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기가스 테스트(1)
“어…….”
무언의 침묵이 이어졌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유성이 말했다.
“일단 잠깐 나가줄래.”
“헉. 미, 미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라피스는 황급히 다시금 바깥으로 나갔다.
거의 도망치는 듯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아.”
유성은 라피스가 나간 문 방향을 보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대충 상의를 걸쳤다.
곧 준비를 마친 유성이 말했다.
“옷 다 입었어. 이제 들어와도 좋아.”
“으, 응.”
대답과 함께, 라피스는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미안.”
들어온 라피스의 얼굴은 상당히 무안해 보였다.
슬그머니 들어온 그녀는 저도 모르게 문 앞에 멀뚱거리며 섰다.
눈만 깜빡거리며 쳐다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눈치를 보는 얼굴이다.
‘하아.’
쭈뼛거리며 서 있는 그 모습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쉰 유성이 곧 말했다.
“너무 그렇게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편히 있지그래.”
“으응.”
침대에 걸터앉은 라피스에게 유성이 물었다.
“그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아. 이제 슬슬 우리가 타고 있는 함선 메티스가 베자리우스 E.X 콜로니가 있는 운석군으로 진입한대.”
“벌써?”
그 말에 땀을 닦던 유성이 라피스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예상보다 하루나 더 빠른데. 그 말 진짜야?”
“응. 방금 전에 칼리온이라는 장교한테서 전달받았는데 함선이 제법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나 봐. 운석들이 슬슬 함선에도 부딪힐 만큼이나 많아질 거래. 함내에 진동이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 유의해 달라고 하더라고. 유성 너한테도 전해 달라고 했어.”
“흠. 그렇군.”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자리우스 E.X 콜로니.
다수의 군 시설을 비롯한 전투 함대를 보유한 군사 기지다.
주거를 목적으로 유성이 머물러왔던 콜로니와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었다.
일단 크기가 콜로니치고는 매우 작다는 점도 그러했고, 다수의 전투 함선과 기가스들이 함께 대기 중이라는 점 또한 그러했다.
사실, 유성이 당장 어제 부함장 아스트라를 향해서 불같은 기백을 내보였던 이유도, 그와 관련이 되어 있었다.
당장 함선 메티스의 행선지가 군사 기지라는 것을 알았는데, 그저 어수룩한 소년으로만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얕게 보이면 잡아먹힐 뿐이다. 어딜 가나 변치 않는 세상의 규칙이다.
그것은 드라칸이건 인간이건 간에 마찬가지인 법이었다.
때문에 그는 부함장 아스트라의 반발을 사게 될지언정 그것조차 감안할 생각으로 자신의 위압감을 내보였다.
실제로도 유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경계를 놓지 않았다.
유성이 당장 제 자신의 단련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실질적인 힘이 있으면 그만큼 함부로 하기가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라피스.”
“응?”
“베자리우스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는 게 있어? 사실 나로선 전혀 알고 있는 게 없어서.”
유성은 이번 생에선 군대의 ‘군’자조차 제대로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없어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이전 생에서 지긋지긋하게 굴렀기 때문에 그러했던 여파가 컸다.
반면 라피스는 꽤나 유명한 마나 사용자 가문의 후계자였다.
라피스 엘 바이어스.
엘 바이어스 후작가의 유일한 계승자.
그녀는 장차 군과도 연관될 처지다. 지금도 틈틈이 배우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여러 군사 관련 지식에서 나름대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편이었다.
곧 그의 물음에 라피스가 말했다.
“아. 베자리우스 콜로니가 군사 기지라는 이유 때문에 수백만 개의 운석군 사이에 숨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대충은.”
유성은 별로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은 상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베자리우스 E.X가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운석들의 중심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문제라면 유성이 그 이상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곳은 군사 기지여서인지 7척의 전투 함선과 20기가 조금 넘는 정도의 기가스가 함께 대기 중이라고 해. 물론 전투기 또한 적지 않게 배치되어 있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꽤 된다고 했던가?”
“생각보다 많군.”
“음, 그렇지. 그리고 또…… 아. 맞다.”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듯하던 라피스가 말을 이었다.
“거기까지만 가면 제아무리 드라칸이라도 그리 쉽게 접근할 리는 없을 거라고 했던 것 같아.”
“꽤나 안전한 곳인가 보군.”
“응. 부함장님께서 그러시는 걸 보면 그만한 장소겠지.”
그때였다.
쿵-!
“음?”
“웃! 뭐, 뭐야?”
함선 메티스의 바깥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과 깜짝 놀란 듯한 라피스가 시선을 창문 쪽으로 향했다.
곧이어 쿠구궁, 하는 연속된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가 바깥에서 함선 메티스와 연속으로 부딪히고 있는 것이었다.
“어…… 이건?”
“벌써 근방에 진입했나 보군. 운석들이야.”
유성이 낮게 중얼거렸다.
둘은 창문 너머로 많은 수의 운석들이 함선 메티스에 부딪히며 지나쳐 가는 것을 보았다.
운석은 한두 개의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작은 크기의 자잘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집채만큼이나 거대한 것들도 심심찮았다.
심지어 창문을 통해 저 멀리 수백여 미터에서 수 킬로미터나 되어 보이는 것들도 보일 정도였다.
창문도 널찍한 탓에 근방의 우주가 훤히 내다보였다.
베자리우스 E.X 콜로니는 유영하는 운석군의 중심에 있다.
