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생도 유성. 그리고 군인 이시혁(2)
모의 훈련장.
평소라면 이용하는 이 하나 없어 조용할 그곳에, 때아닌 소음이 일었다.
퍼버벙!
유성은 포탑으로부터 연이어서 쏟아지는 고무 탄환을 회피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지금 그의 온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복장이 축축하게 젖었다.
그가 얼마나 고된지는 표정만 보더라도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유성은 단순히 탄환을 피해 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전신에는 무거운 추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어마어마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이곳 훈련장은 중력마저도 조절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유성은 지금 이곳의 중력을 무려 지구 시절보다 열 배가 넘어가는 수준으로 세팅해 두었다.
그러한 곳에서 유성은.
퍼버벙!
반대편의 포탑에서 쏘아지는 고무 탄환을 피해 내는 훈련까지 함께 겸하고 있었다.
고무라고는 하나, 보통 사람용이 아닌 마나 사용자의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탄환의 속도는 빨랐으며 쉽게 피해 낼 수준도 아니었다.
따라서 절대로 평범한 타격 수준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맞았다간 대번에 골로 갈 정도의 타격이었다.
마나가 슬슬 바닥까지 떨어져 가는 즈음.
뒤편에서부터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타나 그를 불렀다.
“유성!”
“왔어, 라피스?”
그를 부르는 익숙한 음성에 유성은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라피스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꽤 늦었는걸.”
“너무한데. 먼저 일어났으면서 난 깨우지도 않고. 왜 말도 없이 혼자 오는 거……! 웃?!”
말을 건네며 훈련장으로 무심코 발을 내딛던 라피스는.
순간 크게 비틀거렸다.
그녀는 하마터면 그대로 바닥에 푹 주저앉듯 넘어질 뻔했다.
라피스는 황급히 훈련장에서 발을 빼내고는 놀라서 물었다.
“뭐, 뭐야. 이거?”
“아. 놀랐나 보네. 훈련용 중력장이야. 너도 알잖아?”
“알기는 아는…… 데.”
라피스는 대답을 흐리며 슬그머니 훈련장 안으로 손끝을 조금 넣어 보았다.
손 끄트머리를 슥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푹 아래로 꺼지려고 했다.
“웃!”
라피스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손을 내뺐다.
예사 수준의 묵직함이 아니었다.
고작 손끝만 집어넣었을 뿐인데도 어마어마한 중력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는 라피스의 모습에 피식 웃은 유성이 말했다.
“마나를 끌어 올려 봐. 좀 버틸 만은 해질 테니.”
“뭐, 야. 이거. 그래도 장난이 아닌…… 데?”
라피스는 입을 벌렸다.
훈련장의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온몸에서 묵직하다 못해 강렬한 수준의 중력이 느껴져 왔다.
솔직히 말하면, 라피스 그녀로서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도 힘들 정도였다.
중력이 어찌나 무거웠던지, 당장에라도 무거운 무언가가 육체를 내리누를 듯 압박하는 무게감이 느껴져 왔다.
“아니, 유성.”
“왜 그래. 후.”
유성은 대답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그런 그를 보며, 라피스가 물었다.
“설마 이걸 단련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보는 대로지.”
유성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하지만 라피스는 한창 땀을 흘리며 단련 중인 유성의 모습에 금세 안색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불과 이틀 전 정신을 잃고 실려 왔던 그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유성, 몸은 이제 괜찮아?”
“괜찮아. 나아졌어.”
대답과 함께, 유성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 말에 유성은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의 두 눈에 푸른빛이 미약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마력을 끌어 올린 채로 한쪽 구석에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보았다.
기잉-.
카메라의 렌즈, 그것은 분명 켜져 있었다.
또한 그들 둘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피스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유성의 눈은 저 작은 카메라 렌즈의 움직임조차 알아차릴 정도로 세밀하며, 또한 초인적이었다.
