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습격, 흑백(黑白)의 드라칸(1)
“그래. 일종의 모의전인 셈이지.”
유성은 가감 없이 대답했다.
그러고서 그는 힐끗 함선이 있는 방향을 살폈다.
통제실의 거대한 창.
그곳을 통해, 다수의 군인들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함장 라프티리아와 부함장 아스트라 등의 주요 인물들까지 모두 있었다.
그들 모두가 라피스와 유성, 두 생도들의 출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다들 모여서 지켜보는군. 하긴 그럴 만도 한 건가.’
이번의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꽤나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정식 군인도 아닌 일개 생도들이 하는 훈련.
심지어, 생도가 생도를 상대로 주도하는 모의 기가스전이라니.
적어도 단 한 번도 없었던 상황인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토를 다는 이들은 없었다. 물론, 의문을 가지는 이들도 말이다.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왜냐하면 유성의 실력은 이미 통제실에 있던 모두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유성의 기가스 조종 능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베테랑급의 파일럿조차 가볍게 발아래로 두는 게 바로 그의 실력이었다.
그런 유성이기에, 이 훈련에 의문을 품거나 코웃음을 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유성의 사출 요청이 나왔을 때 함장과 부함장은 볼 것도 없이 곧장 수락했을 정도였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양 흔쾌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었다.
“…….”
창가를 응시하던 시선을 회수한 유성이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고오오-.
거기에는 라피스가 탑승한 전투용 기가스 EF-05가 있었다.
[어…… 근데 유성.]
“왜.”
[그 기가스로 괜찮겠어? 엄청 무거워서 움직이기조차 힘들 텐데.]
라피스의 목소리는 마치 유성 그를 신경 쓰기라도 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 말에 유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전혀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닌 듯, 오히려 검을 빼 들었다.
키잉!
육중한 기가스 스크래퍼가 빼 든 초진동검.
연습용 대전을 위한, 낮은 출력의 초진동검이었다.
출력이 낮기에 설령 기가스에 검 날이 닿게 되더라도 옅은 스크래치 정도가 날 정도에 불과했다.
준비를 끝마친 유성이 말했다.
“잔말 말고. 덤비기나 해. 오늘 훈련은 오로지 근접전으로만 치러질 거니까. 가장 우선적인 건 네 전투 실력을 향상시키는 거야.”
가장 쓸데없는 일이야말로 바로 유성 그를 걱정하는 일이었다.
유성은 이 함선 메티스의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실력의 기갑 파일럿이었다.
원래부터도 유성은 라피스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게다가 유성은 이제 제 자신의 전력을 숨기지 않게 되었다.
그는 라피스 정도의 초짜 파일럿이라면 열이 아니라 스물이 달려들어도 자신이 있었다.
둘 사이에는 그만큼의 격차가 존재하였으므로-.
유성은, 라피스를 향해 대놓고 도발하였다.
“안 오면, 내가 간다?”
“자, 자자잠깐!”
유성의 스크래퍼가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 * *
라피스를 상대로 한 훈련은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하아. 하아.]
통신을 타고 라피스의 거친 호흡이 들려왔다.
그녀가 탑승한 EF-05의 안광이 몇 번이나 빛을 꺼트렸다.
마치 불이 깜빡이는 듯 보였다.
라피스의 마력이 탈진 상태까지 다다랐다는 반증이었다.
그 모습에 유성이 말했다.
“슬슬 그만하자. 이 이상은 해 봐야 도움이 안 돼.”
[아직이…… 야!]
정작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답하는 음성조차 힘겨운 게 눈에 보였다.
이미 라피스는 마력을 남김없이 사용했다.
사실상 기가스를 움직일 정도의 마력조차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문 라피스가 흐릿한 초진동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후. 이젠 안 된다니까.”
그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쉰 유성이 마찬가지로 초진동검을 켰다.
그러곤 달려드는 라피스의 EF-05가 휘두르는 공격을 가볍게 틀어막고는 그대로 붙잡아 회전했다.
[어, 으아앗!]
졸지에 시야가 팽이처럼 휘둘리기 시작한 EF-05를, 유성은 거칠게 걷어찼다.
쾅!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EF-05가 우주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라피스의 시야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시야가 뱅글뱅글 돌았다.
유성은 조금의 반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기가스를 이용한 체술은 별 게 아닌 듯해 보이지만, 의외로 그것은 노련함과 드높은 센스 그리고 적절한 마력 출력이 필요한 고등 기술이었다.
육중한 기가스의 전신으로 크고 작은 마력의 출력을 적절히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라피스는 번번이 유성에게 이런 식으로 당했다.
인간의 몸일 때와는 필요한 감각의 요구치부터가 달랐다.
그녀는 우주라는 무중력 공간에서 도무지 기가스의 제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꺄아악-! 도, 도와줘! 유성!]
“자기가 먼저 덤벼들더니 도와 달라고까지 하는 건가.”
가볍게 혀를 찬 유성이 스크래퍼를 움직여 그녀를 뒤따랐다.
등에 달린 제트팩이 푸른 불꽃을 뿜어내며 추진력을 더했다.
유성은 손을 들어 라피스가 탄 EF-05를 붙들었다.
[으, 으아아. 어지러워. 우욱.]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 라피스가 손을 허우적거렸다.
속이 메스꺼운지 통신을 타고서 좋지 못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유성이 말했다.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거리가 멀어지면 나도 그만큼 힘이 빠지니까.”
[으, 으아아. 어지러워. 우욱.]