지금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이 광경은 그러한 곳의 외곽지로, 막 진입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뜻했다.
사실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유성과 라피스는 현재 특별 취급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일반인들 중에선 유일하게 창문이 달린 특실을 받았다.
함내에 탑승 중인 일부 군인들보다도 더욱 좋은 환경으로써 말이다.
하기사 당연하다면 당연하기도 한 것이기도 했다.
둘은 이 함선 메티스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가스를 움직일 수 있는 파일럿이었다.
물론 그들이 이 정도의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마나 사용자라는 건 일반인들 중에서도 간혹 존재할 정도로 극히 드문 것이 아니었지만, 함장 라프티리아나 부함장 아스트라를 포함하더라도 전투 상황에서 기가스를 움직일 만큼이나 뛰어난 이들은 없었다.
기가스를 움직일 수 있는 마나 사용자란 그 정도로 드물다.
마나 사용자 중에서도 재능의 편차가 압도적인 자들만이 운용 가능한 것이었다.
* * *
“오…….”
라피스는 바깥으로 수없이 펼쳐진 운석들의 비에 작게 입을 벌렸다.
“…….”
한편, 유성은 그다지 말이 없었다.
그저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광경을 응시할 뿐이었다.
‘운석군이라. 확실히 이런 지대라면 그 특성상 군사 기지가 자리 잡을 만도 하겠군.’
잠시간 풍경을 바라보던 유성은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갔다 오자, 라피스.”
“응? 어디 가려고?”
“기가스 좀 보러. 격납고로. 내 스크래퍼를 확인 좀 해야겠어.”
그 말에 라피스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는 곧 생각났다는 듯 무언가 말문을 열려고 했다.
“아, 맞다. 그, 그게 말이지. 사실은 까먹고 있었는데, 유성.”
“……?”
“아, 아무것도 아냐.”
우물쭈물하던 라피스는 말을 흐리며 대답하길 피했다.
유성은 의아해서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랄까, 라피스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흡사 시선을 피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왜 그러는 거야?”
“그…… 있잖아. 사실 내가 진짜로 여기에 온 이유가 뭐냐면.”
잠시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회피하던 라피스가 곧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스크래퍼가 말인데.”
“……스크래퍼?”
잠시 미간을 모으고 의문을 표하며 유성이 물었다.
“왜 그러는데?”
“아, 아냐.”
라피스는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유성은 심히 불길해졌다. 그의 눈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아니겠지.’
그제야 유성은 자신이 얼마나 스크래퍼를 방치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도 눈치라는 게 있다.
유성은 금세 라피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스크래퍼는 유성 그가 탔었던 전투용 기가스인 EF-05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기가스였다.
나머지 기가스들은, 콜로니에서의 전투로 인해 형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스크래퍼를 운용하고 있는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한낱 생도가 제작한 기가스 따위를 전투 상황에서 사용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함선 메티스의 입장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가스를 가만히 놀려둘 리가 없다.
산업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다만 유성은 너무나 정신이 없었던 탓에 여태껏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생각이 들자마자 유성은 곧장 문을 열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라피스. 격납고로 가자. 지금 바로.”
“어, 으, 응.”
그는 제발 자신의 스크래퍼가 제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기를 바라며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대답을 꺼리는 라피스의 표정이 심히 불길했다.
* * *
“……하.”
격납고에 도착한 유성은,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유성은 쓰게 웃었다.
“하하. 이런 망할. 한발 늦었군.”
“유성…….”
라피스가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유성은 그 부름에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허탈함에 빠진 그는 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역시나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망했다.’
이미 스크래퍼는 제멋대로의 개조가 한창 진행이 되고 있었다.
등에는 웬 거대한 4구의 포대가 달렸으며 손과 팔은 원래의 그것이 아니라 크고 육중한 것들로 갈아 끼워져 있었다.
크고 육중한 팔다리에는 수십여 개의 탄막 미사일이 장착되어 있었으며, 왼팔과 오른팔에는 각각 거대한 방패를 연상케 하는 포대가 들렸다.
그 외에도 관절과 어깨, 무릎 등의 구석구석에 작은 포탑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생김새는 명백해 보였다.
완전히 포격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다리가 달린 전투 포탑과도 비슷해 보였다.
이미 작고 날렵하던 원래의 스크래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이미 내 기가스가 아닌데, 저건.’
유성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던 스크래퍼는.
처음의 작고 날렵했던 인상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전투용 기가스로 재탄생해 있었다.
그것도 전신에 크고 작은 포대와 포탑, 미사일로 무장한 완벽한 포격 전용의 기가스로.
어느 모로 보나 이미 산업용 기가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
그런 유성을 옆에서 지켜보던 라피스는 그저 그의 눈치만을 살필 뿐이었다.
그가 스크래퍼에 가지던 애착이 얼마나 클지는, 라피스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유성의 손에서 만들어진 기가스였다.
거기다 라피스가 조종할 때마다도 매번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는 하였던 것이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기가스 스크래퍼의 앞에 놓인 것은 묵직한 탄창과 무장들. 그리고 거대한 무장 장갑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엔지니어들은 하나의 전투용 기가스의 완성해내고 있었다.
“…….”
유성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말도 없었다.
그저 저 멀리서 한창 스크래퍼의 파츠를 갈아 끼우고 있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전혀 달랐다.
수십의 폭죽들이 연달아 터져 나가며 뇌내의 사고를 이어나가길 방해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그냥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