그의 귀에는 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작동하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음이 들려왔다.
‘부함장인가.’
그 외에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맞을 터였다.
이 함선에서 그들을 유심히 지켜볼 만한 이라고는 그가 유일했다.
‘아마도 배의 전반적인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그겠군.’
만났던 것은 잠시 잠깐에 불과했으나, 통제실을 둘러본 덕에 함선의 전반적인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틀림없다.
통제실을 떠날 수 없는 함장 대신, 함선 메티스의 전반적인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부함장 아스트라였다.
“그런데 있잖아, 유성.”
잠시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듯했던 라피스가 곧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 말인데 그…… 내 실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말이야.”
“…….”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도 유성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라피스와는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뒤늦게 알아차린 라피스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유성. 있잖아, 듣고 있어?”
“어, 어? 아, 음. 미안. 뭔가 말했었나?”
유성은 인상을 찌푸리는 라피스의 모습에 수긍하듯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반응은 즉시 터져 나왔다.
“아니, 듣지도 않고 있는데 뭐가 음이야?”
대번에 성난 라피스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물론 유성은 문제없이 피했다.
심지어, 맞는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는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 움직인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고는 하는 말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유성은 의아한 듯 눈을 들어 라피스를 보더니 어조조차 변하지 않고 물을 뿐이었다.
“왜 그래?”
억울함도, 당황도 없다. 그저 태연할 뿐이다.
심지어 사람이라면 당연한 화를 내는 기색조차 없다.
라피스로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다는 말인가.
대놓고 무시당했다.
라피스.
사실 그녀는 꽤나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벌어진 연속된 두 번의 전투 이래로 생긴 것이었다.
유성은 난생 처음으로 기가스를 타고서도 그것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심지어 그것으로도 모자라 우주 공간에서마저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싸웠다.
마치 기가스와 한 몸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로 인해 라피스는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언제나 모두에게 칭찬받아 왔던 자신의 실력이.
사실은 별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라피스의 입장에서는 주눅이 들 만도 했다.
떄문에 나름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가르침을 청하려 했는데.
정작 유성 본인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한창 초조할 지금 시점의 라피스로서는 열이 날 만도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성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성도 유성 나름대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지금 유성에게는.
정작 가까이 있는 라피스에게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드라칸 놈들이 여기까지 나타난 거지.’
놈들이 나타나지 않은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은 400년이다.
1년이나 10년도, 심지어는 수십 년조차도 아닌, 무려 400년.
그 아득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의 시간 만에 나타난 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곳저곳에서 등장하고 있었다.
‘벌써 두 개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것도 반나절 만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하나의 드라칸 무리 정도라면 우연의 일치로 보아도 괜찮았다.
아주 극악한 확률의 우연에 우연이 겹친다면, 그가 사는 이 시간대에 다시금 재등장한다며 흘려 넘겨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드라칸 무리. 반나절만의 재등장.
이것을 과연 우연의 일치라고 봐도 좋은 건가?
‘모르겠군.’
의문점이다. 불확실하다.
그건 유성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지구 시절의 과거를 떠올렸다.
드라칸과의 대전쟁 초기.
당시 놈들의 군체는 기껏해야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었다.
수가 적다는 것은 결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위험과 위협은 달랐다.
놈들은 위험한 종이었으나, 인류가 결코 감당을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인류는 위협을 느끼지 않았고, 이 위험하면서도 난생 처음 보는 외계의 존재들에 흥미를 느낀 인류는 놈들과 싸우는 대신 가능한 물러서서 일단 생태를 살피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패착이었다.
그 관찰의 여지가 위협으로 돌변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어느 순간 급속도로 발견되는 무리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확인된 드라칸 무리의 숫자만 세 자릿수 단위를 넘어가 버렸다.