유성 또한 나름대로 적잖은 마력을 소모한 것이 느껴졌다.
라피스 만큼 탈진한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기가스를 움직이기 귀찮을 수준만큼은 되었다.
‘적어도 마력이 절반 정도는 소모되었나. 하긴,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을 움직였으니 나도 지칠 만했지.’
기가스란 건 마력을 연료로 소비하는 탈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하지만 그러한 만큼 마력을 태우면 태울수록 그만큼 기가스 자체의 성능이 한계점까지 올라가기 마련이다.
유성은 이제껏 라피스를 상대하면서 최소한의 마력만을 사용했다.
‘기갑 파일럿이란 건 언제라도 항상 여력을 남겨둘 줄 알아야 한다.’
유성은 언제라도 버릇처럼 제 자신의 마력을 가능한 남겨두는 편이었다.
물론 드라칸이 다시금 재출현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지만, 대비해서 안 좋을 것은 없었다.
항상 여력을 남겨야 할 것.
그게 전투를 대비하는 기갑 파일럿의 마음가짐이다.
영상 통신이 연결된 탓에 라피스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라피스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아. 나 재능 없나…… 이제 겨우 기가스에 탄 지 4일밖에 안 된 애한테도 지고 있다니.]
하지만 여자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도, 유성은 가차 없었다.
“애초에 날 비교 대상으로 하면 그건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걸. 그리고 애초에 진짜 눈물도 아니잖아, 그거.”
[쳇.]
그 무미건조한 대답에 라피스는 이내 거짓 눈물을 닦았다.
그러곤 투덜거렸다.
[하아. 됐다. 내가 말해서 뭐 하냐.]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성의 말에 반박할 거리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유성의 말은 자칫 오만하게 들릴 정도의 대답이었지만.
어느 누가 듣기에도 분명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는 분명한 강자였다.
유성은 마나가 바닥나 완전히 작동을 멈춘 EF-05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슬슬 그만하고 쉬러 가…….”
그때였다.
삑-!
요란한 경고음이 들리고 지도상에 적색 느낌표가 떴다.
대번에 둘의 시선이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뭔가’ 가 등장했다.
미확인 적색 신호가 나타났다.
지도상의 ‘그것’은 빠른 속도로 둘을 향해서 접근하고 있었다.
그 속도가 사뭇 비상식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빨랐다.
유성의 시선이 지도로 향했다.
‘……이건?’
[어, 어? 뭐야? 뭔데, 이거?]
아직까지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라피스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때, 통제실과의 통신이 연결되었다.
[유성 생도, 라피스 생도. 드라칸이다!]
“……이런.”
유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훈련이 막 끝나가던 참이었기에 마력조차 대부분 소모한 지금.
최악이었다.
* * *
드라칸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쾅!
[꺄악-!]
라피스가 탄 기가스 EF-05가 반대편으로 거칠게 튕겨 나갔다.
“라피스!!”
유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라피스를 불렀다.
[…….]
하지만 그의 다급한 부름에도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라피스는 충격을 못 이겨내고 기절한 듯했다.
“라피스, 정신 차려!”
몇 번이나 불러 봐도 소용이 없었다.
라피스의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의식이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젠장!”
연이은 첩첩산중.
불행에 불행이 겹겹이 겹쳤다.
‘하필이면 이때 드라칸이 튀어나온다고? 이런 제기랄!’
지금 유성은 훈련을 이유로 라피스를 상대했던 탓에 마력의 상당량을 사용했다.
심지어 지금 그는 전투용 기가스인 EF-05에 탄 것도 아니었다.
라피스의 능력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스크래퍼에 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라피스마저 기절해 버렸다.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다.
“눈 떠! 정신 안 차리면 당한다!”
[…….]
여전히 대답이 없다.
한시바삐 라피스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라피스는 마나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칸의 공격이 적중해 버렸다.
‘제기랄, 충격이 장난이 아닐 텐데 라피스 녀석 괜찮나?’
마나는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의 몸을 보호한다.
그런데 그 마나가 없는 상태로 공격을 허용했다면, 설령 조종석 안쪽이라고 할지라도 순간적으로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는다.
기체 내부라고 해서 절대 충격이 고운 수준은 아니다.
나름대로 파일럿이 받는 데미지가 완화된다고는 하나, 그 충격량은 달려오는 자동차에 들이받는 교통사고 수준에 준한다.
기체 전체가 흔들리고, 라피스는 맨몸으로 조종석의 이곳저곳에 맞부딪혔을 터였다.
팟!
하지만 상황은 다급했다.
유성이 라피스에게 신경을 쓸 틈은 주어지지 않았다.
시커먼 그림자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
나타난 백색(白色)의 인간형 드라칸이 유성을 후려쳤다.
쾅!
“커, 억?!”
유성이 탄 스크래퍼가 사정없이 뒤편으로 튕겨 나갔다.
공격을 받아 낸 유성은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순간의 데미지로 인해서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마치 가슴팍을 세게 얻어맞아 상체가 내려앉은 듯한 충격이었다.
모니터에 비치는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스크래퍼가 우주 공간을 춤이라도 추듯 제멋대로 회전하며 튕겨 나갔다.
그 안에 있던 유성은 온몸의 피가 한쪽으로 쏠리는 급격한 현기증을 느꼈다.
‘크…….’
의식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의식의 가닥을 붙잡았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를 못했다.
막대한 충격을 받아 호흡이 곤란했으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내가 여기서 정신을 잃을 수는…… 라피스…….’
하지만 결국.
버티지 못한 유성은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