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SSS급 기갑파일럿 생존기-21화 (21/200)

21화. 생도 유성. 그리고 군인 이시혁(3)

‘9호가 당했다. 그 많았던 싱글 넘버즈도 이제는 오로지 나 하나뿐이로군.’

이시혁은 말을 흐렸다.

그는 잠시간 눈을 감았다.

이시혁의 침묵에, 연구원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들 또한 싱글 넘버즈들 사이의 유대감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아마도 지금 이시혁은.

지금 죽어 버린 9호를 향한 묵념, 혹은 애도 비슷한 것을 하고 있을 터였다.

싱글 넘버즈.

그들은 드라칸과의 전쟁 초기에 탄생한 ‘최초’의 마나 사용자들이었다.

범상치 않은 그 명칭답게도 하나같이 뛰어나지만, 문제는 그만큼 불안정했다.

온갖 사건과 사고들이 난무했던 탓에 죄다 죽어 버리고는 이제는 7호인 이시혁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사실상 인류의 유일한 희망 또한 바로 이시혁 그가 전부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는 최강의 기갑 파일럿이었다.

9호가 살아있었다면 둘이었겠지만, 그가 죽은 이상에야 오로지 이시혁 그만이 유일했다.

수많은 기갑 파일럿들 중에서도 오로지 싱글 넘버즈만이 가장 강력하고, 특별한 존재였으므로-.

“그나저나.”

곧 묵념을 마친 이시혁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나타난 녀석들은 어지간히도 센 놈들인가 보군요. 9호가 당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그래. 적어도 쉬운…… 녀석들은 아니지.”

연구원들도 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잠시간 말을 흐렸다.

싱글 넘버즈는 인류 유일의 희망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래왔으며, 수많은 마나 사용자들이 능력을 각성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줄곧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는.

그러한 싱글 넘버즈를 쓰러뜨렸다는 상대는 그만큼 강대한 존재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했다.

꿀렁.

이시혁은 말을 할 때마다 입 안으로 배양액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이물감을 느꼈다.

캡슐의 내부는 배양액으로 가득하니 입을 열면 어쩔 수 없이 새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입마개 덕분에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이시혁과 같은 마나 사용자들은 전투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 중의 대부분을 배양액에서 보내곤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혹독한 전투 환경으로 인해 인체가 망가질 대로 망가졌기 때문이다.

세포 촉진 배양액을 통하여 수명을 대가로 세포를 강제로 촉진한다.

이 배양액은 전투에서 잦은 부상을 당하는 마나 사용자들을 빠르게 회복하는 기계였다.

부족한 신체 회복력을 그로써 상쇄한 덕에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었다.

이시혁의 나이는 기껏해야 10대 중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구원들의 얘기로는, 이미 그의 육체는 붕괴를 맞이하는 나이가 된 지 한참이라고 하였다.

즉, 이미 심각한 노화 현상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말은 그 자신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은 이미 이시혁의 눈앞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파삭-.

“…….”

이시혁은 자신의 손끝의 살점이 갈라져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육체가 노화해 가고 있다.

확실히, 신체의 붕괴 현상은 이미 매 전투를 할 때마다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미 이시혁이 20살의 나이를 넘지 못할 거라고 판정을 내렸다.

단명할 거라는 얘기다.

이시혁 그 또한 그 말에 딱히 부정하진 않았다.

당장 눈으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배양액에서 당장 나간다면, 잠시간은 멈춰 있던 그의 노화가 다시금 가속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담담히, 전장에 나갈 뿐이었다.

그는 나가서 싸워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군인이었으므로.

“마약성 통증 완화제를 투여하지, 7호. 조금 정신이 흐릿해질 거야. 잠깐 잠드는 거라고 생각해라.”

“문제없습니다.”

이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을 투여한다는 말에도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는 군인이었다.

그저 초연히 나가서 싸울 뿐이었다.

의무감과 인류애적 감정 따위는 전혀 없다.

이시혁은 누구보다도 군인다운 단단한 정신을 지녔지만, 그가 싸우는 근본적인 동기는 누구보다도 군인답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옆에 선 동료와 형제들이 결코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싸운다.

당장 그 자신이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그의 동료들이 나가서 싸우다 죽어야만 했다.

그것이 그가 나가서 싸우는 이유의 전부였다.

이시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마약 투약이라니. 가능하면 자제하려 했건만, 결국 이번에도 한 달을 채 넘기질 못했군.’

연구원들과 이시혁 모두 마약 투여라는 말에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도덕심? 약에 대한 중독성?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구애받질 못했다.

이 시대의 인류는 그런 사소한 것에 연연하기엔 이미 너무도 다급한 시점까지 와 있었다.

이미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어제와 오늘이 매일 달랐다.

어제까지 남아 있던 사람의 수가 오늘이 되면 확 줄어 있다.

인류의 영역 또한 하루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살기 위해선, 당장 나가서 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이 어떻든지 간에 누구 하나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시대다.

치익-.

주사기를 통해 강렬한 마약성의 약물이 주사되었다.

“윽.”

곧 이시혁의 정신은 흐릿해졌다.

연구원의 말이 흐려지는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약물이 투여된 동안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쉬어라. 그동안 우린 기가스에 널 태워 주겠다.”

“알겠, 습…….”

채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이시혁은 눈을 감았다.