나중에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여왕체와 놈들의 무리가 나타났는지조차 모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태양계 전체, 모든 행성에 놈들이 서식한다고 해도 좋을 만큼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 의미 그대로, 인류의 모든 영역이 놈들의 것이 되었다.
‘다시 그런 식으로 놈들의 수가 불어나게 될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불확실함을 넘어선, 그저 명백한 가정의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일전의 나는 언제나 힘이 모자랐기에 놈들에게 당했다.’
이미 경험했던 과정을 가지고서도 또다시 당하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유성은 분명하게 생각을 다졌다.
지금부터 마나 사용자로서의 힘을 키우기로 했다.
지금, 바로 이 순간부터.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과거와 동일했던 탓이었다.
전생인 이시혁 시절에 확고하게 확립하여 완성된 자아.
그것은 설령 다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여전했다.
그러므로. 이제껏 평화에 찌들어 있었다고 할지라도 군인으로서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뚜렷했다.
그는 여전히 올곧고 곧으며, 또한 직선적이었다.
곧 생각을 마친 유성이 라피스를 불렀다.
“라피스.”
“……왜.”
라피스의 대답은 짧았다.
짜증이 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축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기가 죽은 느낌이랄까?
그런 그녀에게, 유성은 말했다.
“일어나. 대련이나 하자.”
“…….”
그 말에 더더욱 라피스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힐끗 유성을 보더니 몸을 돌렸다.
“라피스?”
의아한 유성의 물음에 라피스는 우울한 음성으로 답했다.
“미안.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네.”
“왜 그래?”
유성은 의아해서 의문을 표했다.
평소라면 흔쾌히 수락했을 라피스가, 오늘은 반응이 시원찮았다.
유성은 멀어지는 라피스의 뒷모습에 그저 가만히 선 채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눈을 깜빡였다.
* * *
그날.
유성은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너무도 긴 시간 만에 드라칸을 다시 만났던 탓일까.
꿈속에서 그는 과거의 이시혁으로 돌아가 있었다.
군인 이시혁.
그는 배양액에서 자라났다.
뽀그르르.
배양액 속에서, 매일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얀 가운을 걸친 연구원들은 그가 들어 있던 배양액 캡슐의 버튼을 눌렀다.
삐-.
그러자 경고음 비슷한 신호가 울렸다.
연구원들은 잠들어 있던 그를 향해 말했다.
“넘버 7호, 이시혁. 일어나라.”
“…….”
“일어나라, 7호.”
묻혀 있던 의식을 끄집어내는 소란스러움에, 감긴 눈을 꿈틀거리던 이시혁은 끝내 천천히 눈을 떴다.
이시혁의 시야에 뽀글거리는 배양액 너머로 그를 응시하는 연구원들이 보였다. 시야가 흐릿하다.
그가 눈을 뜨자 연구원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일어났군.”
“……아.”
이시혁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목구멍에서 음성이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탓인 듯했다.
“아, 음. 아아.”
잠시간 음성을 내뱉으며 메마른 목을 추스르던 이시혁은.
곧 가늘어진 음성으로 물었다.
“……또 출진입니까?”
“그렇다, 7호. 이미 전투가 한창이야.”
“꽤나 급했던가 보군요. 아직 시간이 이를 텐데도 깨운 걸 보니.”
“듣기로는 이미 함선 세 척을 포함해 함께 출격했던 기가스 17기가 죄다 격추당했다더군. 다른 놈들로는 도저히 드라칸에게 버틸 수가 없어서 7호 널 깨워야만 했다.”
“저 이외에도 아직 싱글 넘버즈(Single numbers)라면 남아 있을 텐데요. 9호는 안 나간 겁니까?”
“9호라면 당했다. 정확히 세 시간 전에. 전장에 터무니없는 괴물이 나타났다더군. 이제껏 없던 드라칸이 나타났어. 그러므로 이제 싱글 넘버즈는 오로지 너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그렇습니까…….”
이시혁은 말을 흐렸다.
그는 잠시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