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생도 유성. 그리고 군인 이시혁(1)
각성자.
그것은 마나 사용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지극히 희소한 존재들을 의미한다.
강대하고 뛰어나며, 또한 한없이 강건한 힘과 능력을 가진 이.
예전부터 각성자들의 능력은 뛰어나기로 유명했다.
그쯤 되면 이미 단순한 마나 능력자가 아니라, 드라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
그것은 결단코 거짓이나 과장의 의미가 아니었다.
순수하게 그 말 그대로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정말로, 오로지 몸뚱이 하나만으로도 이미 ‘드라칸에 준하는’ 존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취급을 받는 것치고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각성자들에 대해서 잘 몰랐다.
설령 알더라도 뛰어난 초인쯤으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각성자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각성자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대부분 장교 이상급의 군인들이었다.
사회에서 각성자에 대해서 함구되는 이유는 분명했다.
‘당연하겠지. 세상에 어느 누가 각성자의 취급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좋아할까.’
지금의 세상은 마나 사용자가 우상시되는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마나 사용자인 각성자가 위험물 취급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존의 마나 사용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오로지 군부의 장교급 이상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간에 딱 한 번, 각성자의 존재가 아주 제대로 드러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부함장 아스트라는.
바로 그 각성자라는 대단한 존재를 과거에도 직접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아스트라가 말했다.
“지금은 감옥에 들어갔다는 특급 범죄자,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자네도 알고는 있겠지? 워낙에 유명한 자니까.”
“네, 뭐. 알고는 있습니다만.”
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객스 리 아스타치오. 모를 리가 없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한없이 특별했다.
당대에 기록된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
그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까지 무려 세 자릿수에 달하는 인간을 무참히 도륙 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군과 경찰의 포위망을 빠져나간 탓에 잡기조차 어려웠던 마나 사용자.
심지어는 맨몸뚱이만으로 기가스의 추격조차 유유히 피해 벗어났다는.
당대 최악의 연쇄 살인마였다.
물론 지금은 붙잡혔지만, 여전히 감옥에서 멀쩡히 살아는 있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여전히 뭇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는 인물이었다.
부모님들은 잠 안 자는 어린애들을 재우기 위해 빌객스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고는 했다.
그런 그를,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사실 유성 또한 코흘리개 시절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범죄자 빌객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커왔다.
물론, 그런 얘길 들어도 실제로는 별 감흥이 없는 그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각설하자면.
빌객스는 일종의 공포 동화의 산 주인공과도 같은 자였다.
곧 생각을 마친 유성은 의아해서 그에게 물었다.
“왜 뜬금없이 그자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겁니까?”
그 말에 부함장 아스트라는 설핏 미소 짓더니 제안했다.
“한 번 생각해보게. 내가 어째서 얘기를 꺼내었을까.”
“음.”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는 듯하던 유성의 미간이 미약하게 찌푸려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이 잡히는 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나 하는 의문을 담아 물었다.
“설마, 바로 그가 각성자라는 겁니까?”
“그래. 정확하네.”
아스트라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유성은 모호한 감탄사를 흘렸다.
“흠-. 그렇군요.”
“의외로 유성 생도, 자네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군.”
유성은 어깨를 으쓱이곤 태연히 대답했다.
“딱히 놀라울 건 없으니까요.”
그러더니 수저를 부지런히 놀려 입안으로 가져갔다.
사실 당연한 거다.
사람을 세 자릿수나 도륙을 내버린 데다, 기가스를 맨몸으로 상대할 정도의 초인이라면.
애당초 그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유성은 태연했다.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달그락거리는 소음만을 흘리며, 여전히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후, 하고 웃은 부함장 아스트라는 말을 이었다.
“어찌 되었든, 특급 범죄자인 빌객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뛰어난 수감 시설에서 보호 관리 중에 있지.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네.”
“이유?”
달그락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이던 유성의 손이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아스트라를 응시했다.
곧 진지한 표정과 함께 부함장은 말했다.
“각성자들은 모두가 빌객스. 그 인물과 비슷한 수준의 ‘감시’를 받게 되어 있거든. 쉽게 말해 보호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이지.”
“…….”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젓가락에 새파란 마나가 불꽃처럼 솟구쳤다.
흡사 새파란 빛의 창날처럼 길게 주욱 뻗어 나갔다.
고오오-.
준비를 마친 유성의 두 눈에서 타오르는 듯한 새파란 안광이 피어오르기 직전의 무렵.
“워워, 진정하게.”
부함장 아스트라는 손을 내뻗어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조금의 대꾸조차 없이 싸늘하게 응시하는 유성의 모습에.
그는 어색하게 웃고는 말했다.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이런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겠지. 자네에 관련된 자료들은 모두 내 손으로 직접 파기했네.”
“…….”
하지만 여전히 유성은 부함장 아스트라를 서늘하게 응시했다.
아직 그가 원할 만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여전히 노려보는 그의 시선에, 아스트라는 황급히 덧붙였다.
“자네의 전투 영상들은 한 개의 파일조차도 남아 있지 않아. 다른 누구도 아닌 함장님께서 직접 지시한 내용이니 걱정 말도록.”
“그렇군요.”
그제야 유성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솟구치던 마나를 가라앉히더니.
곧 차분해진 기세로 아스트라에게 말했다.
