는 행성 테라에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니까. 길도 거쳐야 하고, 무엇보다 보급이 문제야.]
“보급이라…… 그렇다면 결국 지금 당장 가느냐. 아니면 좀 기다렸다 가느냐의 선택이겠군요.”
[정확하지. 하지만, 문제는 어느 쪽을 택해도 위험하다는 거야.]
“부함장님께서도 여러모로 고민이 크겠군요.”
[그래. 하지만 어차피 선택해야 할 문제이니까. 후우. 고민이로군.]
나직한 한숨을 내쉰 그는 곧 짤막한 통신을 보내왔다.
[그러니, 이후의 결정된 의견에 대해서도 따로 알려주겠네.]
“네, 알겠습니다.”
* * *
이후의 상의 결과가 전해지기는 금방이었다.
부함장 아스트라로부터, 통신이 연결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이대로 직진할 것 같다. 위험하지만, 베자리우스 E.X 콜로니까지만 간다면 그곳의 군부대에서 알아서 놈들을 상대해 줄 거야.]
“그렇습니까.”
유성은 크게 미련을 갖지 않았다.
함장 라프티리아와 아스트라 부함장의 고저 없는 음성으로 보아, 이미 유성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딱히 이해하지 못할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그들의 반응으로 볼 때, 그들은 분명 그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선에서 행동을 해왔다.
함장 라프티리아의 말처럼, 함선 메티스는 지금 군 관계자들만이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콜로니가 파괴된 지금 시점에서 십만에 가까운 일반인들을 태운 그들의 최우선 과제란.
바로 그들을 안전하게 본 행성인 테라로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전투는 그들의 주 목적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부함장님. 아, 그리고.”
[뭐지?]
“가능한 빨리 오셔야겠군요.”
[음?]
“지금 제 몸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마, 길어도 수십 분을 못 넘을 듯한데.”
[……그게 무슨? 알겠네. 일단 지금 바로 가도록 하지!]
삑.
다급한 부함장 아스트라의 음성.
곧 통신을 끊은 유성은 뒷면의 벽에 기대어 앉았다.
“후-.”
유성은 그제야 파일럿 복장을 벗었다.
답답한 감이 그제야 사라졌다. 숨통이 한결 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