* * *

번쩍.

정신을 잃었던 이시혁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그는 기가스에 탑승한 상태였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을 안 동료들이 말을 건넸다.

[여, 정신 차린 모양이군. 시혁 대장.]

[대장, 아직 살아 있었나? 하하, 하도 눈을 안 뜨길래 죽은 줄 알았어.]

친근한 소대원들이었다.

이제껏 수없이 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 온 이들이었으니까.

동료들의 말에 피식 웃은 이시혁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말이지.]

그의 대답에 대한 반응은 열렬했다.

[푸하핫! 들었어? 대장이 아직까지는, 이랜다!]

[말하는 걸 보니 조만간 죽겠는걸? 지금 그 대사 딱 저세상 가기 좋은 말이었거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그의 소대원들이 탄 기가스들이 대장기인 이시혁의 기가스 옆에 섰다.

그렇게.

이시혁은 전장에 나갔다.

언제나처럼.

* * *

“헉.”

유성이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그는 진정을 하고 다시금 침대에 몸을 누였다.

“하아. 오랜만인데. 과거의 꿈 같은 건.”

침대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몇 차례 누워서 몸을 뒤척이던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잠에 들기는 글렀군.’

정신이 또렷했다.

예리한 신체가 날이 선 듯 활발했다.

오래간만의 꿈 탓인지, 벌써 잠기운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뒤였다.

조금도 느껴지질 않았다.

때문에 유성은 나직한 한숨을 쉬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잠시간 산책이라도 해야 할 모양이었다.

* * *

이곳, 함선 메티스는 정말이지 입이 벌어질 만큼 넓은 우주 함선이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질 우주 항행을 위하여 만들어진 이주형 함선.

그렇기에 이곳에는 탑승자들의 기분 환기를 위한 다양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짹짹.

녹색의 수풀이 우거진 공원 또한 있었다.

유성은 새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공원에 들어섰다.

공원은 한적했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공원을 거닐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후-.”

유성은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그는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밤 시간이었던 탓에, 컴컴한 밤하늘과 그 위로 달이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홀로그램 환경 덕분에 함선 내부임에도 공원인 이곳에서는 낮과 밤, 태양과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지구의 낮과 밤이 연상되는 인공적으로 제작된 공원이라는 것이다.

“…….”

잠시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유성은 생각했다.

‘부모님께서 꽤나 걱정을 하시겠군.’

이곳에서는 행성 테라로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쉽게 짐작이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콜로니의 대폭발 때문일 터였다.

작은 행성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을 크기의 콜로니였다.

그러한 콜로니가 붕괴하며 일으킨 거대한 폭발은, 근방 우주의 모든 통신을 완벽히 먹통으로 만들어 버렸다.

분명 이 사건은 이미 부모님들이 사시는 행성 테라에까지 전해졌을 터였다.

단지 통신을 방해하는 요소인 폭발로 인한 탓에 자신의 생존을 알리지 못할 뿐이었다.

‘그보다 이제 곧 목적이었던 다음 콜로니로 진입하는 건가.’

함선 메티스는 이대로 가장 가까운 콜로니인 베자리우스 E.X로 향할 예정이었다.

거기까지만 간다면 통신은 문제없이 다시금 제 기능을 회복할 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부모님과의 통신 또한 가능해질 테지.

문득 유성은 의문이 들었다.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러고 보니 베자리우스 E.X에선 어째서 한 척의 구조 함선조차 보내질 않는 거지?’

통신이 되지는 않는다곤 하더라도 베자리우스 E.X 콜로니는 가까운 곳에 있다.

불과 일주일 거리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콜로니였다.

그 정도 거리에 불과한 곳에서, 콜로니가 일으킨 대폭발을 감지하지 못할 턱이 없었다.

정상적이었다면 적어도 오늘 낮이나 저녁 전에는 베자리우스 E.X에서 보낸 함선과 이미 마주쳤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구조함선 한 척조차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뭔가 감이 좋질 않아.’

그것은 그저 단순한 예감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유성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는 달을 보며 깊은 고민을 이어나갔다.

* * *

날이 밝았다.

“후욱-, 후욱-.”

유성은 한창 바쁘게 운동을 하던 중이었다.

그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턱걸이를 계속 이어나갔다.

선을 이룰 정도의 촘촘하게 짜지어진 근육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 유려한 근육들은, 이미 완성형에 이르러 있었다.

본래부터도 나쁘지 않았던 그의 육체 능력이, 마나 능력을 각성함과 함께 가파르게 급성장하고 있다.

“하아.”

한창 유성이 제자신의 몸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을 즈음.

똑똑.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유성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아갔다.

들려오는 것은 익숙한 라피스의 음성이었다.

“유성, 나 들어간다-.”

“잠, 까……!”

거칠어진 호흡의 유성 그가 채 대답할 새도 없이, 라피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오려던 라피스는 유성과 눈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둘 사이로 내려앉았다.

“…….”

곧 라피스의 눈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유성은 완전히 상의를 탈의하고 있었다.

유려하게 선을 이루는 근육에 땀이 비 오듯 흘러, 흡사 유성의 상체는 광채를 발하듯 보였다.

“어…….”

곧 라피스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잠시 그녀의 머리가 생각을 멈추었다. 머리가 멍해진다.

무언의 침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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