“시험할 생각이라면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구태여 인내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그 말을 끝으로 유성은 마나를 잠재웠다.
그러더니 다시금 얌전히 식사를 이어나갔다.
끓는 물이 순식간에 기화하듯 금세 조용해진 유성의 모습에, 아스트라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역시 고등학생 소년일지라도 쉬운 성정은 아니로군. 말하는 게 조금만 늦었다면 정말로 무슨 일이 났을 수도 있겠어.’
어마어마한 압박감.
흡사 일개 소년이 아니라 드라칸을 코앞에서 맞닥트린 기분이었다.
부함장 아스트라는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의 마나 사용자였다.
한데, 불과 1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코앞에서 직접 마주한 유성의 압박감은.
감히 상대가 가능할 거란 생각의 여지조차 들지 않을 만큼이나 강렬하기 짝이 없었다.
아스트라는 남몰래 침을 삼키며 생각했다.
‘설마 각성자들은 죄다 이런 건가?’
하긴,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는 최악의 범죄자라고 꼽히는 빌객스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었다.
그러한 아스트라 부함장이 느끼기에, 눈앞의 소년은 그 빌객스에도 결코 밀리지 않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도 능력을 갓 각성한 마나 사용자가 말이다.
‘정말 소름 돋는군. 온몸의 털이 솟구치는 듯한 느낌이야.’
일축하면, 그야말로 압도적인 상위의 포식자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원래부터 각성자란 건, 마나를 다루는 뛰어남으로 유명한 마나 사용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라면 일반인과는 성질의 뭐가 어떻게 달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긴 눈앞의 이 소년도 빌객스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남다르니. 저 나잇대에 으레 가지고 있을 만한 자만감 따위는 조금도 없어. 오히려 조용히 숨어 살기를 원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부함장 아스트라는 단정을 내렸다.
그는 더 이상 유성을 한낱 어린 소년 따위로 치부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상대하기 어려운 고위의 장교나 파일럿으로 여기기로 했다.
“유성 생도.”
“네. 말씀하시길.”
“테라 행성까지의 귀환까지 최선을 다해서 호위해 주게나. 그동안 드라칸이 다시 출몰할지 안 할지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불안한 게 여간 있는 것이 아니야.”
“제 조건은 한 가지입니다.”
“말하게나.”
슬며시 시선을 들어 아스트라를 응시한 유성은 곧 말했다.
“고향인 테라 행성까지 갈 동안은 원하시는 대로 최선을 다해 드리죠. 기갑 파일럿으로서 충실히 말입니다. 대신, 도착해서부터의 저는 평범한 생도 신분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게 전부인가?”
“이미 대충 짐작하시지 않습니까. 제가 원하는 건 제 정보를 어디에도 저장하지 않고 어디에도 빼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조용히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실 것.”
“…….”
“만약 섣불리 절 건들려 했다간-.”
화륵.
그가 잡고 있던 젓가락이 순간 새파란 불꽃에 휩싸였다.
열기는 단숨에 젓가락을 녹여, 그대로 없애 버렸다.
치익, 하고 녹아 없어지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이며 그, 유성이 말했다.
“빌객스 이상 가는 범죄자가 태어날 겁니다.”
꿀꺽.
침을 삼킨 부함장 아스트라는.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지.”
아스트라는 유성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유성과 범죄자 빌객스는 많은 방면에서 대척점에 있었다.
빌객스는 잦은 살인 충동에 못 이겨 어딜 가나 사람을 죽이는 요란한 범죄자였지만.
유성은 섬세하며 조용한 마나 사용자였다.
유성은 제 자신의 능력마저도 조용한 삶을 위해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잠재웠던 이였다.
그런 그의 경고를 어겼다간, 정말로 터무니없는 범죄자가 탄생할 수도 있을 것임을.
아스트라는 분명하게 인지하였다.
아마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대범하게 날뛰는 학살자보다는.
자신을 잠재울 줄 아는 조용한 암살자가 더 두려운 법이었다.
* * *
곧 식사를 마친 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누워 있던 탓에 빳빳하게 굳어있던 몸을 풀며.
그는 아스트라에게 물었다.
“그보다 부함장님. 여기 훈련장은 어디 있습니까?”
“훈련장? 육체를 단련할 만한 장소 말인가?”
“네.”
의문을 표하는 부함장 아스트라에게, 유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이왕 마나 능력을 각성한 이상에는 단련을 시작하는 게 정답일 테니까요. 몸을 풀 필요가 있겠군요.”
“…….”
그 말에, 아스트라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왕’이라니, 정말 마나를 각성한 것을 별것 아닌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부함장 아스트라는 문득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가 마나 능력을 각성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다년간의 노력이 말이다.
스치듯이 지나간 지난날의 기억들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아스트라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단지 마나 능력을 각성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몇 번이나 포기할 뻔했는데 말이지.’
천재란 태생부터 이런 것인가.
태도와 행동 하나하나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 나잇대의 소년이 가져야 할 특유의 태도 따윈 일절 보이지 않는, 그런 이였다.
유성의 가벼운 몇 마디 말은.
지금까지도 아스트라 부함장에게 있어 꾸준히 이어져 왔던 수년 동안의 모든 노력이 허탈해지게 만드는 소리였다.